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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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것이, 특히 최근에 나온 한국 소설들을 열심히 찾아서 읽는 것이 갑자기 지겨워졌다. 누군가의 소설이 새로 나왔다는 광고를 보아도 시큰둥했고, 누구의 소설이 재미있다고 해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책 속에서는 끊임 없이 반복되는 것만 같았고, 저마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작가들의 그 독특한 감각을 읽어내기에는 내 생활의 권태가 극에 달해 있었다.

다만, 천운영이라는 작가를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신춘문예 등단 작품은 그해 나온 어느 작품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고, 이따금 계간지에서 읽게 되는 그녀의 작품은 그녀에 대한 내 기억을 조금씩 연장시켰다. 그리고 작품집이 나왔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 책에 나온 작품들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의외로 그녀의 소설을 많이 읽은 탓으로, 새로운 작품들이 눈에 띄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나는 서점 한쪽에 쭉 쌓아올려진 <바늘> 중에서 중간쯤에 놓인 이 책을 샀고 하루 종일, 그리고 일주일 동안 이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처음에는 바늘로 상징되는 그녀의 날카로운 시각, 온통 날을 세우고 세상과 겨루고 있는 인물들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바늘>이라는 작품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도하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지 않았고, 독자에게는 별 감흥도 일지 않는 감상을 풀어놓지도 않았다. 그녀들은(물론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여성성이라고 규정된 식물성을 거부하고 동물성을 드러내면서 세상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싸움의 과정은 식물이 섬세한 물관을 통해 물을 흡수하여 온 몸에 전달하는 과정만큼이나 치밀했고, 그 치밀한 시선은 마장동 우시장이나 부산의 영도 다리 밑 구석진 곳까지 구석구석 닿아 있었다. 후미진 골목을 뛰어다니는 인물들의 감정선은 잘 벼러진 칼처럼 날카로웠지만, 매우 섬세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줄곧 여향을 하는 기분이었다. 은행 나무 아래 버려진 트럭 뒤에 몰래 올라타도 후미진 세상을 살펴보는 느낌, 트럭 뒤에 앉아서 세상을 다니는 내게 이따금 부는 바람은 무척이나 찼고, 한낮의 햇빛은 견디기 힘들만큼 뜨거웠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나와 같이 세상을 떠돌았다. 그 세상에는 좀처럼 가로등 불빛이 비추지 않았고, 소글프지만 예쁘고 상냥한 여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추하고 못 생긴 그녀들의 삶은 동정 같은 건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천운영의 그런 당당함이 좋아졌다. 이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불쌍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눈을 흡뜨고 세상과 정면대결하고 있는 그녀들의 당당함도 좋아졌다. 그리고 얼마쯤은 나도 힘을 내서 그렇게 내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서 무릎에 묻는 흙 탁탁, 털고 걸어가도 좋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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