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그러고보니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를 스쳐간 아이들이 '그후 어떻게 되었을지'를.  더러 일 년에 두어 번 쯤 연락이 오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나를 스쳐간 그 아이들은 지금 행복할까? 나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알려나 주었을까?

책을 덮고 난 지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시 한 번 꼭꼭 씹어가며 봐야겠다'는 것이다. 한 번 읽고 난 책은 얼마쯤 지나면 느낌만 남고 구체적 내용은 거의 잊어버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다시 펴들지 않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독서 습관을 가진 자신을 알기 때문에 지금 바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작정이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마음씀이 크게 다가왔는데 목차를 다시 눈여겨 보니 학급살림에 필요한 여러가지 팁들도 챙길 것이 많다. 첫날 '생명값'에 대한 대한 이야기,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는 맹세,  '생리통'을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 담임 생일 챙김받는 법, 소풍날 베스트 드레서 뽑기, 방학 전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 믿고 기다리는 법, 부모님 직업을 대하는 마음, 편지로 마음 전하는 법,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남은 사랑을 단련시키는 방법 등등... 그리고 사려깊게 초임교사를 배려하는 맺는 글까지.

실업계 초임 교사 시절의 시련(그건 확실히 시련이었다. 그 시절 나는 일주일에 두어번은 꼭 눈물을 흘려야했으니까..)이 나에게 준 교훈은 이런 것이었다. 먼저 '그저 속아주자'. 아이들이 속이려고 작정하고 거짓말 하면 나로서는 그저 속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짓인줄 모른다면 자연스럽게 속아넘어갈 것이고, 거짓인 줄 안다해도 끝까지 아이의 거짓됨을 밝히는 것이 오히려 나쁠 것 같아서 속아주는 편이, 그러면서 그의 말을 믿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건 밑지는 장사는 아닐거라 생각했다. 나를 속이면서 아이의 마음이 그저 신나고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니 스스로 잘못을 반성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를 아이의 '진실'을 압살하지 않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렇게 일부러 속아주는 일이 궁극적으로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담임을 속이면서 아이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들어앉을 죄의식과 거짓, 불성실... 등등도 해결이 되질 않았다. 그저 속아주는 것 보다는 오히려 이러저러한 내 마음과 걱정, 잘못 등을 솔직하게 아이와 나누는 것이 더 진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고쳐진 부분이다.

당시 유행하던 모 호텔의 광고 카피는  '우리의 목표는 귀하의 감동입니다'였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아이들의 감동'이었다. 환경미화 할 때 밥 싸와서 같이 먹기, 청소 늘 같이하기, 편지쓰기, 상담하기... 등등을 수단으로! 일단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내 말을 들어주니까 그들이 감동 먹을 때까지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이들의 마음만 얻었을 뿐, 그후 아이들 인생에 어떤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저 내가 그 마음을 얻었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떠날 수 있도록 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런 활동들이 자기 만족에 불과했음을.

교직을 전문직이라고들 한다. 전문직.... 무엇을 전문직이라고 할까? 왜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할까? 일반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일을 전문직이라고 한다. 의사도 판검사도 전문직이다. 그들은 물리적인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 교사도 생명을 다룬다.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것이다. 교사들은 때에 따라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수도, 죽어있는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교직을 전문직이라 부르는 이유는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 내는 것을 의무로 해야하는 직업이라는 뜻일게다. 그러나 나는 본다. 살아 있는 아이들을 너무나 쉽게 죽여버리는 이 땅의 교사들을, 교육제도를! 그 속에 일부분인 나 자신을...

안준철 선생님, 그의 손을 거치면 아이들은 살아난다. 절망하고 좌절하던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게되고 다른 사람도 또한 그런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인 목숨만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다시 말해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알아야 진실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러한 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이다. 방법은 한 가지이다. 대상을 진정 사랑하는 것.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전부 내어놓는 것이다. 투명하게 열어놓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를 보여주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목적없이 무작정 믿어주거나, 감동을 주는 일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사랑받는 법,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힘을 잃지 않도록 하는, 그런 목적부터 세우는 작업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그건 거창한 무엇은 아닌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 그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나누는 일, 그것일뿐이다. 더구나 내 곁엔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내게 그런 힘을 주는 동료들이 있다.

나는 안다. 내일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갈등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 모습을, 내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줄 용기를 얻었다. 해서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친다.

2004. 9. 13.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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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09-22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 아이들은 가시 면류관이 아닐까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러나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는, 우리는 가르치는 '교사'이기 이전에,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난 '선생'이잖아요. 해콩선생님의 상처를 저도 앓았던 적이 있고, 지금도 중증이지만, 안준철 선생님의 글을, 이상석 선생님의 글을 삶의 전부라고 읽지 않으시길... 우리에게도 간혹은 환한 순간도 있잖아요. 그래서 전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늘 품고 삽니다. 억지로라도 행복해야 할 이유. 우리는 교사니까요, 아니 선생이니깐. 힘내세요. 해콩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