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농민의 생활상을 그린 미술사조

밀레의 이삭줍기는 만종과 더불어 밀레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이다.

작품감상 : 이 작품은 여름철의 노동과 노동에 의한 피로를 표현하고 있다.
세 여인의 일련의 정지된 듯한 동작을 모노톤 배경과 더불어
시간을 초월한듯 마치 성서의 한장면인것 같은 인상을 준다.
조화롭고 안정된 구도와 갈색톤의 자연적인 색채속에서
부드러운 빨강, 파랑, 노랑의 대비는 고전적인 성화를 연상시킨다.

해가 넘어간다.
또 한해의 가을 햇살도 엷은 미소를 남기고 황혼의 낙조 속으로 묻히고 있다. 해 넘어 가는 가을 들녘에 옹기종기 쌍아 올린 추수 볏단이 아련한 향수와 더불어 달려온 한해 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밀레의 '만종'(晩鐘)과 '이삭줍는 여인들'(The Gleaners)의 그림이 한마디 메시지로 아직도 식지 않는 여름 열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밀레의 그림은 당시 나폴레옹의 천하 통일이 끝나고 저 유명한 불란서 혁명의 혼란의 격랑이 지난 나폴레옹 3세 끝없는 영토 확장에 세계를 침략하 고 있던 때다. 밀레는 돌아가는 세상판에 휘몰리지 않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황혼의 저녁 들판에 종탑에서 들려오는 기도의 시간에 맞추어 부부가 겸손히 두손을 모으고 조 물주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림이다. 혼란의 와중에 평화로운 질서를 오히려 잃지 않는 모습이다. '이삭줍는 세 여인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땅에 떨어진 곡식을, 추수를 끝내고 눈이 덮이기 전 그래도 남아 있을 이삭을 줍는다. 풍요 속에 검약을 절제하는 모습이다.
광할한 미국대륙에 어쩌면 내 동댕이치듯 아니면 쫒겨온 듯,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땅 에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한국인이 너무 열심히 살고 있어 우리는 때로는 '동양의 유대인'이라는 이상한 별명도 얻고 산다. 이민의 성취의 꿈을 '아메리칸 드림'으 로 이룬 사람도 있고, 아직도 팔을 걷어 부치고 발 붇힐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만종의 기도와 이삭줍는 계절에 우리는 한번쯤 우리들 자신으로 돌아와 나 자신의 모습과 정상적인 일상의 건강을 다시 점검해 보는 시간이면 좋겠다.
꿈의 성취 이전에 먼저 우 리들 하나 하나, 자신의 소중함을 확인해 보는 계절이면 좋겠다. 단풍이 드는 것도 자기 보존을 위한 수분 조절에서 오는 것이고 겨울 잔디는 뿌리를 강하게 하기 위해 더 이상 잎을 내지 않 는다. 나무마다 다시 필 잎과 꽃망울에 스스로 각질로 싸매고 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자신을 한번 돌아보아야 할 때다.
자신을 아끼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용납하는 여유를 찾을 시간이 아쉽다. 천하에 하나밖 에 없는 나, 천하를 얻고도 자신을 잃든지 빼앗겨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 아도 이기주의 세태에 자신만을 위하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 참으로 보는 사람, 자신의 소중함을 참으로 아는 사람, 자신을 참으로 아낄 줄 아는 사람은 이기적일 수가 없다. 너무 성취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만종(晩鐘)의 기도로 우리들 삶의 이삭을 줍자.
톨스토이의 우화 중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영주가 자신의 노예에게 상을 주기 위해 두 사람을 불러 말했다. "내일 아침해가 뜰 때부 터 해가 질 때까지 자신이 밟고 가는 땅은 모두 그대들에게 줄 것이다." 그래서 두 노예는 다음 날 해 뜨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땅을 밟고 뛰기 시작했다. 한 노예는 한나절을 뛰니 숨이 차서 자신의 평생 해 먹어도 남을 정도의 땅만 밟고 멈췄다. 그러나 다른 노예 한 사람은 한치라도 더 밟고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몇 번이나 기절하고 죽을 힘을 다해 해가 땅에 떨어 질 때까지 뛰었다. 그리고 달렸다. 그의 체력의 한계를 이미 벗어난 탈진 한 상태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해가 지고 영주가 나타나 그들이 밟은 땅을 약속대로 주려고 했다. 자기 나름대로 자기 몫을 밟은 노예에게 그가 밟은 땅을 주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뛰고 또 달 린 노예에게 그 광활하게 밟은 땅을 주려고 했다. 욕심껒 달린 쓰러진 그 노예를 깨웠다. 그러 나 그는 그 자리에서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죽어 있었다. 그 영주는 혀를 차며, "허허 자신이 묻힐 다섯치 땅이면 될 것을 너무 무리를 했구먼..."
너무 자신을 잊고 제정신을 잊고 제 궤도를 벗어나 무작정 달리고만 있는 우리들의 삶은 아닐 것인가?
며칠전 우리 가까운 뉴져지 섬머빌에 사는 72세의 엘러너 보이여 할머니는 우연히 사둔 복권이 당첨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피붙이 하나 없이 아직도 68년형 고물차를 몰고 다니는 가난한 생 활이었다. 그의 복권 당첨 액은 1천1백80만 달러 였다. 그 할머니는 금액 전액을 성당, 마을 소 방서, 인명구조대 등 자원 봉사 단체에 몽땅 기부해 버렸다. 10여년전 노모의 병간호를 위해 조 기 은퇴한 후 어머니와 동네 노인들, 병약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 평소 이런 헌신과 희생 적인 생활이 몸에 베어 있는 삶이었다. 당첨 소식을 듣는 지난 10일, 고장난 차를 수리점에 맡 기고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타고 기금위탁을 위해 성당으로 달려갔다. 새차 한 대라도 마련하라 는 주위의 권고도 마다하고, "내 인생은 달라 진 것이 하나도 없다." 는 말 한마디 였다.
이 시대의 천사 같은 할머니다.
평소의 삶이 그랬듯이 "내 인생이 거액의 횡재 돈 때문에 달라질 것이 없다."는 그런 삶이 우리 들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복권 당첨의 행운의 날과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달라질 것이 없는 삶의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날마다 건실하게 이어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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