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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구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syo가 syo를 '나'라고 부르지 않고 syo라고 부르는 것은, 쓰다 보니 도대체 나란 놈이 어디서 뭐하는 뉘집 아들놈인지 모르겠다 싶어서다. 오늘 쓰는 나는, 어제 쓴 나와 너무도 달라서 선뜻 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가 힘든 때가 왕왕 있다. 그러나 어쨌든 모든 일기는 syo라는 이름으로 올라가므로, 비록 내가 나를 몰라도 그저 syo라고 부르면 되겠지 싶었던 것이다.


잘게 쪼개면 물론 더 다양하겠지만, 큼직하게 갈라 두 명의 syo가 적발되었다. 개그병 걸린 syo와 중2병 걸린 syo. 그 둘은 좀 많이 다른 글을 쓴다. 개그병 걸린 놈은 한 떨기 웃음을 피워내기 위해 지 오금도 서슴없이 팔아먹고, 5년 뒤 딱 한 줄의 드립을 치기 위해 1만잔의 믹스 커피를 탈 줄 아는 무지막지한 오랑캐다. 반면 중2병 걸린 놈은 엄마의 고물 타자기나, 죽은 아버지가 보낸 감 같은 것들을 들먹이며 어떻게든 이웃들에게 꿀꿀한 기분 한 번 선사하려 몹시 애쓰는 감성팔이 앵벌이다. 문제는 그놈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꼽다는 데 있다. 개그병 걸린 놈(이하 개놈)은 항상 중2병 걸린 놈(이하 중놈)이 쓰는 오글거리는 글을 성토한다. 반면 중놈은 개놈의 존재 자체를 쌩깐다. 


글폼을 보건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놈은 아마 개놈이겠다. 중놈이라면 이런 식으로 썼을 것이다. "나와 나 사이에 공간이 있다. 공간 위로 공간이 막막히 쌓인다. 불러도 듣지 않으니 부르지 않는다. 나는 침묵으로 나의 침묵을 반긴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만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까, syo는 syo만의 글을 찾고 싶다. 그 글은 개놈과 중놈의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는 두 스타일이 공간적으로 만나는 한 가운데, 즉 개중놈이나 중개놈, 개중개중개개중중개중놈 따위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웃겼다 울렸다를 반복하여 읽는 이의 부끄러운 부위에 발모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syo의 최종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 얼마나 더 읽고 얼마나 더 쓰면 그들이 마침내 포개질까. 나를 나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제가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거든요. 김대환 선생이라고, 할리 오토바이 타고, 프리 뮤직 허던 분 있어요. [반야심경] 서예를 하고. 예, 유명한 괴짜죠. 근데 하루는 그 형님이 저헌테 얘기하기를, "야, 너 노래를 좀 한다던대. 노래 한번 해 봐." 그래서 했드니, "박자를 맞추지 말고 해 봐." 깜짝 놀랐죠. 예를 들어 산토끼 같은 걸, "산ㅡ토끼ㅡ" 했드니, "너 속으로 박자 세고 있지?" 그래서 깜짝 놀랐죠. "그거까지 부숴 봐." 그때부터 저는 노래를 그렇게 불렀죠.

_ 박웅현 외,『안녕 돈키호테』가운데 장사익의 말


공부는 독서의 양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 가며 다진 인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_ 은유, 『쓰기의 말들』 


우리가 읽은 하나하나의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벽돌이라면, 그 벽돌들이 잘 붙어서 하나의 집이 되도록 해주는 시멘트는 우리가 삶에서 직접 마주하는 경험들이다. 

_ 목수정,『월경독서』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섬이 되어간다. 상처 입은 사람은 말한다. 그 섬에 가고 싶지 않다고. 그들의 슬픔이 썰물로 빠져나갈 때, 우리는 섬이 아닌 육지로 서로 이어진다.

_ 제갈인철,『문학은 노래다』


내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습득한 언어 규칙이고 내가 몸에 익힌 어휘이며 내가 듣고 익숙해진 표현, 내가 아까 읽었던 책의 일부입니다.

_ 우치다 타츠루,『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결국 사유하는 자, 자신을 문젯거리로 성찰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며 행위한다. 이것은 세계에 드리운 어둠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돌리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용기이며, 질문을 제기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결정이다.

_ 김은주,『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그나저나 요즘 읽는 책



누구나 인류에게도 암컷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 암컷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자다움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여자다워야 하고, 여자여야 하며,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훈계조의 말을 듣는다. 즉 인류의 암컷이라고 해서 반드시 여자는 아닌 셈이다. (15)


이런 문제는 여자들에게도 아프지만, 가부장제 아래에선 남자들 또한 저런 난폭한 견해에 종종 두드려맞곤 한다. 남자가 왜 그래. 남자가 그 정도는 해야지. 사내 새끼가. 달고 태어난 게 아깝다. 맞다. 가부장제는 남자들도 괴롭힌다. 그런 고로, 내 고통도 만만치 않게 무거우니 한 번 재 보자며 저울을 들고 설칠 에너지가 있다면 이제 그걸 가부장제를 함께 축출하는 데 쓰는 것이 현명하지 않나.





인간해방과 이성의 자유는 어차피 독선에 대해 회의가, 권위에 대해 이성이 승리를 거두는 긴 투쟁의 되풀이임에 틀림없다. 우화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하는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난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영광(또는 해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가 강요되었느냐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겠다. (14)


대선이 끝나고는 정치 뻘글을 접었다.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세상을 바꾸었다는 뿌듯함, 혹은 이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같은 것에 힘입었겠다. 정치에 대해 쓰지 않기로 하니, 곧 정치에 대해 듣거나 읽지 않게 되었다. 다시 무지의 굴 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모르고, 죽은 사람들의 책이나 읽으며 소일했다.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반신반의였으니. 단지, 어두운 시간을 지나오면서 우리가 얼마나 어두워져 있었는지, 얼마나 망가져 있었는지 따져볼 새도 없이 밝은 곳으로 나와 그저 기뻐하기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봤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덮었던 저 어둠은 깊고, 깊은 어둠은 파내고 파내도 어둡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한 번만 더 돌아보자. 우리가 무엇을 지나서 여기에 왔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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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0-26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제발 돌아봤으면 하네요~~

다락방 2017-10-26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투를 누르고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를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사유하다 보면 쇼님만의 글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거라고 강하게 확신합니다만, 지금의 이 글도 쇼님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계속 읽고 쓰고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되, 가끔은 돌아보기도 합시다. 네, 저도 그럴게요. 할 수 있는 것들을 해가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도 제2의 성에 대해서 뭔가 써야 하는데 지금 아침에 업무가 많아서..
아니, 이놈의 업무 왜 많지?
아니, 업무 많아 글도 못 쓴다면서 여긴 왜왔지?

Orz

syo 2017-10-26 09:04   좋아요 0 | URL
저는 업무가 많아 글도 못 쓰지만 syo의 서재에 들어와 장문의 으쌰으쌰 댓글을 남기시는 것이야말로 다락방님의 스타일이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시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7-10-2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유의 글은 항상 울림이 있네요. 전에 정희진님이 레베카 솔닛의 글을 보고 노동하는 사람의 글이다, 이런 말을 했더랬는데,
전 은유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고민과 고독 속에서 써내려간 글이구나.... 전 은유를 좋아합니다.

<제2의 성>을 시작하신 겁니까? 키햐~~ 저는 아직 454쪽이예요. 한 권짜리 <제2의성>이라서 아직 반도 안 갔네요.
syo님 시작하셨다니, 더 열심히 달려야겠어요.

어둠이 얼마나 깊고 두터운지에 대해서 요즘 자주 생각하게 되요.
생각보다 많이 바뀌고 있지만, 어둠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래도 일단 손전등 하나 들었으니까요.^^

syo 2017-10-26 10:10   좋아요 0 | URL
글쓰기 책을 읽고 좋아하기가 쉽지 않은데, 은유는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인 것 같아요.

제 2의 성은 신나게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보다 엄청 재밌네요.

단발머리 2017-10-26 10:12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어렵지 않죠.
근데 달리지 마세요!!!
제가 더 먼저 읽어야 돼요! ㅠㅠ

syo 2017-10-26 10:21   좋아요 0 | URL
syo의 스피드를 아십니까?!
앞만 보고 뛰는 사람입니다.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