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에 대해 처절한 욕구를 갖고 있다. 그런 밤이면 나는 별을 그리러 밖으로 나간다.'라고 반 고호는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

"반 고호가 'Nuit etoilee'에서 표현하는 것은 묵시록적인 회화이다. 이 그림은 무한한 공간의 신비와 우주의 가공스런 격동이 드러난다. 밤의 침묵속에 하늘은 괴물스런 생명으로 활기를 띄면서 잠든 대지위로 거대한 촉수를 펼친다. 성좌들에게 소용돌이치는 리듬을 각인시키면서. 이 환각을 일으키는 작품속에는 그러나 어떤 무질서도 없다. 반 고호는 아주 확실하게 구성의 균형을 잡으면서 그의 세계관의 주인이 되어 있다." - 마르뜨 로베르

생 레미에 옮겨온 고흐의 화면은 아를 시대에 비하여 한층 침참된 색채를 쓰고, 필치는 보다 다이나믹하게 되고 동적인 곡선의 자유로운 발전에 의한 일종의 묵시록적인 환상를 만들고 있다. 고흐가 몽상적이거나 환상적이란 것은 아를 시대까지의 작품에서는 그 표면적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항상 현실에 밀착한 듯 했다. 그러나, 생 레미에서의 그의 작업은 본질적인 서정을 보인다. 그는 자연이나 물체와 마음으로 통하는 일종의 주술사이기도 하며, 그 기술적인 제어력의 완성과 마음의성취가 마침내 생 레미 시대에 있어 몽상가로서의 고흐를 낳게 한다. 별들이 소용돌이를 이루고, 모든 것이 구심적인 운동과 통일된 움직임을 나타내는 장대한 밤의 시는 자연과 사물의 내면에 와 닿는 것에 의한 서정성과 신비성을 나타내고 있다.

고흐의 그림은 후기로 갈수록 독특한 흔들림의 붓터치가 잘 보인다. 이른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세계를 만들어 간 것이다. 이 그림에서 그 신들린 붓터치의 절정을 이루는데, 이 그림은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고흐가 그 삶의 마지막 1년, 정신병과 싸우며 그린 작품이다.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고갱과 다투다가 자기 귀를 자른 고흐는 아를의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간혹 발작을 일으켜 "나는 자신에게 과(課)해진 미치광이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한다"며 1889년 5월 아를에서 가까운 상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고흐는 그해의 7월과 12월에도 발작을 되풀이하였으며, 이 그림은 그 발작 사이에 그린 상 레미 시대의 작품이다.

고흐가 비저널이었다는 사실은 아를 시대까지의 작품에는 거의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항상 현실의 사물에 밀착하는 화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변화시키지 않겠다"고 한 고흐도 본질적으로는 서정가(抒情家)이고, 뛰어난 비저널로서의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를 시대까지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연이나 물체와 마음을 상통하는 일종의 주술사였으며, 그의 기술적인 제어력의 완성과 마음의 성숙함이 이윽고 상 레미 시대에 있어 비저널로서의 고흐를 탄생하게 하는 것이다.

철창이 쳐진 정신병원의 창 너머로는 상 레미의 시가와 별이 깔린 하늘이 보인다. 별 하나하나는 심장의 동계(動悸)처럼 빛을 변화시키고 끝 모를 창궁(蒼穹)의 푸름은 그 중핵(中核)을 탐구하는 것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다. 별들도 소용돌이치고 모두가 구심적인 운동과 통일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는 이 장대(壯大)한 밤의 시(詩)는 자연과 사물의 내면에 접촉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정성·신비성을 보여 주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는 신비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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