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공장장이 퇴사했었다. 나의 사형이자 멘토였던 그는 퇴사와 동시에 새로운 간판을 걸고 사장이 되었다. 지금도 CNC 4대를 놓고 멀지 않은 곳에서 업을 하고있다. 그 바람에 4~5명의 오퍼레이터가 입사했었고 며칠 혹은 기껏 한 달을 채우고 떠나갔었다.
내가 프로그래밍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잠 잘 시간까지 줄어들었다. 중요 업무외엔 나를 대신해 납품 다닐 기사님이 입사했다. (7월 쯤) 그리고, 사장님보다 한 살 많은 오퍼레이터가 9월에 입사했었다.(젊은 사람은 대체로 책임감이 없었다.) 지금도 계속 함께이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나의 직함은 과장이지만 공장장 업무를 보고 있다.
CNC도 2대 더 들어왔다. CNC 7대 MCT 2대가 되었다.
9월
나에게 아버지와 다름없는 큰형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였다.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 볼 틈도 없이 애쓰시더만,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라믹 볼을 만들기위해 밤낮없이 가마에 불을 지피고 볼을 만드시더니 공장을 크게 일으키기도 전에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 반신 마비가 왔었고 2달 넘게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다.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지만, 입원 초의 상태를 생각한다면 환골탈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쉽다. 힘들게 시작한 공장을 남에게 넘기고 지금은 우리 공장에 나오신다.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를 하시고, 어떨 땐 '과장님'하고 불러 뒤돌아보면 웃으며 커피도 타주신다.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인생 '새옹지마'라 생각한다.
10월
거래처(볼트&너트) 사장님이 납품차량으로 쓰기위해 근두운을 팔라고 하셨다. 중고 매매 업자에게 나중에 파는 것보단 낫다싶어 팔기로 했었다. 하지만, 차를 팔고나면 나는 뭘 타고 다니나 걱정이였는데 사장님의 NF소나타를 양도받기로 했다. 그래서 갤로퍼, 근두운은 팔고 사장님의 소나타는 내가 타고 사장님은 HG그랜저를 구입하셨다. 사장님은 소나타를 ALL도색해서 내게 넘겨주셨다.
여름 한때, 김해 비행단 시설대대장으로 와 있는 철이를 신부(神父)가 된 태경이와 셋이서 만났었다.
늦여름, 성재, 범재, 광찬이 옛전우가 대전에서 1박했었다. 정말 오래가고 싶은 녀석들이다. 대전이 2011년, 부산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간 곳이었다.
이렇게 1주일처럼 1년이 갔다.
나에게도 2011년은 있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5월에 누나의 지인을 통해 동갑인 아가씨를 소개받았다. 들뜬 누나도 나를 응원하며 옷을 4벌이나 사주었다. 하지만 9월까지 우린 4~5번 만났으며 매 번 만남도 반나절을 넘긴 적이 없었다. 나도 바빴지만 그녀도 알 수 없이 바빴다. 어쩔 수 없이 시골가서 포도밭을 돌봤지만, 그녀는 주말마다 산에 가 있었다. 같은 부산 하늘아래에 있는데도 좀처럼 약속을 잡을 수가 없었다. 뭔가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전화 해야만 받고 전화를 먼저 거는 법이 없었다. 둘 다 시간에 쫒기는 듯했다. 나중엔 짜증이 났다. 산에 남자를 숨겨 둔 것으로 혼자 결론을 내고 연락을 끊었다. 속이 시원해졌다. 인연이 닿으면 다음에 다시 만나겠지. 좁은 부산의 땅덩어리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