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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의 혼자놀기
권윤주 글, 그림 / 열린책들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매일매일 스노우캣의 일기를 본다. 거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빈둥거리는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젼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불 끄는 것조차 싫어서 엄마를 부르는 아주 한심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이따금 찾아오는 친구가 반갑지 않고,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기는 것도 싫고, 여러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는 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귀차니즘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철학을 가진 그 고양이 한 마리는 내 삶의 반대편에 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세상에서 나 혼자 소외된 것만 같아서 불쑥불쑥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런 내게 그 고양이는 아주 거만해보이고, 아주 한심해보인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항상 일을 만들고, 옆에 사람을 두려고 한다는 사실을 나는 몸으로 체험하여 알고 있다. 내가 일복을 타고 났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일을 만들어하는 것은, 특별히 일을 잘 하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일이 아니고서는 나라는 존재를 증명할 만한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일때문에 내 자신을 혹사시키고, 나라는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고민들을 책상 위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거만한 고양이는 도통 세상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고, 아무 일도 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 틈에 있으려고 하지도 않지만, 간혹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그들의 존재 영역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의 소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그래서 그 고양이는 불쌍하다기보다는 건방지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 건방짐은 정말로 신선하다. 굳이 빠름과 느림을 비교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고 있지 못해서,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못해서 안달이 사람들이 잊고 있는 그 무언가를 고양이는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가면서 그가 개발하고 있는 혼자 놀기의 방법들은 어쩌면 내가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 발찍한 고양이가 추구하는 귀차니즘 속에서 (김규항이 말했듯이) 새로운 좌파적 신념이 있고, 나름대로 치열한 세상에 대한 인식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내밀한 노력이 있다.
그저, 무언가를 하기가 귀찮아질 때,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앉아서 스노우캣과 함께 혼자 노는 방법들을 배워본다면 분명히 보다 많은 시간들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 그 발찍한 고양이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