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해방 전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방란장 주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6
이태준.박태원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이태준, 박태원 등은 복권이 되지 않던 작가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정지용과 같은 납북작가들은 복권이 되었었고, 임화, 이태준 등 자진월북작가-납북이냐 월북이냐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들은 복권이 안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소개가 안되어 있거나, 이XX, 임O등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한편으로 호기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구할 방법도 없었고 대입준비로 그냥 잊혀졌다. 한참 뒤에 이들이 복권되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알라딘의 호의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편견이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월북작가라고 하면, 카프나 최서해의 '홍염' 등을 떠올리게 되는 나로써는 이태준의 엄청난 서정성과 박태원의 냉철한 현실인식에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홍염'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Misdirection이었다. 별세계가 펼쳐진 느낌이었다. 

특히 이태준이 그러하였다. 박태원의 경우 <갑오농민전쟁>이나 <천편 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작품은 내가 존경하는 최인훈 선생도 같은 제목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놀람의 강도가 덜했으나, 이태준은 영 의외였다. 멋진 혁명가를 기대했는데,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로맨티스트를 만났다고 할까.

그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사회는 격변기의 연속이었다. (써놓고 보니 죽은 뒤에도 한국현대사는 격변의 연속이긴 하다.) 그 속에서 시류를 타고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흐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했을 것이다. 권두를 여는 <달밤>부터 이태준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 윗대의 일상을 따스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넉넉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구시대의 인물이건(복덕방), 순박한 시골 사람이건(달밤), 좌절한 지식인이건(패강랭)이건 말이다. 특히 <패강랭>은 백미였다.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연가로 귀결되면서도, 결국에는 시대의 좌절과 아픔을 온전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감탄하고 말았다.

따뜻한 감상주의가 이태준의 최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써는 최대의 약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을테니까. <농군>이나 <해방전후> 두 작품의 이유 모를 어색함도 '따뜻함'이 사라져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자기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해방전후>는 자기변명적인 색채가 더해져서 불편했고...만약. 나도 앞의 네 작품을 읽지 않았다면, 별 의심없이 괜찮다고 생각했음직한데, 앞의 단편을 읽고 나서 보면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어색함이 결국 이태준을 숙청의 길로 몰고간게 아닐까 하는 섬찟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태준이 초기에 보여준 서정성의 강렬함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태준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박태원의 경우에는 이태준과는 반대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맛보았다고 할까. 이태준은 특유의 서정으로 현실의 참혹함마저도 덮는 느낌인데 반해, 박태원의 경우 서정의 밑바닥에도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경우, 세태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구보씨 속의 사고의 흐름은 상당히 의식적이고, 현실에 대한 절망섞인 의분이 공감을 산다고 해야할까. 구보는 겉으로는 좌절한 지식인처럼 보이지만, 그 여백사이사이에는 자신의 시대를 기다리며 절차탁마하는 한신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보면, 지식인의 몽상일수도 있지만, 별다른 서사없이 현실의 풍경을 조합해낸 결과물치고는 날카롭고 예리하다.  

다른 작품인,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방란장 주인>이나 현실참여적인 성격이 강한 <춘보>같은 작품을 보면, 앞서 발한 한신의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이태준의 느낌이 취선의 일필휘지라면, 박태원은 세공사의 공예품 같은 느낌이랄까. 그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기단련으로 인해 월북 후에도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정치적으로도 살아남은 것 같고...

한 작가만으로도 벅찬데, 두 작가를 이야기하려니 힘들다. 그러나 서평단에 선정된 보람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오랫만에 고전의 힘을 느꼈다고나 할까. 창비에서 현대어로 손을 본 탓도 있겠지만,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요즘 작가군에 대해 실망이 크거나 편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신) 권말의 <이메일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 자체의 수준도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가의 책도 사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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