한 권으로 끝내는 세상의 모든 과학
이준호 / 추수밭(청림출판) / 2017
A :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가장 감명 깊게 읽은/가장 좋아하는 과학책을 꼽으신다면요?
B : 저는 칼 세이건의『코스모스』를 꼽고 싶네요. 제게 과학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지요. 정말 인생책입니다.
A : 네,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과학책으로『코스모스』를 꼽은 5780198501번째 인간이신, B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정말 과학책 볼 만한 게 없던 때가 있었다. 읽어 본 사람보다 안 읽어 본 사람이 더 많지만, 읽어 본 사람이나 안 읽어 본 사람이나 어쨌든 그 이름 칭송하지 않는다면 즉시 오랑캐 취급을 받던, 과학 도서계의 야훼,『코스모스』가 온통 독서판을 지배하던 그 시절이, 그리 오랜 옛날도 아니다.
세 가지 종류의 과학책이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어렵고 재미없는 책, 어렵지만 재미있는 책, 쉽고 재미없는 책. 탄탄한 과학 지식을 베이스로 장착한 일부 몰지각한(응?) 독자를 제외한 일반적 독자들에게, 과학책이 다루는 주제나 소재는 "흥미"로 다가올 뿐, 과학책의 진정한 "재미"는 오롯이 지은이의 말빨에서 온다고 syo는 장담해 본다.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미"있으면서 "읽히는" 책이 흔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과학책이야말로 "재미"가 중요하다. 머리가 빠개질 만큼 어려운데, 재미까지 없는 책을 꾸역꾸역 읽는 인간이 있다고 한들, 아무렴 과학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그런 비과학적 인간이 과학책을 손에 들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은? 정말 좋은 책이 우리 은하의 별처럼 많다. 심지어 가끔은 과학책 읽다가 배꼽도 잡게 된다.
다행히도(?) 이 책은 읽는 이의 배꼽은 안전하게 보장한다. 그러나 넉넉히 재미있다. 제목은 이래도 사실 이 책은 "빅 히스토리"책인데, 빅 히스토리는 과학이 역사의 영역을 날름날름 녹여먹는 최신 전법이므로 그야말로 과학책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제목을 저렇게 지어놓으면 조금 곤란하다. 제목만 보고 지식백과형 책일거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역사책이라 신나고 즐겁게 나왔다. 138억년 전에서 시작해 지금으로부터 몇 백년 후까지의 우주와 지구별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역사의 심층에서 작용하는 과학의 보이지 않는(때로는 선명히 보이는) 손을 조명한다.
이미 역량 검증이 끝난 저자의 전작과, 다른 재미난 과학책 몇 권 함께 소개해 본다.
『과학이 빛나는 밤에』는 이준호 작가의 전작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본격 과학책인데, 라디오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뜬 거라, 지난 몇 년간 세상을 떠르르(우리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떠르르)하게 했던 과학 관련 사건들을 친절하게 해설한 책이다. 『만물과학』은 마커스 초운의 책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뇌과학 관련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하는 분께 꼭 권하고 싶다. 저런, 오늘 저녁에 첫 방송인데 벌써 띠지를 둘렀구나. 그리고 무엇보다도『판타스틱 과학책장』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데, 도대체 무슨 과학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을 때 참조할 만한 목록을 분야별로 제공한다. 그리고 소소한 책들로는 이런 것들도 있다. 몇 권 읽어보았는데, 특별히 기초 지식이 필요 없는 책들이라 부담이 없다. 팟캐스트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책도 계속 나올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소담 옮김 / 코난북스 / 2017
읽었는데, 말로 실컷 후드러 맞고 약간은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다.
실은 사회학 책이 아니라 "사회학자"책이다. 사회학자가 사회학을 하는 사람이니 사회학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사회학에 대한 지식을 전하기보다는 사회학을 연구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전달하려 한다. 우리에겐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우에노 지즈코 정도가 예외겠다) 일본에서는 떠르르한 사회학자들을 데려다 놓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회학이니, 넌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좋은 길 다 접고 사회학 같은 걸 하고 앉았니, 도대체 얼마나 읽어야 자신있게 나댈 수 있니, 입방정 나불댄다는 소리 안 듣고 말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니, 도대체 우리 같은 사회학자가 앞으로 먹고는 살겠니 이 험한 세상에, 뭐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책이다. 전혀 딴 세상 이야기 같지만 읽어보면 희한하게 도움이 많이 되는데, 이런 말들이 잔뜩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말들이 syo같은 무지렁이 독서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그들만의 고고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론이나 수법은 관용구 같은 것입니다. 기본 발상을 응용하려고 할 때 아주 좋은 예시가 되죠. 일단 사용하면 당장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 반복하면 마치 자동 장치처럼 똑같은 것밖에 할 수 없죠. 그러니까 이론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고전의 근원이 되는 고전을 읽고, 다른 사람들이 고전을 어떻게 응용했는지 비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는 외부에 멀뚱히 서 있다고 생각한 순간 '애처로운' 사회학자가 되는 겁니다.(웃음) 천재나 신에 가까운 예언자가 아닌 한, 사회학에서 그런 입장에 선 인간은 애초에 없으니까요. 외부에 서 있는 것처럼 말하지 않으려고 어떻게 노력하는가, 이것이 사회학자로서 일할 때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에 민감해져라'입니다. 자신이 어디까지만 알고 있는지에 계속 민감할 것. 그것이 사회학자의 훈련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있는 척'을 하면 됩니다. 있는 척을 할 수 있을 만큼 벼락치기 공부를 해두면 되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충분히 중후해질 겁니다.
그러나 결국 사회학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지식을 전해주지 않는 바, 어디가서 뽐내기에는 좋지 않다. 뽐내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지. 이 책은 그냥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책일 뿐이다. 막상 진짜 사회학 이론을 공부하고 싶다면 어떤 책들이 있을까. 과도한 입문서 다독의 아이콘 syo가 읽어본 몇 권의 사회학 입문서를 소개한다.
『모두를 위한 사회과학』은 사회학을 처음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다. syo는 빨갱이라 약간 떨떠름한 부분도 있었지만, 사회학의 기본 스탠스가 그런 것이니까. 『괴물과 함께 살기』의 괴물은 사회다. 괴물과 함께 살 수 밖에 없는데, 그 괴물이 시도 때도 없이 물고 뜯고 할퀴니 우리도 최소한 그 괴물이 어떤 놈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뭐 그런 책이다. 『스무 살의 사회학』은 사회학을 배우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같은 구성인데, 흥미롭긴 했는데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좀 잤던 것 같다. 식후 침대에서 책 읽기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그땐 더 무지렁거렸을 때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과 『사회학에의 초대』가 사회학 입문서로 추천하기에 아직도 적절한 책인지는 모르겠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책이긴 한데, 솔직히 둘 다 쉬엄쉬엄 읽을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조금 울기도 했지.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학』은 입문서가 아닌 정통 사회학 교과서라고 봐야 하겠는데, 저 여섯 권 중 한 권을 산다면 단연 이 놈이겠다. 그러나 첫 책으로는 부담이다. syo도 사서 아주 벅찬 마음으로 챕터 1을 읽은 후, 2년째 책장의 좌우 무게 균형을 맞추는 데 참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교과서가 제일 덜 아까운 법이니까.
[171102]
『과학이 빛나는 밤에』의 설명 부분을 정정합니다. 저기 설명 되어 있는 책은,
이거였군요.『과학이 빛나는 밤에』는 읽은지 꽤 됐고, 최근에 이 책을 읽어서 내용이 헷갈렸나봅니다. 『과학이 빛나는 밤에』는 라디오 방송이 아니라 팟캐스트를 묶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책,『사이언스 브런치』도 한 번 권해 봅니다.『과학이 빛나는 밤에』보다 조금 더 설명이 재미있는 반면, 내용은 좀 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