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해방 전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방란장 주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6
이태준.박태원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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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이태준, 박태원 등은 복권이 되지 않던 작가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정지용과 같은 납북작가들은 복권이 되었었고, 임화, 이태준 등 자진월북작가-납북이냐 월북이냐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들은 복권이 안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소개가 안되어 있거나, 이XX, 임O등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한편으로 호기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구할 방법도 없었고 대입준비로 그냥 잊혀졌다. 한참 뒤에 이들이 복권되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알라딘의 호의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편견이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월북작가라고 하면, 카프나 최서해의 '홍염' 등을 떠올리게 되는 나로써는 이태준의 엄청난 서정성과 박태원의 냉철한 현실인식에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홍염'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Misdirection이었다. 별세계가 펼쳐진 느낌이었다. 

특히 이태준이 그러하였다. 박태원의 경우 <갑오농민전쟁>이나 <천편 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작품은 내가 존경하는 최인훈 선생도 같은 제목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놀람의 강도가 덜했으나, 이태준은 영 의외였다. 멋진 혁명가를 기대했는데,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로맨티스트를 만났다고 할까.

그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사회는 격변기의 연속이었다. (써놓고 보니 죽은 뒤에도 한국현대사는 격변의 연속이긴 하다.) 그 속에서 시류를 타고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흐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했을 것이다. 권두를 여는 <달밤>부터 이태준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 윗대의 일상을 따스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넉넉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구시대의 인물이건(복덕방), 순박한 시골 사람이건(달밤), 좌절한 지식인이건(패강랭)이건 말이다. 특히 <패강랭>은 백미였다.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연가로 귀결되면서도, 결국에는 시대의 좌절과 아픔을 온전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감탄하고 말았다.

따뜻한 감상주의가 이태준의 최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써는 최대의 약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을테니까. <농군>이나 <해방전후> 두 작품의 이유 모를 어색함도 '따뜻함'이 사라져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자기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해방전후>는 자기변명적인 색채가 더해져서 불편했고...만약. 나도 앞의 네 작품을 읽지 않았다면, 별 의심없이 괜찮다고 생각했음직한데, 앞의 단편을 읽고 나서 보면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어색함이 결국 이태준을 숙청의 길로 몰고간게 아닐까 하는 섬찟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태준이 초기에 보여준 서정성의 강렬함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태준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박태원의 경우에는 이태준과는 반대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맛보았다고 할까. 이태준은 특유의 서정으로 현실의 참혹함마저도 덮는 느낌인데 반해, 박태원의 경우 서정의 밑바닥에도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경우, 세태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구보씨 속의 사고의 흐름은 상당히 의식적이고, 현실에 대한 절망섞인 의분이 공감을 산다고 해야할까. 구보는 겉으로는 좌절한 지식인처럼 보이지만, 그 여백사이사이에는 자신의 시대를 기다리며 절차탁마하는 한신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보면, 지식인의 몽상일수도 있지만, 별다른 서사없이 현실의 풍경을 조합해낸 결과물치고는 날카롭고 예리하다.  

다른 작품인,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방란장 주인>이나 현실참여적인 성격이 강한 <춘보>같은 작품을 보면, 앞서 발한 한신의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이태준의 느낌이 취선의 일필휘지라면, 박태원은 세공사의 공예품 같은 느낌이랄까. 그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기단련으로 인해 월북 후에도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정치적으로도 살아남은 것 같고...

한 작가만으로도 벅찬데, 두 작가를 이야기하려니 힘들다. 그러나 서평단에 선정된 보람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오랫만에 고전의 힘을 느꼈다고나 할까. 창비에서 현대어로 손을 본 탓도 있겠지만,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요즘 작가군에 대해 실망이 크거나 편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신) 권말의 <이메일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 자체의 수준도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가의 책도 사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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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일은 너무 멀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96
해리 케멜먼 지음, 이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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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끈한 책들만 읽다가 고전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 읽은 작품. 워낙 유명한 작품에 작가인지라 리뷰를 쓰는게, 넘치는 잔에 물 붓기가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추리소설의 영원한 논쟁거리 중의 하나인 사건을 '머리'로 해결할 것이나. '몸'으로 해결할 것이냐 중에 극단적으로 전자의 입장을 추구하는 안락의자형 탐정 영문과 교수 닉 웰트가 등장하는 단편집이다. 이시드로 파로디의 선배 격 정도 되는 셈일까? 개인적으로 하드 보일드를 선호하긴 하지만, 이 단편집은 참으로 깔끔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동서의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번역의 문제에도 말이다.

표제작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읽으면, 피카소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고는 이 그림을 그리기 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응수하는 피카소. 서문에 쓰여있는 케멜먼의 이야기에서, 회색 세포를 무려 14년 동안이나 단련시킨 노대가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비록 짧고 어찌보면 논박당하기 쉬운 구조이지만, '9마일이나 되는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빗속이라면 더욱 힘들다'라는 문장에서 살인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고심한 세월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나도 명성만 듣고 이 책을 읽을 때까지 도대체 어떻게 이끌어냈을까라는 호기심이 늘 있었는데, 정말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추리독자라면 누구나 맛보고 싶은 쾌감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비단 이 단편 뿐만이 아니다. 이 단편집은 단편들의 수준이 고른 편이다. 다른 단편들 역시 짧지만, 응축된 대가의 힘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앞 뒤에 수미쌍관 처럼 포진되어 있는 작가 나름의 블랙 유머와 인생의 진리는 디져트처럼 입맛을 다시게 해준다.

그리고 이 단편집이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단편집이 홈즈의 향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홈즈처럼 직접 사건현장을 관찰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을 적당히 바보로 만들면서, 예외적인 요소를 거의 배제하고 진실을 향해 몰아붙이듯이 논증해 나가는 과정은 홈즈의 그것과 비슷하다. 홈즈의 팬인 나로써는 어설픈 패스티시 물보다 좋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다만 닉 웰트는 홈즈처럼 의뢰인이 없다 보니, 사건에 대한 이성적 호기심에 몰두한 나머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했다. 지적 유희에 몰두하다보니 어떤 단편에서는 신적인 모습을 모이기도 하고, 전편에 걸쳐서 냉소와 차가움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랄까...

작품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단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9마일은 너무 멀다>는 추론과정 자체는 감히 최고라고 말하고 싶었만, 내가 고전기 작품을 읽을 때 중요시하는 Fair함에서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만, 등장인물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했다. 그래서 내가 꼽는 이 작품의 숨겨진 걸작은 <말 많은 주전자>이다. 하숙집 안에서 주전자 하나로 모든 것을 풀어버리는 Fair한 게임에 감탄, 또 감탄. 동기나 방법. 공정함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단편이다. 그리고 <지푸라기 사나이>도 못지 않은 좋은 단편인 것 같고. 다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태도를 보인 <10시의 학자>는 결말때문에 불만스러웠다. 이건 특정한 태도에 대한 거부반응 정도로 보면 될 것 같고...

이 단편집을 읽고,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작품이 주는 임펙트는 강렬했다. 역시 고전은 세월이 지나도 좋다. 분량이 짧은 단편들이기 때문에, 새끈한 현대추리소설에 지치신 분들께 감히 일독을 권한다,

추신) 이 단편집의 후속편에 수록된 두 개의 단편도 괜찮다. 웨스트레이크의 단편은 약간 무거운 분위기고, 휴 펜티코스트는 블랙코메디 같은 느낌을 준다. 예전 동아에서 나온 4권의 단편집의 경찰 이야기에서 읽은 책들인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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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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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님이 주셔서 읽게 된 책. 다치나바 다카시는 유명한 저널리스트라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 사람의 도서관이 특이하다는 것 정도? 책을 받은 김에 출간한 책들의 제목을 보니, 자신의 단련을 위해 노력도 많이 하는 만큼 뒷세대에 대한 불만도 많아 보이는 저널리스트로 느껴졌다.

인터뷰집이라 아쉽게도 저자의 개성이 직설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작가 소개에서 보여지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나 독설, 그리고 기행에도 불구하고 다치나바 다카시 본인은 어쩔 수 없이 앞세대일 수 밖에 없구나라는 씁슬한 생각도 들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장인의 냄새를 폴폴 풍긴다는 점, 그리고 세계 최고를 직간접적으로 운운한다는 점에서 앞세대의 향기를 느꼈다면 거짓말일까? 솔직히 불편함을 느끼면서 읽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많아서 좋겠다! 흥~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에는 크게 불만이 없다. 개인의 성공스토리라는 것이 일정 부분 상투적이긴 하지만, 진실의 힘이 있다.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앞에 3자를 달고도 아직 표류중인 나에게는 부끄럽기도 했고...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책의 내용이 과연 청춘'표'류인가? 표류라는건 어디까지나 방황하면서 정처없이 헤매야 하는 것 아닌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회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 자신이 가야할 길을 일찌기 알았고, 이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온 사람들에게 표류라고 명명하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오히려 난, 보통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청춘본류와 다른 청춘'지'류나 대안청춘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커리어 패스-대학에 진학해서 무난한 직장을 구하고,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한 가지 무서운 깨달음을 주었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이 주인공들이 노력만 한게 아니라,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책에 등장한 사람들의 직업에 뛰어든다면, 그들의 몇배 이상의 노력을 한들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이야기하는데 불가능하다. 그들은 해당 분야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올라올 수 있었던 사실을 놓칠 뻔 했다. 결국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재능이 아닐까.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자꾸 멤돈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안타까울지언정 먹고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노력하는 둔재는 먹고사는것도 어려운게 작금의 현실인데, 결국 노력을 안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되어 버린다. 암울한 것은 아무도 그것을 알려주지 못할 뿐더러, 누군가는 그것을 일찌기 깨닫고 지금까지 노력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 내용만 놓고 보자면 높은 평가를 주기 힘들지만, 정신이 번쩍들게 만들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별 하나를 추가했다.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추신) 하이드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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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0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나바 다카시, 너무 잘나서, 불편하죠. 특히 이 책.
제 리뷰도 보시면, 투덜투덜입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9-0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의 멋진 리뷰는 책 보고 읽었는데, 역시 리뷰를 잘 쓰십니다.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하이드님께 품앗이 하겠습니다. ^^; 솔직히 선정자들을 보니, 청춘을 낭비한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다만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부했을 뿐...^^; 그리고 같은 길에서 좌절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라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합니다.

비로그인 2006-09-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쓰윽, 흩어보고서는 앵그리 영 맨, 혹은 하루키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인가 봅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오히려 신선했어요. 모든 것을 노력의 부재 혹은 잘못된 노력 탓으로 돌리는 처사가 얼마나 빈번한가요.

상복의랑데뷰 2006-09-12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이 늦었습니다. ^^; 예전에는 노력만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노력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 탓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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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인지 사고인지 묘한 아내의 죽음. 유일한 목격자는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개...언어학 교수이던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의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 개에게 말을 가르칠 엉뚱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아내의 흔적을 하나씩 보듬어가면서 아내의 진정한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는데...

다른 분들이 쓴 리뷰처럼,  이 책은 소중한 것은 왜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한 남자의 슬픔. 어느 누구도 도와주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아내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리고 그 결과 아내를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며, 그리고 아내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내 자신에게 있어서 배우자의 부재가 가장 크게 느껴지게 되겠지만, 비단 배우자가 아니라 부모형제, 혹은 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우울한 상상을 해본다면, 이 책이 주는 묵직한 감동이 대신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이 작품 이전에도 많은 단편을 기고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감동을 메인 테마로 삼으면서도 적절한 유머나 긴장감을 양념삼아 어둡고 슬픈 어조만으로 쏠리는 것을 피하고 있다. 결과를 알고 읽기에 더 슬픈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과거를 회상하면서 등장하는 두 사람의 연애행각도 밝고 명랑했고...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남편의 회상을 통해 보여지는 아름다운 부인'일테니까...    

그러나 이 책의 충실한 재미와 다른 분들의 감동과는 다르게, 책을 읽으면서 사랑마져도 참 쓸쓸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마져도 이해하기 힘든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비애를 맛보았다고 할까. 실존주의 철학자같은 투긴 하지만...예를 들어 주인공이 부정적으로 묘사한 전부인 역시 어찌보면 엉뚱한 주인공과의 의사소통을 간절히 바란 사랑받지 못한 여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시선을 걷어내고 본다면 말이다. 천사는 아니지만 평균 이상의 고운 마음씨를 가졌기에 부인이 죽고 주인공이 방황할 때, 찾아올 수 있었던게 아닐까? 나 자신도 많은 편견에 둘러싸여 있고, 또한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주인공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어쩌면 내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를 주인공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무인도에 사는 가족처럼, 소설 안에서는  폴과 렉시, 그리고 로렐라이 외에는 가족의 구성원이 보이지 않기에, 따스함 속에서도 구석구석 배어있는 고립감과 씁쓸함이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이런 부분들이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밝게 읽을 수는 없었지만,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더 기분이 좋았을 때, 혹은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 읽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랫만에 평범한 소재로 멋진 실력을 발휘한 책을 읽은 느낌이다. 비범한 소재로 평범한 실력을 발휘한 책보다는 이런 책들이 좋다. 오랜시간 걸쳐 단련된 기성작가의 실력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추신)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들이 다른 곳-NBA, 가요계, 전설-에서 나름 인지도 있는 이름들이라 키치한 재미를 느끼면서 쿡쿡 웃었다.

추신2) 이사카 코타로 같이 기발한 상상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작가가 이 주제로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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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0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 아니 성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9-0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품인데, 반응이 시원찮아 아쉽네요. 물만두님의 좋은 리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죠 ^^;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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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꾸준하게 염두에 두고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류의 책 읽기의 일환으로 읽은 에세이집. 덥고 짜증나는 일들이 많아서 부담없이 읽으려고 잡았다가 정신없이 읽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루끼의 반짝반짝 빛나는 감수성과 필력, 그리고 유머가 절묘하게 배합된 음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에세이집의 내용의 폭이 워낙 넓어서, 하루키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사를 엿볼 수 있기도 했지만, 에세이 전편에 흐르는 하루키의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적어도 이 에세이집에서 보여지는 인간 하루키의 태도에는 꾸준한 자기단련의 느낌이 강하다. <방망이 깎던 노인>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어떤 부분에서는 금욕주의자나 스토아 학파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 자세가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쓰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작을 만들어내는 힘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만 뒤늦게 깨달은 것 같은데, <상실의 시대>나 다른 작품의 스타일이나 소재는 일정 부분 트랜디한 면이나 자극적인 면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트랜드를 만들어 낸 것이겠지만...그러나 그 밑에 흐르는 근원적인 삶의 태도는 지극히 고전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단련하는 자세...장인정신이 듬뿍 배어나는 맛깔나는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하루끼에게 다가간 느낌이었다. 오히려 무라까미 류가 훨씬 자극적이고, 탐미적이고, 변태스럽다는게 계속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점이다. 내 입장에서 하루키는 '내가 본받고 싶은 태도'라면 류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태도'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는 건강, 다음에 재능 운운하는 것을 보면, 겸손하다고 해야할지 가식적이라고 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추리소설 독자의 입장에서 <미스 블랜디시>의 초반부를 설명해 놓은 글이나, 로스 맥도날드를 추모하는 글을 읽고 있으면, 날카로운 통찰역에 감탄을 넘어서 좌절의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짐 모리슨에 대한 독특한 고찰도 그렇고...이 에세이를 쓴 대략의 나이와 현재 나의 나이를 생각하니.......(생략)

세윌이 지나서 어떤 이야기들은 엉뚱한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바래지지 않는 하루끼의 매력을 맛본 좋은 경험이었다.친구가 <양을 쫓는 모험>을 돌려주면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사이 류 아저씨의 책도 한 권 읽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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