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른 몽롱한 아이디어가 부분적으로 오싹한 상상이 되어 짜낸 이야기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아이들은 무엇이든 크게 받아들인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별 것도 아닐 일을 정말 크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런 아이들의 심리와 작가의 상상력이 만난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나무가 된 아이>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말 그대로 나무가 되어버린 아이의 이야기인듯.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9, 10권이 동시 출간되었다.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고 되어 있던데 그럼 김동식 소설집 시리즈는 이것으로 막을 내리고 다른 기획에 들어가는걸까. 사실 나는 3권까지 읽고 이후엔 미처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김동식 작가의 매니아가 된 중딩이들 덕분에 뒷 권들 내용을 다 알아버렸다. -_- ... 이번엔 내가 먼저 읽고 얘네들한테 다 스포일해버릴까. 훗. 



사실 나는 귄터 그라스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일단은 작가가 그래픽 아트를 전공했다는 이야기가 금시초문이었고, 표지의 고양이 그림이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라는 게 그림의 인상을 넘어선 강렬한 충격이었다. 전달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글 말고도 또 있는 작가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늘 생각하는데, 귄터 그라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구나. 

그리고 마지막. 나치 이데올로기를 고발한다, 라는 소개글에 낚임. 지난주에 읽었던 엘리 위젤의 <나이트>가 너무 힘들었어서 당분간 나치 이야기는 외면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방관자도 동조자다, 결국 그 준엄한 말의 위력에 굴복한다. 맞다. 아무리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어도 그래선 안 된다. 결국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위해를 가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니까. 



편견은 정말 무섭다. 대부분의 경우 이 놈이 이성을 압도해 먼저 컨트롤 패널을 잡기 때문이다. 내가 옹졸하고 편협한 소리(행동)를 했구나 깨달았을 때는 이미 물이 엎질러진 뒤였다. 우리는 왜 자꾸 편견을 가질까. 편견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것 같은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편견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왜 그런지를 공부해야, 조금이라도 그런 경향을 덜어낼 수 있겠지. 추천사가 너무 재미있는 게 있어서 가져와봤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정말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인데 간단명료하면서 감추는 게 몹시 많은 것 같은 저 제목이 아주 눈길을 끈다. 요즘의 책 제목들은... 사실 제목 읽는 것만으로도 피로도를 가중시키는 그런 게 좀 많아서... 뭣보다도 저 표지의 일러스트가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절반은 다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정교하고 사실적이면서 좀 몽상적이고 목덜미가 간질간질하다 쭈뼛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섭스크립션 서비스가 워낙 종류가 많아지면서 이젠 트렌디한 느낌은 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닐까 싶다. 아직 구독경제에 관한 책은, 마음만 앞섰지 제대로 읽은 건 하나도 없긴 한데 경제 모델의 흐름도를 파악하고 있으려면 한 권쯤은 꼭 읽어야 하지 않나 싶다. 



김정선 선생님이 내신 맞춤법 책. 이건 뭐... 그냥 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본과 연합한 기술의 침공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러시코프는 인류가 개인주의 대신 연대하여 team human이 되어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은 어디까지 밀고 들어올 것인가. 기술을 통제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더 이상 잠식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방어하는 일만이 남은 것 같은데 그 문제에 대해서 저자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지...



어린 시절에 공간에 대한 아주 미약한 지식이나마 얻어들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공간 감수성을 얼마나 다르게 키우는지를 적나라하게 봤던 관계로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공간을 체험하게 해 주고 관련 지식을 (책으로 밀어넣어줘야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 건네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공간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에 따라 결국 도시의 질이 달라질 테고 궁극적으로는, 아주 거창한 곳까지 영향을 미칠 테니까...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인 듯한데 주인공이 아주 맘에 든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의 청각장애 소년이란다. 당연하지, 사지 멀쩡한 아이들만 모험의 주인공이 되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게 그런 감각에서 '잘' 쓰인 소설인지는 아직 읽어보진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다. 



인간처럼 진화한 개들의 이야기. 인간과 개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이 설정에서, ... 적어도 아이들은 뭔가 '...' 하고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은 느낌. 



문화는 애초에 문명과 같은 의미였다고 한다. 지금은? 지금은 문화는 거의 자본의 노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화에 대해서 테리 이글턴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문화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문화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 



루이 비뱅 말고도 늦은 나이에 그림에의 열정을 불사른 나이 든 화가가 한 분 있다. 모지스 할머니는 이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모지스 할머니 말고도 이렇게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화가로 이름을 떨친 분이 계실 줄은 정말 몰랐다.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자기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거기에서 뭔가를 항상 더 이루어내곤 한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잠깐이라도) 사뭇 강렬해진다. 



이거 우리 중딩1호가 맨날 걱정하는 건데 딱 그 스토리로 소설이 나왔네... ㅎㅎㅎ 

과거의 바이러스가 현대의 우리를 습격하는 바로 그 스토리. 음... 영화화한다는 띠지를 보니 아주 드라마틱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한데 어떠려나.


지난 주도 책 많이 사시고(... ㆀ) 책도 많이 읽으셨기를... 이번주도 열심히 읽는 한 주 되세요 :)

이번주의 목표. 다음주 신간 정리 하기 전에 최소 3개의 포스팅이 사이에 끼어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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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작정하고 리뷰를 써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기대만 배반하는 게 아니라 종종 결심도 배반합니다... 그럴리가 있나요. 그냥 내가 게을러터진거지.


어쨌든! 이것도 기억에서 새하얗게 바래기 전에 어제 막장을 덮었으므로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 씁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놓고 짜여진 이야기입니다. 1860년대 중반, 어느 가족이 섬으로 이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돼요. 

주인공 소녀 페이스의 아버지는 목사이자 자연과학자로, 어떤 중대한 과학적 발견을 했지만 사기로 판명되어 과학계에서 퇴출될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고 페이스는 아버지가 누명을 썼다고 굳게 믿고 있지요. 이 가족 구성원들 중에 유일하게 아버지를 지지하는 단 한 사람이죠.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불안과 의혹은 결국 아버지의 기밀 서류와 연구 자료에 손을 뻗게 만듭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닌 것이, 페이스는 아버지처럼 과학자의 심장과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게 페이스의 불행입니다. 이 시대는 여성의 지적 호기심과 열망을 허락하는 시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비밀에 손을 댄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로 인해 페이스는 오히려 아버지의 비밀 연구에 한걸음 크게 들어섭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페이스는 뭔가 아버지를 돕는다는 보조적인 포지션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느닷없이 아버지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페이스는 과학자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섬사람들은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지만, 페이스만이 아버지는 살해당했다고 굳게 믿고 살인자를 찾고자 노력해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노심초사하며 감춰 온 비밀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던 것은 거짓말 나무라는 정체모를 식물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이 나무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장 메커니즘을 이용해 자신의 궁극적인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지만요. 


이 나무는 거짓말을 먹고 자랍니다. 그냥 거짓말을 속삭여 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반 현실로 만들어야 돼요. 나무에게 들려준 거짓말을 현실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해야만, 사람들 속에 그 거짓말이 현실로 녹아들면 그제야 자양분으로서의 거짓말이 완성되는 거죠. 진짜 대단히 환상적이고 음습한 상상 아닌가요. 


거짓말 나무를 이용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페이스 Faith인 것도 아이러니합니다. 페이스는 진실을 알기 위해 거침없이 거짓을 파종해요. 


거짓말은 불과 같다는 걸 페이스는 알게 됐다. 처음에는 보살피고 연료도 줘야 하지만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살짝 바람을 부쳐주면 이제 막 피어오른 불길이 커지겠지만 너무 세게 부치면 꺼져버릴 것이다. 어떤 거짓말들은 처음부터 기세 좋게 퍼지면서 신나게 타탁거리며 타올라 더 이상 연료를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거짓말은 나름의 생명력과 형태를 가지고 홀로 커져가면서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366쪽


페이스는 자신의 치맛단을 내려다보면서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몇 개의 암시와 침묵만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신의 거짓말이 쑥쑥 자라 그녀 앞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춰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침묵 그 자체는 칼처럼 교묘하고 잔인하게 이용될 수 있다. -396쪽


그래서 페이스는 결국 진실을 쟁취하는가, 그게 그녀가 원하던 바로 그 진실이 맞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답은 yes입니다. 그런데 인간사가 늘 그렇듯, 우리는 항상 구하던 답만 얻어갈 수는 없는가봐요. 페이스도 마찬가지로 알고 싶지 않았던, 가능한 한 몰랐으면 더 좋았을 추악한 진실까지 알게 됩니다. 원했던 진실과 더불어 아픈 진실도 함께 가져가야 하는 거고 평생 지고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어쨌거나 고통스러운 진실 추적의 과정에서 페이스는 자신의 소명도 함께 발견합니다. 시대와 싸워야 하는 지난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먼저 걸어야 할 길이고 빛을 밝혀줘야 할 길이라는 사실도요.


이 소설을 다 읽으면 판타지적 요소가 몹시 강한 이 책이 엄청난 여성 서사처럼 느껴져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구구절절 밝혀 쓸 수는 없는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다만 줄거리와 큰 관계가 없는 것 같아서 하나만 쓰자면 페이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자들의 구애를 은근히 즐기는 듯한 어머니를 힐난하자 어머니가 평소엔 들을 수 없던 교태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요.


"넌 내가 허영심에서 그랬다고 생각해? 난 우리 가족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내 외모밖에 없어! 네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였다고 말해 줄 재클러 박사가 필요했단 말이야. 그리고 클레이 씨가 사진을 수정해서 영국 본토에 떠도는 소문들을 잠재우려고 했고.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는 예쁘고 부유한 과부 역할을 했던 거야. 언젠가는 고마운 마음에 그들과 결혼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려고.

여긴 전쟁터야, 페이스! 남자들만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야. 세상은 우리에게 무기도 주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하지. 하지만 우리는 싸우지 않으면 이대로 죽게 될 거야." -434쪽


이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던 어머니의 마음이 참 아파요. 자립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도 알아서 살아나라고 여자들을 밀어부쳤을 그 시절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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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라는 건 인간의 오래 묵은 내적 욕망 아닐까. 겉으로는 더이상 남들이 알던 내가 아닌 모습으로 뒤바꾸는 일. 내면의 나는 그대로의 나이기도 하고 간혹 그 안쪽까지 내던진 새로운 나이기도 하고. 원제 그대로 shapeshifter가 정확히 그 의미를 반영한다. 왜 우리는 가끔 모습을 바꾸고 싶은 욕구에 흔들리고, 그런 존재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소비하기 좋아할까. 변신하는 존재에 얽힌 욕구의 역사이기도 하겠다.



꽃 잡는 일을 직업으로 할까, 아주아주아주 오래전에 진지하게 고민한 시절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대신에 나는 대학원을 가버렸... orz 요즘은 그냥 근거리에 있는 꽃시장까지 운동삼아 걸어가서 한두단 정도 가져와서 아무렇게나 꽂아두는 걸로 기분전환을 하기도 하는데, 이왕이면 좀 예쁘게 꽂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 



공부만이 살길이다, 이러는 중딩1호와 달리 공부따위 개나줘라, 를 모토로(니네 나한테 왜그래) 삼는 중딩2호는 유튜버 워너비이기도 하다(엄밀히 말해서 이미 채널 하나를 운영하다가 에너지 달린다며 닫아버린 전적이...). 요즘은 영화리뷰 채널을 만들겠다며 죙일 노트북을 끌어안고 있더니만 만날 저작권때문에 머리를 쥐어싸매던데, 아주 딱이겠다 그냥. 



작년 가을엔가 막내가 나한테 와니니 3권을 빨리 사달라며 성화를 부렸었다. 성의없이 검색창만 몇 번 두드려 보고는, 저기 누구야, 와니니는 2권이 끝이야. 네가 뭘 잘못 안 것 같은데. 그랬더니 그럴리가 없다며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3권이 분명히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거다. 아니라고! 나도 같이 버럭하고 그 뒤로 잊어버렸는데, 신간목록에 이것이 뜬 것이다... 두둥. 

되게 멋쩍어갖구, 미안해 얘, 와니니 3권 나왔더라, 알려주니까 옆눈을 한 채로 허리에 손 하더니, 이러는 거다.

내가 뭐랬어. 

잘나셨어요 증말... 



요즘 진짜 수학 책 많이 나온다. 요즘 수포자들은 좋겠어... 라고... 과거의 수포자였던 나는 생각한다. ㅎㅎ 



나는 이런 책 정말 좋아한다. 그냥 간단하게 음식과 인생 이야기 정도로 부르자. 레트로 느낌 가득한 표지도 정말 마음에 들고(표지가 별로면 영 마음이 안 가는 1인), 저자 이력도 범상치 않다. 컬리너리 아마추어였던 저자는 프로페셔널하기 짝이 없는 미국의 요리학교  CIA에 입학하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넷상의 사람들에게 입학 추천서를 써달라는 괴이한 부탁을 하고, 이렇게 모인 추천서가 1500장이었다고. 와우. 과연 그 학교의 입학서류 심사관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꼭 물어보고 싶... 저자가 그걸 물어봤을까? 난 왜 이런 게 궁금하지???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저자가 쓴 자기소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선데이스쿨에서 네 살짜리 한국인 어린이를 가르치기에 충분한 수준의 한국어를 배웠다고. 그러니까 그건 도대체 어떤 레벨입니까 바우어 선생님? 미국인의 기준에서 4세라면 대략 6세라는 이야기인데... 

중딩1호는 그녀의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를 2번 정독했는데, 그녀의 저서에 역사적 오류가 있다며 (우리나라 관련해서였던걸로 기억) 굉장히 광분한 적이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그래서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다 주며 한국말 요 정도 할 줄 아신대, 메일 보내서 물어봐, 제 생각엔 이건 이러한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시냐고 물어봐~ 꼬드겼는데, 수학 때문에 바쁘다고 대차게 거절당했다. ㅠ.ㅠ 세상에 이렇게 지적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무때나 생기는 게 아닌데 왜 안하지? 왜때문에 안하지??? 아무튼. 이건 저 책보다 조금 업그레이드 된 버전인 것 같은데 살까 말까 고민되네. 이왕 세계사를 다시 훑는다면 다른 저자의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수전 와이즈 바우어가 참 재미있게 쓰긴 한다. 



음... 출판사가 걸리죠. 저도 좀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획기적인 기획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사전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고, 언어라는 걸 무조건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1인으로서 사전이라는 귀한 책은 아묻따 그냥 품어주고 싶은 마음이 좀 있네요. 사전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이러니 제가 미우라 시온을 얼마나 좋아할지 아시겠죠. ㅎㅎ)



이 대가가 이 주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면 입 다물고 귀를 쫑긋 열고 들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일테면 찰리 멍거라든가 조지 오웰이라든가 토미 드 파올라라든가 기타 등등. 마거릿 애트우드라고 왜 아니겠어요. 



사람의 경우와 비슷하게 가보지 않았어도, 그곳에 속해보지 않았어도 짝사랑하듯 마음에 새겨두는 도시가 있고 공간이 있다. 물론 현실은 잔인해서 실물의 인간도 그렇듯 실제의 도시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더 많겠지만, 벨 에포크를 배경으로 그렸다는 이 책은 그냥 그저 아름답기만 할 듯. 



십대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앤솔로지라고 소개돼 있다. 다만 그게 실제의 공간뿐만 아니라 가상공간- 그러니까 SNS라든가 게임 같은, 그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삶과 고민이 녹아들어간 이야기는 그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줘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는 어른들에게도 종종 필요하다. 왜? 아이들은 순순히 말을 안 해주니까!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에 뒤통수를 맞아 봤다. 사람한테도 맞아 봤고 사회적인 일들에게도 맞아 봤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공부하고 눈을 키우면 피하든가, 적어도 빗맞을 수는 있더라. 그래서 아주 죽어라고 공부를 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그 어떤 선생님도 죽는 날까지 공부해야 된다는 건 아무도 안 가르쳐 줬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해 줬다. 입시 공부 끝나면 공부 쫑일 것 같지? 아니야. 아주 그냥 관뚜껑 덮는 날까지 공부해야 돼. 근데 좋은 소식은,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는 좀 재미있어. 



패티 스미스 책을 읽을 거다, 읽겠어, 읽을 거거든? 이라고 도대체 얼마나 오래 결심을 다져 왔는지 그 결심이 으스러져 즙까지 쭉쭉 다 빠졌을 것 같은 이 시점에서 또 새 책이 나왔네. 일단 저스트 키즈부터 읽고, 그리고 도장 깨기 들어갑시다! 



Curious George의 노란 모자 아저씨다! 왠지 내겐 아우구스토 레이가 곧 노란 모자 아저씨다. 별도 좋아하는 느긋하고 장난기 많은 아저씨. 우리 사는 곳에선 별은 거의 보이지도 않지만, 혹시라도 코로나가 정리돼서, 여름쯤 친정 시골집에 갈 수 있으면, 별도 구경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작년에 미국에서 중학교 다녔을 때, 중딩1호가 수강했던 과목 중에 포렌식 사이언스가 있었다. 네 그거 맞아요. 범죄 과학 수사. 그런 과목이 다 있답니다. (아마 우리 동네 그 학교 한정이었을지도) 그 클래스는 늘 최고 인기여서 수강신청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맞먹었더랬... 이 책을 보니 그 수업 교과서로 아주 딱이겠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저자가 일본인이네... 포렌식 수업 담당교사도 일본인이었는데... 



사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죽도밥도 아닌 이유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거다. 적당히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다는 거. 뒤집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밑줄 쫙.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장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은 바로 같이 사는 분 -_- 인데, 그냥 그 잡다한 취미 싹 다 정리하면 안 되겠냐고 아주 분기별로 한 번씩 냉철하게 지적을 하시는데, 음... 사는 게 무기력한 것보다는 완벽하게 못 해도 적당히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도 나름 꿈틀대는 지렁이 재주라 생각하고 즐겁게 살겠다는 게 내 인생 포부다. 물론 본분은 다 하려고 노력중 (이것도 밑줄 쫙)이기는 하다. 여하간, 그래서 그 제대로는 못 하는 것 중에 베이킹도 들어가는데, 이거 되게 재밌어 보인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아예 실용서 리뷰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놓을까 싶기도 하네. 이 책은 보고 따라할만 합니다. 이건 화보용입니다. 이렇게. ㅎㅎ 



목차를 살펴보기도 전에 이 책을 이번 주 관심신간에 묶어둔 건 이 강렬한 제목 때문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배타성이 너무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는 느낌이 소름돋게 들었다. 모빌리티 엘리트라는 개념이 몹시 새로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게 더 소름끼쳤다. 다들 열심히 사회를 진단하고 나름의 처방을 내리고 있는데, 현재의 사회병리적 이슈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어디쯤 가 있는지 모르겠다. 



일러스트 보자마자 기절할 뻔. 아니 이건 너무 심장 아프게 귀엽지 않습니까아아아아...



사실 나는 호빗 책을 갖고 있다... 고 말해야 할까? 내가 갖고 있는 건 이십 년은 족히 묵었지 싶은(더 됐나... 기억도 안 나네) 1988년에 창비아동문고로 출판됐던 <호비트의 모험>인데, 보다시피 아동문고로 나온지라 아마도 많이, 많이, 마아아아아니 삭제 편집이 된 버전이 아닐까 싶다. 완역판인데, 갖고 싶지 않을리가!!!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어제보다 좀 더 발전적인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하고 사회도 마찬가지로 진보해야만 한다. 그 진보는 당연히 윤리적으로 타당한 방향이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신경하게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소외시켜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도덕적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 단초로 삼기에 적절한 책이겠다.



오랫동안 절판이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새로 나온 듯. 아이들에게 철학의 세계로 가는 첫걸음을 떼어주고 싶다면 제일 쉽고 좋은 책이 아닐까. 저 단순한 그림 속에 엄청난 심오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나는 저 표지에 보이는 "순진하면 무능해진다"를 "이 세계의 시스템을 믿고 있으면 안 된다"로 받아들였다. 대체로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편이었다. 아마도 레밍의 존재를 배운 시점부터 나는 각자도생을 어느 정도 믿었지 싶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사회에 대한 믿음을 버린 적은 없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는 현상의 뒷면을 생각해야겠다. 어쨌건 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이야기하는 책들에는 대부분 어떤 종류의 인싸이트가 있긴 하더라. 



관계가 삶 자체가 되어간다, 는 건 너무 진리 그 자체인 것 같은데 거기에 뭘 덧붙일 게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쓴 사람이 패트릭 모디아노잖아... 아포리즘은 사절이지만요, 문득 그것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라면 언제든 환영. 



위에서도 한 번 언급했던, 음식과 인생 이야기. FOOD MEMOIR라고 부르기엔 저자의 나이가 아직 어린 듯하여. 

대체로 맛있는 것들이 나오는 책들은 글도 맛있더라. 정말로! 


다 쓰고보니 몇 권 되지도 않는데 시간은 왜 이리 훌렁 날아가버린 것일까... 의문이다. 매번 이래! 시간에 쫓기는 앨리스의 시계토끼가 된 기분으로, 저녁밥 준비하러 부엌으로 달려갈 시간이 되어서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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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 (Paperback) - 느리게100권읽기 4계절과정 (봄) 느리게100권읽기 4계절 봄
피터 H. 레이놀즈 지음 / Walker Books Ltd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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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은 도대체 뭘 그린 거냐며 형에게 비웃음을 당한 뒤부터 그림 그리는 일에서 느꼈던 순수한 기쁨을 상실합니다. 더 이상 그리는 일이 즐겁지 않아요. 고통스럽죠. '제대로' '똑같이 닮게' 그려야 한다는 프레임이 씌워져 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세상에 '실물과 같은' 그림이라는 게 어디 있나요? 그런 사고방식으로 보면 그림은 애초에 다 모조품인 것을요. 

그림책 작가들의 역량은 실로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고 새로운 감동으로 전하는 방식에서 나옵니다. 피터 레이놀즈는 그런 스토리텔링의 대가라고 할 만한 분이죠. 번역서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원문에서 전해져 오는 -ish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겠어요. 


가르쳐주고싶은마음 

감동받았어 

너는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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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1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서체가 정말 예쁘네요!

라영 2021-02-20 09:58   좋아요 0 | URL
작가 본인의 손글씨예요. 그림도 좋은데 글씨체도 되게 정감있죠. :)
 


요즘 마음이 완전히 동동 떠서 갈피를 못 잡고 방랑하는 와중이라 책은 읽어도 눈으로 읽고 마음까지 머리까지 타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이 없다. 슬프다. 시간은 시간대로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다 투입하고 본전도 못 찾는 느낌. 로맨스 소설을 즐겨읽지는 않지만(삐딱한 심성 반영이랄까. 그래 그땐 세상 모든 게 다 긍정적이고 러블리하겠지. 로맨스가 지나가고 나면 남는 건 현타뿐... ㅋㅋㅋ 그렇다고 연애반대주의자는 아니에요 핏 뭐 나도 한때는 그런 시절 있었으니까 -_-;), 가끔 쉬어가는 기분으로 책과 책 사이에 끼워 읽곤 한다. 일종의 리프레쉬먼트. 

한 번에 여러 권을 동시에 번갈아가며 읽는 몹쓸 습관 덕분에 모드 전환을 위해서 가운데에는 꼭 청소년 소설 또는 어린이 문학, 내지는 잡지... 그리고 로맨스 소설을 종종 읽는데 이렇게 피곤한 로맨스 소설 세상 오랜만이었다. 


나쁘지 않아... 나쁘진 않은데 너무 마음이 피곤합니다(감정이입 잘하는 독자주의보). 


왜 남주와 여주가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이루기까지 이토록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소모되어야 하는걸까. 모르겠고요...


제목 그대로 12월의 어느 날 피곤에 찌들대로 찌든 우리의 여주인공은 관광객에게는 런던의 명물이자 일반 시민에게는 피로도 가중의 원인이기도 한 2층 버스에서 어떤 남자를 우연히 발견한다. 잠깐 멈춰 선 정류장에서, 2층에서 남자를 내려다 본 여자와 문득 고개를 든 남자의 시선이 얽히고 둘의 머릿속에선 아마도 만화스러운 번개 아이콘과 함께 계시적인 깨달음이 온다. 여자는 마음 속으로 남자에게 당장 이 버스에 올라타요, 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아뿔싸, 남자가 버스에 올라타서 그녀를 붙잡기 전에 버스는 떠나버리고 그들의 인연은 여기서 이만 쫑. 

하면 소설이 안 되니까


작가는 그로부터 대략 1년 남짓 후 남자를 여자의 절친의 남친으로 만들어 데려온다. 나빴습니다. 잔인하고 세속적인 설정... 재미와 더불어 굉장히 앞으로 이야기의 여정이 힘들어질 것이 너무나 비디오다. 

여주인공의 천진난만하고 구김살없는 절친은 그와 여주인공이 아주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난감한 바람을 시원하게 드러내고 여주인공은 절친에게 너의 남친이 일년 전 나를 미치게 했던 바로 그 버스보이야... 라는 말은 내가 죽어도 못해! 안할거야! 라고 맹세하며 바야흐로 스토리는 난감함의 끝판왕을 만나러 산을 탄다... 


아무튼, 뭐, 로맨스 소설의 결말이 대략 그러하듯 장르가 이미 스포일러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까닭에 어찌 흘러갈지 방향성은 보이지 않습니까. 될놈될, 만날사람만날... 이런 천연덕스러운 멘트가 어울리는 내용이라는 게 민망쩍을 정도로. 대략 모두가 행복해지는 설정이어서 괜찮다. 누군가 지독히 불행해짐으로써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는 관계망은 너무나 피곤해(나이 탓이다...)


사건의 배경이야 크리스마스 직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불과 며칠 전에 지나간 밸런타인 데이와도 꽤 잘 어울린다. 풍파를 몇 번씩이나 겪는 커플의 이야기지만 로맨스라면 환영이예요! 라는 분들께 추천. 그런데 또 사실 역경이 없는 로맨스라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너무 어린애들 얘기 같아서 좀 풋내 나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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