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의 바람으로 농협에 취직 서른네 살, 아홉 살과 일곱 살 남매를 둔 멋쟁이 엄마이자 서울 한복판에 두 개의 네일 숍을 운영하는 김진영 씨는 여라자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러나 5년 전만 해도 그녀는 농협중앙회에서 일하던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예체능은 절대 안 된다며 반대하시던 부모님 뜻에 따라 영문과에 진학했죠. 졸업 후에는 항공사 취직을 소망했지만 역시나 부모님 뜻대로 안정된 직장인 은행을 선택했고요.” 젊은 날의 그녀는 보통의 딸들처럼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용기가 없었다. 대학 졸업 직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그녀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한 살 연상의 상사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바로 두 살 터울의 남매를 낳았다. 하루하루 쳇바퀴를 도는 듯한 회사 생활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해가 가면 갈수록 마음속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남편에게 진지하게 의논했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적다. 직업에 적성을 맞추라”는 직장 상사다운 조언이 돌아왔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평생 직장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미래 없는 우물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위기를 절호의 찬스로 바꾼 용기 “IMF 이후 농협이 축협과 합병하면서 명퇴 바람이 심하게 불었어요. 저희는 부부가 같은 직장에 다니다 보니, 은근히 부담이 됐죠. 모두들 명퇴 때문에 두려워했지만 저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20대에는 결혼과 출산 때문에 정신없었던 데다 ‘그저 편한 게 좋은 거다’라며 살았지만 30대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맘을 굳혔죠.” 그래서 퇴근 후 메이크업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고 주말에는 웨딩 숍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감을 익혔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시댁에서 맡아 키워주셔서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덜 수 있었다. 6개월 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자 29세의 나이로 6년을 다닌 회사에 명퇴를 신청하고(당시에 자진 명퇴는 혜택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메이크업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동료들에 비해 너무 나이가 많았고, 방송이나 패션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당시 국내에 막 도입되었던 네일 아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는 것을 깨닫고, 지인의 도움으로 네일 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을 배웠다. 그리고 2003년, 마침내 그녀는 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저 혼자 미국 유학을 감행했어요. 미국은 실용주의 네일 아트의 본고장이거든요. 그곳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거죠. 나이 차가 많은 남편과 열린 사고를 가진 시어머니께서는 저를 오히려 격려해주셨죠.” 이미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터라 학생들보다 더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 그리고 1년 후 달랑 비행기표만 들고 떠났던 유학에서 뉴욕주의 네일 아트 자격증과 일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를 갖는 것이 꿈 미국에서 돌아와 그녀는 강남구 논현동에 1호점 ‘네일 포 네일’을 오픈했다. 그리고 1년 후인 지난해 12월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에 2호점 ‘보보 뷰티 숍’을 오픈했다. 1호점은 주부들에게, 2호점은 인근의 직장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많은 단골 손님을 확보하고 있다. 두 개의 숍을 통해 얻는 수입은 꿈의 억대 연봉 수준. 잘나가던 은행원 수입의 2~3배는 훨씬 넘어서고 있다. 단지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것 외에도 그녀는 네일 아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남의 손과 발을 만지는 직업이다 보니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저는 이 일이 너무 좋아요. 다른 사람을 예쁘게 변화시키는 것이 좋고 저 자신을 가꾸며 할 수 있는 일이라 더 재미있어요. 흔히 네일 아트의 성공 비결은 뛰어난 기술이라 말하지만, 저는 서비스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업 철학까지 확고하게 세운 그녀의 수첩 안에는 3호점 오픈과 학교 강의에 대한 계획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을 단 네일 숍을 전국 곳곳에 내겠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환상을 버리세요. 요즘은 어떤 직장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년은 짧아지고 있으니까요. 제2의 직업만큼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죠. 그러기 위해선 생각만으로 멈추지 말고 실천에 옮기는 용기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자료출처1:레몬트리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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