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꿈의 농원 - Taz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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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멋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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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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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William Bouguereau

한 미술가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미술에 소질을 보이고,
나이를 속여서까지 미술학교에 일찍 입학하여 앵그르에게 배우고,
그 안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연이은 수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뜨리에에서,
밥먹는곳도 아뜨리에, 친구들을 만나는곳도 역시 그 먼지나는 작업실.
하루 16시간, 일주일에 7일을 꼬박 그림만을 그리며 한평생을 보내고,

그리고, 다시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한, 당시 최고의 미술가라 불리며,

그렇게 평생을 바쳐 80년동안 822점(현재 알려진)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낸..
William Bouguereau
그런 작가가 존재했었고,
어둠속에 잊혀졌던 수십년의 시간이 있었다.

 


Dante and Virgil in Hell 1850

Academic Art 라고 한다.
어려서는 교육기관에서, 졸업후에는 아뜨리에에서
도제방식의 수년의 연마를 통해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처음 6개월은 대작들을 카피해서 그리고,
그다음은 조각을 보며 스케치연습,
붓을 잡기까지 최소한 1년,
이렇게 스승과 함께하는 5,6년의 힘든 시기를 거쳐야했고,

기본과 안정적인 구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을 고수하며,
원근법과 해부학적인 관점을 중시여긴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회화에 있어서 누적된 지식과 기술, 훈련으로 인해
표현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에 오를수 있었던..

그중의 최고라고 평가받는 부궤로.



 

Charity


The Virgin and Angels

운명의 장난인것인가?
프랑스혁명 직후에 태어나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서,
다시금 겪게되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
바로 인상파화가들의 등장이다.

그 시작은 스케치를 하라던 스승의 명을 거역하고 아뜨리에를 뛰쳐나온 마네,
작업실에 짱박혀 과거의 명작들을 반복해서 그리는 틀에박힌
시스템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개성을 추구하던 이들,
그리고, 주류에 편입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모임
캔버스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고,
자연의 모습을 담는다.

양자에 대립과 반목이 시작되고,
불안정한구도, (당시에는 주제의식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연의 모습 등등.
심지어 인상파 그림들은 사회적인 조롱거리가 되어
살롱에서조차 전시를 거부하는 사건이 생기고,
그들은 그들만의 전시를 시작한다.

결국, 당시의 주류였던 아카데미즘과의 대립에서의 승리.
하지만, 그 와중에 인상파사조의 직격탄을 맞게된..
William Bouguereau 와 19세기의 화가들
특히 마지막까지 자신의 교육방식을 고집하던
부궤로의 경우 Academism 화가의 대표자로
인식되어 집중적인 비난의 주인공이된다.
(아직까지 프랑스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작품들도 주로 미국쪽에 있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르누아르의 경우 안경을 맞추러 간자리에서 조차, 쓰던걸 내던지며..
'이런, 부궤로 같으니라구..' 했던 일화가 있다.
그만큼 쌓인게 많았다는 뜻이겠지?

더구나 인상파를 이은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완성도 높은 기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성, 감성적인데다 고전적인 방식, 소재.
모더니즘과 대치되는 모든것을 갖고 있는 대표자로서 인식되어..
깨끗이 지워진다.

서양미술사에서.
1940년부터 1980년사이에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름들이 되어.


Young Girl Defending Herself Against Cupid 1880

아름다운가?
큐피드의 화살을 피하려고하는,
그러니까 이제 다가온 사랑을 피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녀.
하지만, 그림의 하단에는 대개 이런 유형의 간단한 문구가 따라붙곤 한다.

'들판에 나가 그린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그린것이며,
뒤의 배경은 작가가 살던 인근 프랑스지역의 산이라고..'

 


Pain of Love

전혀 인간적이지 않고,
기술에만 치중하며,
겉만 번지르하지만, 내용은 없다고 치부되었던 작품.



Biblis

한때 대중과 소수의 평론가들에게 사랑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 형편없는 그림이라 평가되어,
미술관에서조차 퇴출되어 창고에 쌓여있던 그림들.
이제는 몇점이나 그렸으며,
지금은 어디에 보관되어있는지 출처조차 찾기힘든 그림들.

아직도 그가 몇년에 죽었는지(1905년)조차 잘못 기록되어 돌아다니는 현실.


Nymphs and Satyr

Fred Ross 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1977년에 Clark Museum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러갔다,
그 구석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보았다고 하는데.
무척 당혹스러운 기억이었다고 말을 한다.
알고있는 모든 작가를 생각해보았으나,
도무지 누구일까.. 떠오르지가 않았던,
콜럼비아대학에서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자신조차
한번도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그림.


 


Birth of Venus


의문을 품는다.
생전에 엄청난 경력을 가진 화가가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묻혀질 수 있는지,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해 말이지.
아는 사람도, 자료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연구가 시작된다.


 


The Nymphaeum


그리고, 동시대를 연구하고, 내버려진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이 일이 '부궤로'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지.

 


The Youth of Bacchus

Jules Joseph Tissot, Alexander Cabanel, Jules Lefebvre
Ernst Louis Meissonnier, Jean George Vibert ,
Leon Bonnat and Leon L'hermitte from France
John William Waterhouse, Dante Gabriel Rossetti
Sir John Everett Millais, Edward Coley Burne Jones
Sir Lawrence Alma-Tadema, Frederic Lord Leighton, and Frank Dicksee 등등.

인상파와 그 뒤를 이은 현대미술,
그리고 대량생산을 선호하는 딜러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희생된 사람들.

(여기서 전 현대미술의 신화만들기에 의해 탄생된 신데렐라 잭슨폴록이 생각납니다

 -신갈나무)

 


First Kiss


 


 

Fred Ross. '부궤로'에 대한 말도 안되는 편견과 인신공격, 악의적 왜곡이
수십년간 지배했음을 말한다.

한시대의 그림에 대해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집단적으로 매도한 것이라고.
그의 작품은 단순히 '예쁘장' 한게 아니라,
미술사에서도 정점에 남을만한 명작인거라고

 


 (프라고나르의 그림도, 그 그림이 가진 귀족생활의 춘화적 요소 때문에 오래 배척되다가 나중에 발굴되죠.. 프랑스 화단의 인상주의는 아직까지도 현대미술을 근간으로 이끄는 거대 사조이기 때문에,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답습의 미술가는 의도적으로 배척된 것이 아닐까..싶군요

 - 신갈나무)


 

예술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원래 그렇게 늘 바뀌는 건가?
의문이 들게한다.

렘브란트.. 그의 작품들은 사후 100년 동안 사장되었다고 한다.
Night Watch라는 작품의 경우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아
그림의 하단을 벽면에 맞는 크기로 잘라내는 조건으로
내걸렸던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림을 잘라내어 벽에 맞추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다.

 


Little Shepherdess 1891


미의 기준이 변하는건 자연스럽게 하지만,
가장 순수해야할 미술이라것도
알고보면 무척 허약한게 아닌가,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지배하는 어떠한
거품같은게 잔뜩 있는건 아닌가,
그안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나약한건 아닌가.
그런 의구심과 함께.

어느정도의 기준이 변하는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게 아닐까?
그 정도를 넘어서까지 그 가치라는게 변할 수 있다는건
뭔가..
뭔가, 잘못된건 아닌가하네.

 


The Little Marauder 1900



Two Girls (Childhood Idyll) 1900


Young Sheep

 


The Abduction of Psyche

 


Crown

 


Child at Bath, 1886, oil on canvas, Henry Art Gallery, University of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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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Don Hong Oai의 수묵화 같은 사진의 세계

프로필 *

Don Hong Oai는1929년 중국 광동에서 태어나 7세 때 사이공에 있는 사진사에서 견습생으로 지내면서 사진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대만 예술대학을 다닌 후 21세 때 베트남대학에서 예술사진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1979년 보트 피플로 미국에 망명했습니다.

이후 개인전들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상경력 *

Chinatown Photographic Society

International Federation of Photographic Art,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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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식물,... 빛으로 보다 - 박상남 사진


식물, 빛으로 보다 28  흑백인화 2002

 


식물, 빛으로 보다 09 흑백인화 2002


 

식물, 빛으로 보다 19 흑백인화 2002

 


식물, 빛으로 보다 05 흑백인화 2002

 


식물, 빛으로 보다 27 흑백인화 2002


식물, 빛으로 보다 24 흑백인화 2002


식물, 빛으로 보다 20 흑백인화_2002


식물, 빛으로 보다 15 흑백인화 2002

 

 

 

식물, 빛으로 보다 04_흑백인화_2002

 

● 우리는 사진 안에 빛이 두개의 축으로 존재함을 본다. 하나는 촬영하는 당시 사물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는 매개로서의 역할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필름과 인화지가 머금은 빛을 다시 사물되이 만드는 현상액이 빛으로 역할을 한다. (사진가에게 있어서! 현상액이란 액체로 된 빛이다.) 공간에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는 마치 필름이 그저 빛을 머금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공간 안에 빛이 개입하여 그 사물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는 한 인간은 그 사물을 볼 수 없다. 마치 잠재된 상이 아무리 필름에 잔뜩 각인되어 있어도 그것이 현상되지 않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이러한 빛의 역할은 사진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한다. 특히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박상남의 사진들은 이러한 빛이 가지는 사진과의 역학관계가 매우 적실하게 이용되고 있음을 본다.

● 사진 「식물, 빛으로 보다 01~06」까지를 잘 살펴보면, 이러한 빛과 대상이 혼합되어진 상황을 잘 읽을 수 있다. 사물에 번지는 빛이 상호 교호되어 산란하고, 그 힘은 다시 사물이 가지는 형태감을 다소 감축시키면서 사물은 단지 식물이라는 정보값으로부터 새롭게 사물화 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 안의 사물들은 빛이 만든 궤적을 가지게 되고, 그로인해 사물 본래의 모습이 흩어지는 현상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사진 속의 사물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 보인다. 바람일 수도 있고, 시간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언뜻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마치 물먹은 산수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여전히 빛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리얼리즘을 간직한 채 말이다. ■ 정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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