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맛있는 수업을 했습니다.”

  올해는 1학년 영어를 맡았다. 그런데 어렵고 딱딱한 과목이라서 그랬는지 첫 시간인데도 아이들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때, 나는 낙담하기보다는 이제 곧 바뀌고 말 아이들의 환한 표정을 미리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내 머릿속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각본이 이미 짜여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름으로 출석을 부른다. 아이들은 제 이름에 영어로 대답을 하면서 2초 동안 나와 눈을 맞추어야 한다. 절반을 나의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눈맞춤을 하지만 무두 뒤끝은 좋다. 웃으면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 여학생과 이런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선생님, 너무 어색해요.”

“나도 어색해. 지금 노력하고 있는 거야.”

  웃자고 한 말도 아닌데,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 끝에 아이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어둑한 초저녁 거리에서 수은등이 몇 번 깜빡거리다가 환한 빛을 발하듯이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중요하다. 중요한 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출석부를 덮고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펴게 한 뒤, 다음과 같은 영어 문장을 칠판에 적어 나갔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they call it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며, 내일은 하나의 신비이다.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오늘을 선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요 단어, 곧 key word는 ‘현재, 혹은 오늘날’이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present'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today(오늘)를 present(오늘, 혹은 선물)라고도 말한다는 것. 나는 그런 내용을 That's why(그래서, 혹은 그런 이유로) 구문과 함께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 뒤 말을 이었다.

  “어제는 역사이다. 아무래도 이 말은 여러분이나 저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 같지요? 정말 그럴까요? 역사가 위대한 정치가들이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만의 전유물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게임을 하느라 5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오늘은 1시간을 줄여 4시간만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어제는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는 일을 도전해서 성공했으니 그것이 여러분의 역사인 것이지요. 지금까지 공책 정리를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친구가 공책 정리를 잘하게 된다면 그것도 역사를 새로 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내일이 신비스러운 미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겠지요?”

  나는 잠깐 아이들을 둘러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늘 하루가 내게 주어진 선물처럼 느껴지는. 혹시 그런 친구가 있으면 손을 한 번 들어보세요. 한 사람도 없나요? 그럼 오늘 하루가 끔찍한 재앙처럼 느껴지던가요?”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선물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아니면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일 뿐일까. 아이들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으로 보아 그 답이 선물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 하루가 정말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예.”

  대답과 함께 피어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마치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하루하루가 선물 같다면,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나날일 수 있다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난 공부도 못하는데, 난 잘하는 것도 없는데, 난 너무 게으른데, 난 꿈도 없고 미래도 없는데. 그리고 난 실업계에 들어왔는데….’

  그런 생각을 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 고민하면서 책을 펼치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어 문장 ‘오늘은 선물이다.’

   ‘아이들에게 오늘이 과연 선물일 수 있을까? 갈수록 경쟁을 부추기고 성적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재려는 교육풍토 속에서 과연 아이들은 새롭게 다가온 또 하루가 선물로 느껴질까? 더욱이 성적에 밀려 실업계 들어온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라면.’

  그때 내 머릿속에 수직으로 금이 하나 그어졌고, 그것이 지워지면서 수평선과도 같은 금 하나가 다시 그어졌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칠판 위 아래로 수직의 금을 먼저 그어 내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수직선은 여러분의 학교 성적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재려고 하지요. 물론 학생에게 성적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좀 더 잘할 수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근본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성적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수직의 잣대로 여러분의 가치를 재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또 하나, 수평선이 있습니다. 저는 이 수평의 잣대로 여러분을 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모두 동일합니다. 여러분이 조금 부족하고 못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으로 여러분을 차별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멋진 순간들이 여러분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가꾸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는 않겠지요?”

  그날 나는 아주 맛있는 수업을 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잇는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그렇다면 참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어려운 시대일수록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야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엇보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이 소중하다.

 

안준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202~206. 우리교육.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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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15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부분만 워드작업해서 풀이해보라고 교실에 붙여두었다가 뺄 부분 약간 빼고 수정해서(내 글도 아닌데 내 맘대로.. 괜찮을까? ^^;) 어제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느티나무 2004-09-1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저 오늘은 9교시까지 수업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빨라도 6시 20분이 되어야 출발할 수 있습니다. 빨리 가도 7시가 좀 넘겠지요. 전에도 7시 넘어서 회의를 시작했다니까, 이 때가도 회의는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 랑


                        - 박 형 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안도현 엮음. 나무생각.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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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1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2년 정보여고에서 만든 교지를 뒤적이다 발견. 그때 이 시가 너무 좋아서 교지 젤 뒤 빈 공간에 이시를 넣었었군. 손모현 샘이 그린 그림 밑에다가... '모든 살아있음의 제 자리'와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이 구절이 너무 좋아서.. 지금 다시 읽어도 참 좋다.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해콩 2004-12-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샀다. 1994년 창자과 비평사. 꼭 10년 전이다. 부안에서 농사도 짓고 글도 짓는다는 시인은 후기에서 "난생 처음 시집을 엮"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지, 쌀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해마다 나는 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공책 맨 첫 장에 적게 한 뒤, 이렇게 말해 주곤 한다.

  "만약 선생님이 한 해 동안 여러분과 생활하면서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라도 그 공책에 적힌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께 약속한 사실을 상기하고 다시금 친절한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약속도 한다. 내 전공인 영어는 물론이고, 시시각각 병하는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약속을 한 뒤, 아이드에게도 내게 두 가지만 약속해 달라고 한다. 하나는 절대로 영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선생님의 약속'과 함께 이 약속들을 '나의 약속'이라고 써서 공책에 적게 한다.

  이러한 친절 서약은 어쩌면 아이들의 약속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남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이려는 속내도 숨어있고, 나를 포함한 우리 교사들이 그동안 아이들에게 너무 불친절하지 않았나 하는 교사로서의 반성이 섞여 있기도 하다.

  물론 교사의 불친절을 교사 개인의 성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학급당 학생 수가 아직까지도 후진국 수준에서 맴돌고 있고, 기본 수업 시수는 물론, 강제적인 보충 자율학습까지 맡아야 하는 교사에게 친절은 '효율적인'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입시 위주의 단편적인 지식뿐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 교육 현실이 아니던가. 여기서 친절은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불친절의 고리 속에 어쩔 수 없이 나도 끼어 있다는 자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너무도 쉽게 아이들에게 불친절한 교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이 나름대로 방어책을 세우게 한 셈이다.

  불친절의 사슬 맨 끝에는 아이들리 자리하고 있다. 불친절하고 자기 중심적인 교사를 만난 앙들은 적어도 한 해 동안은 그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한창 피어나던 꽃이 갑자기 악천후를 만나 잠시 생장을 멈추는 것과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불행감을 안겨주는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거니와, 교사로서 그런 실패한 인생을 살고 싶지도 않다.

  처음 교단을 밟았을 때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처음 몇 달은 그랬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시큰둥해졌다. 근무하는 학교가 실업계이다 보니 아이들의 영어 기초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정성껏 준비한 요기가 번번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학업에 대한 열의마저 보이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교사로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만든 최고급 생과자를 탐낼 수 있는 제가가 그립기만 했다. 영어뿐이 아니었다. 교육에 대한 나의 열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시와 인생을 논할 제자도 필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학생이 교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성철이를 알게 됐다. 성철이는 키도 훤칠하게 크고 용모도 제법 준수해 보이는데, 생긴 것하고는 전혀 딴판으로 공부에는 조금도 흥미를 못 느끼는 아주 산만한 아이였다. 태엽 감긴 자동 인형처럼 야단맞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방금 전에 했던 행동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언젠가는 그날 공부할 본문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전 그런 거 안 하는데요."

  "안 하다니?"

  "그런 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요."

  성철이 말로는 자기더러 책을 읽으라고 한 선생님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을 통틀어 내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너무도 산만한 행동을 해서 교사들이 무언가를 시킬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어눌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꼬박꼬박 하는 성철이에게 한참 귀를 기울이다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럼 나도 널 포기할까?"

  "예?"

  "선생님들이 널 포기한 거잖아. 넌 포기당했고."

  "......!"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약속했지.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내가 너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한 건 널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어. 그래서 지금 너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하는 거고. 읽을 거야 말 거야?"

  "읽겠습니다."

  뜻밖이었다. 솔직히 내 말이 얼마나 먹힐까 반신반의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의식조차 없이 허공에 돌을 던지듯이 해 본 말인데, 말하는 표정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저렇게 진지할 수 있는 아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성철이가 공책 정리를 하지 않고 있기에 가볍게 나무라며 이유를 물었더니 서슴없이 대답했다.

  "선생님, 전 영어를 하나도 모릅니다. 적어 봤자 뭐합니까?"

  "모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런데 정말 영어를 하나도 모를까?"

  그렇게 말하고는 칠판에 다음과 같은 단어를 적어 나갔다.

  love   heart   home   I   mother god

 그리고 다시 이렇게 물었다.

  "이 중에서 모르는 단어가 있니?"

  그런 건 다 압니다. 하지만...."

  "왜, 너무 쉬운 단어라는 거야?"

  "예."

  "너는 사랑이 쉽니?"

  "예?"

  "네 가슴 속에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니? 그리고 너의 집과 네 자신과 집에 계시는 엄마가 아무것도 아니니? 넌 엄청난 영어를 알고 있는 거야. 너는 신도 알고 있잖아."

  "에이, 선생님 그건 말도 안 돼요."

  성철이 말대로 나는 그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로 우리는 더욱 친한 사이가 되었다. 다음 날 수업 시간, 성철이의 표정을 보니 영어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눈치였다. 나를 보는 눈빛도 전에 없이 맑아 보였다. 그런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 앞에서 친절 서약을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을 배려하기보다는 내 자신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릇 생명이 있는 것들은 그 존재 앞에 겸손하고 친절한 자세로 다가가는 자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줄 터. 친절하겠다는 약속을 다시 새겨 본다.

 

안준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17쪽. 우리교육.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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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그러고보니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를 스쳐간 아이들이 '그후 어떻게 되었을지'를.  더러 일 년에 두어 번 쯤 연락이 오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나를 스쳐간 그 아이들은 지금 행복할까? 나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알려나 주었을까?

책을 덮고 난 지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시 한 번 꼭꼭 씹어가며 봐야겠다'는 것이다. 한 번 읽고 난 책은 얼마쯤 지나면 느낌만 남고 구체적 내용은 거의 잊어버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다시 펴들지 않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독서 습관을 가진 자신을 알기 때문에 지금 바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작정이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마음씀이 크게 다가왔는데 목차를 다시 눈여겨 보니 학급살림에 필요한 여러가지 팁들도 챙길 것이 많다. 첫날 '생명값'에 대한 대한 이야기,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는 맹세,  '생리통'을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 담임 생일 챙김받는 법, 소풍날 베스트 드레서 뽑기, 방학 전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 믿고 기다리는 법, 부모님 직업을 대하는 마음, 편지로 마음 전하는 법,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남은 사랑을 단련시키는 방법 등등... 그리고 사려깊게 초임교사를 배려하는 맺는 글까지.

실업계 초임 교사 시절의 시련(그건 확실히 시련이었다. 그 시절 나는 일주일에 두어번은 꼭 눈물을 흘려야했으니까..)이 나에게 준 교훈은 이런 것이었다. 먼저 '그저 속아주자'. 아이들이 속이려고 작정하고 거짓말 하면 나로서는 그저 속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짓인줄 모른다면 자연스럽게 속아넘어갈 것이고, 거짓인 줄 안다해도 끝까지 아이의 거짓됨을 밝히는 것이 오히려 나쁠 것 같아서 속아주는 편이, 그러면서 그의 말을 믿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건 밑지는 장사는 아닐거라 생각했다. 나를 속이면서 아이의 마음이 그저 신나고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니 스스로 잘못을 반성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를 아이의 '진실'을 압살하지 않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렇게 일부러 속아주는 일이 궁극적으로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담임을 속이면서 아이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들어앉을 죄의식과 거짓, 불성실... 등등도 해결이 되질 않았다. 그저 속아주는 것 보다는 오히려 이러저러한 내 마음과 걱정, 잘못 등을 솔직하게 아이와 나누는 것이 더 진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고쳐진 부분이다.

당시 유행하던 모 호텔의 광고 카피는  '우리의 목표는 귀하의 감동입니다'였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아이들의 감동'이었다. 환경미화 할 때 밥 싸와서 같이 먹기, 청소 늘 같이하기, 편지쓰기, 상담하기... 등등을 수단으로! 일단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내 말을 들어주니까 그들이 감동 먹을 때까지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이들의 마음만 얻었을 뿐, 그후 아이들 인생에 어떤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저 내가 그 마음을 얻었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떠날 수 있도록 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런 활동들이 자기 만족에 불과했음을.

교직을 전문직이라고들 한다. 전문직.... 무엇을 전문직이라고 할까? 왜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할까? 일반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일을 전문직이라고 한다. 의사도 판검사도 전문직이다. 그들은 물리적인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 교사도 생명을 다룬다.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것이다. 교사들은 때에 따라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수도, 죽어있는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교직을 전문직이라 부르는 이유는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 내는 것을 의무로 해야하는 직업이라는 뜻일게다. 그러나 나는 본다. 살아 있는 아이들을 너무나 쉽게 죽여버리는 이 땅의 교사들을, 교육제도를! 그 속에 일부분인 나 자신을...

안준철 선생님, 그의 손을 거치면 아이들은 살아난다. 절망하고 좌절하던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게되고 다른 사람도 또한 그런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인 목숨만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다시 말해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알아야 진실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러한 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이다. 방법은 한 가지이다. 대상을 진정 사랑하는 것.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전부 내어놓는 것이다. 투명하게 열어놓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를 보여주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목적없이 무작정 믿어주거나, 감동을 주는 일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사랑받는 법,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힘을 잃지 않도록 하는, 그런 목적부터 세우는 작업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그건 거창한 무엇은 아닌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 그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나누는 일, 그것일뿐이다. 더구나 내 곁엔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내게 그런 힘을 주는 동료들이 있다.

나는 안다. 내일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갈등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 모습을, 내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줄 용기를 얻었다. 해서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친다.

2004. 9. 13.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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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09-22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 아이들은 가시 면류관이 아닐까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러나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는, 우리는 가르치는 '교사'이기 이전에,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난 '선생'이잖아요. 해콩선생님의 상처를 저도 앓았던 적이 있고, 지금도 중증이지만, 안준철 선생님의 글을, 이상석 선생님의 글을 삶의 전부라고 읽지 않으시길... 우리에게도 간혹은 환한 순간도 있잖아요. 그래서 전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늘 품고 삽니다. 억지로라도 행복해야 할 이유. 우리는 교사니까요, 아니 선생이니깐. 힘내세요. 해콩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아난이예요,,

먼저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어제의 일은,, 정말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있어서도 안되고,, 생각조차도 하면 안됬는데,,  제 짧은 생각 때문에 그런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읽으니깐,,,,, 눈물이 나더라구요,,,

오늘, 학교에서 화장실을 1층부터 5층까지 청소를 하고,, 그리고 교무실, 복도 등 청소를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고,, 힘도 들었습니다,, 그래도,,제가 벌인 일이니, 그 일에 대한 벌은 마땅히 받아야했으니까,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오늘 쫌 많이 피곤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수업 시간에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어요;; 죄송해요;;

어제는 학교에 엄마도 오셔서 엄마 마음을 속상하게 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도,,그리고 저 자신도 많이 놀랐어요,,, 그렇게 까지 될줄은 몰랐는데,, 아직 제가 나이만 그렇다 뿐이지,,,제대로 하는건 하나 없고,,,,, 엄마가 학교에 오셔서,,, 학생부장 선생님께 이런저런 말을 들으시고는,,, 아주 당황하시고,,힘들어 하시는거 같았습니다,,  저도 많이 울긴 했지만요,, 솔직히,, 어제 수진이 어머님도 오셨었는데,,  수진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닦아주시고,타이르는 그 모습이 ,, 부러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오셔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시고 바로,, 교무실로 들어가셨거든요,, 그래서,, 엄마에게 울면서 한다는 소리가,  왜 엄마는 수진이 엄마랑 틀리냐고는,,, 그런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엄마에게 죄송하다는 말 대신에 그런말을 했으니,, 제가 제정신이 아니였나봅니다,, 엄마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했어야 하는데,  그 말을 못전하고선 ,, 엄마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방과 후에 집에 왔는데, 엄마가 안계시드라고요,,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밖이라고,,집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잠시후에 엄마가 오셔서,,,  얘기를 하자고 하시면서 저를 앉혔습니다, 몇분 동안 얘기를 하는데,,자꾸만 눈물이 났었습니다, 근데 저만 우는것이 아니고,,,,,,, 엄마 얼굴은 보진 못했지만,,  엄마도 울고 계셨거든요,,, 그때, 왜 나는 이거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어릴적 부터,, 잘한다는 말만 하고선,, 지켜진것도 없이,  엄마 속을 까맣게 태우곤 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제 자신이 한심하고,,너무나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언니 언니 소리는 들으면서,,정작 언니다운 행동을 못한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고요,,, 앞으로 정말 다시는 그런일이 있어선 안되고,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하루됬지만, 수업하고 있는 애들도 부러웠고,,  그래서 더 교실에 가고 싶기도 했어요,, 어제 엄마가 저에게 화를 좀 내셨는데,  오늘 아침 까지 말을 하지 않으시다가, 집에 돌아와서 책상에 보니까, 일기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깐,, 엄마가 제게 여러가지 말을 해놓으셨는데,,  또 눈물이 나네요,,,,, 왜 자꾸,,속상하게만,, 해야하는지,,,,휴,,,,,,

선생님,,, 저 다시는 절대로 이런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절 믿어주시고,, 아껴주신 선생님과,,그리고 저희 부모님에게도, 못난 모습으로가 아닌,,, 착하고 성실하고,,  좀더 발전된 제가 되겠다고 약속 드릴께요,, 앞으로는,,, 정말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은 제가 되겠습니다,,

비록 최고는 못되더라도,,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께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합니다,  나쁜짓한것에 대한 생각을 가슴깊이 새겨서,, 다시는 어리석은 짓하지 않는,, 두번 실수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는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께요,, 훗날 선생님을 뵜을때,, 말썽부리고,, 미운 제자가 아닌,, 착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수 있는 그런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좀더 성숙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생님,,정말 죄송합니다,,,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난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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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난이 편지.. 잘 보았어.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라는 말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프더라.

무엇보다 마음이 쓰이는 건,  니가 몸이, 특히 뼈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많이 약하다는 거야. 뼈주사도 맞는다며? 지난번, 그리고 어제 엄마가 학교에 오셔서 내 앞에서 니 걱정 얼마나 많이 하셨는데.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건강이 더 문제라고.. 그래서 야자나 학원이 걱정이 아니고 얼른 건강해지도록 보살펴줘야한다고, 얼마나 걱정하셨는데.. 바보같은 투정쟁이 딸..

담배도 그런 차원에서 더 많이 걱정하셨어. 나도 그렇고. 특히 그게 뼈에 안좋잖아. 엄마가 애태우며 치료중인데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학교 교칙을 어기고 벌받고 나한테 약간의 실망 주고 그런 것이 잘못이 아니고 건강이 안좋을 때, 니 스스로 너를 보살피지 못한 것, 그것이 수진이보다 니가 더 잘못한 점이야. 그러니 솔직히 수진이 어머님 보다는 아난이 어머님이 더 많이 속 상하시고 실망하시고 그런거지.. 너는 안다고 하면서도 엄마 마음 다 모르지? 내 속상함쯤이야 엄마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처음 교사가 되고 나서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진짜 민망하고 부끄럽고..그랬단다. (실은 지금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면 부끄러워.. 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나 돌아봐지거든..아무나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거 아니잖아. 그런데 교사가 되는 순간 그 많이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거야. 단지 내가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

아난이도 아이들이 '언니'라고 부르지? 젤 처음 우리 둘이 만났던 날 기억나니? 개학식이었나, 어쨌든 운동장 조례가 있던 날이었는데 니가 교실에 혼자 남아있었지. 아프다고. 그때 내가 네게 부탁한 말이 '언니'로서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라는 것이었는데.. (넌 분명 그 말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아. ) 사실 나이 한 두살 차이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그렇지만 호칭이 그 사람의 위치와 행동을 만들어가기도 하거든. 너희들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어서 내가 너희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짜 '선생님' 되고 싶어지는 것처럼.

편지에서 말했듯이 아난이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언니'로서의 따뜻한 모습 보여주면 좋겠어. 사실 지금 니모습에도 샘은 별 불만은 없단다. 힘든 학교 생활에 지친 우리반 아이들 웃겨주고 재미있게 해주고.. 그것만으로도 네게 고마와하고 있어. 아마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걸... ^^ 그런데 아난아 앞으로는 '재미있는 언니+따뜻한 언니'의 모습까지 보여주지 않을래? 아이들이 기댈 수 있게...

그리고 실업계(어느학교였니?)에서 보낸 너의 그 흔치 않은 경험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어도 좋을 것 같아. 나도 정보여고 있어 봐서 알거든. 그 아이들 가정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그래서 가끔 뛰쳐나가기도 하고 삐뚜루 가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이유없는 잘못이 없더라. 겉으로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도 다들 말 못할 아픔을 가지고 있더라. 니가 경험한 그 시절 친구들도 혹 그렇지는 않았니? 우리 반 아이들이 실업계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을 편견, 부정적인 생각.. 없애는 데 니 도움을 받고 싶어. 나중에 우리 반 아이들이 어디서 무얼하며 살아가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사회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힘든 사람들 다독이며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런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새었네. 내가 원래 잘 이래.. 말도 많고. 청소 정말 힘들지? 그래도 교실에 있었던 시간이 좋지? 나도 그래. 오늘 수업 시작하는데 느그 둘이 업는데 한 10명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뭐니? 계속 '아이들 다 들어왔나?'이렇게 물어봤다니깐... ^^; 너희들 빨리 교실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사실 오늘 수업시간에 내가 살아온 얘기 한 거.. 너희들 살짝 쉬라고... ^^ 몰랐지? 곤히 자는 것 깨우기 싫어서... 어휴~ 몸도 아픈데 그 긴 일주일을 우찌 채우노? 그래도 시간은 금방 갈거야. 내일 점심시간에 살 짝 내려오렴. 맛난 거 줄께. 교무실로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살짝 불러. 왜냐하면 말이야, 벌 받는 아이들 뭐 주면 샘들이 좀 그렇게 생각하실것 같아서..  아! 내일 한 시 30분에 4반 셤 보기로 했으니까 어디선가 만나면 되겠다.  근데 이 멜을 그때까지 확인할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네.

푹쉬고, 치료 잘 받고. 이제 니 말대로 엄마 속 그만 썩히도록 노력하고.. 하루 아침에 변하는 건 힘든 일일테니까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자. 기다릴께. ^^

2004. 9. 9. 목요일 첫새벽에 강난희 보냄.

 

처음부터 너희들 40명 착한 본성은 늘 믿고 있었단다.

누가 그러는데 교사는 포기할 권리가 없데.. 사랑할 의무와 권리만 있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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