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이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던 스무살 여자애였다.
세상은 텅 비어 있었고, 무엇을 해도 심심했고,
아무것도 긍정할 수 없었다.
다만 아주 막연히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아침이면 늘 같은 자리에서 눈을 떳지만,
모든 방은 섬으로 떠가는 뗏목 같아서
나는 밤새 물 위에서처럼 노를 저었다 .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알 속에서 살고 있는 듯 이 세계에 대해
막연하고 어슴푸레하게 하나의 추상으로서 둥둥 떠 있었다.
제 속의 노른 자위를 파먹으며 한마리 새가 되어가는 흰자위처럼,,
글 - 전경린 '검은설탕이녹는동안'
사진 - Michael V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