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이름의 역사

 

 

1

 

처음 좋아했던 사람은 syo아저씨라고 불렀다(이쪽에서는 아가씨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작 스물한 살이었고, 그 배에 조금 못 미치는 세월을 열심히 늙어가면서 연애하는 동안 누구도 다시는 syo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는 점에 아이러니가 있다(이후에는 주로 귀염둥이 취급을 당해왔다). 든든하고 기댈만한 존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별명을 붙이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그녀는 나를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가 생겼으며 몇 년 후에는 결혼 소식도 들려왔다. 차이고 난 후, 한참 그녀의 미니홈피를 들락날락하며 찌질대던 시기에 발견한 그 남자는 언뜻 봐도 대놓고 아저씨였기에 나는 이별을 깔끔하게 납득할 수 있었다(비겁한 변명 1). 그러나 다시는 미니홈피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된 계기는 조금 더 극적이긴 했다. 미니홈피 대문 사진은 신입생 환영회던가 신입생 대면식이던가 하여튼 그런 이름의 행사 사진으로써, 그 안에 우연히(혹은 운명처럼) 마주 앉은 그녀와 그가 찍혀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던 듯. 그리고 그 아래 이때부터 나는 우리가 운명일 줄 알았다 운운하는 글귀도 쓰여 있었다. , 그때부터 너희는 운명이었구나. 명목상이지만 어쨌든 나랑 만나는 중에, 너는 그 사람과 운명일 줄 벌써 알고 있었구나. 와하하, 내가 그걸 몰랐구나, 이거 참 미안하네? 환승녀 안녕……. 그러고 나니 딱 감정이 정리되면서, 다시는 그 홈피에 들어가지 않게 되더라. 그리고 그때 받은 환승 트라우마 때문에 syo 역시 종종 환승 형식으로 사랑을 마무리하게 되는데(비겁한 변명 2)…….

 

그 다음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오빠를 베이스로 하여 꽤 다양한 방식으로 불렸던 기억이다. 창의적이고 발랄한 사람이라 그때그때 기발한 방식으로 별명을 지어줬는데, 키위, 쫑이, , 뭐 이런 것들이 아직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막 혼란스럽고 정신없던 시기다. 결국 어떤 사람도 되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 이는 이름 끝자를 다정하고도 정중한 방식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부르지 않을 때는 대체로 너구리라고 불렀다. 다크서클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는데, 너구리라고 불리면 자꾸 너구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동물원에 가서 함께 너구리를 보는 등, 너구리는 어떤 동물일까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나잇값 못하고 자꾸 귀염을 떠는 것이 아마 이즈음부터가 아니었을까.

 

최장기 집권한 별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파이리. 연애 초였고, 자취방에 놀러가서 하루 종일 꽁냥대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던 시기였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법이다. 그녀가 장롱을 열고 뒤죽박죽된 옷 더미 사이에서 꺼내 준 것이 찐한 주황색 반팔 박스 티셔츠로, 기장이 길어 입고 있으면 어쩐지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공룡종족처럼 보이는 옷이었다. syo를 유심히 쳐다보던 그녀가 말했다. “파이린데?” 그날 이후 10년을 파이리로 살았다. 썩 달가운 별명이었다. 이미 귀여운 것은 마다하지 않는 성품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왜 대부분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조금 강아지 같아지는 걸까오늘 아침 내 옆에서 자는 이 애는 조금 발발이 같이 생겼다어제는 차우차우같이 생겼었는데얘가 보기에 내 얼굴은 어떤 동물을 닮아있을까침실 밖에서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라고 부르지만 침실 안에서는 ''라고 부르게 된다내 침대의 사이즈는 고작 슈퍼싱글이라 서로를 걔라고 말하기엔 너무 간격이 좁기 때문이다.

이슬아일간 이슬아 수필집


 

 

2

 

연인 사이의 별명이 어떤 희망과 요청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면, 친구들 사이의 별명은 정말 놀랍도록 근본 없다.

 

박곰돌씨는 예측대로다. 박씨고, 몸뚱이가 곰이다. 박곰이 아니라 박곰돌인 이유는 야유에 가깝다. 이 양반은 고 2때까지만 해도 잘 생긴 외모에 날렵한 몸, 강인한 빠워로 동생 친구들을 이유 없이 억압하는 폭군 형아였다. 우리는 그보다 두 살이 어렸고, 그 나이 때 그건 감히 역모를 꾀할 수 없을 천부권력이었다. 우리에겐 굴종과 억압의 인생만이 있는 것인가- 하고 포기하려던 차에, 갑자기 그는 곰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곰이 되어가더니, 어어 하는 사이에 완벽한 곰이 되었다. 그리고 때맞춰 우리도 발육이 시작되었고, 절대 권력은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무너져갔다. 그는 이제 한낱 곰, 그것도 손쉬운 곰돌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박곰돌씨다. 길게 부르기 귀찮을 때 박곰 박곰 부르다가, 요즘은 박곰돌이 박곰돌았나하는 식으로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다.

 

의 탄생은 한층 더 유치하다. 중학교 때쯤 우리는 이 세상에 벙어리 삼룡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그게 다였다. 의 본명이, ‘ㅅ용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삼룡이가 되었다. 그 나이 때 별명이라는 것은 대충 이런 식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배삼룡이라는 유명인사의 존재가 언급된 이후로는 배삼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근본상실인 것이, 그의 이름과 배삼은 겹치는 글자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조차 귀찮아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은 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냥 내 마음이다. 어느 날 syo의 핸드폰에 북플을 깔고, 로그인을 강제한 다음, 닉네임을 으로 바꿨다. . 어차피 활동을 안 할 생각이었고 그 생각대로 안 하고 있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그는 알라딘의 이다. 빼박.

 

외모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보면, 호밀은 박곰돌과 유사한 방식으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화과정이 조금 더 섬세하다. 처음 그와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의 동그랗고 크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귀여운 얼굴이 마냥 익숙했다. 그는 바로 용감한 어린이의 친구 우리 우리 호빵맨과 아주 그냥 영판이었던 것이다! , 얼굴을 갈아 끼울 수도 있을 것만 같이 생겼어. 빵아저씨만 있다면……. 그의 출발지점은 호빵맨이었다. 그러다가 역시 귀차니즘의 공격을 받아 빵맨이가 되었고, 곧이어 빵이혹은 맨이가 되었다. ‘팥맨이로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그야말로 별명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러다 천하를 통일한 자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빵떡이였다. 순수한 중2 아이들에게 된소리 2연타는 아,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매력이었다. 모두가 그를 빵떡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귀차니즘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덮쳤다. 그래서 결국…… 이야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여기저기서 떡이 되고 다녀도 무던하고 심지 굳은 우리의 호밀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실방실 웃을 뿐이었다. 착한 새끼……. 그러다 어느 날, 계기는 알 수 없지만 갑작스레 인권 감수성에 눈을 뜬 syo, 불알친구를 일 년 가까이 이라 부른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떡이라니…… 그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만 같았다. 결국 그는 다시 으로 회귀했다. 여전히 떡이라 부르는 친구들 앞에서 syo가 더 크게 빵빵 거렸고, 정치적 올바름을 결여한 은 결국 도도히 흐르는 시대정신의 흐름에 밀려 사장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은 댄스계에 투신, 얼마 지나지 않아 날렵하고 건강한 몸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런 그의 열정을 칭송하기 위해 우리는 고민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로 거듭나듯, 그는 빵에서 저칼로리 호밀빵으로 재탄생하였다. 여기에 다시 귀차니즘 한 스푼 첨가, 오늘날의 호밀이 완성된 것이다.

 

이 친구들이 syo를 부르는 방식은 통일되지 않았다. ‘콩이라 부르는 애, ‘땅콩이라 부르는 애, ‘버꾸라고 부르는 애가 있다. 콩이나 땅콩이라고 불린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syo가 쪼꼬미라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보면 티내지 않고 조용히 확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이 별명들의 탄생 비화는 이렇다. 1때였다. 국어 시간에 배운 글 속에 아주 얍삽한 인간이 하나 등장했다. 이름이 춘삼이였나 그랬는데, 같이 노는 애들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아서, 순진한 어린이들 등쳐먹으며 낄낄대길 즐기는 녀석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불가에 둘러앉아 콩을 볶아 먹던 춘삼이는, 자기는 냠냠하며 먹고 애들보고는 범버꾸범버꾸하면서 먹으라고 시킨다. 순박한 아이들 신나서 범버꾸범버꾸 이러고 있는데, 그러고 먹으니 콩이 씹힐 리가 없잖아. 얍삽한 놈. 그런데 그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짝꿍인 syo를 보더니 대뜸, 범버꾸범버꾸 하는 것이었다. syo는 이 아이가 미친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교실 뒷편 자리에 앉아 있던 호밀이도 다가오면서 함께 범버꾸범버꾸 했다. syo는 그들이 나를 얍삽이라고 규탄하는 것인가 싶어 매우 당황하였는데, 알고 보니 단순히 내 이름 끝 글자가 이라서 그러고 노는 것뿐이었다. 멍청한 놈들. 그들은 아직도 syo가 얍삽이고, 조용히 그러나 충실하게 자기네들을 등쳐먹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쯧쯔. 이러니까 니들이 콩을 못 주워 먹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그 이후 20년 넘게 syo에게 빨대 꽂혀 쭉쭉 빨리며 살고 있다고. 하여간, 그때부터 아이들은 syo범버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버꾸라는 최종 형태는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땅콩은 좀 더 놀라운 방식으로 등장했다. ‘맛동산이라는 과자가 있다. 시장지배력이 지금은 어느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CF까지 할 정도로 회사에서 미는 주력 상품이었다. CM송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땅콩으로 버무린 튀는 과자바로 이 지점이었다. ‘버무린’. 역시 문제는 범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 저 이유만으로 syo버무리’ ‘버머리가 되었다가 땅콩으로 버무려서 땅콩’, 버무린 것이 맛동산이라서 맛동산이 된 것이다. 결국 저기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땅콩과 그 귀차니즘식 변형물인 이다. 결코 작아서 콩이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콩이 되고 나니 작은 어른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 이 놀라운 별명의 자기실현성.

 


그러나 세월과 더불어 사람은 크는 법이고 또 이리저리 흘러다니게 되는 법이어서 그 뒤 얼마 안 있어 그 아홉 번이나 골목을 돌아가야만 찾을 수 있었던 그 집을 떠나버렸는데도 나는 언제나 그 조그마한 문간방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나는 거기에 나의 청춘이 기록할 수 있던 모든 것을 상형 문자로 기록해버렸고 모든 나의 환상과 나의 꿈을 거기서 소진시켜버렸던 것이다그 뒤부터 나는 여러 집을 옮겨 다니었지만 어쩐 일인지영 산 중턱으로 갈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산 중턱을 향하여 나의 불빛을 방사하며 응답만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다.

김현사라짐맺힘


 

 

- 읽은 -

+ 오늘 참 괜찮은 나를 만났다 / 양창순 : 220 ~ 336

+ 슬프다 할 뻔했다 / 구광렬 : 88 ~ 160

+ 사라짐, 맺힘 / 김현 : 168 ~ 291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 188 ~ 312

+ 자본주의 / 제임스 풀처 : 92 ~ 210

 

 

- 읽는 -

- 플라톤 국가 강의 / 이종환 : ~ 130

- 여자와 소인배가 논어를 읽는다고 / 서한겸 : ~ 82

- 나만 잘 살면 왜 안 돼요? / 이치훈, 신방실 : ~ 118

-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 116

-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추크 : ~ 76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mandante 2019-11-3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요미셨군요^^
‘영혼의 편지‘는 책등이 바랜 예전 책으로 갖고 있는데 꾸준히 잘 팔리나 봅니다. 착한 사람이 쓴 글이라 그런가..

syo 2019-11-30 19:03   좋아요 0 | URL
귀요미라는군요^-^
반 고흐야 원체 매력적인 캐릭터니까요. 아무래도 앞으로도 꾸준히 읽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ㅎ

2019-11-3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30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1-3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꾸 콩 나오자마자 요람기 예측한 1인ㅋㅋㅋ 그래도 알라딘에선 언제나 syo 쇼 스요 시요 시오 지요.

syo 2019-11-30 19:06   좋아요 1 | URL
반님의 지식에 가끔씩 놀라곤 합니다. 제목이 요람기였었지요. 저도 말씀 듣고 생각이 났습니다.
저 친구들이 언젠가 알라딘에 와서 알라딘의 syo를 보면 굉장히 놀랄 것 같습니다.....

무식쟁이 2019-11-3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힘 하나 안들이고(읽는 입장에선 그렇게 느껴진다는) 참 편안하게 재밌어요.
아무튼, 쇼님 (언젠간......)

syo 2019-11-30 19:07   좋아요 0 | URL
엄청 힘 빡 주고 썼습니다.....
티 안나서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lovelyNH 2019-12-0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알라딘 메일 타고 들어와 미술이야기부터 읽다가 syo님 글이 다 읽고싶어졌는데, 이 부분에선 정말 댓글을 아니달수가 없네요 ㅎㅎ 혼자서 큭큭 웃었어요!!

syo 2019-12-08 17:1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읽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게다가 큭큭 웃으시기까지!
그러나 동시에 부질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셔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ㅎㅎ 세상에 읽을 만한 좋은 책, 좋은 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