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권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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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몸들이 누워 있는 밤, 함석지붕 위로 도둑처럼 눈은 쌓이고, 오늘도 힘껏 팔다리를 흔들고 돌아온 아저씨의 이 나간 소주잔은 찾아 온 사람도 없이 혼자 비었습니다. 저 비린 바람꼬리를 쥐고 따라가면 풍경처럼 제 몸 흔드는 명태들 얼었다 녹았다 분주한 겨울 덕장이나 한 번 휘감고 돌아오겠지요. 그것들 시퍼런 눈동자는 밤처럼 꾸덕꾸덕 깊어지겠지요.
소주 한 잔 털어 넣는 일은 곧 마음 속 빈 의자 하나 들었다 놓는 일.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듯 빈 의자 여기저기로 옮겨나 보는 일. 발목까지 눈에 잠긴 장화가 파르르 파란 몸 떠는 새벽, 어둠이 눈을 지우듯 눈이 어둠을 지우고, 마당을 향해 뻗은 손을 지우는 게 눈일까 어둠일까 아저씨는 자꾸만 자꾸만 지워지는데, 입김처럼 생각나는 이름이 있어 또 부르고 말았습니다. 욕심 많은 겨울밤이 모든 귀를 감추었으니, 그 이름도 성에처럼 아스라이 바스라졌을까요. 그저 황태 몇 마리 듣고서 푸드득 몸서리치고는 말았으려나요.
아저씨는 대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요.



사방에 지극히 공평하게 내리고 있어 가까운 비와 먼 비의 소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 소리의 멀고 가까움을 구별하지 못하니 빗소리는 도처에 존재했다. 내 안에도, 또 내 밖에도. 3월 1일의 비는 겨울비도, 그렇다고 봄비도 아니어서 부를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데도 그 비는 모든 곳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르는 이가 없어도 소리를 내는 것, 심지어 듣는 이가 없어도 소리를 내는 것, 마치 파도처럼 혼자서 끊임없이 "예"라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인이고 부처라는 걸 이제는 나도 알겠다.
_ 김연수, 『아마도, 언젠가』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초봄 뱀눈 같은 싸락눈 내리는 밤 볍씨 한 자루를 꿔 돌아오던 家長이 있었다 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일어나면 나는 난생처음 마치 내가 작은댁의 자궁에서 자라난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입이 뾰족한 들쥐처럼 서러워서 아버지, 아버지 내 몸이 무러워요 내 몸이 무러워요 벌써 서른 해 전의 일이오나 자루는 나를 이 새벽까지 깨워 나는 이 세상에 내가 꿔온 영원을 생각하오니
오늘 봄이 다시 와 동백과 동백 진다고 우는 동박새가 한 자루요 동박새 우는 사이 흐르는 銀河와 멀리 와 흔들리는 바람이 한 자룽 바람의 지붕과 石榴꽃 같은 꿈을 꾸는 내 아이가 한 자루요 이 끊을 수 없는 것과 내가 한 자루이오니
보리질금 같은 세월의 자루를 메고 이 새벽 내가 꿔온 영원을 다시 생각하오니
_ 문태준, 「자루」 전문
사랑을 할 줄도, 사랑을 받을 줄도, 사랑이 뭔지도 모르겠다고 언니에게 말했었지요? 하지만 스톡홀름의 불빛들이 점점 작아지는 걸 내려다보며 이제는 언니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쓸쓸함에 마음이 쓰인다면, 그 사람이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 아닐까요?
_ 김민아, 윤지영,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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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 1000번째 고객님!
북플에 읽었다고 등록한 1000번째 책이라 기념 삼아 기록을 남긴다. 2017년 5월 1일, 그간의 독서기록을 대강 삭제하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시 한 권 두 권 세 나갔는데, 한 해 반을 넘겨 다시 천 권을 찍게 되었다. 그저껜가, 마음먹고 독서에 들어선지 3년째인데 오천 권을 읽었으니 이제 반환점을 돌았네요- 라는 깐도리님의 어마무시한 선언을 보고 와서 그런가, 천 권이 어쩐지 초라하다. 게다가 저 천 권 안에는 적지 않은 수의 만화책도 있고......
아무래도 깜냥에 넘치는 양을 읽다보니 인생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자꾸만 비루해지는 것 같다. 다음 천 권은 마흔 전에는 결코 채우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면서도 어제 오늘도 다섯 권을 읽었으니, 이게 미친놈이 아닙니까?
마음이 불편하고 세상이 들쑤실 때 자꾸자꾸 읽어서 책 속으로 숨어드는 syo의 천성을 고려해보면, 얘가 요즘 많이 힘든가 보다..... 되게 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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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기사 :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어제, 여친 학교 아이들이 수요 집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피켓 문구를 만들어주었다. 길어서 걱정이었는데, 길어서 눈에 띈다. 다행이랄지.
여친은 소녀상 뒤에 숨어 있다고 하는군요.
-- 읽은 --





나카노 노부코,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스벤야 아이젠브라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로만 무라도프,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줄리언 바지니, 『진실 사회』
-- 읽는 --






요한 록스트룀, 마티아스 클룸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손미,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한스 프리드리히 풀다, 『헤겔』
토린 얼터, 로버트 J. 하월, 『심야의 철학도서관』
정흥섭, 『혼자를 위한 미술사』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