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나이였을 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
최인호.오정희 엮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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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시에 막 입성한 나는 날을 세운 자동차들의 속도에 질려있었다. 청계천 8가 삼일 아파트 복도에 서서, 청계 고가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나를 말을 잃어갔다. 전라도에서 막 상경한 내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아파트에 살던 남루한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동차 불빛도 무서웠고, 아이들의 손가락질도 무서웠다. 밤마다 꿈 속에서 자동차들은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와 함께 고가도로에서 떨어졌다.

그때, 내 유일한 안식처는 청계천 도로가에 늘어선 헌책방이었다. 엄마가 선금을 내놓은 그곳에 가면, 언제든지 읽고 싶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칼라로 고운 그림이 그려져있던 세계명작동화 전집은 몇 질이나 맘껏 읽은 수 있었고, 그것들이 시들해지만 나는 세로로 편집된 소설들을 읽곤 했다. 소설 속의 장면들은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고, 거기서 하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낡은 헌책 속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좋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에 위안을 느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은 그 때의 나를 생각하게 한다. 직접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소설로 삶의 위안을 삼으면서 소설로 자존심을 세우던 내 감수성이 작가들의 그것에 비해 낮은 수준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 작품들 속에서 나를 읽는다. 치기 어린 관념과 고달픈 감수성, 그리고 삶에 대해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있는 그들의 자존심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내용들이다.

그들에 비해서, 아직은 너무나 어린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는 부끄럽다. 그리고 언제가 더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그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고 고백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가가 되어버린 작가들이 청소년 시절에 쓴 작품들은 물론 지금 보기에는 아주 낡고 관념적이고 치기어린 내용들이지만, 그 치기 속에서 나는 그들이 품고 있던 열정을 느낀다. 그 열정은 지금 그 작가들이 쓰고 있는 소설보다 크고, 뜨겁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학과 삶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물론이지만, 이미 단편집을 몇 권씩 가지고 있는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삶은 의문투성이인 모양이다. 그들이 청소년 시절에 쓴 작품들 속에서 던져진 질문들이 아직도 질문인 채로 남아있는 것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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