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순수한 동심을 일으킬 것 같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따뜻한 문체와 평화로운 시골 풍경, 그리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잎싹’을 보며 내 마음까지 따스한 빛으로 감싸지는 것을 느꼈다.

  잎싹이는 양계장안에서 갇혀 사는 암탉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주위의 암탉처럼 그냥 알만 낳고 모이만 먹으며 사는 삶을 마음속으로 거부하며 언제나 마당에 사는 암탉을 부러워하고 양계장에서 벗어나 자신이 낳은 알을 품을 수 있기만을 바란다. 잎싹이라는 이름도 바깥세상을 동경하며 나무의 잎을 보고 자신이 지은 이름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과 남을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이며 정체성을 가졌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른 생각과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세계에 느끼는 거부감은 그녀의 평탄하고 무료했던 생을 깨부순다. 그녀는 자유를 사랑했고 상사병을 앓으며 천천히 죽어갔다. 결국 알을 낳지 못하게 되어 양계장 세계에서 버림을 받았고 바깥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버림받고 알을 낳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까웠지만 자유를 얻은 잎싹이의 모습에 무엇보다 기쁜 생각이 들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나에게는 잎싹이와 같이 내가 사는 곳을 뛰쳐나갈 용기도 없고 그만큼 열정을 다해 사랑할 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잎싹이가 매우 부러웠고 잎싹이가 원하는 바를 진정으로 얻길 바랬다. 그러나 막상 닥친 현실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자유... 그것은 얻지 못했을 때는 매우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유혹이지만 막상 자유를 얻으면 그에 따른 엄청난 책임을 지게 된다. 남들과 다른 삶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걷지 않는 외로운 길을 잎싹이 혼자 선택했다. 그렇기에 잎싹이는 외톨이가 되었다. 다행이게도 잎싹이는 나그네와 친구가 되지만 그와 함께 있지는 못한다. 마당에서도 쫓겨나고 마당 주위를 맴돌며 어정정한 위치를 유지하던 잎싹이는 우연히 친구 나그네의 알을 품게 된다. 평생의 소원을 드디어 이룬 것이다. 물론 태어난 아가는 병아리가 아닌 오리였지만 그녀는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고 그녀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의 아가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면서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가끔씩 언론을 통해 배 아파 놓은 자식을 죽이고 버리는 어머니가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잎싹이와 같이 자신의 아이를(친자식이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이) 사랑하고 아끼는 어머니가 더 많이 있기에 오늘날의 세상은 아직까지 따스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잎싹이는 초록머리(잎싹이의 아가)를 사회로 내보낸다. 기약 없는 헤어짐에도 잎싹이는 초록머리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 이것 역시 자식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속에는 잎싹이의 큰 아픔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홀로 남은 잎싹이의 모습에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무척이나 쓸쓸했을 것이다. 옛말에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초록머리를 만나기 이전보다 더 쓸쓸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족제비에게 잡아 먹혔는지 모르겠다. 아님 자신도 한 아이의 어머니였기에 족제비의 아기들이 굶어 죽는 것을 방관할 입장이 못 되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잎싹이의 죽음이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세계를 말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늙은 잎싹이는 그 족제비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강한 이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해가 간 뒤 돌아온 초록머리가 잎싹이의 흔적이 사라진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잎싹이에게 좀 더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 할 것이다. 현재 많은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부모님께 좀 더 잘해드리고 싶지만 마음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잎싹이의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녀는 용기 있게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틀을 깸으로서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었다. 잎싹이의 삶을 동경하지만 나는 그럴 만큼 의지가 강하지 못할 것 같다. 또, 꼭 바깥에서 만 꿈을 찾으란 법은 없지 않는가! 어느 곳이든 꿈과 이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실천할 용기까지 생긴다면 일석이조. 잎싹이의 삶은 내 마음속에 따뜻한 감동으로 녹아들어 오래 기억 될 것이다.

민정이의 여름방학 숙제 -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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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 때문에 2월 개학하고도 정말 눈코 뜰새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는 종업식. 이미 끝난 3학년 반편성 중 우리반 녀석 하나를 바꿔야했고, 가시는 샘들 얼굴도 봐야했고.. 그러는 중에 우리반 아이들 예닐곱 녀석이 교무실로 와서 이런 저런 걸 물으며 얼쩡거렸다. 올려보내고 잠시 2학년 실에 들러 2학년 기획샘을 기다리다 조례를 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갔다.

9반 교실을 지나는데 교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응? 풍선!... 교실 앞문으로 다가서니 아이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책상은 모두 뒤로 밀어놓고 그렇게 다들 서 있었다. 그런 챙겨줌에 익숙치 않아 똥그래진 눈으로 교실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이끄는데로 교실에 들어섰더니 녀석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스승의 은혜... 스승의 날엔 제일 듣기 거북스럽던 그 노래들... 정말 좋았다. 가슴이 따뜻했다. 칠판에 잔뜩 멘트 적어두고 풍선 붙여두고... 교탁위엔 케익과 꽃다발. 어머님들께 선물도 받고 예린이는 아버지께선 직접 쓰신 편지도 전해주었다. "우리 아버지 웃겨요. 나한텐 편지도 안쓰더니...^^" 어제 6,7교시엔 내가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있었는데 언제 이걸 모의하고 돈 걷고 했던 거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에 너무 놀라고 감동스러웠다. 근데 왜 눈물은 안났을까?

종업식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시간이 너무 없다. 문집 글 안 낸 녀석 챙기고, 개인 문집에 넣을 자료 챙기고, 3학 신반 반편성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는 녀석들에게 먼저 3월 2일 시간표부터 불러주고 사물함 다 비웠는지 검사하고 청소하고... 1년 내내, 결국 마지막 날까지 정신이 없는 담임이다 나는.

우리반 첫 반창회는 3월 1일이다. 12시 우리 반 교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날 문집 나눠주고 그동안 찍은 사진들, 동영상들 보고, 점심으로 자장면 다같이 시켜먹고.. 그렇게 헤어지려고 한다.

그나저나 문집이... 오늘도 학교에 가서 일을 해야한다. 며칠 밤을 꼴딱 세워야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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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2-2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셨겠어요. 부러워요~ 역시 여학생들은 저런 면이 참...
저는 16일날 종업식 했는데, 평소 종례하듯 밋밋하게 잔소리 퍼레이드. '야, 너희 이제 2학년이야. 2학년 가서 잘하고. 1학년하고 3학년 사이에서 샌드위치되서 치일까봐 걱정이야~ 1학년때 누구 반이였나는 소리 안 듣게 잘하고~ 봄방학 중에 공부 좀 하라구~ 교복도 좀 빨고 미장원도 댕겨오고~글구, 사물함이나 책상 속에 물건 다 챙겼지? 남기는 녀석들은 집에 못간다~'

글샘 2007-02-2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06년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셨군요. ㅎㅎㅎ
저는 정말 쿨~한 종례를 마쳤습니다. 사실은 몇 놈은 이미 도망간 상태여서 종례할 힘이 없었어요ㅠㅜ 3월1일 반창회...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1년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2월에 가장 많은 비가 왔다는 어제.. 밤새 70여mm의 비가 왔다네요. 오늘은 겨울비 내린 뒤끝이라 바람이 쨍합니다. 내일도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친 않겠는걸요. 오랜 겨울 가뭄이 덕분에 해갈 되었으니 조금 춥긴해도 요깟 추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듯합니다. ^^


가내 두루 평안하신지요? 작년 12월 인사드리고 신년 첫 담임편지가 되었네요. 올 한해도 부모님 가정 두루 편안하시고 예쁜 우리 아이들도 부디 열심히 공부해서 모두 좋은 결과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3교시는 저희 반 수업이었는데 시작하기 전에 길~게 잔소리를 하였답니다. 요즘 담임인 제가 학년말 학교생할기록부 마무리와 교지업무로 바빠서 교실에 자주 올라가 챙기질 못했더니... 에구~ 녀석들이 한껏 들떠서는 지각도 심해지고 쉬는 시간에도 우루루 뛰어다니고 심지어 수업 종이 울려도 공부할 준비는커녕 한곳에 뭉쳐 서서 떠들고만 있기 때문이었지요.

"느그 수능 자신 있나? 우리 학교 내신 올리기 좋은 조건인 거 알제?"

"하루아침에 공부하는 습관 붙는 거 아니다. 다~노력과 연습의 결과다. 제대로 해라"

"니 마음처럼 다 떠들고 놀고 싶은 거 아니다. 느들 떠드는 몇몇 녀석들, 애들이 참아주고 있는 거 알기는 하나? 다른 친구들 생각도 좀 해라. "

제 잔소리의 요지는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고3이 코앞인 철없는 이 녀석들... 어쩌면 좋을까요? ^^;


정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제부터랍니다. ^^ 실은 요즘 제가 바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학급문집]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담임을 맡을 때부터 준비해온 일이랍니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들이 제출한 자료들... 거의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습니다. 아이들의 흔적이 묻은 여러 가지 자료들을 그저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고 마음 아파서 몇 년 전부터 해오던 작업인데 올해는 분량이 좀 많습니다. 제가 하는 활동에 저희반 아이들 툴툴거리면서도 잘 따라주었거든요. 아이들 허락은 이미 받았구요, 민경이, 희영이, 민정이가 편집위원으로 저를 도와주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반장인 다원이와 부반장인 예령이, 현주도 제가 말만 하면 도와주려는 마음이라는 걸 잘 압니다. 총무인 승연이와 소라, 예린이, 앞으로 미대갈 수진이도 포함해서요~ ^^ 사실 제가 떼쓰듯이 매달려 부탁하면 저희 반 녀석들 누구 하나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할 성품들이지요. (그렇지? 애들아~)


흠.. 아이들 꼬시기는 끝났고 이번에는 부모님께 부탁할 차례입니다.

글을 한 편씩 써주십사 하는 것인데... 내용은

OO이가 태어난 날 있었던 일들,

OO이와 다툰날,

OO이가 제일 미워보일 때는,

OO이가 가장 예뻐보일 때는,

OO아 미안해 그땐 엄마(아빠)가 잘못했어~

OO에게 보내는 엄마 아빠의 편지

고3이 되는 10반 모든 아이들에게 부탁하는 말

등등으로 자유롭게 써주시면 된답니다. 아니면 제게 답장을 해써주셔도 좋구요 ^^ (정말 좋지요)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이런 쉽지 않은 부탁을, 이 바쁜 시기에, 이렇게 불쑥 내밀어서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평소에 아이들과 이야기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써주시면 된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특별한 사람의 일만은 절대로 아니며, 진심을 담아 쓴다면 맞춤법 띄어쓰기 안 맞는 것, 뭐 어떻습니까? 그 자체로 감동이라는 것을 아이들이나 저나 다 잘 알고 있답니다.


금요일, 그리고 연휴 3일, 화요일은 졸업식이 있고, 수요일 하루 수업하고 나면 다음주 목요일은 종업식입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마음이 쫓기고 있답니다. 아이들에게는 다음주 화요일까지 각자의 글을 제출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께는 시간을 좀더 드려야겠지요? ^^ 종업식이 있는 다음주 목요일(22일)까지 아이 편에 전해주시면 아이들 문집 만드는데 정말 소중한 부분을 도와주시는 것이랍니다. 물론 담임인 제게도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이 되겠지요. 너무 죄송한 부탁.... 드려도 되지요?

그런데 어머님 아버님~ 도통 시간을 내기 힘드시거나 너무 부담스러우시면 3월에 나올 아이들 문집을 함께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문집이야 사실 아이들과 제 몫의 일인걸요. ^^


아이들과 함께 늘 건강하십시오. 이것이 아마도 제 마지막 담임편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길고 긴 제 편지 꼼꼼히 챙겨서 읽어주시고 아껴주신 것, 아이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답니다. 가끔 제 문자에 답해주실 때 감사의 답문자 일일이 드리지 못해 죄송하구요, 행여 제가 섭섭하게 해드린 일이나 실수한 일 있다면 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그저 잊어(?)주십시오. 늘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것, 마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있어서 지난 한해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솔직히 힘들 때도 많았지만 우리 반 대부분 서로가 서로를 무척 아꼈답니다. 이 녀석들 하나하나 보고 싶고 그리울거예요. ^^ 에고에고 눈물이 나려고하네요~

가내 두루 평안하시고 아이들과 함께 늘 행복하십시오.


2007. 2. 14. 발렌타인데이에 10반 담임 드림.


아참! 혹시 편지 쓰실 때 필요하실까봐 예쁜 편지지 두 장도 함께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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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2-15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제 본격적으로 문집 제작에 들어가시는군요. 아이들이 3학년 올라가서도 샘님의 지지가 그리울 것입니다. 수고 많이 하시겠네요^^
 

올해도 학급문집을 만들기 위해 학년 초부터 차곡차곡 자료를 모았다. 재작년 담임하면서 만들어본 '세상에 한 권뿐인 나만의 학급문집'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반 녀석들에게도 안겨주고 싶어서 평소 아이들에게 거의 뜯어내다시피한 여름방학 다이어리, 가족 이미지화, 폭력예방표어, 한글날 글짓기... 심지어 녀석들이 받은 상장까지 소소한 것들까지 챙기고 복사해두었다. 그리고 몇몇 착한 녀석들을 꼬셔두기도 했다.

그런데 교장샘이 예산을 할애해줄까 걱정이 되었다. 네 번째 만드는 문집이고 그 중 두번은 100%  학교 예산으로 제작했지만 올해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그'는 나를 포함한 다섯 교사를 사석에서 거리낌없이 'OO학교 五賊'으로 규정하는 교장인 것이다.

1,2학년 다른 담임샘들께 같이하자는 메신저를 띄웠지만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한 반이라도 같이 하면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올려볼까 생각했는데... 그냥 아이들 설득해서 아이들이 조금씩 보태고 내가 또 조금 부담해서 만들려고 거의 뜻을 굳혔을 즈음 학습동아리를 운영하는 샘께서 동아리 아이들이 쓴 글로 문집을 내고 싶다고 하셨다. 달랑 나 혼자라면 형평성 문제 때문에 좀 그렇지만 다른 샘도 필요로 하는 교육활동이라면 학운위 안건을 통과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12월 말 방학 직전에는 보충수업시수, 부교재채택 등을 주요 안건으로 하는 학운위가 있다. 학급문집에 대한 안건을 대충 만들어 우선 행정과장님께 예산이 어떤지 여쭤보았다. 당겨서 쓸 수 있는 다른 예산이 있다시면서 50만원 정도는 학운위 안건으로 올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하셨다. 단순한 나는 '그럼 나도 편하지~'하는 생각으로 교감샘께 갔다. 교감샘 역시 별무리는 없을 듯하다시며 교장샘께 여쭤보라는 말뿐. 나는 방학식 바로 다음날 여행일정이 잡혀있어서 교장샘께 여쭙는 건 다른 한 분 샘께 부탁했다. 우리 둘 다 교장샘은 敵도 아닌 賊으로 보시는 것 같지만 이건 뭐 공적인 일이고 마구 버려지는 교지 대신에 학급문집을 만들면 좋겠다는 당신 의사를 학년 초부터 다른 선생님들을 통해서 은근히 전하신 바가 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 싶었다.

그러나 열흘 남짓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 샘께서 전해준 교장샘의 대답은 '학교 인쇄소를 통해서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 샘이나 나나 기가 찼다. '학교 교육계획서는 왜 인쇄서에서 만들지 않느냐'고 쏘아주고 나왔다고 했다. 에휴.. 그래도 조금의 기대는 했었는데...

교지작업 때문에 방학 중에도 간간히 학교를 들르면서 과장님께 예산에 관한 부분을 다시 여쭤보았다. 문제없다고 하시는데... 마침 교장실에서 그 분께서 나오시길래 문집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자는 말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 아닌가? 나만 그렇게 느끼나? 남은 방학동안 이런 저런 꼭지를 생각해두었다. 아이들이 만들기 싫어하면 어쩌지... 이번 2월은 너무 시간이 없는데... 등등의 걱정도 하면서

그러나 '생각해보자'는 말은 철저히 NO의 표현임을 오늘 알았다. 문예부 아이들 봉사시간 인정 결재를 받으러 내려간 길에 "문집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교장선생님?" 했더니 처음엔 다른 담임들과 형평에 맞지 않아 입장이 곤란하며 여러 부장샘들도 반대한다고 하셨다. "방학 전에 이미 제가 문집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다른 담임샘들은 모두 그럴 계획이 없으신 것 같고 혹시 그것이 걱정이라면 제가 담임샘들과 부장샘들께 다시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했다. 그랬더니 "내가 못해주겠다는 것이 아니고 김주사에게 말해 둘테니까 인쇄실에서 만들라"고 하신다. "아니, 학교 인쇄실에서 그걸 어떻게 만듭니까? 시간도 너무 없고... 아이들과 제가 어떻게 합니까? 요즘 어느 학교에서 그렇게 합니까"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다. "그건 강선생 문제지 그걸 왜 나보고 그러느냐, 학교에서 아이들이랑 만들면 더 교육적이지 않느냐. 내가 알기론 어떤 중학교에서는 그렇게 다들 만든다" 우리반 아이들은 조금 있으면 고3이다. 이럴 땐 평소에 누누이 강조하시는 '학력신장'은 생각도 나지 않나보다. "제가 이런 말까지는 정말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행정과장님께서 예산에 무리가 없다하시고 교감선생님께서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만든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그 사람들한테 가서 만들어달라고 해라. 나는 그런 교장과 다르다" "알겠습니다. 그럼 학운위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벌떡 이어서 나왔다. "그런 사소한 일은 안건으로 올릴 수 없다" 는 성난 목소리를 등뒤로 하고. 행정실 분들 모두 교장실을 나서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웃으며 "요즘 학교 생활 정말 힘들다"고 한마디 하고 수업갔다. 4반 녀석들이 그럭저럭 내 말도 들어주고 수업도 나름 열심히 해주어서 맘이 좀 풀렸다. 아이들은 까불어도 이렇게 이쁜데...

학교내규를 살펴봤더니 '안건발의는 학교장 또는 재적 운영위원 1/3의 연서에 의해 발의할 수 있'단다. 1/3이면 5명. 교사위원이 모두 서명을 해준다 해도 1명이 부족하다. 학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애긴데... 학부모위원이 학교장과 날을 세우는 이런 일에 흔쾌히 동의해줄까? 급식업체 바꾸는 일에도 결국 '교장선생님 뜻대로'였던 그분들이... 참... 문집은 만들기도 전에 거기에 쏟아야할 에너지를 이런 일에 몽땅 쏟고 있다니 정말 짜증이 제대로다.

비조합원 운영위원 한 분 샘을 찾아가서 의논했다. 샘도 알고 계셔야한다는 판단으로. 샘 말씀은 '일을 되게 하려면 조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어느 정도 부담하고 학교에서도 지원하는 것으로 하자'고 하셨다. 학운위에서 교사들끼리 기껏 50만원 가지고 의견 조율을 못해 아웅다웅 하는 것도 학부모들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는 꼴불견이라고. 그러니 교장샘께 일을 풀어갈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주어야한다고.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를 알도록 일정부분 스스로 부담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고 학부모들 앞에서 우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럼 아이들에게 2~3천원 부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샘의 전화를 받았다. 교장샘께서는 학습동아리 문집은  교육청에서 주어진 예산 안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므로 만들어 줄 수 없으시단다. 그리고 우리 반 문집도 반 정도 지원해줄 수 있단다. 기가 막힌다. 그래봤자 10만원 남짓. 그 돈은 내가 부담할 수도 있다. 내가 무슨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교사가 정당한 교육적인 활동을 하겠다는데 그걸 학교장이 지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이게 무슨 흥정꺼리인가 반을 깎고 말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그럼 도대체 왜 교지 대신 문집을 만들자고 했었던 걸까? 문집의 '교육적 가치'를 아시는 걸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다.

이걸 받아들여야하는 건지 어떤지... 중간에서 말을 해준 선생님 입장도 있는데... 하지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기분이 나쁘다. 받아들인다면 나는 정말 처음부터 단순히 '돈'때문에 움직인 결과가 된다. 문집 만드는 데 들여할 에너지... 만들기도 전에 정말 지친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 내가 너무 힘들어서 하지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 안 도와준다.

길고 지겨운 1월, 그리 더디 가더니 2월 역시 그런 나날이려나?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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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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