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가볍고 머리는 무겁게

 

1

 

바람 부는 길을 걸어, 다 읽지 못한 책 스무 권을 죄다 반납하고 왔다. 많이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거워 가방은 가벼워도 걸음이 느렸다. 다시 얇은 책 몇 권을 빌렸다. 천천히 오래 읽어야지. 가을은 읽기 좋은 계절. 한 단락 읽고 바람 소리 한 번 듣고, 한 페이지 넘어가면 구름도 한 덩이 하늘을 넘어가는 천천한 읽기에 어울리는 계절. 풀벌레 소리가 마른 잎새에 휘말려 아무도 모르는 어디 먼 곳으로 사라져갈 때쯤에는, 부디 이 계절 궁금했던 모든 것들이 잘 익은 밤처럼 익은 제 속을 보여주기를.

 

 

 

2

 

이하준의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이정모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 무까이 마사아끼의 라캉 대 라캉을 읽었다.




고전 읽기 열풍 속에 어떤 이는 고전 읽기 광고쟁이가 되고어떤 사람은 고전 읽기 자랑쟁이가 된다또 어떤 사람은 고전 읽기를 고시공부 하듯 한다고전을 읽는 것은 그저 오래된 생각과 나의 생각 사이의 대화이다지식을 쌓기 위해서 정리하듯이 공부하는 것문화자본을 드러내기 위해서 고전의 이미지를 걸치는 것은 시간 낭비다고전은 그것과 조용한 대화를 하려 할 때 내 영혼에 스며드는 것이다목적형 고전 읽기를 하려면 차라리 위키백과사전을 읽는 편이 낫다.

이하준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정론이다 보니 어쩐지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야기지만, 한동안은 이 말씀에 기대어 읽어보기로 했다. 조용한 대화, 그거 한 번 해보자.

 

그러나 막상 이 책은 아직까지 그저 그렇게 읽고 있는 중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를 흐리게 하는 게 아니라미꾸라지가 더러운 물에서도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직장도 마찬가지다미꾸라지 같은 직원이 들어와서 갈등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갈등 요소가 많은 직장에서 직원들이 버티고 있어주는 것이다그리고 그 직원은 조직이 썩지 않도록 밑바닥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귀한 존재일지 모른다.

이정모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미꾸라지로 오래 살았다. 별난 놈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데서 시작해서,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아니냐, 너는 당사자도 아니지 않느냐, 나도 네 때는 그랬다, 너라고 병장 되면 다를 줄 아느냐, 뭐 이런 이야기들을 주렁주렁 귀에 달고서 기어온 인생이었다. 할 수 있을 때면 빼지 않고 열심히 미끄덩거렸지만 주변은 그다지 달라지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건 별 상관이 없다. 산소를 공급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미끄덩미끄덩 분탕치는 게 습성이라서 깝치고 다녔으니까. 누군가 나를 소중히 대해주면 물론 고맙겠으나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고마우면 보답하는 마음으로 미끄덩대고, 미우면 보복하는 마음으로 미끄덩댈 뿐이다. 이런 삶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 인생......

 

알라딘 마을에다가는 분탕 안 치고 느적느적 진득하게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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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9-1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마을에서 사이좋게 오래오래 지냅시다.

syo 2018-09-11 16:25   좋아요 0 | URL
그럽시다. 천년만년 사이좋게 지냅시다요.

다락방 2018-09-11 16:26   좋아요 0 | URL
얼쑤~ (춤춘다)

2018-09-11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1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9-11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마을에서 사이좋게 오래오래 지냅시다. 2

syo 2018-09-11 16:33   좋아요 1 | URL
그럽시다. 사이좋은 알라딘 마을을 만들어봅시다요.

다락방 2018-09-11 16:47   좋아요 1 | URL
얼쑤~ (또 춤춘다)

단발머리 2018-09-11 16:59   좋아요 1 | URL
지화자 조오타!! (방탄 춤춘다)

syo 2018-09-11 17:17   좋아요 0 | URL
^-^ (그저 지켜보면서 박수를 친다)

비연 2018-09-1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이 참 정겹습니다~ 얼쑤~

단발머리 2018-09-11 19:37   좋아요 1 | URL
앗싸~~~!! (방탄 춤춘다 : 정국 버전)

syo 2018-09-11 19:38   좋아요 1 | URL
정겹기로 치면 알라딘에서 수위를 다투는 두 분이니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