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맛있는 수업을 했습니다.”
올해는 1학년 영어를 맡았다. 그런데 어렵고 딱딱한 과목이라서 그랬는지 첫 시간인데도 아이들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때, 나는 낙담하기보다는 이제 곧 바뀌고 말 아이들의 환한 표정을 미리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내 머릿속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각본이 이미 짜여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름으로 출석을 부른다. 아이들은 제 이름에 영어로 대답을 하면서 2초 동안 나와 눈을 맞추어야 한다. 절반을 나의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눈맞춤을 하지만 무두 뒤끝은 좋다. 웃으면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 여학생과 이런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선생님, 너무 어색해요.”
“나도 어색해. 지금 노력하고 있는 거야.”
웃자고 한 말도 아닌데,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 끝에 아이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어둑한 초저녁 거리에서 수은등이 몇 번 깜빡거리다가 환한 빛을 발하듯이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중요하다. 중요한 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출석부를 덮고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펴게 한 뒤, 다음과 같은 영어 문장을 칠판에 적어 나갔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they call it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며, 내일은 하나의 신비이다.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오늘을 선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요 단어, 곧 key word는 ‘현재, 혹은 오늘날’이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present'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today(오늘)를 present(오늘, 혹은 선물)라고도 말한다는 것. 나는 그런 내용을 That's why(그래서, 혹은 그런 이유로) 구문과 함께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 뒤 말을 이었다.
“어제는 역사이다. 아무래도 이 말은 여러분이나 저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 같지요? 정말 그럴까요? 역사가 위대한 정치가들이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만의 전유물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게임을 하느라 5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오늘은 1시간을 줄여 4시간만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어제는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는 일을 도전해서 성공했으니 그것이 여러분의 역사인 것이지요. 지금까지 공책 정리를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친구가 공책 정리를 잘하게 된다면 그것도 역사를 새로 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내일이 신비스러운 미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겠지요?”
나는 잠깐 아이들을 둘러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늘 하루가 내게 주어진 선물처럼 느껴지는. 혹시 그런 친구가 있으면 손을 한 번 들어보세요. 한 사람도 없나요? 그럼 오늘 하루가 끔찍한 재앙처럼 느껴지던가요?”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선물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아니면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일 뿐일까. 아이들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으로 보아 그 답이 선물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 하루가 정말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예.”
대답과 함께 피어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마치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하루하루가 선물 같다면,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나날일 수 있다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난 공부도 못하는데, 난 잘하는 것도 없는데, 난 너무 게으른데, 난 꿈도 없고 미래도 없는데. 그리고 난 실업계에 들어왔는데….’
그런 생각을 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 고민하면서 책을 펼치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어 문장 ‘오늘은 선물이다.’
‘아이들에게 오늘이 과연 선물일 수 있을까? 갈수록 경쟁을 부추기고 성적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재려는 교육풍토 속에서 과연 아이들은 새롭게 다가온 또 하루가 선물로 느껴질까? 더욱이 성적에 밀려 실업계 들어온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라면.’
그때 내 머릿속에 수직으로 금이 하나 그어졌고, 그것이 지워지면서 수평선과도 같은 금 하나가 다시 그어졌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칠판 위 아래로 수직의 금을 먼저 그어 내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수직선은 여러분의 학교 성적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재려고 하지요. 물론 학생에게 성적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좀 더 잘할 수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근본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성적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수직의 잣대로 여러분의 가치를 재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또 하나, 수평선이 있습니다. 저는 이 수평의 잣대로 여러분을 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모두 동일합니다. 여러분이 조금 부족하고 못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으로 여러분을 차별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멋진 순간들이 여러분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가꾸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는 않겠지요?”
그날 나는 아주 맛있는 수업을 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잇는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그렇다면 참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어려운 시대일수록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야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엇보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이 소중하다.
안준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202~206. 우리교육.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