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터 잭슨
주연 : 나오미 왓츠, 애드리안 브로디, 잭 블랙
개봉 : 2005년 12월 14일
관람 : 2005년 12월 16일
등급 : 15세 이상

다시한번 이야기하지만 제 인생에서 최고의 영화는 바로 [반지의 제왕]입니다.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를 봤던 2001년 12월 31일을 시작으로 [반지의 제왕]은 기다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슴설레이고 행복한 것인지 가르쳐준 소중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겨울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끝으로 [반지의 제왕]은 끝이 났습니다. 1년 간격으로 기다림의 소중함을 체험했던 저는 더이상 그러한 놀라운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겨울,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는 [킹콩]을 완성해서 관객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킹콩]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기대하기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반지의 제왕]이 제겐 너무나도 완벽한 영화였기에 [킹콩]은 [반지의 제왕]의 벽을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이란걸 저는 알았던 겁니다.
게다가 저는 피터 잭슨을 감독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33년작 [킹콩]을 보지 못했을뿐더러, 그 유명한 제시카 랭의 76년작 [킹콩]또한 TV로 잠깐동안만 봤던 것이 전부입니다. 다시말해 전 [킹콩]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백지 상태에서 피터 잭슨이 [킹콩]을 만든다고 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고질라]였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크기에 집착하다가 스스로 자멸해버렸던 [고질라]를 회상하며,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여되었다는 피터 잭슨의 [킹콩]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킹콩]은 제겐 기대할 수도, 그렇다고 기대하지 않을 수도 없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킹콩]이 [반지의 제왕]의 벽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있다고 하더라도 [킹콩]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반지의 제왕]의 개봉을 기다리는 그 설레임과는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킹콩]이 개봉하자마자 시간내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과연 피터 잭슨'이라는 겁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저는 이전의 [킹콩]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분들처럼 이전 [킹콩]과 피터 잭슨의 [킹콩]을 비교 분석하는 친절함을 발휘할수는 없습니다. 단지 이전 [킹콩]을 보지 못함으로써 백지상태로써 피터 잭슨의 [킹콩]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백지상태로 바라본 피터 잭슨의 [킹콩]은 거의 완벽한 오락 영화라는 점입니다.
일단 영화의 초반부분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을 보는 듯 했습니다. 고전적인 시대 배경과 배위에서 피어나는 낭만적인 사랑...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인 킹콩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혀 지루함을 드러내지 않으며 순탄하게 항해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중반이 되자 [타이타닉]은 순식간에 [쥬라기 공원], [반지의 제왕], [인디아나 존스]로 변합니다. 정신없이 해골섬에서의 모험을 즐기다보면 다음 만찬으로 [쥬라기 공원 2], [고질라]가 준비됩니다. 이렇게 여러 오락 영화의 소재가 혼합된 종합 선물 세트를 감상하다가보면 마지막엔 [미녀와 야수]식의 예상하지 못한 러브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피터 잭슨은 아주 맘먹고 재미있는 오락 영화를 만들기로 작심을 한듯이 보입니다. 그가 비록 전 세계적인 흥행을 불러일으킨 [반지의 제왕]의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매니아적인 B급 호러 영화에서 재능을 보였음을 상기한다면 [킹콩]에서의 피터 잭슨의 능력은 그저 놀랍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3시간이라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입니다. 분명 어떤 분들은 이미 [반지의 제왕]의 그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경함한터라 [킹콩]의 러닝타임이 뭐 대수냐고 하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과 [킹콩]은 분명 다릅니다.
[반지의 제왕]은 방대한 분량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했습니다. 그렇기에 원작을 제대로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러닝타임이 필요했으며 그것이 평균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반영이 되었던 겁니다. 하지만 [킹콩]은 다릅니다.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33년작의 경우 러닝타임은 1시간 40여분에 불과했으며, 76년작 역시 2시간이 약간 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피터 잭슨은 그러한 [킹콩]을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으로 늘려놓습니다.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는 선택이었죠.
러닝타임이 길다는 것은 흥행에서 많은 제약을 동반합니다. 극장 상영 횟수가 그만큼 줄어듬으로써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의 경우 제작비를 회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아카데미용 영화가 아닌 순수 오락 영화로써 관객의 집중력을 3시간동안이나 잡아내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피터 잭슨은 그러한 모험을 감행했으며 3시간동안이나 영화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재능을 발휘한 겁니다.
해골섬에 가기전, 해골섬에 도착후, 킹콩을 뉴욕으로 생포한후로 나누며 마치 3편의 영화를 동시에 보는 듯한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해골섬에 가기전의 그 고전적인 로맨스와 해골섬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모험, 그리고 뉴욕에서의 스펙타클과 함께 가슴 저린 미녀와 야수의 로맨스까지... 피터 잭슨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으며 관객에게 말합니다. '어때 재밌지?'



  
분명 [반지의 제왕]과 [킹콩]을 비교한다면 저는 여전히 [반지의 제왕]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과연 제가 죽기전에 [반지의 제왕]을 넘어서는 영화가 등장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킹콩]은 [반지의 제왕]과는 별도로 제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반지의 제왕]덕분에 커져버린 기대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에이 전작보다 못하잖아'라는 푸념을 하기 일쑤였을텐데, [킹콩]은 그러한 푸념보다는 '우와 재미있는걸'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반지의 제왕]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그 영화를 넘어설 영화가 없을 것이라며 일찌감치 기대감을 꺾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킹콩]이 [반지의 제왕]과는 차별적인 재미를 제게 안겨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짧다막한 키에서 품어져나오는 잭 블랙의 알 수 없는 자신감(그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나약한듯 보이지만 헐리우드의 그 어떤 액션 히어로보다도 강인했던 에드리안 브로디의 터프함([피아니스트]와는 대조적인...), 현대적인 미인인줄만 알았던 나오미 왓츠의 예상하지 못했던 고전적인 아름다움(그녀에게 그런 면이 있을줄이야)까지...
피터 잭슨 감독은 [반지의 제왕]에서도 그랬던것처럼 배우들의 매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스펙타클한 특수효과를 적절히 사용하면서도 스토리의 전개의 힘을 절대로 잃지않는 여유로움을 보이며, 3시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을 관객에게 선사했습니다. 그것이 같은 괴수 영화라도 [고질라]와 [킹콩]의 차이이며, 3시간이라는 이 경이로운 오락 영화를 만든 피터 잭슨을 러닝타임의 제왕이라 부르고 싶은 이유입니다.
다음 영화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러닝타임의 제왕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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