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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백민석을 본 적이 있다. 어두컴컴한 술집이었고, 그는 후배 한 명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마침 가방 속에 <목화밭 엽기전>이 있었다. 나는 용감하게 그 책을 들고 백민석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책의 속지에 싸인을 받았다. 생각했던 대로, 그리 좋은 글씨체는 아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이미 다 읽은 책을 한 달 정도 더 가방에 넣고 다녔다.
<목화밭 엽기전>이후로도 나는 몇몇 계간지에서 백민석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소설을 읽은 때마다 나는 소설에 나오는 인물에 작가 백민석의 얼굴을 겹쳐서 상상을 하곤 한다. 소설에 자전적인 요소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에는 백민석의 소설은 낯선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끊임없이 백민석이라는 우연히 한 번, 한 일 분 정도 얼굴을 보았던 작가의 모습만이 보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즐겨 들었다던 헤비메탈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그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는 내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와 정반대에 존재한다. 그래서 백민석의 소설에 나오는 장원이나, 저택은 아무리 상상을 하려고 해도 머리 속에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는 내내 나는 수첩에 장원의 건물들을 그려보려고 노력했고, 몇 인물들의 구체적인 시간들을 따라가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 허사다. 나에게 백민석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여전히 낯설고 기이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는 매력적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집중력 있는 독서를 방해하면서도, 그 책을 가방에서 꺼내 놓는 것을 어렵게 한다. 나는 끊임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낙서를 해가면서, 그리고 이따금 그의 소설에서 빠져나온 작은 샛길을 따라 산책을 해 나가면 책을 읽는다. 이따금 작가 백민석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 번 얼굴을 보았다고 나는 안심이 되어서 그 얼굴을 따라간다.
이 책에 나온 몇몇 작품들은 이미 읽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여러 갈래로 계속 뻗어가는 샛길을 가진 골목을 헤매다 온 것같은 기분이다. 이 낯설고 기인한 감정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나는 아마도 당분한 백민석의 작품을 읽게 될 것 같다. 끊임 없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하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새 세계를 어슬렁거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