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이에 대한 생각을 명품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아

 

멋진 말은 앵무새를 낳는다. 내 입에서 나오는 나쁜 말은 그대로 내 민얼굴이지만, 멋진 말은 대체로 두터운 화장, 액세서리, 명품으로 동작한다.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속인다. 이런 올바른 말을 하는 나는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며 스스로 눈을 가린다. 자기만족이 자기기만으로 작용하는 지점을 자기 눈으로 캐치하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며칠 전에 읽은『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에서 예를 하나 가져와야지.

 

안철수는 '다르다'는 말을 쓸 자리에 '틀리다'는 말을 쓴다. '틀리다'는 말을 쓸 자리에도 '틀리다'는 말을 쓴다. 누군가 다르다의 자리에 틀리다를 쓰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적하는 상황을 우리는 종종 맞닥뜨린다. 저런 말실수 안에는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무의식이 숨어 있는 거라고, 프로이트를 거칠게 가져다 붙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경상도 사투리는(내가 읽은 책의 저자는 '남부 방언'이라고 표현했다) 다르다를 '틀리다'로 쓴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고, 나도 서울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랬다. '다르다'와 '틀리다'가 모두 '틀리다'였다. 말言과 말馬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컨텍스트를 통해 '틀리다'와 '틀리다'를 구분한다. 물론 요즘은 경상도에서도 그 두 단어를 구분해 쓰는 사람이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표준어 규정에 따르면 다르다와 틀리다가 다르고, 다르다를 틀리다로 쓰는 것이 틀린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준어 사용자가 아닌 사람들의 언어 사용을 표준어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사투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것은 "오빠야라니, 오빠야는 부산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 지방에서 오빠를 이르는 사투리야. '오빠'라고 쓰도록 해." 하는 식의 빙신같은 발언보다도 훨씬 더 후진데, 그 이유는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말을 통해 '다름'을 '틀림'으로 정의하는 역설을 온몸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의 저자는 외형적으로 유사한 말들이, 언어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에 동시에 펼쳐질 떄, 사람들이 언어와 도덕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나는 이런 무관심을 비난하고 싶다.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영역에서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거부할 수 없는 기본 전제가 된다. 무엇을 다른 것에 넣고, 무엇을 틀린 것에 넣느냐의 차이가 실질적인 문제를 야기하지만, 어쨌든 논의에 참여하는 이들은 저 대전제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저 말은 강력한 동시에 훌륭한 말이 되며, 고민없이 받아들이는 말이 된다. 끊임없이 입에 올려 나 자신의 훌륭함을 증거하는 말이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기만이 싹틀 수 있다. 반복적으로 되뇌어진 추상적인 말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사려깊은 생각과 공감을 막는 역할을 한다. 뚜껑에 "소수자 문제"라고 써 있는 검은 상자 안에는 각종 소수자들이 이 사회를 살아가며 겪는 구체적이고 실제적 고통들이 잔뜩 들어 있는데, 자기기만에 취한 이들은 "다름은 존중받아야 하지, 난 소수자들의 인권에 찬성해. 옛날부터 내가 주욱 하는 말이 그 말이잖아. 다름은 틀린 게 아니라고." 라며 다시 한번 스스로의 훌륭함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그 상자를 열어보는 일을 시원하게 스킵한다. 결국 그들의 추상적인 공감은, 그들 자신을 더 인간으로 만드는 만큼, 소수자들을 더 인간으로 대접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2. 따뜻한 말 한마디

 

어제 문이 홍과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한 반대 입장을 함께하는 가운데, 실수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군대 내'라는 용어를 빼고 동성애에 반대하냐고 되물은 홍의 질문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문이 진심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지 같은 것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표를 위해서는 찬성해도 반대라고 할 수 있고, 반대해도 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말 자체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모든 종류의 소수자와 관련한 지금까지의 진보는 대부분 당사자들의 투쟁과 연대, 그리고 소수자들에 마음을 열어가는 비소수자들의 인식을 통해 뚜벅뚜벅 성취되었지, 특정 정치인이 나타나 한 방에 와장창 판을 뒤엎어 주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순간 TV를 보고 있던 많은 소수자들은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70분의 토론 가운데 딱 1분만 주어지는 찬스 발언을 사용한 심상정 후보의 입에서 "성 정체성은 그야말로 정체성일 뿐, 찬성이나 반대의 대상이 아니다"는 정말 원론적이면서 당연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1분간의 발언이 끝나고, 실시간 검색에 심상정을 때려 넣었다. 눈물.,눈물이 난다, 왜 내가 울고 있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온통 눈물의 이야기였다. 왜, 왜 우리는 저런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릴만큼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에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살면서 단 한번도 성적 지향성 때문에 괴로움을 겪은 일이 없는 내가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릴만큼, 어떤 종류의 소수자들은 지금도 힘들고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3. 홍준표는 천재다

 

개그 천재. 심지어 나날이 발전한다. 정치인으로 쓰기에는 그 재능이 아깝다.

 

제일 재미있는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문-홍의 "이보세요" 씬이었다.

문이 "이보세요" 했다.

홍이 "어디서 그렇게 버릇없이 말합니까."했다.

문이 홍보다 만으로 2살 형이다.

 

"어르신이면 보수"라는 생각에 맞서는 방법이 "보수면 어르신" 이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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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4-2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든 나쁘든, 홍준표는 정치적 셈법의, 일종의 기술자로서 매우 뛰어나죠. 그가 써내는 쉬운 프레임 전략은 혀를 내두를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뭐냐... 안찍박..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된다는 프레임은.. 이야, 홍준표니까 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진짜 뛰어난 네거티브 전략이요, 프레임이비다. 실제로 이 전략이 먹혔다는 기사도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P.S 뭐... 뭐니뭐니해도 토론의 여왕은 우리 심블리님이시죠.. ㅎㅎ

syo 2017-04-26 10:42   좋아요 0 | URL
홍준표 화이팅입니다.

어제는 안도 곧잘 하더라구요.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질문도 단도직입적으로 하지 않고 배경깔고, 자기 의사 깔고, 질문하더라구요. 처음부터 어제 같은 방식으로 일관해서 네 번의 토론을 거쳤다면 최소한 유승민한테 가 있는 지지율 일부는 어렵잖게 당겨왔겠다 싶었습니다.

2017-04-26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6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7-04-2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syo 님의 의문점에 대한 의견글 남겼습니다.

답변 글이 좀 늦었습니다. (제 가치관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고 의문이 있을 때 재답변을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2017-04-26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2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강조하는 병역의 의무는 성 소수자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나라에는 동성애자의 대체복무제가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병역의 의무와 성주체성 장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성 소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군 복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차가워집니다.

syo 2017-04-26 12:19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지인 중에 입대를 앞두고 말씀하신 문제로 진지하게 자살을 고민했던 분이 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냥 군이니까 무작정 안돼, 이럴거면 아예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당초 동성애가 군 전력을 손실시킨다는 말을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마립간 2017-04-2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준표는 트럼프 Donald Trump를 모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syo 2017-04-26 12:07   좋아요 0 | URL
그걸로 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웃깁니다. 여러모로 웃기는 사람이군요.

마립간 2017-04-26 13:43   좋아요 0 | URL
제 의견은 홍준표 후보가 (트럼프처럼) 대통령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홍준표 개인적인 ‘정치적 입지‘만 놓고 본다면 되었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