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해변에서

소리치고 있다
바다는 그 겨울의 바람으로 
소리지르고 있었다.
부서진 찾집의 흩어진 음악만큼
바람으로 불리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했다.
아니, 물보라로 날리길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겨울의 바다
오히려 나의 기억 한 장을 지우고 있다
파도처럼 소리지르며 떠나고 있다.

내가 바닷물로 일렁이면
물거품이 생명으로 일어나
나를 가두어두던 나의 창살에서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 바닷가에서 나의 모든 소리는
바위처럼 딱딱하게 얼어 버렸다
옆의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그 겨울의 바람이
나의 모든 것으로부터 떼어놓았다.
소리쳐 달리는 하얀 물살꽃엔
갈매기도 몸을 피하고
바위조차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무너진 그 겨울의 기억을 아파하며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내 속의 시간
오히려 파도가 되어 소리치는데
바다엔 낯선 얼굴만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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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할하천 금호강

삶의 흔적으로 
손금에 흐르는 강물
울음은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르고
할아버지 기침소리로 날리던
홍옥꽃의 연분홍 꽃멍.
우리 그림자만큼의 슬픈 그림이
나를 망설이게 한다.
깊이를 채울 수 없는 뒤척임에
산이 가라앉고
강물에 흐르는 영혼,
소리치며 뿌리던 한줌 영혼이 
지키고 섰는 아양교 아래
밀리는 물결, 어디론가 가버려야 하는.....

쌓여가는 세월의 흔적에
망설임의 몸짓도 지니지 못한 나의
어깨 위에 쌓이는 지층
능금나무 장작은 이미
아궁이의 꽃으로 피어오르고
붉은 새가 소리내어 울고 있는
금호강 기슭에
아직도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내리는데
어느새 내 손금에 흐르는 강물
떨어질 꽃잎도 없이
물결에 얼룩진 바람만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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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습 그 황혼에

1. 새
멀리 울리는 노을 소리
새 가슴에 젖는다
미루나무  마른 가슴을 헤치며
지나가는 바람,
바람 소리를 내며
어디 쓰러져 뒹굴 곳도 없이

낯선 사람과도
다정히 나눌 수 있는 노을
하늘 끝에서 자라고
어느 날의 새울음처럼
바람의 눈빛은 부서져,
부서진 가슴이
날아가는 하늘에 그려지고

얼굴에 흐르는 노을 소리
새 하늘을 날아
낯선 날개를 달고
낯선 소리를 듣는다, 살아 있는 모습.

2. 바다
그 어느 하늘이 밝기에
황혼이 이다지 멀리 오르나?
늙은 대장장이의 숯불 같은 얼굴로
외로움을 연단하는 왕관을 쓰고
문득 하늘을 느끼면 바다, 
그 깊은 하늘 가득 출렁이는
인간의 얕은 가슴속 사랑이 되고
숯불로 타오르는 구름 덩어리
왕관처럼 바다의 머리에 얹혀
빛나는 슬픔의 왕이 되지만
하늘이 될 수 없는 바다,
바다는 바다의 울음이고
바다는 바다의 몸짓이기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어둠을 맞아
또 하나의 목숨을 굴리고, 이 저녁
사랑의 말은 말아도 좋으련만
어둠으로 불어가는 어느 가슴이 타기에
바다를 짚은 하늘의 손이 빠져
외롭지 않은 자를 흔들어놓고
흔들리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바다에 어리는 황혼
내 가슴에 지워지고 있었다, 살아 있는 모습.

3. 꽃
뿌리도 없이 
하늘에 핀 꽃
눈부시게 어린 바람의
손을 잡고
구름의 날개를 반짝인다

햇살 어지러운 눈썹 사이로
홀로 만나는 작은 불꽃
살아 있는 모두가
분수처럼 솟아나
하늘에 꽃가루를 뿌리고
하늘 가득 꽃발이 날리는데
떨어지는 건
어깨에 잠시 머물던 설움
깨닫지 못한 나의 영혼인 듯.

시간이 자라는 정원에서
바람이 웃음 소리로 타오르면
하늘이 떨어져내리고
홀로 만나는 까아만 얼굴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어둠의 가슴이 허전하다, 살아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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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 지붕에 대하여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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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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