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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에 담가놓은 매실청을 마시는 사람은 우리 집에 나뿐이다. 아주 한 도라무가 나왔는데, 이런 식이면 21세기에 다 마실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2
자고 일어났는데 온 방이 파랬다. 창틈으로 땅거미 진 하늘이 파랗게 넘실대고 있었다. 아직 저녁도 먹기 전이었는데, 벌써 어둠이었다. 숨 막히게 파랗고 아름다워서, 물속의 가을 같았다. 바다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있었다. 누가 대구에 바다가 없대. 대구의 바다는 어느 가을 어느 시간 어느 하늘에 잠깐 있었다.
3
모두의 공간에서는 어둠이 두렵지만 혼자의 공간에서는 빛이 두렵다. 빛은 시선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심지어 빛조차 쳐다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4
그때. 그 사람을 사랑하던 그때, 우리의 사랑이 끝난다면 그 방식은 아주 독창적일 거라고, 근거도 없이 나는 믿었다. 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우리는 끝났지만 그 믿음은 참으로도 거짓으로도 증명되지 않고 남았다. 끝내고 보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우리의’ 사랑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5
엄마는 혼자 TV를 보며 더 크게 웃는다. 외로울수록 더 크게 웃는다.
6
눈물은 결코 달리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모든 방향으로 달리 쓰인다.
7
자기가 자기의 배경음악이나 되는 인생.
8
시라면 읽는 이의 발길이 향하는 쪽으로 무한 개의 갈림길이 뻗어나갈 테지만, 당신의 말에는 대체로 하나의 과녁만을 직선으로 겨냥하는 거센 버릇이 있으니, 나는 가끔씩 당신이 시였으면 좋겠어요.
9
오늘은 책을 한 줄도 읽지 않았다.
- 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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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서를 읽다 / 양자오 : ~ 113
+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 178 ~ 286
+ 철학의 신전 / 황광우 : 210 ~ 351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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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 공부는 난생 처음입니다만 / 김범석 : ~ 155
- 그림으로 설명하는 개념 쏙쏙 통계학 / 와쿠이 요시유 외 : ~ 87
- 그리스인 이야기 1 / 앙드레 보나르 : ~ 122
-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 줄리언 반스 : ~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