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의 나라

 

 

 


진리의 정치가 작동하는 곳에는 침묵이 강요된다. 반면 의견의 정치가 작동하는 곳에는 말이 넘쳐난다. 의견은 말로 표현되고, 그 말들이 서로 충돌하고 경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견의 정치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정치는 시끄러운 정치다. 국가가 시끄럽지 않고 질서 있게 조용히 운영되는 것은 시민이 원하는 것이라기보다 관리자의 바람일 뿐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끄러운 모습이 진리가 가져다주는 적막보다 낫다. 그것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_ 김선욱, 한나 아렌트의 생각

 

낡은 정치인들이 분열 없는 통합의 나라를 강조하며 다양한 의견을 한쪽으로 몰아붙이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던 시절, 유시민은 그렇게 시끄럽고 견해 다툼이 있는 사회야말로 정말 건강한 민주사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도 세태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고, 저 다툼의 말도 그가 새로 만든 말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생각이 좀 새로운 축이라는 감각은 있었다. 당연하고 원론적인 말인데도 권력 있는 자들이 입에 잘 올리지 않는 말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더 새로운 것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의견인가- 하는 질문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라는 말의 효익은, 그 말이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할 때부터 강한 자들과 다르면 틀린 것으로 취급받는 가운데 그 강한 자들이 누구인지 쉽게 특정할 수 있을 때까지, 딱 그 구간에서만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직후 체감한다. 모든 상대주의가 그렇듯 쉽게 남용되기 때문이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라고 생각하는 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라는 기이한 논리가 뒤를 받치는 이른바 혐오할 자유와 맞닥뜨리면, 넌 정말 답이 없구나- 하고 고개를 저으며 돌아설밖에, 저 말의 영역에 묶인 상태로는 뭔가 딱히 수가 없다. 말을 둘러싼 권력의 지형이 변하면, 의견이었던 말이 규범이 되고, 규범이었던 말이 의견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모든 말에는 힘이 있고, 그 힘은 말을 나르는 사람들을 거치면서 거대하게 증폭된다. 따라서 진행 과정에서 말의 운동은 최초에 말을 쏘아 올린 이()이 의도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과녁을 겨냥하는 사람은 속사速射하는 사수여야 한다. 말은 계속 태어나야 한다. 같게, 또 다르게.

 

확실히 훌륭하고 멋진 말에 기대는 것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제공한다. 행동보다는 말과 글로 자신을 빚어내는 세상에서, 멋있고 가치 있는 이미지로 공론장에 유통되는 말을 주워와 입에 올리는 것은 쉬우면서 수익률도 꽤 높은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태어나는 즉시 유통되고 유통되는 즉시 윤색과 변색 절차에 들어간다. 말에 올라탄 사람은 내가 올라탄 말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한다. 말이 흥해야 한다. 말에서 말이 태어나도록. 결국 모두가 자신의 말을 자꾸 만들어가면서 타인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거기서부터 의견의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의견의 세상에 대한 말조차 내가 새로 만들어야 한다. 새 말은 원래 있던 말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있던 말보다 오히려 못하거나 덜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말을 만들기 위해 말을, 나를, 세상을 조금 더 생각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남의 눈에 100%의 동의로 보이지만 내 마음속 나만 알아챈 1%의 차이, 그런 차이들이 모이고 모여 내 의견을 만들 테고, 그 이후에 내게서 나온 말이라면, 설령 원래 있던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대도, 결코 같은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다음 내가 할 말의 항로가 1%만큼 변경되었기 때문에.

 

상투어가 처음부터 상투어였던 것은 아니다. 상투어도 처음 사용했을 때는 신선한 말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현실이 변함에 따라 말도 같이 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사용돼 상투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상투어는 생각을 새롭게 일궈내지 못하고, 현실을 고정된 관념에 맞춰 이해하도록 한다. 상투어를 통해서는 현실의 생생함이 생각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 상투어를 듣는 사람은 진부함을 느끼게 된다. 말이 변하지 않으니 진부해지는 것이다.

_ 같은 책

 

 

 

--- 읽은 ---



116.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 유혜자 옮김 / 2020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일독이 있었고, 재독이다. 그래서 일독인 양 읽음. 


절망이 분노로 탈바꿈하는 지점이 이번 독서에서 눈길을 둔 부분이다. 절망은 개인을 망치고, 절망에서 태어난 분노는 개인들을 망친다. 우리는 자주 절망하고 자주 분노하지만, 절망에서 태어난 분노에까지 도달하는 경우는(분노에서 태어난 절망 역시 그렇지만) 흔하지 않다. 절망의 끓는점은 사람마다 다르고, 기화된 분노의 폭발력과 피해반경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 일은 없는 게 좋겠지만 그래도 혹시 자신의 끓는점을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면, 이후로는 온도관리를 잘해야 한다. 절망은 고도가 떨어질수록 경사각이 심해지는 내리막 같아서, 막 굴러떨어지다 보면 내일 자살해야지.”라고 말하게 하는 스위치는 세상 하찮은 것들이 누른다. 그러니까 우연히 내방 앞 복도에 날아든 비둘기 같은 것들이.

 

새는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누인 채 왼쪽 눈으로 조나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 작고 둥그스름한 원반형에다 가운데가 까만 갈색인 그것은 보기에 너무나도 끔찍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머리털에 꿰매어 놓은 단추처럼 보였고 속눈썹도 없는 듯 광채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끔찍스럽게 무표정한 시선을 밖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눈 속에 교활한 머뭇거림이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또 어떻게 보면 그것은 무표정하거나 머뭇거리는 듯 보이지 않았고, 외부의 빛을 몽땅 빨아들이기만 할 뿐 자기 자신은 빛을 전혀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생명이 없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어떤 광채나 희미한 빛조차도 그 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_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117.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

 

- 일독(1805xx)

- 재독(210404)

 

어쩌면 일종의 혐오 발언일지 모르겠는데, 일본에서 건너온 철학 개론서에는 어떤 가 있다. 는 말투하고는 또 달라서 존댓말로 풀어도 반말로 풀어도 느껴진다. 저자 자신의 굉장히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거나 철학을 쉽게 설명하면서 인기를 끄는 거리의 철학자나부랭이들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가 드러나는 책이 있고, 이 책만 읽으면 당신도 어디가서 서양 철학에 대해 나불거릴 수 있다- 하는 식으로 책파는 책도 있는데, syo가 지금 말하는 는 그거랑은 또 다르다. 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관련성 떨어지는 이야기로 새더니 아차 싶어서 되돌아 나오면서 머쓱했는지 원래 하던 이야기와의 연결고리를 어색하게라도 지어내는 흐름 같은 것이 있다. 이게 그 를 구성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몇 권 읽어본 사람들은 syo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렌트가 확실히 푸코나 들뢰즈, 데리다와는 입지가 좀 다른가 보다. 그 철학자들을 다룬 개론서에서는 ’ ‘지금우리가 그들의 저작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애써 설명하지 않거나, 그냥 그 철학자의 사상이 얼마나 위대한지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 지금 우리가 이러이러하게 쓸 수 있다- 하고 덧붙이는 정도다. 푸코가 지금 왜 필요한지 설명이 필요해? 그건 누구나 다 아는 거 아냐? 이런 식이랄까. 그런데 아렌트는 그 위치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아렌트는 이런 상황이 기분 나쁠지 몰라도 개론서를 찾는 독자에게는 좋은 일이다. 우리는 전공자가 아니어서, 어떤 철학자를 공부할 때 그 철학자는 그냥 공부할 가치가 있다는 합의를 대뜸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면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수학을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은 당연하고,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도 선생님, 저는 문과인데/계산기가 있는데 수학은 배워서 어디다 써요?’ 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심지어 책을 좀 읽는 사람들조차) 철학을 못하는 아이들이어서, 늘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입문서는 함량을 평가 받기 전에 먼저 가산점을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 철학 개론서의 가 거슬리는 독자라도, 아렌트 사상에 얕은 상태라면 이 책이 썩 나쁜 책은 아닐 것이다.

 

근대적인 시민사회에서 살고 있는(살려고 하는) ‘우리는 무슨 근거에선지 우리가 전근대사회의 사람들보다 정치의식이 높고 다각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민권이 있는 국민 전체가 참가하는 현대 정치는 사람들의 이해, 관심, 의견을 집약하기 위해 각종 미디어를 이용하여 정보를 조작하고 가공한다. 한마디로 알기 쉽게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를 조작하고 가공하여 모두의 생각을 알기 쉬운형태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우리대다수는 정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치를 둘러싼 알기 쉬엄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우리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가 점차 단순해져 복잡한 사태를 복잡한 상태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_ 나카마사 마사키,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118. 함박눈

김소월 지음 / 효솔 / 2020

 

내 돈 주고 처음 사본 시집이 진달래꽃이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중학교 때였고 늦되었던 syo는 보기가 역겨울 지경까지 사람이 싫어지게 만드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무섭고, 그 무서운 것을 자꾸 해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랑을 하지? 지치게. 차라리 게임을 하면 되잖아.

 

첫 시집이 온통 외로움이어서 사랑의 이미지는 산에 산에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처럼 적막의 한가운데였다.

 

500만년 인류의 선사와 역사 시대에 축적된 사랑과 이별 가운데 무엇이 더 많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별이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이별한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러나 사랑인 줄 알았던 뭔가를 하다가 사랑이 아닌 줄 깨닫고 이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랑은 이별로 귀착되지만 모든 이별이 사랑을 거쳐오는 것은 아닌 것. 우리에게 이별 노래가 많은 이유는 당연하다. 이 별은 이별이 별처럼 많은 별이니까 그런 거지.

 

소월이 남긴 딱 하나뿐인 소설이라고 한다. 소월은 여기다가도 이별을 써 놓았다. 누이가 떠난 이유가 원순이 역겨워서는 아니지만, 누이 가는 길을 앞에 둔 원순의 마음은 소월이 잘 짓는 그 마음이다. 소월이 이별하는 방법에서는 늘 아득한 진달래꽃 향기가 난다.

 

흰눈이 간단없이 펄펄 내려 쌓인다. 검은 천지만이 점점 희어져 간다. 원순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열두 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온 사위는 죽은 듯이 고요하였으나…… 그는 영창을 열어젖히고 시름없이 펄펄 내리는 함박꽃송이 같은 흰눈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온 천지의고독을 자기 일신이 혼자 맡아 놓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_ 김소월, 함박눈

 

 

 

--- 읽는 ---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 한수산

안나 카레니나 1 / 레프 톨스토이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 데이비드 하비

정치적인 식탁 / 이라영

세계 괴물 백과 / 류싱

AI 최강의 수업 / 김진형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 야마구치 다쿠로

춘분 지나고까지 /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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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4-05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라는 말이 남용 내지 오용되는 지점. 어려운 문제네요.
한때 파트리크쥐스킨트 책 찾아 읽을 때 비둘기도 읽었는데 묘사가 하도 강렬해서 한동안 비둘기 볼 때마다 떠오르더라고요.. 예쁜 표지로 새로 나왔네요

syo 2021-04-07 12:24   좋아요 1 | URL
쥐스킨트 예전에 버닝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때도 좋다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때의 syo는 이게 이런 식으로 좋은 책이라는 걸 알 깜냥이 못됐을 텐데 뭐 믿고 좋다 좋다 했을까- 하게 되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4-05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별은 이별이 별처럼 많은 별 ] 캬!! syo는 자꾸 아니다 아니다 내치지 말고 글을 쓰시오!!!^^ 소월님은 소설도 시처럼 쓰셨네. 시름없이 내리는 눈꽃. 또 캬!!
의견의 나라 syo강의편은 따라가질 못했음 ㅋ

syo 2021-04-07 12:26   좋아요 1 | URL
아니다 아니다 내치기 1
읽다 보니까 시집 안 읽은 지 오래 되었구나- 싶어졌어요. 시가 꾸준히 읽기 좋은 장르인 듯하면서도 의외로 또 그렇게 잘 안돼요.... 읽기님은 대단함

Angela 2021-04-07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워요 ㅠㅠ

syo 2021-04-07 12:26   좋아요 1 | URL
개소리입니다.
에너지 낭비하지 마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