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교환

 

 

1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들이듯, 말을 벌기 위해 마음을 들이붓는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말을 녹이고 태워 원하는 건 결국 다시 마음을 덥히는 일. 이렇듯 마음을 엮어 말을 빚고, 그 말을 건네 다른 말을 받고, 받은 말을 풀어 다시 마음을 뜨개질하는 복잡한 방식이 우리의 회계원리라면, 그냥 처음부터 대차대조표를 접어 차변과 대변을 맞붙이면 어떨까. 마음과 마음을 맞대어 윤곽을 맞추고, 다르면 다른 대로, 닮았으면 닮은 대로, 그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이 마음이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 한껏 열어두면 나쁠까.

 

자주 말에 취하지만 가끔은 말이 버겁다.

 

 

 

2



저녁에는 집에 들어와서 서재에 들어갑니다들어가기 전에 나는 종일 입고 있던 진흙과 먼지가 묻은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옷을 차려입습니다그렇게 적절히 단장한 뒤 선조들의 궁정에 들어가면 그들이 나를 반깁니다그리고 거기에서 나만의그 때문에 내가 태어난 음식을 먹습니다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캐묻습니다그들은 친절하게 답변합니다네 시간 동안 거의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모든 근심과 가난의 두려움을 잊습니다죽음도 더는 두렵지 않습니다나 자신을 완전히 선조들에게 맡깁니다.

김경희마키아벨리, 133-134 

 

syo가 마키아벨리 입문서/개론서를 싸그리 다 읽은 것은 아니니까 전부라고는 말하지 못하겠고, 7할 정도라고 말하면 넘치지 않겠군, 하여간 읽었다 하면 튀어나오는 대목이다. 이제 저 대목을 만나지 못하면 소머리국밥집에 가서 눌린 돼지머리를 먹고 나오는 기분 비슷하게 될 지경입니다.

 

 

 

3

 

어제 늦은 밤, 얼마 후면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했더니 아득해졌다. 사람들 다 짊어지고 사는 무게인데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는 대기압인데도, 한 번도 얹어보지 못한 뭔가를 어깨에 얹는다는 상상은 벌써 무겁다. 해가 아직 동쪽에 있는 하늘을 이고 일터에 가서, 때론 해 없는 밤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겠지. 마음은 낮에 이미 다 썼고, 텅 빈 그릇이 되어 침대 위에서 덜그럭거리게 될 거야. 책상위에 읽을 책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탑을 쌓고, 그 아래 깔린 부담감이나 죄책감이 비명을 질러도 이틀에 한 번은 귀를 막겠지. 나는 이제 사랑할 체력이 남지 않았으니 사랑 니가 나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듣자니 너는 되게 강하다던데- 뭐 이런 생각이나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 놈이 성큼성큼 잘도 저기까지 미치니, 미치겠다 무섭다 외롭다 징징대고 싶다 안기고 싶다 안기고 싶다 우와 안기고 싶다 정말이다 이렇게 되고 말았다.

 

꼬맹이가 사는 방에 밤은 늘 길기만 하다.

 

 


  "정말이에요?" 그녀가 묻자 그가 도리어 "?" 하고 되물었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다면서요." "아 그거텔레비전에서 봤어요그러니까 저기 저 별들한테도 마지막이란 게 있단 거예요내일이면 꼴까닥하는 별일지도 모른다는 거죠그러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저 별을 본 사람들이고요운이 좋네요." "운이 좋다고요?" "좋죠좋다고 생각해요까짓것."

  한강을 지나는 다리 조명이 소등시간에 맞춰 꺼졌고 그녀는 정말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어떤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그건 그녀의 시야를 가리던 옥수수밭으로부터 멀지 않은 세계아주 낯익고 피해 갈 수 없는 어떤 치명적인 상처를 지닌 세계였다꺼져가는 세계였고 죽어가는 세계였다.

김금희우리가 어느 별에서

 

  일과 공부는 병행 끝에 합일되어야 한다.

  일은 공부의 실현이자 새로운 일의 훈련이며 공부는 일의 피와 살과 뼈이자 새로운 공부의 예언이 된다공부는 일의 조건이 아니라 일이고 일은 공부의 결과가 아니라 공부다.

  고독을 이기고 싶으면 공부하라그러나 고독을 이기고 세상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는 것이 공부가 되게 자신을 세팅하라.

이응준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4

 

쿤데라의 농담을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 읽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나도 변하긴 변했나보다.

 

리뷰를 쓸 것.

 

 

 

- 읽은 -

+ 농담 / 밀란 쿤데라 : 372 ~ 532

+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 안드레스 곰베로프 : 131 ~ 264

+ 노예국가 / 힐레어 벨록 : 99 ~ 186

 

 

- 읽는 -

- IFRS 회계원리 / 최창규 외 : ~ 188

-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 ~ 133

- 강의 / 신영복 : 133 ~ 250

- 아리스토텔레스 / 조대호 : ~ 117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장회익 : 77 ~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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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9-11-21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심심맞춤했을 때 심심교환이 되면 좋은데 마음이란 게 백혈구처럼 부정형이라 간혹 혈관을 뛰어넘어 덤비는 넘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있어서..
저는 말이 버거우면 잘게 잘게 자릅니다. 볶음밥 재료처럼. 소화되기 쉽게..

2. 가끔씩 읽게 되는 syo님의 페이퍼가 그렇습니다.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잊거나 죽음이 두렵지 않지는 않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쉼표를 찍어주시거든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문체가 제 취향이라..^^

3. 저역시 개인적으로 몇 가지 전환점이 되는 일들이 몇 달 안에 다가올 예정이라 아득한 마음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지만, 어떤 말씀을 드려야 감질나게나마 수직항력의 역할을 할까 몇 초 고민하다 겨우 얼마전에 읽었던 책에 나온 문구를 생각해냈는데요. ‘이대로 항해나 계속하게. 그러다 일이 닥치면 그때 맞서 싸워.‘ 음, 다시 읽어보니 망한 것 같습니다.^^;;;

일과 공부 어쩌구~ 는 제 취향은 아닌 문구네요. 스스로의 문장에 취한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이..ㅎ

syo 2019-11-22 10:19   좋아요 1 | URL
번호별로 콕콕 찍어주시는 나비종님의 댓글, 오랜만이네요 ㅎㅎㅎ

1. 마음이라는 것이 또 그런 놈이었군요. 알고 알아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말이 버거우면 버겁지 않을 때까지 입을 크게 벌리고 턱을 단련하고 위장을 키우려고 합니다. 버거운 말은 쪼개봤자 쪼개진 버거움일 때가 많더라구요.....

2. 나비종님께서 올리시는 시가, 저는 멋있고 부럽습니다.

3. 나비종님께 다가올 예정인 일들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저는 조금이라도 나비종님의 마음을 알 길 없겠으나,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실 것 같다는 말씀에 기대어 생각해보건대, 전해주신 문구가 망하지는 않았다고 대답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ㅎㅎㅎ

늘 감사합니다^-^

Comandante 2019-11-2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르테 출판사에서 나온 작가시리즈 저도 관심있는데 읽어보시니 어떠신지요? 피츠제럴드랑 마키아벨리가 특히 관심이 갑니다 ㅎㅎ

syo 2019-11-22 23:47   좋아요 1 | URL
편차가 꽤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페소아는 좋았고 니체는 그저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그 인물에 관한 책이 기존에 얼마나 나와있는지에 따라서 제 평가가 조금 달라지는 것도 같습니다 ㅎㅎ

마키아벨리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시리즈 자체가 아니라 마키아벨리라는 인간에 흥미가 있으신 거라면 저 책보다는 <여우가 되어라>를 권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종이달 2022-05-2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