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냥짜리 이야기
옛날 옛적에 어떤 잘난 퇴물 정승이 살았것다.
이 정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조상 잘 둔 덕에 벼슬자리 하나 꿰차고 나서 그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결이 일면 이는 대로 제 몸 保全 하나는 기가 차게 잘 하고 살아온 爲人이라, 남들은 입바른 소리깨나 하다가 귀양살이 옥살이도 심심찮게 하더라마는 이 사람은 평생 납작 엎드려 힘쎈 놈 눈치만 살핀 덕분에 용케도 벼슬 한 번 떼이지 않고 원도 없고 탈도 없이 벼슬 중에 꼭대기 벼슬 정승 노릇까지 잘 해먹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이 늘그막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니 할 일이 있겠는가.
아 평생 동안 한 일이라고는 어떡하면 벼슬자리 안 떼일까 그저 밤낮으로 감투만 움켜잡고 벌벌 떠는 일뿐이었으니, 그 감투 내 놓은 마당에 할 일은 무슨 할 일. 평생 토색질로 긁어모은 財物은 곳간에 넘쳐나겠다, 갖가지 맛좋은 음식은 부엌에 썩어나겠다, 귀한 비단옷 공단옷은 장롱에 그득하겠다, 심부름할 하인들은 집안에 득시글득시글하겠다, 이러니 그저 탈이라면 심심한 게 탈이거든. 하루 종일 방에 서성서성, 마루에 왔다 갔다, 마당에 어슬렁어슬렁, 문간에 들락날락, 이러고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이런 판에 궁하면 통하더라고 이 정승한테 좋은 수가 하나 생겼구나. 무근 수가 생겼는고 하니, 이야기를 그저 밤낮으로 질리고 물리도록 들어보자는 수가 생겼네 그려. 자, 이렇게 수가 난 정승 擧動한번 볼까나. 널리고 깔린 게 財物이니 어디 금덩이는 없을쏘냐. 九重에 감춰 둔 궤에서 천 냥짜리 커다란 금덩이 하나를 꺼내다가, 지나가는 사람 잘 보라고 추녀 끝에 매달아 놓는구나. 번쩍번쩍하는 금덩이를 푸줏간에 고기 매달 듯 추녀 서까래에 떡하니 매달아 놓고, 그 앞에 榜을 하나 큼직하게 내다붙였것다.
“누구든지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되, 내가 아주 질려서 듣기 싫다고 할 때까지 하는 사람한테 이 금덩이를 주겠노라.”
이렇게 榜을 내다붙여 놓으니 그 구경이 볼 만하지. 당장에 所聞이 천지사방 퍼지는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금세 온 天地에 짜하게 퍼져 놓으니 그 어지간하지 않겠나. 며칠 사이에 팔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이야기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아주 문 앞이 큰 저자가 돼 버렸네.
그 많은 이야기꾼들이 줄을 서서 정승 앞에 나가 이야기를 하는데, 이놈의 정승은 아무리 긴 이야기를 해 줘도 도무지 듣기 싫다는 말을 않으니 낭패지. 자꾸 자꾸 ‘또 해라, 또 해라.’이러니 당최 감당을 할 수 있나. 아, 아무리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한 이틀 하고나면 밑천이 동이 날 것 아닌가. 그러면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그러면 사람이 바뀌어서 또 하고, 그 사람이 또 나가떨어지고, 그러면 사람이 바뀌어서 또 하고 이러거든. 이놈이 하고 나면 저놈이 하고 저놈이 하고 나면 이놈이 하고. 이놈이 하고 나면 저놈이 하고 저놈이 하고 나면 이놈이 하고, 아 이렇게 석 달 열흘 동안 八道 이야기꾼들이 줄줄이 죄다 거쳐 갔는데도 그놈의 금덩이는 그냥 덩그렇게 추녀 끝에 매달려 있단 말이지.
이때 남의 집 머슴 사는 가난뱅이 총각 하나가 그 집을 찾아왔것다.
“이 댁이 금덩이 걸고 이야기 듣는다는 그 정승 대감 댁이오?”
보아하니 너덜너덜 해어진 옷에는 땟국이 주르르 흐르고 머리는 땋은 건지 흐트려 놓은 건지 모르는 쑥대밭이거든. 저것이 이야기를 해 봐야 얼마나 하겠나 싶어, 정승 입에서는 그만 심드렁하니 하품이 나온다.
“그래, 그렇다마는 너는 무슨 일로 왔느냐?”
“무슨 일로 왔겠습니까? 이야기 한마디 하러 왔지요.”
“너도 이야기를 할 줄 아느냐?”
“할 만큼 하지요. 그런데, 거 대감이 듣기 싫다고 할 때까지만 하면 저 금덩이는 틀림없이 제 것이 되는 거지요?”
“그렇지.”
“그럼 시작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삼천리 골골마다 쥐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응, 그래.”
“그래서 곳간이고 헛간이고 곡식이 남아돌고, 논이고 들이고 나락 이삭이 그냥 수북하니 쌓여 있었지요.”
“그런 그렇겠지.”
“이 때 中國 너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쥐들이 쫄쫄 굶게 생겼지요.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쥐 먹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쥐들이 모두 모여서 議論을 했습니다.”
“어떤 議論을 했다는 게냐?”
“압록강 건너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곡식이 남아돈다니 우리 모두 거기로 이사를 가자, 이렇게 의논을 했지요. 그리고 쥐들 몇 천 만 마리가 한 줄로 서서 강을 건너옵니다.”
“압록강을?”
“예. 압록강을 건너오는데, 거기 무슨 쥐 태울 배가 있었겠습니까? 또 배가 있다 한들 그 많은 쥐들을 어찌 다 태우겠습니까? 그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엄을 쳐서 건너옵니다.”
“응, 그랬단 말이지.”
“맨 처음에 제일 큰 쥐가 떡하니 앞장을 서니,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고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었지요.”
그래서?“
“이게 꼬리를 잘 물고 건너야지 안 그러면 모두 물에 빠져 죽으니까 잘 물어야 합니다.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야 이놈아. 알았으니까 그 다음 이야기를 해라.”
“안 되지요. 쥐가 다 건너와야 다음 이야기를 하지요.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야, 이놈아. 그 꼬리 무는 건 알았으니까 어서 그 다음 이야기를 하라지 않느냐?”
“가만 계십시오. 쥐가 다 건너와야 그 다음 이야기를 할 것 아닙니까?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아무리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재미난 이야기를 해야 밤새 듣든지 말든지 하지, 이건 뭐 죽으나 사나 그냥 꼬리를 문다는 얘기뿐이니 어디 참고 듣겠는가. 나중에는 아주 귀가 아파 죽을 지경인데, 질려서 꾸벅꾸벅 졸다가 개어나 보면 아직도 꼬리 문다는 얘기만 하고 앉았으니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아, 아직도 그놈의 꼬리를 다 안 물었어?”
“그럼요. 中國 쥐가 어디 좀 많아야지요. 아직 멀었습니다.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날이 훤하게 새도록 그 놈의 꼬리 문다는 얘기는 한도 없고 끝도 없고, 한잠 자고 나도 그놈의 꼬리 문다는 얘기고, 밥 먹을 때도 뒷간에 갈 때도 그냥 졸랑졸랑 따라다니면서 그놈의 꼬리 문다는 얘기만 줄창 해대니 이거 어디 사람이 견디겠는가.
“이 오라질 놈아. 이제 그 꼬리 얘기 제발 그만두고 딴 얘기 좀 해봐.”
“안 되지요.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이쯤 되니 제 아무리 인색한 정승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지.
“이 썩어빠질 놈아. 그놈의 꼬리 얘기 한마디도 더 듣기 싫으니 당장 그만해라. 아주 신물이 난다, 신물이 나.”
그제서야 총각이 반색을 하는구나.
“정말이지요? 방금 틀림없이 듣기 싫다했지요?”
“그래, 이놈아. 듣기 싫어서 아주 넌덜머리가 난다. 어서 저놈의 금덩이 가지고 썩 나가!”
이래서 천 냥 짜리 금덩이 얻어서 잘 살았더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