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나는 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공책 맨 첫 장에 적게 한 뒤, 이렇게 말해 주곤 한다.
"만약 선생님이 한 해 동안 여러분과 생활하면서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라도 그 공책에 적힌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께 약속한 사실을 상기하고 다시금 친절한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약속도 한다. 내 전공인 영어는 물론이고, 시시각각 병하는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약속을 한 뒤, 아이드에게도 내게 두 가지만 약속해 달라고 한다. 하나는 절대로 영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선생님의 약속'과 함께 이 약속들을 '나의 약속'이라고 써서 공책에 적게 한다.
이러한 친절 서약은 어쩌면 아이들의 약속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남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이려는 속내도 숨어있고, 나를 포함한 우리 교사들이 그동안 아이들에게 너무 불친절하지 않았나 하는 교사로서의 반성이 섞여 있기도 하다.
물론 교사의 불친절을 교사 개인의 성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학급당 학생 수가 아직까지도 후진국 수준에서 맴돌고 있고, 기본 수업 시수는 물론, 강제적인 보충 자율학습까지 맡아야 하는 교사에게 친절은 '효율적인'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입시 위주의 단편적인 지식뿐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 교육 현실이 아니던가. 여기서 친절은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불친절의 고리 속에 어쩔 수 없이 나도 끼어 있다는 자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너무도 쉽게 아이들에게 불친절한 교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이 나름대로 방어책을 세우게 한 셈이다.
불친절의 사슬 맨 끝에는 아이들리 자리하고 있다. 불친절하고 자기 중심적인 교사를 만난 앙들은 적어도 한 해 동안은 그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한창 피어나던 꽃이 갑자기 악천후를 만나 잠시 생장을 멈추는 것과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불행감을 안겨주는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거니와, 교사로서 그런 실패한 인생을 살고 싶지도 않다.
처음 교단을 밟았을 때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처음 몇 달은 그랬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시큰둥해졌다. 근무하는 학교가 실업계이다 보니 아이들의 영어 기초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정성껏 준비한 요기가 번번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학업에 대한 열의마저 보이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교사로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만든 최고급 생과자를 탐낼 수 있는 제가가 그립기만 했다. 영어뿐이 아니었다. 교육에 대한 나의 열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시와 인생을 논할 제자도 필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학생이 교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성철이를 알게 됐다. 성철이는 키도 훤칠하게 크고 용모도 제법 준수해 보이는데, 생긴 것하고는 전혀 딴판으로 공부에는 조금도 흥미를 못 느끼는 아주 산만한 아이였다. 태엽 감긴 자동 인형처럼 야단맞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방금 전에 했던 행동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언젠가는 그날 공부할 본문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전 그런 거 안 하는데요."
"안 하다니?"
"그런 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요."
성철이 말로는 자기더러 책을 읽으라고 한 선생님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을 통틀어 내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너무도 산만한 행동을 해서 교사들이 무언가를 시킬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어눌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꼬박꼬박 하는 성철이에게 한참 귀를 기울이다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럼 나도 널 포기할까?"
"예?"
"선생님들이 널 포기한 거잖아. 넌 포기당했고."
"......!"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약속했지.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내가 너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한 건 널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어. 그래서 지금 너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하는 거고. 읽을 거야 말 거야?"
"읽겠습니다."
뜻밖이었다. 솔직히 내 말이 얼마나 먹힐까 반신반의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의식조차 없이 허공에 돌을 던지듯이 해 본 말인데, 말하는 표정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저렇게 진지할 수 있는 아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성철이가 공책 정리를 하지 않고 있기에 가볍게 나무라며 이유를 물었더니 서슴없이 대답했다.
"선생님, 전 영어를 하나도 모릅니다. 적어 봤자 뭐합니까?"
"모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런데 정말 영어를 하나도 모를까?"
그렇게 말하고는 칠판에 다음과 같은 단어를 적어 나갔다.
love heart home I mother god
그리고 다시 이렇게 물었다.
"이 중에서 모르는 단어가 있니?"
그런 건 다 압니다. 하지만...."
"왜, 너무 쉬운 단어라는 거야?"
"예."
"너는 사랑이 쉽니?"
"예?"
"네 가슴 속에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니? 그리고 너의 집과 네 자신과 집에 계시는 엄마가 아무것도 아니니? 넌 엄청난 영어를 알고 있는 거야. 너는 신도 알고 있잖아."
"에이, 선생님 그건 말도 안 돼요."
성철이 말대로 나는 그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로 우리는 더욱 친한 사이가 되었다. 다음 날 수업 시간, 성철이의 표정을 보니 영어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눈치였다. 나를 보는 눈빛도 전에 없이 맑아 보였다. 그런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 앞에서 친절 서약을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을 배려하기보다는 내 자신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릇 생명이 있는 것들은 그 존재 앞에 겸손하고 친절한 자세로 다가가는 자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줄 터. 친절하겠다는 약속을 다시 새겨 본다.
안준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17쪽. 우리교육.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