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먹다가 들은 장면에다가 MSG치기
빛은 직진한다고 배웠는데 그녀의 볼 위를 달려 나가는 빛이 예쁘고 보드라운 곡선을 그리는 것을 그는 분명히 보았고, 그래서 바로 지금 어떤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녀의 눈꺼풀이 깜빡거리는 횟수에 주파수를 맞춘 말로 그녀를 세게 흔들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을 그는 하였지만, 말은 마음속에서나 깜빡 빛나는 말이었지 겨우 입밖으로 꺼내어 놓은 것은 무슨 암흑물질 같은 소리 덩어리였을 뿐이고, 그도 그녀도 봄도 모두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노곤한 오후의 노천강당에서 누군가의 베이스 기타는 둥둥두둥둥 튜닝되는 중이었는데, 반면 그는 전혀 튜닝되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표정이나 더듬대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덥썩 손이나 잡았으나, 그 순간이 온갖 오묘한 감정으로 물들며 직진할 어떤 긴 역사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땐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고, 그는 하나의 곡률처럼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저 잡은 손에 힘이나 주고 있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던 봄도 답답하여 고개를 돌리고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간 것이려나, 어쩐지 금방 여름이 찾아와 도시를 걷던 두 사람의 잡은 손에는 늘 땀이 가득했던 기억.
갑자기 Q가 자신의 주머니에 내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 속에는 오래된 해피밀 장난감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Q는 그중 이빨이 많은 파란색 괴물의 피규어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Q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Q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어. 너무 소중하게 여겨서 아무도 가져갈 수 없게 깊이 묻어버렸어.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어디 묻었는지, 그게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아.
_ 박상영,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우리의 일상적 삶에는 우연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부르는, 사람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일어난다.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순간 토마시가 술집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엄청나게 많은 우연의 일치를 우리는 대개 완전히 무심결에 지나쳐 버린다. 토마시 대신 동네 푸줏간 주인이 테이블에 앉았다면 테레자는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것에 주목하지 못했을 것이다.(베토벤과 푸줏간 주인의 만남 역시 기묘한 우연이 일치지만.) 그러나 막 싹트는 사랑은 그녀의 미적 감각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녀는 그 음악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매번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감격할 것이다. 그 순간 그녀 주변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은 그 음악의 찬란한 빛에 물들어 아름다울 것이다.
_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공원에 떨어져 있던 사랑의 시체를
나뭇가지로 밀었는데 너무 가벼웠다
_ 황인찬,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부분
--- 읽은 ---
30.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 245 ~ 391
: 연수원 마지막 날, 무려 2급이라는 어마어마한 고위 공무원 한 분이 등장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다가 몇 권의 책을 추천하였는데 그 중 한 권이 이 책이었다. 강의를 듣던 아이들은 핸드폰을 꺼내 이 프로젝터에 박힌 이 책의 사진을 찍어댔다.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었겠다. 그중 몇이나 이 책을 읽었을까. 읽은 사람들은, 좋아했을까?
: 도시나 건축에 관한 책들은 은근히 괜찮다. 뜻밖에 이 장르는 초심자에게도 어필하는 기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책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있어도 도시나 건축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려나. 이 장르의 많고 많은 좋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은 군계일학까지는 아니다.
31. 노년 예술 수업 / 고영직, 안태호 : ~ 272
: 쓰려고 앉아보니, 읽은 지 일주일쯤 된 책이라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syo의 각박한 인생? 비관심자에게 어필할 만한 한 방이 없는 책이라는 뜻? 아니면, 그 두 가지 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