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냥짜리 이야기

 

  옛날 옛적에 어떤 잘난 퇴물 정승이 살았것다.

  이 정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조상 잘 둔 덕에 벼슬자리 하나 꿰차고 나서 그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결이 일면 이는 대로 제 몸 保全 하나는 기가 차게 잘 하고 살아온 爲人이라, 남들은 입바른 소리깨나 하다가 귀양살이 옥살이도 심심찮게 하더라마는 이 사람은 평생 납작 엎드려 힘쎈 놈 눈치만 살핀 덕분에 용케도 벼슬 한 번 떼이지 않고 원도 없고 탈도 없이 벼슬 중에 꼭대기 벼슬 정승 노릇까지 잘 해먹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이 늘그막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니 할 일이 있겠는가.

  아 평생 동안 한 일이라고는 어떡하면 벼슬자리 안 떼일까 그저 밤낮으로 감투만 움켜잡고 벌벌 떠는 일뿐이었으니, 그 감투 내 놓은 마당에 할 일은 무슨 할 일. 평생 토색질로 긁어모은 財物은 곳간에 넘쳐나겠다, 갖가지 맛좋은 음식은 부엌에 썩어나겠다, 귀한 비단옷 공단옷은 장롱에 그득하겠다, 심부름할 하인들은 집안에 득시글득시글하겠다, 이러니 그저 탈이라면 심심한 게 탈이거든. 하루 종일 방에 서성서성, 마루에 왔다 갔다, 마당에 어슬렁어슬렁, 문간에 들락날락, 이러고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이런 판에 궁하면 통하더라고 이 정승한테 좋은 수가 하나 생겼구나. 무근 수가 생겼는고 하니, 이야기를 그저 밤낮으로 질리고 물리도록 들어보자는 수가 생겼네 그려. 자, 이렇게 수가 난 정승 擧動한번 볼까나. 널리고 깔린 게 財物이니 어디 금덩이는 없을쏘냐. 九重에 감춰 둔 궤에서 천 냥짜리 커다란 금덩이 하나를 꺼내다가, 지나가는 사람 잘 보라고 추녀 끝에 매달아 놓는구나. 번쩍번쩍하는 금덩이를 푸줏간에 고기 매달 듯 추녀 서까래에 떡하니 매달아 놓고, 그 앞에 榜을 하나 큼직하게 내다붙였것다.

“누구든지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되, 내가 아주 질려서 듣기 싫다고 할 때까지 하는 사람한테 이 금덩이를 주겠노라.”

  이렇게 榜을 내다붙여 놓으니 그 구경이 볼 만하지. 당장에 所聞이 천지사방 퍼지는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금세 온 天地에 짜하게 퍼져 놓으니 그 어지간하지 않겠나. 며칠 사이에 팔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이야기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아주 문 앞이 큰 저자가 돼 버렸네.

  그 많은 이야기꾼들이 줄을 서서 정승 앞에 나가 이야기를 하는데, 이놈의 정승은 아무리 긴 이야기를 해 줘도 도무지 듣기 싫다는 말을 않으니 낭패지. 자꾸 자꾸 ‘또 해라, 또 해라.’이러니 당최 감당을 할 수 있나. 아, 아무리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한 이틀 하고나면 밑천이 동이 날 것 아닌가. 그러면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그러면 사람이 바뀌어서 또 하고, 그 사람이 또 나가떨어지고, 그러면 사람이 바뀌어서 또 하고 이러거든. 이놈이 하고 나면 저놈이 하고 저놈이 하고 나면 이놈이 하고. 이놈이 하고 나면 저놈이 하고 저놈이 하고 나면 이놈이 하고, 아 이렇게 석 달 열흘 동안 八道 이야기꾼들이 줄줄이 죄다 거쳐 갔는데도 그놈의 금덩이는 그냥 덩그렇게 추녀 끝에 매달려 있단 말이지.

  이때 남의 집 머슴 사는 가난뱅이 총각 하나가 그 집을 찾아왔것다.

  “이 댁이 금덩이 걸고 이야기 듣는다는 그 정승 대감 댁이오?”

  보아하니 너덜너덜 해어진 옷에는 땟국이 주르르 흐르고 머리는 땋은 건지 흐트려 놓은 건지 모르는 쑥대밭이거든. 저것이 이야기를 해 봐야 얼마나 하겠나 싶어, 정승 입에서는 그만 심드렁하니 하품이 나온다.

  “그래, 그렇다마는 너는 무슨 일로 왔느냐?”

  “무슨 일로 왔겠습니까? 이야기 한마디 하러 왔지요.”

  “너도 이야기를 할 줄 아느냐?”

“할 만큼 하지요. 그런데, 거 대감이 듣기 싫다고 할 때까지만 하면 저 금덩이는 틀림없이 제 것이 되는 거지요?”

  “그렇지.”

  “그럼 시작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삼천리 골골마다 쥐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응, 그래.”

  “그래서 곳간이고 헛간이고 곡식이 남아돌고, 논이고 들이고 나락 이삭이 그냥 수북하니 쌓여 있었지요.”

  “그런 그렇겠지.”

  “이 때 中國 너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쥐들이 쫄쫄 굶게 생겼지요.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쥐 먹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쥐들이 모두 모여서 議論을 했습니다.”

  “어떤 議論을 했다는 게냐?”

  “압록강 건너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곡식이 남아돈다니 우리 모두 거기로 이사를 가자, 이렇게 의논을 했지요. 그리고 쥐들 몇 천 만 마리가 한 줄로 서서 강을 건너옵니다.”

  “압록강을?”

  “예. 압록강을 건너오는데, 거기 무슨 쥐 태울 배가 있었겠습니까? 또 배가 있다 한들 그 많은 쥐들을 어찌 다 태우겠습니까? 그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엄을 쳐서 건너옵니다.”

  “응, 그랬단 말이지.”

  “맨 처음에 제일 큰 쥐가 떡하니 앞장을 서니,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고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었지요.”

  그래서?“

  “이게 꼬리를 잘 물고 건너야지 안 그러면 모두 물에 빠져 죽으니까 잘 물어야 합니다.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야 이놈아. 알았으니까 그 다음 이야기를 해라.”

  “안 되지요. 쥐가 다 건너와야 다음 이야기를 하지요.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야, 이놈아. 그 꼬리 무는 건 알았으니까 어서 그 다음 이야기를 하라지 않느냐?”

“가만 계십시오. 쥐가 다 건너와야 그 다음 이야기를 할 것 아닙니까?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아무리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재미난 이야기를 해야 밤새 듣든지 말든지 하지, 이건 뭐 죽으나 사나 그냥 꼬리를 문다는 얘기뿐이니 어디 참고 듣겠는가. 나중에는 아주 귀가 아파 죽을 지경인데, 질려서 꾸벅꾸벅 졸다가 개어나 보면 아직도 꼬리 문다는 얘기만 하고 앉았으니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아, 아직도 그놈의 꼬리를 다 안 물었어?”

  “그럼요. 中國 쥐가 어디 좀 많아야지요. 아직 멀었습니다.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날이 훤하게 새도록 그 놈의 꼬리 문다는 얘기는 한도 없고 끝도 없고, 한잠 자고 나도 그놈의 꼬리 문다는 얘기고, 밥 먹을 때도 뒷간에 갈 때도 그냥 졸랑졸랑 따라다니면서 그놈의 꼬리 문다는 얘기만 줄창 해대니 이거 어디 사람이 견디겠는가.

  “이 오라질 놈아. 이제 그 꼬리 얘기 제발 그만두고 딴 얘기 좀 해봐.”

  “안 되지요.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그 쥐 꼬리를 물고…….”

  이쯤 되니 제 아무리 인색한 정승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지.

  “이 썩어빠질 놈아. 그놈의 꼬리 얘기 한마디도 더 듣기 싫으니 당장 그만해라. 아주 신물이 난다, 신물이 나.”

  그제서야 총각이 반색을 하는구나.

  “정말이지요? 방금 틀림없이 듣기 싫다했지요?”

  “그래, 이놈아. 듣기 싫어서 아주 넌덜머리가 난다. 어서 저놈의 금덩이 가지고 썩 나가!”

  이래서 천 냥 짜리 금덩이 얻어서 잘 살았더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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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기장수 송사풀기 /서정오


  옛날 옛날 어느 곳에 밑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하나 살았것다.

  아, 이 사람이 얼마나 가난했는고 하니 굶기를 먹듯 하고 먹기를 굶듯 하고, 벗기를 입듯 하고 입기를 벗듯 하고, 잠은 수숫대 기둥에 거적문 단 움막에서 자면서 그저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알고 살았던 것이다. 예나 이제나 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있는 사람 편이라서, 한 번 가난에 빠지면 웬만해서는 헤어나기 어려운 법이라 이 사람도 험한 일 궂은 일 안 가리고 죽자사자 일을 했건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버는 족족 쓰기 바빠 살림 나아지기는 해가 서쪽에서 뜨기보다 더 어려우니 이 일을 어찌할꼬. 저 하나 굶는 거야 팔자라 하더라도 처자식 굶는 모습 차마 보기 민망하여, 이 사람이 窮理 끝에 어디서 듣기로 사기장사 사급 남고 옹기장사 오급 남는다는 말을 들은지라 이웃에 다니면서 어찌어찌 빚을 내어 옹기장사를 사직했네그려.

  빚낸 돈으로 옹기전에 가서 옹기를 사는데, 장독도 사고 물동이도 사고 항아리도 하고 뚝배기도 사고 이놈도 사고 저놈도 사고 큰 것도 사고 작은 것도 사고 갖추갖추 다 사서, 이것을 지게에다 올려놓기를 장독 위에 물동이 얹고 물동이 위에 항아리 얹고 항아리 위에 뚝배기 얹어다가 새끼줄로 뚝딱뚝딱 이리 얽고 저리 매어 불끈 짊어지고서 조선팔도 골골이 팔러 가는구나. 가다가 가다가 어디까지 갔는고 하니 전라도 해남땅 바닷가 한 고을에 떡하니 가서, 그 고을 들어가는 고개를 넘다가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파 잠간 쉬어 가자하고 지게를 받쳐 놓고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숨 한 번 얌전하게 골랐것다.

  아 그런데 재수 없는 놈은 위로 자빠져도 코 깨진다더니, 이때 마침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휘리리릭 불어와 가지고서 옹기짐을 휙 싸잡아 넘어뜨려 버렸네그려. 아이쿠, 이런 변이 있나. 어린아이 무동 태우듯 옹긋옹긋 쟁여 놓은 옹기짐이 눈 깜작할 새에 팍삭 쓰러져 부서지는데 손을 쓸려니 쓸 겨를도 없어, 눈 말똥말똥 뜨고 그 피 같은 옹기들 죄다 사금파리 조각되는 것 구경이나 하고 있었지 뭐 다른 수가 없었구나.

  한참이나 지난 뒤에 精神을 차리고 보니, 아이고 억울하고 원통하기가 이를 데 없거든. 그만 두 다리를 뻗쳐놓고 땅을 치며 大聲痛哭을 하다가, 이럴 게 아니라 이 고개 넘기 전에 귀동냥으로 듣자니 이 고을 원님이 訟事를 그리 잘 본다 하니 거기 가서 하소연이나 한번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빈 지게 짊어지고 터덜터덜 관가로 갔것다. 가 보니 과연 원님 하나가 동헌 마루에 앉았는데 눈빛이 밝은 것이 슬기 있어 뵈는구나.

  “옹기장수 아무개 아룁니다. 저는 이날 이때까지 굶기를 먹듯 하고 먹기를 굶듯 하고, 벗기를 입듯 하고 입기를 벗 듯하고 살다 보니 저 하나 굶는 거야 팔자라 하더라도 처자식 굶는 모습 차마 보기 민망하여, 듣자하니 옹기장사 이문이 많다기에 이웃에 다니면서 어찌어찌 빚을 내어 옹기 한 짐 해다가 짊어지고 나섰는데, 그것 하나 못 팔아보고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에 몽땅 잃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한 일도 아니고 바람이 한 일을 가지고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마는, 하도 억울하고 원통하여 하소연이나 할까 하고 찾아왔으니 부디 꾸짖질랑 마십시오.”

  원님이 가만히 들어보니 事情이 참 딱하거든. 옹기장수 말마따나 사람이 한 일도 아니고 바람이 한 일이니 누구 탓을 할 수는 없으나, 이 송사를 아니 풀고 그대로 내보냈다가는 멀쩡한 사람 하나 실성하기 똑 좋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이 窮理 저 窮理 끝에 좋은 수를 하나 내 가지고 옆에 서 있는 이방더러 넌지시 묻는다.

  “이방, 이 고을에서 살림께나 있어 부자소리 듣고 사는 이 누구인고?”

  “이 고을 부자라면 배 가지고 장사하는 삶들이 다 부자 축에 들지요.”

  “그렇군. 그 사람들 중에 오늘 배가 나간 사람들이 있는가?”

  “예. 오늘 아침에 김 부자네 배가 동쪽으로 나갔고, 이 부자네 배가 서쪽으로 나갔습니다.”

  “옳거니. 그것 참 잘 된 일이로세. 어서 가서 그 두 사람을 불러 오게나.”

  이방이 곧장 사령들을 시켜 김 부자와 이 부자를 불러다가 동헌 뜰에 대령시켜 놓으니, 원님이 먼저 김 부자를 보고 은근히 묻는다.

  “김 부자는 들으시오. 오늘 아침 그대의 배가 동쪽으로 나갔다는 게 사실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 배가 잘 가려면 바람이 어떻게 불어야 하오?”

  “그야 서풍이 불어얍지요.”

  “오늘 아침에 서풍이 불라고 빌었소?”

  “오늘 아침뿐 아니라 하루 종일 빌었지요.”

  원님이 은근한 웃음 한 번 짓고 나서, 이번에는 이 부자를 보고 묻는다.

  “이 부자는 들으시오. 오늘 아침 그대의 배가 서쪽으로 나갔다는 게 사실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 배가 잘 가려면 바람이 어떻게 불어야 하오?”

  “그야 동풍이 불어얍지요.”

  “오늘 아침에 동풍이 불라고 빌었소?”

  “오늘 아침뿐 아니라 하루 종일 빌었지요.”

  그제서야 원님이 무릎을 탁 치더니 내놓는 말이 이렇구나.

  “이제 알았네. 옹기짐이 왜 쓰러졌나 했더니 그대들 두 사람 때문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들어보시오. 저 사람이 오늘 옹기짐을 지고 우리 고을을 지나다가 회오리바람에 옹기짐이 무너져 피 같은 옹기를 다 잃었소. 이것이 그대들 탓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글쎄요. 우리는 아직도 그게 왜 우리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답답한 사람들을 봤나. 아 한 사람은 서풍이 불라고 빌고 한 사람은 동풍이 불라고 비니 용왕님인들 무슨 재주가 있겠소? 두 사람 所願 다 들어주자니 서풍도 되고 동풍도 되는 바람을 내보낼 수밖에. 그게 회오리바람이 돼서 저 사람 옹기짐을 무너뜨린 게요. 아직도 내 말을 모르겠소?”

  그제서야 두 사람도 원님 말뜻을 알아차렸지. 돈깨나 있는 두 부자가 가난하고 원통한 옹기장수 옹기값 좀 물어주라는 뜻을 왜 모르겠어?

  “아이고 듣고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우리 탓입니다. 당장 옹기값을 물어주도록 하지요.”

이렇게 해서 옹기장수는 옹기값을 받아 가지고 다시 장삿길을 떠났는데, 웬 장사가 그리 잘 됐는지 단박에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가난을 면하고 잘 살더라는 이야기. 작은책


* 함께 생각해봅시다

1. 원님이 바람에 깨진 옹기 값을 마을의 두 부자에게 물도록 한 까닭은?

2. 김 부자와 이 부자는 잘못한 것도 없이 옹기 값을 물어주었다. 어떤 마음에서일까?

3.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무엇일까? (읽기 자료 읽고 요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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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블레스 오블리제


상류사회 즉 귀족계급의 도덕적 의무, 책임감을 뜻하는 말로서, 시작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했다. 그들은 제일 먼저 기부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바쳤다. 이것을 본 평민들도 앞 다퉈 세금을 내게 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미덕은 중세와 근대 사회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간주됐다. 사회가 혼란에 휩싸이면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리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를 방어적 퇴각이라고 하는데, 최근 경제위기를 맞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지도층인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강조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얼마 전 대원외고에서 치루어진 '골든벨을 울려라'에서 마지막 50번째 문제의 정답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였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당시의 귀족들은 책무를 다하는 고귀한 신분(노블리스 오블리제)으로서 행동하여 로마 사회의 본보기가 되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과 기부금을 내는 것은 그들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자긍심으로 삼았다. 따라서 계속된 전투의 과정에서 지도자계급에 속하는 이들 귀족이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로마 건국 이후 5백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분의 1로 감소했다고 한다.

의회 민주주의의 창시국이면서도 여왕제와 귀족제도가 남아있는 영국에서, 아르헨티나와 싸웠던 포클랜드 전쟁당시 영국의 앤드류 왕자는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의 역할은 전함의 주위에 떠 있으면서 전함으로 날아드는 미사일을 대신 맞는 것이었다. 즉, 영국의 많은 병사들을 대신해 자신이 죽겠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이야기이다.


부끄러운 사례지만, 조선의 멸망 과정을 돌아보면 자신의 나라를 망하게 한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상을 받은 지배층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로부터 1910년 10월 7일 후작 6명, 백작 3명, 자작 22명, 남작 45명 등 모두 76명이 합방 공로작을 수여받아 당대에도 호의호식했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에는 조국을 팔아먹은 그들의 자손들까지 당당하게 부와 명예를 대물림했다는 점이다. 혹한의 추위와 중국인의 천대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음지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기가 막힐 노릇이다.


6.25 때 전선에서 총에 맞으면 ‘빽’이 없어 죽는다 하여 '빽'이라는 비명을 지르며 죽었다는 농담이 단순한 우스갯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이 요즈음 증명되고 있다. 신문에는 며칠째 박노항 원사가 체포된 이후, 소위 사회지도층과 고위직인사들이 자녀들의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저지른 부정과 비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모양이다. 조선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와 명예를 누리며 법적 특권까지 부여받은 사회지도층은 왜 우리에게 이런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가 ?

그러나 무능·부패하고 부정직한 일부 정치인들을 향해 푸념만 할 때가 아니라, 우리 자신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지도층에게만 높은 도덕성이 필요하겠는가? 우리 모두가 무책임, 무질서, 무원칙의 중병에 걸려 있지 않은가? 이 중병을 누가 치료할 것인가? 정치인들을 욕하기 전에 그런 줄 알면서, 질긴 학연, 지연, 향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뽑은 우리들 책임은 없는가? 조국을 떠나기 위해 이민행렬에 줄서 있는 30∼40대의 엘리트들이여 그대들은 이 조국에 무엇을 했는가? 이국땅 만주벌판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 지하실 바닥에서 모진 고문에 쓰러진 애국자들의 터 위에 무임승차하여 민주와 부와 자유를 누린 세대가 아닌가?


그대들이야 말로 우리 시대의 노블레스가 아닌가? 이제 조국의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비젼이 보이지 않는다고 달콤한 꿀을 찾아 떠나겠다는 말인가? 이민자의 삶이 달콤하지만은 않겠지만, 새롭고 신선한 꿀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솔제니친은 소련 시대에 전체주의 비판으로 정부로부터 탄압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국외로 추방되는 것을 거부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앞다투어 망명을 받아 주려고 했지만 본인은 자신을 핍박하는 조국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조국(祖國)이란 말을 쓰는 것이 새삼스러운 시대이지만,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나라를 건강하게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고 본다. 20∼40대여! 이제 우리가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뿌리내리는 전통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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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광포~”리영희 2003. 한겨레신문


“인류의 정의가 위난에 다다랐다…”

  언론인 리영희(74) 한양대 대우 교수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위협과 한반도 긴장 고조에 항의해 18일 중풍을 앓는 손으로 직접 쓴 한문으로 된 글을 ‘한겨레 신문사’에 보내왔다. 리 교수는 “전인류와 한반도가 미국의 광란 때문에 불바다가 되려 한다” 고  걱정하며 “우리는 반전과 평화를 위해서 소리 높여 외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글을 쓴 이유를 밝혔다.

 

否氏狂暴 不知其極:부시의 광포함이 그 끝을 알 수 없고,

狂暴 : 미친 듯이 행동이 난포함


人類正義 卽到危難:인류의 정의가 위난에 다다랐으며

危難 : 위급한 재난.


錦繡疆土 將變火海:삼천리 금수강산이 장차 불바다가 될 것이니,

 

韓民唬呼 反戰平和:한민족이여, 반전 평화를 소리 높여 외치자!

唬 : 범의 울음, 외치다, 큰소리로 부르다, 웅얼거리다, 놀라다, 놀라게 하다[호]

呼 : 숨내쉬, 부를, 부르짖을, 슬프다할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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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ꡒ장애인이긴 하지만 나는 인생이 즐거워요ꡓ

                                                                                                           - [오체불만족]의 지은이 오토다케 히로타다


  나는 평소에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위험에 대비하는 민감한 성격 때문이다. 아무리 덥고 목이 말라도 수돗가에 아이들이 북적거리면 절대로 가지 않고 그냥 꾹 참고 있을 정도로 철저했다.

 

  그런데 내게 난관이 닥쳐왔다. 學校에서 '마라톤 카드'를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運動場을 한 바퀴 돌 때마다 도쿄에서 하코네까지 地圖가 그려진 카드에 철도역을 하나씩 색칠해 가는 아침 마라톤이었다. 다카기 선생님은 나를 어떤 식으로 참가시키면 좋을까 사흘 정도 고민하던 끝에 이런 提案을 반 아이들 앞에 내놓으셨다.

  "다른 사람은 한 바퀴 돌면 기차역 하나를 색칠할 수 있지만 오토가 한 바퀴 돌면 기차역 네 개를 칠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좋아요~."

  "그래. 오토! 우리 열심히 해 보자."

  "네. 저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께서 고안해 내신 '오토의 룰'인 셈이다. 나도 뒤질 이유가 없다.

 

  다음 날부터 하코네를 향한 여행길에 나섰다. 그러나 다카키 선생님은 고민을 하고 계셨다. 마라톤은 여러 겹 줄을 서서 달린다. 엉덩이를 끌어당기며 간신히 달려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가 學生들에게 걷어차이지나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이다. 걱정은 杞憂로 끝났다. 6학년 兄들이 함께 달려 주기로 했던 것이다. 함께 달린다고는 하지만 조깅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이 느린 속도. 그래서 순번을 정해서 자신의 마라톤 코스를 끝내고는 다시 내게로 돌아와 대열을 만들어 주었다. 다른 아이들이 잘못해서 나를 걷어차지 않도록 前後左右에서 6학년 兄들이 지켜 주었던 것이다.

  그날 따라 웬 눈이 그리도 많이 내렸는지, 운동장 여기저기에 눈이 녹아 질퍽거렸다. '엉덩이가 젖으면 안되잖아.' 兄들은 나를 덥석 들어다가 마른땅으로 옮겨 주곤 했다. 마치 달리는 '호위팀' 같았다. 다카기 선생님은 이런 모습을 보며 정말 흐뭇해 하셨다.

 

  그렇게 사람들의 도움은 나를 강하게 했다. 6學年 여름, 수영 기록을 作成하는 때가 다가왔다. 6學年 전원이 25미터를 끝까지 헤엄치는 것이 목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만만치 않다. 수영장은 수심 1미터. 내 키는 겨우 70센티미터. 더구나 나는 손발이 없어 뜨지를 못한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선생님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에 뜨지 못하는 나를 훈련시켰다. 그냥 물에 나를 넣고 잡고 계신 것이었다. 그러기를 여러 날. 나는 5년 만에 6미터를 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25미터 헤엄치는 수영 대회. 中間에 쉴 수 없는 나를 위해 선생님과 친구들은 기구를 만들었다. 내 몸에 딱 맞은 매트. 그 안에 나를 집어넣고 수영 대회에 나가는 것이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결전의 그 날.

"19조 1코스. 오토다케. 요가 초등학교!"

그 案內 방송에 따라 나는 다이빙대에 서서 몸을 던졌다. 언제나처럼 中間까지는 순조로운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러나 물이 너무 차다. 그래서 다리가 생각대로 잘 움직여 주질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쑥쑥 앞으로 나아가 버리고, 그 넓은 수영장에는 이제 나만 남았다. '정적'. 그때를 표현할 수 있는 딱 맞은 단어일 것이다. 나만 남게 되자 수영장은 갑자기 쥐죽은듯이 조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정적은 곧 무너졌다. 커다란 환성과 박수 소리. 게다가 그것은 다른 두 학교에서 보내 주는 응원이었다. 물 속에서 악전고투하던 나는 비로소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깨달았다. 다른 學校 學生들로부터 받은 응원이라서 기쁘기도 했지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氣分이었다.

 

  1분 57초. 겨우 25미터를 헤엄치는데 2분에 가까운 時間이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다른 두 學校에서 또다시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박수 세례였다. 그때 반 친구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저기 저 아줌마들이 울고 계세요!"

學父母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둥절한 아이들의 반응에 선생님은 내심 흐뭇해 하셨다. '나'라는 存在를 그냥 평범한 친구로만 대했던 그 아이들. 25미터를 헤엄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感動했지만 그 아이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길 만큼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던 환경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선생님은 '정말 잘 했다'며 나를 끌어안는 감격적인 場面 대신에 '1분 57초가 뭐냐? 연습할 때보다 훨씬 늦었잖아!' 라며 꾸짖으셨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꾸지람 속에 얼마나 따뜻한 사랑이 숨쉬고 있는지를….


『五體不滿足』은 일본 장애인 오토다케가 살아온 이야기와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 닫혔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다. 흔히 장애인은 불행할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지 않음을 온몸으로 말해준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음에도 울적하고 어두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팔다리가 없는데도 매일 활짝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는 "장애인이긴 하지만 인생이 즐겁다"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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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1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나온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그의 모습에서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우는 느낌을 받았읍니다. 인생은 즐겁지만 그도 모든 사람처럼 애환과 슬픔과 속상함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