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이따금 신문이나 잡지에서 읽게 되는 박노자의 글에 물론 수긍은 하고 있었다. 그의 비판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함을 모르고 있지 않기에, 귀화한 낯선 외국인의 비판을 그럭저럭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의 내용 속에 내가 들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박노자와 비슷하게 한국의 비합리적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뿌리 깊은 권위주의가 싫었고, 그런 내게 명확한 논리와 구체적인 사례로 그것을 지적해주는 글은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행본으로 출간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으면서 나는 누군가의 서평 그대로 면구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껴야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다른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통쾌함이나 시원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자주 고개를 숙였고, 얼굴을 붉혔야만 했다. 이 책 속에서 비판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은, 정치 경제 영역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 집단이 아니라 나로 내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나는 우리 나라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불만을 느끼고 있었지만 내게 문학과 삶을 가르쳐준 선배님들과 교수님들의 논리에는 그대로 복종하고 있었다. 그들의 강권하는 술 한잔을 제대로 거부한 적이 없었고, 이따금 내 생각과 다른 그들의 생각에 논리적인 대응을 해보지도 못했다.

나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물질과 힘의 논리를 증오한다고 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들의 삶에 대해 피상적인 수준의 인식밖에 하고 있지 않았다. 내게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만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겨우 모은 전재산을 다 날리고 본국으로 쫓겨간 조선족 청년의 삶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따금 손님으로 초대되어 우리 집을 방문하는 조선족 언니들에게 선심 쓰듯 한국 관광을 시켜주었을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적 자산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복학생들의 군대 기질과 그들의 허풍에 화를 내면서도, 군대에 다녀와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막내 동생을 향해 '너는 군대에 다녀와서도 철이 들지 않았다'고 핀잔만을 늘어놓았다. 건들건들하면서 삶을 낭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 녀석들 군대 가서 죽을 고생 좀 해야 철이 들지 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비판을 제기할 줄 몰랐다.

이런 내 모습은 박노자의 책 속에서 고스란히 발가벗겨졌다. 내 안에 존재하는 비합리성을 직시하는 것은 당연히 즐겁지 않은 과정이었고, 이 책을 다 읽고도 며칠 나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내 자신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부족했던 내 모습과 만날 수가 있었다. 이건 내 자신의 모습이었고, 내 주변에서 함께 삶을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바로 우리(?)들의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법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는 한 청년의 얼굴을 생각한다.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법당에서 절을 하는 그 사람의 평화에 대한 사랑을 생각한다. 그 사람의 병역 거부 선언과 박노자의 뼈아픈 질책이 다른 선에 있지 않다는 것을 겨우 이해하기에,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들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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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 때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 읽는 내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의 장면들이 맴을 돌더군요. 저 또한 님처럼 부끄럽기 그지 없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뉴스를 보면서, 그저 분노만 삭히고 있었을 뿐이었죠. 글쎄요, 이론과 실천의 문제가 쉽지만은 않겠죠. 저도 항상 그 부분에서 고민만 하고 있을 뿐이니...

선인장 2004-05-1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남루한 생활인에 불과한 까닭에 내 고민의 수위만큼, 행동이 뒤따르지 않아, 가끔 자괴감에 빠지기는 하지요. 마음 깊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위안하기에는, 이따금 느끼는 부끄러움의 강도가 좀 세죠. 나를 흔드는 모든 것들과 제대로 싸워봐야 할 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