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다녀왔다. 곰인간을 만났고 햄버거를 먹었다. 오는 길에 빵 두 개 사왔다. 지금 하나 뜯어먹으면서 쓴다. 빵부스러기가 책상에 떨어지고 키보드는 미끈거린다. 제길.

 

커피를 먹겠다고 작은 주전자에 든 물을 끓였는데 부어보니 제길, 숭늉이다. 우유 한 방울 없이 커피는 라떼 색, 맛은 그윽하다. 아메리카노에서 조상의 얼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조상은 과연 어느 대륙 누구의 조상인가. 상관 있나, 어차피 we are the world인 것을. 코리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면 될까.

 

책방에 대한 책을 읽다가 왠지 책방이 잘 어울리는 친구가 생각나 책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막상 그 친구는 책방도 좋지만 밤마다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갑작스럽지만 참새는 너무 귀엽게 생겼다. 참새. (귀엽게)(ㅇ긴동물). 머리도 둥글, 몸도 둥글. 배는 하얗다. 아침 담벼락에 떼로 앉아있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한 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파다닥 날아갔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열라 빨라. 쟤넨 비둘기 같지가 않다. 걔들은 만질 수 있어서 만지기 싫은데


그러고 보면 요즘은 비둘기들도 옛날처럼 쉽게 컨택트가 되는 것 같진 않다. 비둘기 나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한다. syo가 도련님 댕기머리 하고 학당 다니던 옛날에 비둘기는 새라기보다는 돼지였다. 사람들도 욕지거리 없이 걷기 힘든 그 학교 캠퍼스를 걔네들은 숨소리 하나 안 내고 잘만 걸어 다녔다. syo가 모자 쓰려고 머리 달고 다니듯, 얘네는 노트북 가방 메려고 날개 달아놓은 듯. 공학관 뒤쪽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이놈의 비둘기가 영장류 고귀한 줄 모르고 자꾸 알짱거리길래, 저리 안 꺼져? 하며 발길질을 했는데, 세상에, 제대로 맞았다. !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잘 감아 찬 손흥민의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잠깐 날아가더니 이내 착지하여 이쪽을 매섭게 노려본다. 굉장히 놀란 눈치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너는 안 찰 줄 알고 맞았겠지만, 나는 안 맞을 줄 알고 찬 것이다. 서로 간에 오해가 깊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이해일 수도 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니까 안 찰 거야. 새는 나니까 안 맞을 거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에 기대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였다. 그 결과는 공학관 옆 허공을 가르는 비둘기빛 좋은 궤도였다. 그리고 너에겐 날개가 있고, 나에겐 발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 서로 알려주었지. 좋은 추억이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다 식었네.

 

왜 이런 흐름의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의식이 가고 싶은 대로 가도록 두었을 뿐인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뻥 차준다면, 나도 예쁜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접힌 날개의 기동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될까? 모를 일이다. 코리아메리카노의 맛도 그렇다. 식어도 그윽하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 맛이 뭔지. 컵 바닥에 가라앉은 저 기이한 색깔의 물질이 콩인지 쌀인지.

 

, 코리아메리카노 이것은 커피계의 콩밥인가?

 

 

 

181101 181115 : 32

 

1. 페소아

: 페소아 전기의 도입이 시급하다. 한 줄에 별로 많은 활자가 들어가지 않는 판형의 300쪽 남짓한 책으로는 성에 안 찬다.

: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300쪽짜리 책이다. 아무리 주제 자체가 매력적이라 해도, 그것에 관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데는 저자의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페소아를 전파하는 활동으로 보자면 한국의 안토니오 타부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김한민 선생님은 실제로 안토니오 타부키가 입던 스웨터를 입어 본 적도 있다고. 허허, 그것 참.

 

2. 로봇수업

: 로봇의 약진을 둘러싸고, 인간이 생각해야 할 가장 큼지막한 질문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는 단단하고 의미 있는 책. 과연 MIT Press. 공학인의 성지.

: 표지에는 인공지능 시대의 필수 교양이라고 쓰여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을 로봇의 한 부분으로서만 서술하고 있을 뿐, ‘로봇자체에 대한 서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는데, 저자에게 걸리면 큰일 날 수 있겠다. 로봇은 로봇,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걔네는 완전히 떼어낼 수 없는 관계긴 하지만 뭉뚱그릴 만큼 한 몸도 아니다.

 

3. 회색 노트

: 2500페이지짜리 장편 대하소설의 반쯤 열린 포문 되시겠다. 이 작은 책 속에 들어 있는 인간들의 앞뒤 정황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하여, <티보 가의 사람들>을 나는 읽기로 했다. 영업을 당한 것이다. 깨끗하게.

 

4.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스케치로 그려진 공간은 친숙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게 저런 금손이 있다면, 나도 볼펜 한 자루 들고 친숙한 공간의 친숙하지 않음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니지 않았을까,

: 하고 생각하고 나니, 다 핑계 같다. 그림이 아니라 글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부족할 뿐이지.

 


5. 다시 자본을 읽자

: 제목이 다시를 포함하는 것은, 진짜 자본을 한 번 읽은 적 있는 사람들만 덤비라는 뜻이 아니다. 권위와 권위자가 내 눈에 가져다 댄 렌즈를 벗어던져 버리고, 우리의 시간과 입장에 맞춰, 우리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는 의미겠다.

: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미리 갖춘 것 없이 덤벙 덤벼들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다. 독자가 몇 가지 기본적인(?) 철학적 개념들(변증법이랄지, 유물론이랄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병권 선생님 해석의 탁월함을 인지하려면 통상적이고 전통적인 마르크스 해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수도꼭지가 달려 있는 집에 태어난 사람은 그 물건의 위대함을 모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물에 두레박을 한번 던져 봐야..... 정말 처음이 아니라 다시읽는 이들에게 좋은 책인 것 같다.

: 그래서 syo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책이 11권이 더 나온다니! 12권 다 꽂아놓고 매년 1회독씩 해야지. 1월에는 1. 2월에는 2......

 

6. 데이비드 흄

: 압축적이다.

: 압축을 풀어야 되는데, syo의 뇌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근력을 만들어서 흄을 읽으려는 syo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흄을 읽고 와서 이 책의 압축을 풀어볼까 한다.....

 

7. 인형

: 비겁한데, 분명 비겁한데 웃긴다. 문장은 굉장히 정교한데, 어느 정도냐 하면, 읽고 있자면 화자의 태도가 기분 나쁘고 후지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는데도 웃기긴 웃길 만큼 정교하다. 초반의 탐색전을 끝내고 나면, 어느 지점부터는 한 페이지에 한 두 번씩 피식 웃게 된다. 뭐 이런 희한한 작가가 다 있지?

: 싶었는데, 다 읽고 났더니 맨 뒤쪽 작가 소개에 이렇게 쓰여 있다.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을 담은 작품세계로 독특한 문학적 영토를 일궈온 세계문학의 거장. 세상에, 정말 더없이 적확하다.

 

8.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과연 포구의 제왕 곽재구 선생님. 이분이 쓰신 포구 기행문을 읽고 있으면 이것이 곽재구의 포구기행인지 곽포구의 재구기행인지 헷갈릴 정도니, 이미 포구 기행문에 관해서는 일가를 이루셨다 할만하다. 이름 장난 죄송합니다. 저질이네요......

 


9.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따분할 틈이 없다. 이걸 에세이로 봐야 하나, 사회학 책으로 봐야 하나 헷갈릴 정도다. 통계나 세금제도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여 아, 내 체력이 방전되고 있어, 싶을 때쯤 어떻게 알고 자기 인생 이야기가 똭! 수업듣기 싫어서 좀이 쑤실 때쯤 첫사랑 이야기가 똭!

: 실제로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10. 빨강 머리 여인

: 파묵은 파묵이다. 한결같이 파묵같다.

: 그럼에도 내 이름은 빨강같은 대작(얘는 정말이지 걸작이지요)을 바라고 읽으면 반드시 실망할 수밖에 없겠다. 사실 그 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평생 한 번 써낼 수 있는 인생작에 가까우니까...... 이 책은 노벨상급 작가의 범작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급의 작가가 컨디션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때, 그냥 기본 실력만 발휘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쓰면 나오는? 물론 실제로 그랬을 리야 있겠습니까마는......

 

11.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하냐고 물으신다면

: 자기계발서 같은데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우긴다. 문체는 파워풀하고 우격다짐의 기세로 몰아붙이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지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하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구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개인의 노력으로 뭘 하라는 단계는 넘어서서 구조를 함께 바꿔나가자는 것이 주제긴 하니, 완전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라고 인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래, 그렇다니까? 저자가 팔짱을 끼고 선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12. 대한민국 독서사

: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독서의 역사가 역사의 독서만큼이나 재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서의 역사의 독서인가? .....뭐래.

: 정치색이 있다. 정치색 없는 책도 있나? 싫어할 사람 있을 수 있다. 싫어할 사람 없는 책도 있나?

 


13. 게임의 심리학

: 게임과 관련해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적 사태들에 대한 지식의 나열. 내용이 알차고 말고는 syo같은 무지렁이가 판단하기 어렵겠으나, 저자는 딱히 글 잘 쓰는 사람도 그렇다고 글 못 쓰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14. 종횡무진 서양사 2

: , 이제 몸을 풀만큼 풀었으니, 10권짜리 프랑스 혁명사나, 홉스봄의 2000쪽짜리 시대’ 3부작이나, 하다못해 1200쪽짜리 미국 민중사나, 그것도 아니면 1000쪽짜리 러시아 혁명사나...... 꿀꺽.

 

15. 잘돼가? 무엇이든

: 이런 진부하면서 무책임한 단어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는데, 게 중에는 가끔, 그 슬픔을 잘 조리하여, 크게는 다른 슬픔을 위로하고 작게는 한 순간의 웃음이라도 전해주는 이들이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 그들의 인생에 저마다의 슬픔이 계속되기를 바라야 하는 건가 아닌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건가 미친 건가, 뭐 이런 죄책감을 들게 하는 참 고마운 사람들.

 

16. 선망국의 시간

: 기본소득, 직접민주제, 호혜적 경제 공동체,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 공동체..... 거의 모든 영역의 최전선에서 담론의 장을 형성하고 계신 조한혜정 선생님. 어느 하나 전 지구적 의제가 아닌 것이 없다. 나는 열심히 읽어야겠다. 그리고 힘닿는 대로 뛰어다니기도 해야겠다.

 


17. 나쓰메 소세키 평전

: 나쓰메 소세키에 환장한 syo는 스스로 이럴 줄 예상을 못했다. 열라 재미없는 평전이었다......

 

18. 마구로 센세의 본격 일본어 스터디

: 귀엽다. 초밥 같이 생긴 주인공이 일본 식당을 다니면서 일본어를 배우는 내용이다. 귀엽다.

 

19. 루쉰 :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 저자의 견해가 그다지 많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깔끔하고 담백한 루쉰 전기.

: 실은 루쉰이란 인물의 인생은 원체 공개적인지라, 어느 전기를 읽으나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다. 단지 전기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루쉰의 어느 글을 인용하여 어디에 포진하는가가 다르게 결정되거나, 혹은 저자의 당성에 따라 루쉰의 업적에 대한 평이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라고 하겠다. 써 놓고 보니, 원래 전기 문학이 다 그렇지...... 죄송합니다.

 

20. 녹색평론 통권 163

: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지는 속도로, 인공지능이 똑똑해지는 속도로 지구가 망하고 있다. 반도체랑 인공지능이 지구를 망친다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나 관계자의 눈으로 보면 되게 빠르게 망하고 있는데도 우린 잘 모르고 그저 산다는 뜻이다. 그러다 덜컥 일이 터지면, 언제나 그렇듯 그땐 늦었다. 그래서 녹색 책을 좀 읽어둬야 하는데,

: 그럴 때 녹색의 최신 동향을 살피기 위해 우선 손에 들어야 할 나침반 같은 잡지.

 


21.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고미숙 선생님의 책에는 좋은 말, 훌륭한 말이 잔뜩 들어있는데도, 그걸 분명히 알겠는데도, 그 말들이 피부를 뚫고 스며들어 오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늘 따뜻하지만 겉도는 느낌이고, 아름답지만 허망한 느낌이고, 든든하지만 먹고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 느낌이다. , 연암도 백수였구나, 백수였는데 훌륭했네, 와 부럽네, 멘탈 갑 오브 갑이네. 그러고 끝이다.

 

22. 피로 물든 방

: 오늘의 관점에서 전복적이라고까지는 하기 어렵겠으나, 아직 급진성의 불씨가 다 꺼지지는 않은, 거장의 동화 재해석.

: 못 쓰는 이들의 글은 어느 것을 읽어도 구분이 힘들어서 지치는데, 잘 쓰는 이들의 작품은 읽어도 읽어도 또 독창적인 문체를 지닌 애들이 숨어있다 튀어 나와서 지친다. 다 좋지만, 특히 숲, 세상에 다시없을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답고, 포근하면서도 위태로운 숲을 문장으로 만들어냈다!

 

23. 사무 인간의 모험

: 아무 것도 아니다. ‘사무인간이라는 표현에서 조금의 연관성이라도 찾을 수 있는 인문학적 영역들에 문어발을 뻗어 끌어 모은 책. 살짝 어거지면서 심히 얕다. 소재의 폭을 줄이고 더 깊이 팠다면 너무 좋은 책이 나올 수도 있었을 컨셉인데, 이렇게 소진되고 마는가......

 

24.

: 자꾸 페미니즘 소설만 쓴다는 희한한 비난(?)으로부터 최은영을 옹호하고 싶다. 물론 여성이 겪는 다양한 고통을 제제로 한 작품을 최은영이 근래 많이 써내고는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밀한 눈으로 읽어 보면 그 작품들이 겨냥하는 데가 (당연히) 제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공감 자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고, 공감을 위해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있고,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지를 조심스레 두드려 보는 작품도 있는 식이다. 페미니즘은 거대한 영역이고 굉장히 많은 소재들이 그 안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서 작품을 썼다고 해서 그 작품의 주제 또한 그저 페미니즘이라고 후려쳐서 명명하고 말 것은 아니다. 여성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간 아, 또 페미니즘이야, 하는 선입견에 따라 읽던 책을 집어던지는 일은 좀 공정치 못한 것 같다. ”얜 또 살인이야, 살인 말고는 쓸게 없나? 아니면 전작에서 살인으로 재미를 보더니만 이번에도? 아주 그냥 뽕을 뽑으려 하네?“ 라며 읽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어던지는 경우가 상상이 되는지? <죄와 벌>에서 죽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죽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인 소설에 편향된 살인 소설가 대접을 받아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 소재가 페미니즘이라서 문제인 건가?

 


25. 진실 사회

: 진실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우리가 찾아낸 진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진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진실을 만들어 낸 이들이 어디서 무얼 먹고 사는지를 주시해야 한다. 그들이 몸을 눕히는 장소, 그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들이 때로는 진실의 진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뭐 이런 다소 뻔한 지혜를 다시 얻었다.

: 짧은 책이면서도 뒤쪽에 진실사회를 위한 10계명을 요약 첨부해놓으셨다. 친절하셔.

 

26. 헤겔

: 낡았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는 게 아니라, 서술, 관점, 지향이 낡았다. 좋은 책은 많다.

: 문장도 후지다. ”체계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들의 생과 사를 건 진리와는 관계가 없는 사이비 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63)“ 이 문장 속에는 구조상 없어야 할 게 있고 있어야 할 게 없다. 이런 구린 문장이 가뜩이나 사변적으로 느껴지는 헤겔의 철학을 더욱 알 수 없는 쪽으로 몰고 가는 주범이다. (사실 저건 키에르케고르의 헤겔 비판에 관한 문장이긴 하지만......)

 

27. 빅팻캣의 영어수업 : 영어는 안 외우는 것이다

: 순전히 귀여워서 읽었다. 저 빅하고 팻한 캣 좀 보라지...... 시종일관 화가 나 있어..... 나도 그래. 영어만 생각하면 너처럼 시종일관 화가 나지.....

 

28.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굉장히 공격적인 제목이지만 펼쳐보면 시종일관 다정한 책. 맞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게 인간이니까, 가만 냅두면 그렇게 굴러가는 게 인간이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지탱해야 한다.

: 그러고보면, 오늘날 인간 교양의 측정 방법 가운데 하나는 뇌과학이나 진화심리학적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있는 것 같다. 뇌과학적(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이런 성향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냥 그렇게 해야 해, 이지랄 하는 놈들이 21세기 찐따의 왕좌를 차지할 것이다.

 


29.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왜 그냥 그렇지..... 난 왜 이기호가 그냥 그렇지......

: 그렇지만, 역시 등장인물의 대사는 가장 실감나는 구어체로 구사하는 이기호 답게, 녹취록 형식의 이 책은 그야말로 이기호의 기량이 빛을 발하는 책이라 하겠다.

: 근데도 왜 그냥 그렇지..... 난 왜 그냥 그렇지......

 

30.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 신랄하다. 군더더기는 모른다! 예비 동작 없이 바로 쑤신다! 쑤신 구멍에서 유익함이 콸콸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었느냐 하면,

: , 잘 잤다.

 

31.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단어의 위치가 맞춤하여 탄력은 있고 부담은 없는 문장들. 크게 튀지 않지만 식상하지 않은 어휘 구사. 그런 문장에 잘 녹아나는 일러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한다는 개념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내 삶도 더 느긋하고 다정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 그리고 산책. 산책 가고 싶다.

 

32.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심리학 수업

: 박홍순 선생님은 도둑님이셔. 이분 책 읽고 나면 장바구니가 자꾸 두둑해지고, 그에 반비례하여 지갑이 얇아진다..... 책 뽐뿌, 샘플 제공의 달인.....

 

 

+ 내 이야기!! 1~13

: 여주도 그렇지만, 남주는 여주가 뭘 해도 좋아한다. 여주가 눈앞에 나타나면 일단 좋아해!’라는 내적 환호를 크게 올리고 시작한다. 나도 따라해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떤 마음은, 자꾸 확인하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종종 변명되는 어떤 마음은, 자꾸 확인하지 않으면 모서리부터 차츰차츰 닳아 정말로 없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디 갔지? 이러면서 깨닫는 일이 생기면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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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1-1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 감상이 제일 좋네요. 내 이야기 남주도 무척 마음에 들고요.

syo 2018-11-15 18:13   좋아요 0 | URL
되게 좋은 책이었어요. 만화를 읽다가 생활양식에 변화를 겪은 것이지요.

카알벨루치 2018-11-1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읽고싶네요 ㅎㅎ

syo 2018-11-16 00:42   좋아요 1 | URL
기회 되면 기분전환 삼아서 한 번 읽어보세요. 가끔 만화 보면서 말랑말랑해지는 것도 좋더라구요^-^

비로그인 2018-11-17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따라 하나 하나 실감 나는 리뷰라는 생각에 재밌게 읽었어요! 평소에도 그랬을 텐데 왜 그렇지... 평소보다 꼼꼼히 읽었나봐요, 제가. 오늘도 책뽐뿌 잔뜩~~
근데 쇼님은 이걸 다 사서 읽으시나요? 신간을 매번 어쩜 이리도 잔뜩~~@.@

syo 2018-11-17 08:59   좋아요 0 | URL
실감은 idahofish님의 마음 속에서 나는 거지요!! 실감력이 대단하세요 ㅎㅎ

이걸 다 사서 읽으면 참 좋겠는데, 여의치 않아서 대부분 도서관의 힘을 빌린답니다. 정말 대애애애애애부분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