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멕베인이 1968년에 발표한 87분서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한 바로는 21번째 작품입니다. 68년에 21번째니 정말 정력적으로 집필활동을 하셨군요 -_-;;;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것만으로 따지면 10+1과 <찢겨진 사진>의 사이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우연히 숨어있는 책에서 구입하고 2주간 끙끙대면서 읽었습니다.

(제 영어 실력상 오독의 여지가 있고, 10+1에 대한 일부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일러까지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첫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무실에 불청객이 앉아 있습니다. 사장도 여비서도 왜, 누구 때문에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용기를 내어 물어본 여비서는 험한 소리를 듣고, 이에 겁을 먹은 여비서는 사장에게 보고합니다. 사장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삿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경찰 입회 하에서 용건을 묻자 어떤 사람을 찾아왔다고 합니다만, 그 사람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에 옥신각신하다가 경찰이 개입하려하자, 이 불청객은 경찰을 개패듯이 패고, 비명을 지르는 비서를 남기고 사라지게 됩니다.

이에 87분서의 히죽남 버트 클링이 출동합니다. 사건을 조사하러 간 클링은 당황하게 되는데, 그 불청객이 만나려고 했던 여자가 10+1에서 자신과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신시아 포레스트였던 것입니다. 신시아는 10+1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에,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서 현재 인사팀에서 면접 보조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2년 반이 흘렀지만, 그녀녀는 버트 클링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카렐라가 친절하다는 등의 구박을 해댑니다. 부담감을 느낀 클링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번즈 경감에게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배치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번즈 경감은 살인자는 처형되었지만, 유족을 노리는 다른 테러일지 모른다면서 그녀를 계속 따라다닐 것을 명령합니다. 그녀를 보호함과 동시에 굴에 연기를 피워 토끼를 굴 밖으로 내쫓으려는 생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클링과 포레스트는 원치 않는 보호관계에 들어서게 되면서 티격티격 대지만, 그 불청객은 클링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더 무서운 행동에 들어서게 되는데......

다른 한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TV쇼 진행자에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Stan Gifford라는 인기있는 쇼진행자가 있습니다. 그가 진행하는 쇼는 2천만 가구의 4천만 명의 8천만 눈동자가 시청하는 인기 쇼입니다. (이 표현은 소설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제목의 유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느라 TV 볼 시간이 없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도 이 쇼를 즐겨 봅니다. (참고로 테디는 말을 들을 수 없어서 판토마임만 본다는 군요.) 어느 날 이 쇼를 보고 있는데, 방송 중에 그만 Stan Gifford가 사망합니다.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스튜디오에 마이어 마이어와 카렐라 콤비가 출동하고, 부검결과 독살로 밝혀집니다. 

정황상 사망 직전의 광고시간 전후로 독이 든 캡슐을 삼킨 것으로 추정한 두 콤비는 그 때 의상실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스태프와 그의 부인, 그리고 주치의를 수사합니다. 각각의 스태프에게서는 석연찮은 점이 발견됩니다. 의상담당은 죽은 진행자가 해고를 프로듀서에게 건의한 상태였고, 보조작가는 자신이 쓴 대본에 대한 악평 때문에 언쟁이 있었고....이런 혐의점와 더불어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의 부인은 첫 조사에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러나 알리바이 검증과와 대질심문을 통해 일단 모두에게 혐의가 없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범인일까요? 두 형사는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에 못지 않게 마이어의 감기도 점점 심해지는 것을 깨닫게 되구요.)

87분서는 각 작품별의 재미와 전체 시리즈 속에서의 이어지는 재미가 어우러지는 것이 묘미인 셈인데, 특히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던 10+1의 뒷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두찬이에 따르면 버트 클링의 두 번째 애인인 신시아 포레스트와 맺어지는 계기가 되는 작품인 셈이죠. 역시 에드 멕베인 옹의 필력은 대단합니다.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번역된 것보다 더 집중해서 읽은 탓도 있지만, 2주 정도 걸쳐 띄엄띄엄 읽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내용상 트릭의 독창성이나 범인찾기의 어려움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은 멕베인 옹의 필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87분서를 읽으면서 이런 부분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요.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확실히 초기의 멕베인 옹의 필력은 소박한 느낌입니다. 문장의 길이가 짧고, 대화가 많고, 단어의 폭이 적은 대신에 상대적으로 특정 어휘의 사용빈도가 높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후반기 작품, 얼추 1980년대 이후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각 문장의 길이도 길어지고, 내용도 길어지면서 읽기가 훨씬 어렵더군요.(써놓고 보니 21번째 작품이니 초기작이라고 하기도 어색하네요. ^^)

그렇지만, 그 단순함 속에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스크루볼 코메디에 가까운 버트 클링과 신시아 포레스트의 욱신각신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나 다른 작품에서도 멋진 개그 콤비였던 카렐라-마이어의 수사 상에서 주고받는 개그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특히 마이어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살의의 쐐기>에서의 활약으로 우중충한 허무개그의 달인으로 각인된 마이어 마이어는 이번 작품에서는 10월이 배경인 관계로 감기가 걸립채 등장합니다. 그래서 카렐라가 진지하게 수사하고 있으면, 옆에서 코를 훌쩍거리거나 기침하는 등 온갖 꾸리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그리고 마이어 특유의 썰렁한 한 마디 던지기까지...보고 있자니 웃음과 함께 안쓰러운 생각이 동시에 들더군요. 어느 작품에서 마이어가 과연 멋지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멕베인 특유의 짧지만 강렬한 단편적인 묘사도 여전히 돋보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불청객이 저지르는 폭행들의 묘사는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듯 강렬하며, 카렐라가 진행자 Stan의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지 묘사되는 쇼의 전개는 저의 영어실력이 부족함이 아쉬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특히 판토마임을 묘사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영어로 읽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스산한 10월 거리를 묘사하는 장면이나, 버트 클링이 수사를 위해 방문한 부둣가의 풍경묘사도 맥베인 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멕베인 특유의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육감적이죠.-도 여전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맥베인 옹의 구성방식에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내용상 두 가지의 이야기가 병렬로 진행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묘한 재미를 줍니다. 예를 들어 초반부에 클링-포레스트 라인은 심각하다가 러브러브라인으로 빠지게 되는데, 반대로 카렐라-마이어 라인은 재미있는 쇼의 묘사가 지나고 나면 점점 수가가 미궁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편의 이야기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아줍니다. 마치 두 묶음의 카드를 들고 있는 상대와 포커를 치는 기분이랄가요. 카렐라-마이어가 사건이 안 풀리고 경찰의 애환을 다루고 나면-간만에 집에 들어와서 애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전화가 걸려서 카렐라는 다시 나가야만 하죠-둘이서 티격티격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또한 불청객으로 인해 클링-포레스트 라인이 심각해지면, 카렐라-마이어가 본격적으로 개그를 하고 사건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카렐라와 마이어가 수사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클링과 포레스트의 연애담도 비중에 비해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뭐랄까 1+1=3,4,5,...를 만들어 내는 느낌이랄까요? 맥베인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평범한 일상들 사이에서 엮이면서 발생하는 재미나, 단편처럼 등장하는 삶의 여러 모습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면 사건이 해결되는데, 사건이 해결되는 것 자체는 이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건 자세히 말씀드리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결말부분의 다양한 결말들은 결국 에드 멕베인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일부 있었습니다. 우선 제목과는 다르게 쇼 비지니스의 내부를 들여다볼 정도의 내용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유명 진행자가 생방송 중에 죽었다라면 기대할법한 내용이 의외로 적습니다. Eighty Million Eyes라는 제목과 초기 도입부를 보고 쇼 비지니스의 추악한 면을 수사 과정에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아쉽지만 소재 차원에서 그치고 맙니다. 물론 반드시 쇼 비지니스를 보여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멕베인 옹의 필력이라면 날카롭게 파헤칠 법도 한데 말이죠. 그리고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의 범인과 트릭이 평이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결말 부분에 카렐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건 초반에 확인하면 알 수 있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경천동지할 트릭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트릭과 해결방법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살의의 쐐기>랑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한 느낌입니다.

에드 멕베인은 늘 그렇듯이 실망을 주지 않는 작가입니다. 특히 초기작은 그렇습니다. 후기작은 번역탓도 있겠지만, 조금 실망스러운 면도 있었죠. 매년 한두작품씩 내면서, 그리고 다른 일도 병행하면서 꾸준하게 수준작을 낸다는 것은 대단하죠. 이러쿵 저러쿵 써놓고 보니, 이 작품만의 감상을 썼다기 보다는 다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는 에드 멕베인의 장점을 이제야 발견한 듯 쓴 것 같은 느낌이네요. 오랫만에 영미작가의 수작을 읽어서 흡족한 느낌입니다.

추신1) 작품 중간에 버트 클링이 신시아 포레스트에게 새로 나온 히치콕 영화를 보자고 합니다. 작품출간년도가 1968년이니 이론상으로는 1967년이나 1968년 영화겠죠? 시기가 비슷한 히치콕 영화는 1966년에 개봉된 폴 뉴먼와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의 <찢겨진 커튼(Torn Curtain)>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새로 나온 히치콕 영화는 전 작품인 <마니(Marnie)>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에드 맥베인은 1963년에 개봉한 <새(The Birds)>의 극본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합니다. 하지만 에드 맥베인은 이전에 57~59년 사이에 Alfred Hitchcock Presents에 세 개의 에피소드를 각색합니다만, 그 때는 히치콕을 만나서 작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을유문화사의 <히치콕>을 읽어보면, 뒤 모리에의 원작을 각색할 사람으로 히치콕은 에드 맥베인을 고용하고, 히치콕 특유의 완벽주의로 맥베인의 각색을 다 고쳐서 영화를 찍습니다. 당연히 맥베인 옹이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합니다. 결말이나 중요한 부분등을 다 고쳤으니 기분 나쁠만도 하죠.그러나 히치콕은 맥베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기작인 <마니(Marnie)>의 각색도 맡깁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이 XX당한다는 설정 등에 대한 이견 차이로 맥베인이 쓴 초고는 기각되고, 히치콕은 에이전트에게 해고를 통보합니다. 이래저래 맥베인 옹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죠. 나중에 <나와 히치(Me and Hitch)>라는 회고록까지 쓴 걸 보면 화가 상당히 났던 모양입니다. <히치콕>에서 읽은, <나와 히치(Me and Hitch)>에서 인용된 에드 멕베인의 이야기들이 그리 고운 표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그정도 곤조 없이 작가를 할 수 없겠죠. 그래서 새 히치콕 영화를 굳이 보자고 하는건 내가 쓴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나 보자라는 식의 곤조가 느껴집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 

제가 길게 쓴 이유는 이 작품의 초반에 등장하는 TV 프로듀서는 히치콕을 모델로 쓴 티가 나기 때문입니다. 히치콕의 악명높은 명언인 배우를 가축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표현도 직설적으로 등장하고, 히치콕의 음담패설성 농담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여자의 특정부위를 운운하면서 자기과시적인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음흉함은 히치콕의 그것과 유사하죠.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면 안되겠지만, 추레한 히치콕과는 정 반대의 외모를 가지신 분을 설정한 것 자체가 의심스럽긴 합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어느 독자의 망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

추신2) 다음 작품이 Fuzz군요. 이번에 뜬금없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87분서는 정말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았습니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본 것 같은데, 사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추신3) 방금 집에 와서 책을 확인해보니, 출간일자가 66년이네요. 공식 홈피에 68년으로 되어있어서 그렇게 추정했는데, 아마 페이퍼백 기준인 모양입니다. 하드커버 초판은 66년에 나왔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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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부러워요 ㅜ.ㅜ

상복의랑데뷰 2006-11-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물만두님이 더 부러운데요 ^^;

2007-03-15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WBC 이후 야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서, 야구를 주제로 한 추리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그 완결편입니다. 사놓고 잊고 있었다가 나혁진님이 일깨워 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하베이 블리스버그라는 유대인 야구선수를 탐정으로 내세운 추리소설이고, MWA 1985년 신인작입니다. 작가는 Richard Dean Rosen 이구요. MWA에서 검색해보니 데뷔작 이후 어떠한 작품도 에드거 상 후보조차 오른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정상에서 출발해서 내려온'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이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는 야구미스테리를 몇 권 더 쓴 것 같습니다.

주인공 하베이 블리스버그는 신생팀 프로비덴스 주엘즈(Jewels)의 중견수이자 팀타선의 핵인 선수입니다. 그는 은퇴하면 남북전쟁사를 연구하겠다는 학구파 유태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교수'입니다.) 그는 자신의 룸메이트였던 구원투수 루디 파스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루디 파스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독자적으로 수사를 벌이다가 수사를 중지할 것을 종용하는 경고장을 받게 되는데...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현직 야구선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이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평이 꽤 갈릴 것 같습니다.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전에 읽었던 다른 야구 미스터리들-폴 오스터의 <스퀴즈 플레이>와 로버트 B 파커의 <최후의 도박>은 야구를 소재로 하긴 했지만, 사립탐정물이라서 야구장의 열기나 야구 자체를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야구장을 떠나야 하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성공적입니다. 주인공도 현직 야구선수고, 사건역시 정규시즌 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주인공의 수사활동은 메이저리거들의 일상과 함께 흘러갑니다. 메이저리거들의 일상, 중계하듯이 보여지는 경기장 안밖의 풍경을 따라가는 재미가 나름 쏠쏠합니다. 부동산 운운하면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은퇴를 걱정하는 모습, 카드를 수집하고 팬레터를 보내는 팬들.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락커룸 분위기...일어 중역의 느낌이 나는 엉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만년 꼴찌 팀이었던 삼미를 응원했던 저로써는 AL 동부리그에서 현 템파베이처럼 신생팀으로 고군분투하는 주엘즈(팀 이름이 보석들이라니!!!!) 팀의 모습도 공감이 갔구요. 중간에 라인업이 한 번 등장하는데 타율을 보고 있자니 안구에 습기가....전체적으로 물타선이라 타율이 가장 좋은 주인공이 2번을 치는 사태가 발생하더군요. DH가 2할 5푼 대를 치고 있으니 말 다했죠.(혹시 최희섭? ^^) 그렇다고 투수진이 좋은 것은 당연히 아니구요.

데뷔작에서는 보통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택하거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상당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묘사도 리얼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살해동기에 공감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 살인자에게 쉽게 공감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최소한 이 작품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더군요. 범인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저도 살인충동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살인을 하게끔 하는 원인이 의외로 그럴 듯 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메이져리그 팀의-계속 언급하게 되는 팀이군요 --;;;-트레이드 소식과 맞물려서 비즈니스 세계의 비정함-이 작품에서는 비열함이지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미국의 진정한 No. 1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습니다. 폴 오스터도 보스턴의 광팬이라고 알려져 있고, 파커의 작품에서는 아예 레드삭스가 주된 이야깃거리이며, 하다못해 이 작품에서도 레드삭스 이야기는 '살인과는 무관하게' 중요한 소재 중에 하나입니다. 주인공은 레드삭스에서 데뷔했다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볼티모어로 이적했다가 Expansion Draft로 신생팀에 와서 꽃을 피운 케이스입니다. 작품 중간에는 보스턴에서 나간 것을 아쉬워하는 팬도 등장합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 팀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라는 궁금즘도 생겼습니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주인공은 나이든 카를로스 벨트란 정도 될 듯 하네요. 85년 작품이니 당시 작가가 모델로 삼은 선수도 있었겠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더니 나름대로 흥미진진하네요. 

다만 대부분의 데뷔작이 그렇듯이 문체가 약간 거칠고, 뒤로 갈수록 산만해지다가 일거에 해결되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말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은 과도한 영웅주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부분의 감동이 더 어필했으면 좋았을텐데, 이 부분은 보스턴의 골수 팬들 아니면 동감하기 힘드실 내용일 겁니다. 그리고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분들이 보면 그저 그런 소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야구의 팬으로써 즐겁게 읽었습니다. 구하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헌책방에서 발견하시면 읽어보실만 합니다. 

추신1) 프로비덴스라는 지명이 계속 익숙해서 생각해 봤더니, 아마 베이브 루스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프로데뷔를 볼티모어에서 했는데, 첫 해에 자리를 못잡고, 일종의 마이너리그 격인 팀으로 가게되는 데 팀의 이름이 프로비덴스였는지 그 마이너리그의 이름이 프로비덴스였는지 헷갈리네요. 계몽사 문고로 20년전에 읽었던 내용이라 정확성은 고사하고, 사실여부도 모르겠구요.  

추신2) 한 권이 더 있는데 필요하신 분께 공급가에 팔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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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습니다. 이 책 에드거상 후보였나 수상작인가 그렇죠.

상복의랑데뷰 2006-03-2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쓰여있네요 ^^;
 

운좋게 구한 작품입니다. 자유추리문고는 좋아하는 문고판입니다. 지금은 재출간과 전집출간으로 인해서 구하기 쉬운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당시의 리스트는 (지금까지도) 초역이 많았습니다. 비록 헌책이었지만, <주정꾼 탐정>, <새벽의 데드라인>을 자유추리문고를 통해서 봤을 때의 감동이란...그리고 딱 주머니사이즈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좋구요. 그리고 문공사처럼 번역이나 그림이 엉터리도 아니고 해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먼탐정 캐러더스>는 어니스트 브래머(Ernest Bramah)의 단편선집입니다. 이 작품 역시 예전에 읽은 <구석의 노인사건집>처럼 셜록 홈즈의 등장 이후에 나온 고전기 작품입니다. 사고로 인해서 눈이 먼 캐러더스가 충실한 하인 퍼킨슨과 친구인 사립탐정 캐러일과 함께, 아니 정확히는 그들과는 별 '상관없이' 사건을 해결합니다.

캐러더스는 장님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의 증조부 쯤 되는 셈이죠. 작품 자체를 떠나서 '시력'을 제거한 브레머의 통찰력은 높이 사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주인공은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은데요. 회색 뇌세포의 활동을 강조하기 위해서 탐정에게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주는 설정이 지금은 일반화되어있을지 몰라도 당시로는 신선한 발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브래머는 기존 작품들, 특히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충실히 분석하고 변용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시력'의 제거는 셜록 홈즈의 추리가 많은 부분 관찰에 의존하고 있음을 저자가 알지 았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또 캐러더스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퍼킨슨의 관찰에 대한 묘사는 상당부분 홈즈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또 셜록 홈즈의 영원한 클리세 중에 하나인 '~~에 대한 논문'이야기도 나오구요. 작품 자체보다는 홈즈의 흔적을 찾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작품의 구조도 도일의 단편들과 비슷하지만, 이건 브래머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면, 캐러일이 무능한 사립탐정이고 캐러더스가 유능한 유한귀족인 것을 보면, 은근히 홈즈에 대한 경쟁심리나 우월감이 배어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셜록홈즈는 가난한 블루칼라 중산층이라면, 캐러더스는 교양있고 부유한 유한귀족이니까요. 캐러더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자기는 무보수에, 시력이 없어도 홈즈 만큼 하니까요. ^^ 

그렇지만 제가 읽은 작품들은 거기까지입니다. 작품이 재미가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등장인물 간의 화학작용이 거의 전무합니다. 홈즈-왓슨 콤비에 비하면, 이 둘은 재미없는 영국신사들의 사교활동을 보는 것 같아서 영 심심합니다. 게다가 잠깐잠간 등장하는 퍼킨슨도 기계적으로 관찰만 하는 충직한 하인일뿐 그 이상의 매력은 없습니다. 캐러일은 사건을 가지고 오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상의 일을 하지 않구요. 둘 다 개성이 없습니다. 홈즈를 비롯한 다양한 경쟁작들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느낌은 나는데, 자신만의 양념을 첨가하는데에는 실패한 느낌입니다. 좋은 레시피에 맛깔나는 재료가 있었지만, 요리사가 손맛을 낼 줄 모르고, 조미료가 없이 많들어진 요리 같습니다. 

또 주인공은 어떨까요? 캐러더스는 워낙 차분하면서도 뛰어난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서, 당시에는 오히려 선호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지금 보면 영 심심합니다. 그의 우정의 표현이라는 것이 친구를 위해 자기 일정을 뒤로 미루는 정도밖에 없죠. 교양인이지만, <구석의 노인>같은 주인공의 강렬한 맛이 없습니다. 특징은 있죠. 시각이 없다는 점. 아이디어 자체는 높이살만 합니다. 그렇지만 시력이 없어서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퍼킨슨이라는 충직한 관찰자가 늘 곁에 있다고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실수, 한계 등이 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관찰과 사고활동을 분리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데, 문제는 이 작품에서는 그 둘을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퍼킨슨이 아파서 캐러일과 사건을 해결하는데, 캐러일이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해서 실수를 한다던가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해들럼 고지 비밀>에서 캐러더스의 약한 모습이 일부 비춰지긴 하지만, 이 단편은 재미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애국적인 모습이 강조되어 있구요. (번역되지 않은 단편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캐러더스가 취미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도 들 수 있습니다. 홈즈는 직업인입니다. 그래서 돈 앞에서도 비굴하기도 하고,-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 중에 하나가 <프라이어리 학교>인데 작품 말미의 홈즈의 태도는 읽으면서도 즐겁습니다. 천하의 홈즈도! 이러면서 말이죠.-고용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 홈즈라는 인물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만의 괴퍅한 개성은 누구나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싱싱한 느낌이 캐러더스에게는 없습니다. 그저 그에게 추리란 '선의의 도락'일 뿐이지요. 그가 자신의 능력을 썩히지 않고 남들을 도와주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그 이상의 재미는 주지 못합니다. 캐러더스가 차라리 잰체라도 했다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브래머의 야심은 '고품격' 추리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캐러더스의 활동은 올바른 감성과 뛰어난 이성을 가진 귀족이 벌이는 일종의 사회봉사같은 면이 있으니까요.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건에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작중인물들의 모습입니다. 이 단편집은 오히려 그 시대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는 풍속소설로서의 가치가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래스웨이트경의 간지>에 드러난 귀족들의 허세, <매싱검 장의 유령>에 드러나는 신사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가치관을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당시 프로이드가 상당히 위력을 떨쳤다는 인상을 다시 한번 받는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작품은 <구두와 은그릇>, 그리고 <컬비 거리 범죄>였습니다. 특히 <구두와 은그릇>은 너무 노골적이지요. 하지만 엉성합니다;; 

트릭에 대해서라면...음 냉정하게 평가해서 미안하지만 눈에 띄는 트릭은 <매싱검 장의 유령>인데, 이 트릭은 일종의 밀실 트릭인데, 캐러더스의 설명을 들으면 상당히 과학적이고 신선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재미는 없습니다. --; 나머지 단편들은 초기의 일반적인 트릭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말 하면 좀 미안하지만, 제가 읽어본 최고의 작품은 <세계의 명탐정 44인>에 나왔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해당트릭이 캐러더스의 트릭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캐러더스의 개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듯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고전기의 경향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만, 수작과 태작이 교차하는 작품선집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선집임을 고려하면 다른 작품의 질이 우려도 되구요. 개인적으로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보다도 재미없게 읽혔습니다. 

추신) 이 작품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분들께서 <브룩밴드 장의 비극(The Tragedy at Brookbend Cottage)>을 최고로 꼽으셨는데, 이 단편집에는 없네요. 혹시 어디에 수록되어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추신2) 이 작가는 중국인이 주인공인 Kai Lung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제국주의적 관점이나 오리엔탈리즘이 배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후에 재평가를 받는다고 하는데, 읽어볼 길이 없으니 답답할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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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2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이 <명탐정은 영원하다>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또 다른 단편집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안나네요.

상복의랑데뷰 2006-01-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만두 2006-01-2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수는 죽어야 한다- 동서미스테리북스 안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1-30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 ^^
 

토요일날 구입해서 읽은 비밀의 백화점입니다. 추리소설 독자로써 이러한 기획이, 그것도 별책부록으로 나왔다는 점에 대해서 한겨례 21과 구둘래 기자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아쉬운 점도 분명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98%의 고마움을 바탕으로 드리는 이야기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__)

시작은 '내 생애 넘버 원'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글은 당.연.히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소개해 주신 임필성 감독님-<남극일기> 씹어서 죄송합니다. (__)-과 평소에도 좋아하는 평론가 김영진님의 글입니다. 특히 김영진님의 글을 보면서, 이 분의 취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Film2.0에서 본 스티브 맥퀸에 대한 김영진의 러프컷을 읽고, 이분이 '전문가주의'를 선호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 '흥분'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그런 느낌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또, <백야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었던 김봉석 님의 글도 좋았구요.

또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 단권으로 출간된다는 기쁜 소식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구요. 김현진씨의 '시드니 셀던의 언니 3종 세트'는 독특한 글이었고 공감도 많이 갔지만, 제가 시드니 셀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깊게 다가오지는 않더라구요.

다음은 출판사 추천작들이 올라와 있는데, 영림카디널에서 <부활하는 남자>들 대신에 <와일드 소울>을 소개했다는 것이 약간 의외였습니다. 소개글로써 무난합니다.

세번째는 만화였는데, 대박은 김진태씨의 만화였습니다. 역시 김진태님은 녹슬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의 반전이란! 그리고 유명소설들을 인용한 한태연씨의 만화도 좋았구요.

네번째는 마니아 설문조사였는데, 여기에 제 이름도 참여자로만 살포시 올라가 있습니다.(함량 미달로 탈락을..) 사실 스크린 6월호에서 본 몇 분이 겹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추리 소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살필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였습니다.

다섯번째는 '다음은 아는 만큼 놀란다.' 라는 추리소설에 대한 다양한 가이드입니다. 전체적인 아쉬움이기도 한데, 글의 퀄리티는 좋습니다. 그러나, 글들이 조금 두서없이 묶인데다가, 지면의 제약 덕분에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일반독자들이 보기에는 친절하고 충실한 가이드입니다. 후자에 무게를 두고 기획된 만큼, 의도에는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아쉬움을 말하자면, 이다혜님의 'TV 수사물'은 지나치게 CSI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저같이 CSI문외한에게는 좋은 가이드였지만, 한편으로는 몽크나 고전 수사물에 대한 소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지면의 제약때문에 힘들었겠지만요. 그리고 '홈스와 제국주의'라는 글은 구성상 '뜬금없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습니다. 정석화 님이 쓰신 '추리소설 작가로 사는 것'이라는 글은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솔직한 제 심정은 '왜 독자에게 푸념을 하는가'였습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추리소설독자들이 한국추리소설에 대해서 불신과 편견에 가득차 있고, 한국에서 추리소설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드니까요. 하지만 누가 독자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독자 자신이? 아니면 출판사가? 가장 큰 책임은 작가들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큰 노력도 작가들에게 있습니다. 이 점을 분명 모르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눈에 띌 만한 개선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독자들에게 '추리소설 작가로 사는 것이 어렵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작은 시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양질의 추리소설을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들은 자선사업합니까? 아니, 시장을 핑계로 엉터리로 책을 내놓던가요? 이러한 문제에 비하면 분권이나 선정적인 책값 등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아 보입니다.(사실은 중요하죠 ㅠ_ㅠ)

이번에 나온 계간 미스테리를 예로 들어볼까요. 세 편의 단편은 모두 추리단편으로써 수준미달입니다. 특히 어떤 단편은 평범한 독자인 제가 봐도'내가 써도 이것보다 잘쓰겠다.'라는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최소한의 문학적인 기본기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단편이었습니다. 억지로 명맥차원에서 미달작을 게재하느니, 차라리 수준작이 나올 때까지 단편을 게재하지 않는 단호함이 요구되는 때라고 봅니다. 물론 내부에는 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겠지만, 지금은 독자와 작가 사이에 더 살벌한 긴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만, 정석화님에게는 아무런 악감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계간 미스테리도 다시 내시고, 한국 추리소설의 부흥을 위해서 여러모로 노력하시는 고마운 분이시죠. 하지만, 이 글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출판사에서 출간된 추리소설 목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보다가 실망을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절판된 책들도 아무 표시 없이 올려놓았더군요. 이 별책부록의 목적이 history가 아닌 guide인 만큼, 비밀의 백화점을 읽고 책을 구입할 독자들을 위해서 시중에서의 구매가능 여부를 밝혀놓는 것은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봅니다.

이 별책부록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어떤 독자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현재의 저는 추리소설을 하나도 모르는 일반 독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리소설에 대한 식견이나 지식이 풍부한 고급독자도 못됩니다. 중간에 위치한 어정쩡한 독자인 셈이지요. 그래서 비밀의 백화점은 복잡하게 읽힙니다. 특히 설문조사를 보면서, 어느정도 완성된 개성을 지니신 분들을 보면 부럽더라구요.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아직 이렇게 읽을 책들이 많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약간 절망스럽기도 하고 이율배반적인 심정이 됩니다. 다음에 이러한 별책부록이 나왔을 때는 더 좋은 모습으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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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0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별책 부록은 어디서 구하나요? 한갸레21을 사야만 하는 건가요? 에고 저도 설문에 응했는데요 ㅠ.ㅠ

상복의랑데뷰 2005-08-0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갸레21을 사면 못구하고 한겨례21을 사야 구할 수 있습니다. ^^; 물만두님 못 받으셨나요? 만약에 못구하시면 제가 하나 더 가지고 있으니 보내드릴께요.

물만두 2005-08-0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오타 ㅠ.ㅠ 제가 구해보죠^^ 못 구하면 연락드릴께요^^

panda78 2005-08-0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내일 가도 살 수 있을까요? 그러면 좋겠다.... 랑데뷰님 글 읽고 나니 정말 궁금해요.

상복의랑데뷰 2005-08-0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간지라 어려울 수도. 만약에 못구하시면 제가 하나 더 가지고 있으니 ^^;

panda78 2005-08-0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럼 못 구하면 죄송하지만 꼭 좀 부탁드릴게요. ^^;;;

상복의랑데뷰 2005-08-0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집에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