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교사 스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건천'에서 국도를 따라 '아화' (영천 방면)쪽으로 향하다보니 오래지않아 주사암의 표지판이 나타났다.
마을 어귀에 있는 못 가에 차를 세워두고 가방을 둘러맸다. 차로가 있었으나 아직은 젊기에 걸어 올라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그것이 산에 대한 경의이며, 마을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었다.
절까지 콘크리트 포장의 거푸집을 뜯어내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서툰 운전자는 조심해야 할 경사가 아주 급하고 매우 꼬불꼬불한 길이었다. 신라의 도읍을 지키는 전방의 요세이다보니 가파른 절벽이었고 - 그래서 이곳엔 부산성(副山城)이 있다 - 이런 곳에 길을 냈으니 얼마나 가파르겠는가?



책에 소개된 절에 얽힌 전설을 간단히 요약하면
복회(福會)에 가게 해달라는 공주의 간청에 부왕(父王)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만다. 연등의 불빛과 대낮같이 밝힌 햇불아래 색동옷을 차려 입은 처녀들과 한껏 멋을 부린 사내들은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른다. 공주도 그 분위기에 빠져 탑돌이의 무리에 끼여들었고 한 사내와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던 공주는 밤이 깊었음을 알고 부왕의 노여운 얼굴을 떠올리며 정신없이 산 아래로 내달리지만 산 속에서 길을 잃고 곰의 습격을 받고 만다.
날이 밝자 왕은 군사를 풀어 공주를 찾아보니만 굴 앞에서 갈기갈기 찢긴 공주의 옷가지만 발견할 뿐이다. 어젯 밤 탑돌이를 같이한 사내가 동굴로 들어 가 보지만 공주가 지니고 있던 주사(朱砂 )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뒷날 임금은 주사가 떨어진 자리에 절을 짓도록 하는 한편 그 공주가 애지중지하던 주사를 부처님에게 바치고 주사암(朱砂庵)으로 부르게 했다 한다.
주사란 진사(辰砂)라고도 불리는 광물질로 선홍색을 띠고 다이아몬드 광택이 나는 빛깔 고운 보석임.

내가 갖고 있는 책, '우리산 옛절' 에 이 위치에서 찍었을법한 사진이 한 장 들어있다. 그 삽화를 보고 절벽에 앉아보고 싶었다.
한 때, 대금을 배울 생각으로 대나무로 만든 대금을 구입하고 카세트 테이프가 포함된 교재도 산 적이 있었는데, 꼭 저런 절벽에서 한 번 불어보고 싶었다. 대금 배우는 것도 여의치 않아 지금은 조카들이 대청을 찢어버려 장롱 위 어디엔가 숨겨 놓았다.
저 절벽은 마당 바위라 일컬어지는 곳인데, 절 아래로 난 소로로 몇백 미터만 가면 쉽게 다다를 수 있다.
절벽의 끝자락에 앉아 찍은 사진이 바로 아래 사진이다.

절벽 같은 곳에 서서, "아!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싶어라!" 하던데
웬 걸?
'하느님, 맙소사!' 갑자기 돌풍이 일어 앞으로 꼬꾸라지지 않을까 엄청 겁이 났었다.
절벽에서 살살 기고있는 모습을 누군가 봤더라면 분명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2층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내려다 보듯, 나무의 울창한 숲을 아래로 내려다보니 기분이 들뜨고 나무의 정수리를 보는 듯 했다.
햇살이 무척 따가웠는데 계곡으로 안개가 깔리면 어떤 모습일까를 연신 궁금해했었다.
산행 8/1 글 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