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미스터리 걸작선 1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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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있어야 했으나...역시 슬럼프인지 두툼한 책을 보기만 해도, 거부감이 일어나서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이 만들어진 계기는 특이한데,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자양분이 크게 미국과 일본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기념하는 것도 그닥 나쁘지는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당시에 한국추리문학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시던 정태원 선생님의 모습이 느껴저서 숙연해지기도 하고. 물론 저작권 등의 이유로 추리 작가 협회 수상작이나 해당 작가의 대표작이 아니라 그들의 새로운 단편을 수록하다 보니 냉정하게 보자면 작품의 수준이 뛰어나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출간된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보니 다른 곳에서 먼저 읽은 작품들도 있고...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좋았다. 우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삐걱거림이 마음에 들었다. 현대의 미스터리를 엄청 읽은 것도 아니지만,  요즘 들어 고전 미스터리에 호감이 가기 시작하는데, 그 시절의 묵은 맛이 있기 때문이다. 50여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구닥다리로 보이지만,  당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새로운 시도였을 것이다. <벽>같은 작품은 만약 지금 발표했다면, 범작을 넘어 태작 수준이지만, 시대 때문에 용서가 되는 작품이다. (만약 계간 미스테리에 실렸다면 욕을 바가지로 했을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구미의 흐름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던 초창기 작가들의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지론은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지만, 포니가 있어야 소나타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다슬에서 나오는 한국미스테리에 질려버린 나로써는 이 정도만 되도 충분히 감탄스럽다. 2권을 읽으면, 선배들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점이 눈에 들어오고, 이런 노력들이 누적되서 지금의 일본 미스터리의 황금기가 있는게 아닌가 싶고...

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이 단편집의 넓은 폭이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1권의 가장 큰 단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1/3정도는 추리단편이라고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SF, 성장소설이나 세태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단편들도 있다. 엄격한 독자들에게는 추리단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을 몇 권 썼다거나 유관 단체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선정된 단편들이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당시는 초반부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장르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발아기였고, 일본 작가들의 잡식성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사촌 이상이 되면 우리도 낯설어 하듯이, 지금의 두터운 장벽이 있는 듯한 장르들도 초기에는 꽤 가까웠음을, 그리고 지금보다는 당시의 작가들은 장벽을 넘나드는데 주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책의 기획과정을 보자면, 해당 작가들의 '추리'단편을 실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비평가가 아닌 이상 '추리소설'과 '추리적 요소를 갖춘 소설' 을 구분할 정도로 엄격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척박한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이러한 논의들이 대단히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김상훈씨가 쓰는 표현대로 '경계소설'도 많지 않은가. 다아시경 시리즈는 과연 SF소설이기만 한가? <죄와 벌>은 사회파 도서추리의 걸작이라고 부르면 안되는걸까? 반대로 필립 말로 시리즈는 그냥 추리소설인가? 전후의 미국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멋진 세태소설이기도 하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 스릴러, 서스펜스, 스파이물은 추리소설이라고 부르면 안되는걸까?

이야기가 엉뚱하게 길어졌는데, '추리'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추리소설애호가이니, 추리소설이 가지는 특성이 많은 책들을 선호하지만, 넓은 의미의 '추리적 요소를 갖춘 소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다.

원래는 단편의 줄거리도 소개하려고 했는데, 초창기 단편들이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수록작들이 전반적으로 짧아서 생략. 좋았던 단편은 다시 읽고 다시 보게 된 다카끼 아끼미스의 <살의>와 말로만 들었던 아토다 다카시의 <나폴레옹 광>-후반부의 서늘함은 <의혹>과 맞먹는다고 본다.-,단편 에서는 그래도 선방하시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3억엔의 악몽>-교타로 선생은 단편에서 모범생같은 느낌이다. 상투적으로 시작해서 상투적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상투성이 마음에 든다.-과 <눈먼 까마귀>의 저자인 츠츠이 다카오의 <정사의 배경> 등이 좋았다. <나체의 방>의 호시 싱이치의 블랙 유머도 좋았다.  

나열하다 보니 솔직히 마음에 안 들었던 단편은 하나였다. 서두를 여는 아카카와 지로의 <아파트의 귀부인>. 고양이 홈즈와 세 자매 탐정단에 당해서 그런지 솔직히 개발새발 쓴다는 느낌 밖에 없다.  

추신) 소노 다나오의 <복안>은 한국공포영화 XXX와 시놉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물론 후반부의 전개는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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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쇼트케이크 살인사건 한나 스웬슨 시리즈 2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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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님의 호의로 읽은 책입니다.

한나가 돌아왔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과연 이번에는 한나가 어떻게 사건에 끼여들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영리하게도 전작에 심어놓았던 이야기를 이번 편에 가지고 왔더군요. 전작의 등장인물 중에 한 사람이 피해자가 되고, 유력한 용의자 역시 전작의 등장인물입니다.  전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한나가 왜 무리해가면서 탐정노릇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혼자서는 힘에 겨운지, 리사와 안드레아가 동료로 등장합니다. ^^

이 시리즈는 한나와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전 한나가 노처녀인지도 모르겠어요. 암튼 성격좋지만,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는-아니 없다고 여기는-한나는 참 귀엽고 마음씨 착한 사람입니다. 좀 엉뚱하기도 하구요. 저는 아무리 동성심이 간다고 해도 한나만큼 사건에 뛰어들 자신은 없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 때문이기도 하고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겠지만, 주위의 멋진 두 남자를 놔두고 칙칙하게 살인사건이나 해결하고 있다니 말이죠...^^; 전 이 시리즈에서 한나의 매력만 잘 느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데뷔작에서 간단히 언급되었던 관계들이 심화되고 발전되는게 보입니다. 동생과 같이 사건을 풀어가면서 동생에게 과거에 저지른 실수-컴플렉스 때문이기도 하지만요-을 깨닫고 내면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저도 형제라 그런지, 유달리 와닿더라구요. 그러면서도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은근히 속을 썩일 때는 저도 쿡쿡 하고 웃었습니다.

한나뿐만이 아닙니다.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안달인 어머니. 언니와 사회에 대한 인정욕구를 적당히 가지고 있는 동생 안드레아,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하고 성실한 리사 등등...그들이 뿜어내는 앙상블은 좋습니다. 그 외 조금씩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도 정겹구요. 생각해 보니 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크게 인상에 남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한나의 로맨스 상대의 두 남자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뻣뻣하게 로맨스가 진행되서 그닥 인상에 남지 않네요. 일종의 삼각관계인데도 별로 긴장감도 없고, 아무하고나 되도 상관없다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재미만큼이나 아쉬운 점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우선 추리과정에서의 명백한 실수가 아쉽습니다. 전작과는 달리 초보탐정이라고 너그러이 봐주기에는 쉬운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입니다. 어디까지 초보탐정의 실수라고 선을 그을 수가 없는 것이라 주관적인 관점이지만, 후반부에는 왜? 왜?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언급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아쉽더라구요. 그래도 이건 그럭저럭 참을만 했습니다.

그런데, 한나와 여동생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멀리 나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호기심이 지나쳐서 짜증이 난다고 할까요? 마치 공포영화에서 호기심 많은 사람이 먼저 죽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수사할 때마다 조마조마 해지더군요. 게다가 쉽게 봐야할 것도 놓치고 있으니...공포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느낌을 싫어하는 편이라서 짜증이 났습니다.

왜 그러는지는 알겠습니다. 전작을 보신 분들은 충분히 공감하실테구요.  왜 한나가 사건을 마이클보다 먼저 해결하려고 하는지 말이죠. 저도 그런 놈들을 보면, 남자인게 부끄러울 지경이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좀 불편했습니다. 이래도 되나라는 느낌입니다. 지나치게 진지한 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 밑에는 공동체의 행복과 결속을 위해, 다른 것들을 일부 희생하거나 훼손해도 좋다라는 식의 느낌이 전해저서 불편했습니다. 한나의 선의는 알겠는데, 과연 그래도 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물론 그렇게 못하게 한다면, 시리즈가 더 나올 수 없겠지만요 ^^

내용 외의 이야기를 하자면, 첫 작품에 비해 눈에 띄게 개선된 교열이 마음에 듭니다. 전작은 빌려준 사람에게서 눈에 거슬려서 못 읽겠다라는 정중한 거절을 몇 번 당한 적이 있고, 오탈자에 둔감한 저도 거슬리는 기분이었는데,  이 책은 별 문제 없이 읽었습니다. 워낙 요즘 오탈자 문제로 시끄러운 때라 민감했음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면, 좋은 거겠죠? 그리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예쁜 레시피는 작가(와 출판사)의 섬세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그리고 주인공의 좌충우돌 사건해결기와 생활상이 교차하는 맛. 그것이 이 시리즈의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따뜻한 쿠키와 케이크가 그리워지실 겁니다. ^^  

추신) 반딧불님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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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2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책이죠^^

상복의랑데뷰 2006-09-2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책이기도 하구요 ^^
 
달밤 해방 전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방란장 주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6
이태준.박태원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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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이태준, 박태원 등은 복권이 되지 않던 작가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정지용과 같은 납북작가들은 복권이 되었었고, 임화, 이태준 등 자진월북작가-납북이냐 월북이냐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들은 복권이 안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소개가 안되어 있거나, 이XX, 임O등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한편으로 호기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구할 방법도 없었고 대입준비로 그냥 잊혀졌다. 한참 뒤에 이들이 복권되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알라딘의 호의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편견이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월북작가라고 하면, 카프나 최서해의 '홍염' 등을 떠올리게 되는 나로써는 이태준의 엄청난 서정성과 박태원의 냉철한 현실인식에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홍염'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Misdirection이었다. 별세계가 펼쳐진 느낌이었다. 

특히 이태준이 그러하였다. 박태원의 경우 <갑오농민전쟁>이나 <천편 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작품은 내가 존경하는 최인훈 선생도 같은 제목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놀람의 강도가 덜했으나, 이태준은 영 의외였다. 멋진 혁명가를 기대했는데,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로맨티스트를 만났다고 할까.

그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사회는 격변기의 연속이었다. (써놓고 보니 죽은 뒤에도 한국현대사는 격변의 연속이긴 하다.) 그 속에서 시류를 타고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흐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했을 것이다. 권두를 여는 <달밤>부터 이태준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 윗대의 일상을 따스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넉넉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구시대의 인물이건(복덕방), 순박한 시골 사람이건(달밤), 좌절한 지식인이건(패강랭)이건 말이다. 특히 <패강랭>은 백미였다.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연가로 귀결되면서도, 결국에는 시대의 좌절과 아픔을 온전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감탄하고 말았다.

따뜻한 감상주의가 이태준의 최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써는 최대의 약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을테니까. <농군>이나 <해방전후> 두 작품의 이유 모를 어색함도 '따뜻함'이 사라져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자기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해방전후>는 자기변명적인 색채가 더해져서 불편했고...만약. 나도 앞의 네 작품을 읽지 않았다면, 별 의심없이 괜찮다고 생각했음직한데, 앞의 단편을 읽고 나서 보면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어색함이 결국 이태준을 숙청의 길로 몰고간게 아닐까 하는 섬찟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태준이 초기에 보여준 서정성의 강렬함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태준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박태원의 경우에는 이태준과는 반대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맛보았다고 할까. 이태준은 특유의 서정으로 현실의 참혹함마저도 덮는 느낌인데 반해, 박태원의 경우 서정의 밑바닥에도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경우, 세태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구보씨 속의 사고의 흐름은 상당히 의식적이고, 현실에 대한 절망섞인 의분이 공감을 산다고 해야할까. 구보는 겉으로는 좌절한 지식인처럼 보이지만, 그 여백사이사이에는 자신의 시대를 기다리며 절차탁마하는 한신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보면, 지식인의 몽상일수도 있지만, 별다른 서사없이 현실의 풍경을 조합해낸 결과물치고는 날카롭고 예리하다.  

다른 작품인,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방란장 주인>이나 현실참여적인 성격이 강한 <춘보>같은 작품을 보면, 앞서 발한 한신의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이태준의 느낌이 취선의 일필휘지라면, 박태원은 세공사의 공예품 같은 느낌이랄까. 그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기단련으로 인해 월북 후에도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정치적으로도 살아남은 것 같고...

한 작가만으로도 벅찬데, 두 작가를 이야기하려니 힘들다. 그러나 서평단에 선정된 보람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오랫만에 고전의 힘을 느꼈다고나 할까. 창비에서 현대어로 손을 본 탓도 있겠지만,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요즘 작가군에 대해 실망이 크거나 편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신) 권말의 <이메일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 자체의 수준도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가의 책도 사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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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일은 너무 멀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96
해리 케멜먼 지음, 이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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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끈한 책들만 읽다가 고전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 읽은 작품. 워낙 유명한 작품에 작가인지라 리뷰를 쓰는게, 넘치는 잔에 물 붓기가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추리소설의 영원한 논쟁거리 중의 하나인 사건을 '머리'로 해결할 것이나. '몸'으로 해결할 것이냐 중에 극단적으로 전자의 입장을 추구하는 안락의자형 탐정 영문과 교수 닉 웰트가 등장하는 단편집이다. 이시드로 파로디의 선배 격 정도 되는 셈일까? 개인적으로 하드 보일드를 선호하긴 하지만, 이 단편집은 참으로 깔끔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동서의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번역의 문제에도 말이다.

표제작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읽으면, 피카소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고는 이 그림을 그리기 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응수하는 피카소. 서문에 쓰여있는 케멜먼의 이야기에서, 회색 세포를 무려 14년 동안이나 단련시킨 노대가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비록 짧고 어찌보면 논박당하기 쉬운 구조이지만, '9마일이나 되는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빗속이라면 더욱 힘들다'라는 문장에서 살인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고심한 세월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나도 명성만 듣고 이 책을 읽을 때까지 도대체 어떻게 이끌어냈을까라는 호기심이 늘 있었는데, 정말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추리독자라면 누구나 맛보고 싶은 쾌감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비단 이 단편 뿐만이 아니다. 이 단편집은 단편들의 수준이 고른 편이다. 다른 단편들 역시 짧지만, 응축된 대가의 힘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앞 뒤에 수미쌍관 처럼 포진되어 있는 작가 나름의 블랙 유머와 인생의 진리는 디져트처럼 입맛을 다시게 해준다.

그리고 이 단편집이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단편집이 홈즈의 향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홈즈처럼 직접 사건현장을 관찰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을 적당히 바보로 만들면서, 예외적인 요소를 거의 배제하고 진실을 향해 몰아붙이듯이 논증해 나가는 과정은 홈즈의 그것과 비슷하다. 홈즈의 팬인 나로써는 어설픈 패스티시 물보다 좋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다만 닉 웰트는 홈즈처럼 의뢰인이 없다 보니, 사건에 대한 이성적 호기심에 몰두한 나머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했다. 지적 유희에 몰두하다보니 어떤 단편에서는 신적인 모습을 모이기도 하고, 전편에 걸쳐서 냉소와 차가움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랄까...

작품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단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9마일은 너무 멀다>는 추론과정 자체는 감히 최고라고 말하고 싶었만, 내가 고전기 작품을 읽을 때 중요시하는 Fair함에서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만, 등장인물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했다. 그래서 내가 꼽는 이 작품의 숨겨진 걸작은 <말 많은 주전자>이다. 하숙집 안에서 주전자 하나로 모든 것을 풀어버리는 Fair한 게임에 감탄, 또 감탄. 동기나 방법. 공정함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단편이다. 그리고 <지푸라기 사나이>도 못지 않은 좋은 단편인 것 같고. 다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태도를 보인 <10시의 학자>는 결말때문에 불만스러웠다. 이건 특정한 태도에 대한 거부반응 정도로 보면 될 것 같고...

이 단편집을 읽고,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작품이 주는 임펙트는 강렬했다. 역시 고전은 세월이 지나도 좋다. 분량이 짧은 단편들이기 때문에, 새끈한 현대추리소설에 지치신 분들께 감히 일독을 권한다,

추신) 이 단편집의 후속편에 수록된 두 개의 단편도 괜찮다. 웨스트레이크의 단편은 약간 무거운 분위기고, 휴 펜티코스트는 블랙코메디 같은 느낌을 준다. 예전 동아에서 나온 4권의 단편집의 경찰 이야기에서 읽은 책들인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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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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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님이 주셔서 읽게 된 책. 다치나바 다카시는 유명한 저널리스트라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 사람의 도서관이 특이하다는 것 정도? 책을 받은 김에 출간한 책들의 제목을 보니, 자신의 단련을 위해 노력도 많이 하는 만큼 뒷세대에 대한 불만도 많아 보이는 저널리스트로 느껴졌다.

인터뷰집이라 아쉽게도 저자의 개성이 직설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작가 소개에서 보여지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나 독설, 그리고 기행에도 불구하고 다치나바 다카시 본인은 어쩔 수 없이 앞세대일 수 밖에 없구나라는 씁슬한 생각도 들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장인의 냄새를 폴폴 풍긴다는 점, 그리고 세계 최고를 직간접적으로 운운한다는 점에서 앞세대의 향기를 느꼈다면 거짓말일까? 솔직히 불편함을 느끼면서 읽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많아서 좋겠다! 흥~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에는 크게 불만이 없다. 개인의 성공스토리라는 것이 일정 부분 상투적이긴 하지만, 진실의 힘이 있다.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앞에 3자를 달고도 아직 표류중인 나에게는 부끄럽기도 했고...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책의 내용이 과연 청춘'표'류인가? 표류라는건 어디까지나 방황하면서 정처없이 헤매야 하는 것 아닌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회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 자신이 가야할 길을 일찌기 알았고, 이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온 사람들에게 표류라고 명명하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오히려 난, 보통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청춘본류와 다른 청춘'지'류나 대안청춘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커리어 패스-대학에 진학해서 무난한 직장을 구하고,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한 가지 무서운 깨달음을 주었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이 주인공들이 노력만 한게 아니라,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책에 등장한 사람들의 직업에 뛰어든다면, 그들의 몇배 이상의 노력을 한들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이야기하는데 불가능하다. 그들은 해당 분야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올라올 수 있었던 사실을 놓칠 뻔 했다. 결국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재능이 아닐까.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자꾸 멤돈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안타까울지언정 먹고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노력하는 둔재는 먹고사는것도 어려운게 작금의 현실인데, 결국 노력을 안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되어 버린다. 암울한 것은 아무도 그것을 알려주지 못할 뿐더러, 누군가는 그것을 일찌기 깨닫고 지금까지 노력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 내용만 놓고 보자면 높은 평가를 주기 힘들지만, 정신이 번쩍들게 만들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별 하나를 추가했다.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추신) 하이드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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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0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나바 다카시, 너무 잘나서, 불편하죠. 특히 이 책.
제 리뷰도 보시면, 투덜투덜입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9-0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의 멋진 리뷰는 책 보고 읽었는데, 역시 리뷰를 잘 쓰십니다.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하이드님께 품앗이 하겠습니다. ^^; 솔직히 선정자들을 보니, 청춘을 낭비한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다만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부했을 뿐...^^; 그리고 같은 길에서 좌절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라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합니다.

비로그인 2006-09-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쓰윽, 흩어보고서는 앵그리 영 맨, 혹은 하루키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인가 봅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오히려 신선했어요. 모든 것을 노력의 부재 혹은 잘못된 노력 탓으로 돌리는 처사가 얼마나 빈번한가요.

상복의랑데뷰 2006-09-12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이 늦었습니다. ^^; 예전에는 노력만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노력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 탓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