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믿나? 지금, 그것은 중요치 않다.
전생에 나는 서경덕이고 싶다. 이런 생각에서 인지,
" 마음이 어린 후(後)ㅣ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이 시조를 내가 지은 듯도 하다. 그러면 경덕에겐 황진이가 있어야겠지. (암, 그렇고 말고) 내가 경덕이면 누가 황진이일까? 밀양에 있는 ♥♥이. 그래, 밀양의 ♥♥이는 황진이야. 우린 전생에 못 다 이룬 사랑을 맺기위해 현세에 윤회한 것이다.
어디 한 번, 윤회한 근거를 끌어 모아 볼까? ♥♥이는 글쓰는 것을 좋아해. 고3때 ♥♥의 교내 시화전에서 이미 그것을 확인했었지. 그 당시 나에겐 무척 난해했었던 시를 발표했었지. 그때 이미 나를 압도해 버렸지. 비록 전생에서처럼 절세미인은 아니지만 성격만은 박연폭포처럼 꺾임이 없고 올곧지. 나? 나도 경덕처럼 틀에 짜여진 학문엔 적응치 못하고 줄줄이 낙방을 거듭했잖아. 내가 둔해서가 아니고 이 시대의 교육 정책에 맞지 않아서 그렇다구. 전생에서 처럼 홀어머니가 계시구. 나는 성(서) 씨이고 ♥♥이는 한(황) 씨이니 어느 정도 논거가 충분 조건을 채워가잖아?
근데, 참 이상해?
우리들의 고결한 사랑을 내세에서 한 번 피워보자고 철석같이 약속했건만, 지금의 우리는 서로가 너무나 덤덤해. 한창 사랑을 꽃 피울 나이에 우리는 자신의 꿈에만 몰두하고 있었지. 나는 전생의 업을 끊지 못하고 서울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고 있었고 ♥♥이는 밀양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데 모든 것을 받쳤지. 그리고 보면 가까이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지낸 것도 우리가 소원해진 이유이기도 해.
그래서 우린 아주 가끔 만남을 가졌지. 기껏해야 1년에 두 번 정도. 몇 번 정도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도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들은 너무 늙어 버렸어. 혼기를 놓쳐 버린거지. 막차에 뛰어 오르는 심정으로 우리는 현생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또다시 내세에선 몰라도 현생에서 불가능하다고 봐.
이 책, '삶의 한가운데' 를 읽고
나는 니나같은 ♥♥이를 내몸에서 완전히 털어내 버리기로 했어.
그녀는 나의 황진이가 아니라는 생각도 굳히기로 했지.
우린, 우리 서로보다도
각자의 삶을 너무나 사랑했어. 서로가 섭섭할 정도로.
너무나 비슷해서 나란히 갈 뿐, 만날 수가 없다.
이 책을 긴장하며 읽은 이유는
니나의 모습에서 ♥♥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슈타인처럼 맹목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
. . .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