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장수 송사풀기 /서정오


  옛날 옛날 어느 곳에 밑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하나 살았것다.

  아, 이 사람이 얼마나 가난했는고 하니 굶기를 먹듯 하고 먹기를 굶듯 하고, 벗기를 입듯 하고 입기를 벗듯 하고, 잠은 수숫대 기둥에 거적문 단 움막에서 자면서 그저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알고 살았던 것이다. 예나 이제나 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있는 사람 편이라서, 한 번 가난에 빠지면 웬만해서는 헤어나기 어려운 법이라 이 사람도 험한 일 궂은 일 안 가리고 죽자사자 일을 했건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버는 족족 쓰기 바빠 살림 나아지기는 해가 서쪽에서 뜨기보다 더 어려우니 이 일을 어찌할꼬. 저 하나 굶는 거야 팔자라 하더라도 처자식 굶는 모습 차마 보기 민망하여, 이 사람이 窮理 끝에 어디서 듣기로 사기장사 사급 남고 옹기장사 오급 남는다는 말을 들은지라 이웃에 다니면서 어찌어찌 빚을 내어 옹기장사를 사직했네그려.

  빚낸 돈으로 옹기전에 가서 옹기를 사는데, 장독도 사고 물동이도 사고 항아리도 하고 뚝배기도 사고 이놈도 사고 저놈도 사고 큰 것도 사고 작은 것도 사고 갖추갖추 다 사서, 이것을 지게에다 올려놓기를 장독 위에 물동이 얹고 물동이 위에 항아리 얹고 항아리 위에 뚝배기 얹어다가 새끼줄로 뚝딱뚝딱 이리 얽고 저리 매어 불끈 짊어지고서 조선팔도 골골이 팔러 가는구나. 가다가 가다가 어디까지 갔는고 하니 전라도 해남땅 바닷가 한 고을에 떡하니 가서, 그 고을 들어가는 고개를 넘다가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파 잠간 쉬어 가자하고 지게를 받쳐 놓고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숨 한 번 얌전하게 골랐것다.

  아 그런데 재수 없는 놈은 위로 자빠져도 코 깨진다더니, 이때 마침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휘리리릭 불어와 가지고서 옹기짐을 휙 싸잡아 넘어뜨려 버렸네그려. 아이쿠, 이런 변이 있나. 어린아이 무동 태우듯 옹긋옹긋 쟁여 놓은 옹기짐이 눈 깜작할 새에 팍삭 쓰러져 부서지는데 손을 쓸려니 쓸 겨를도 없어, 눈 말똥말똥 뜨고 그 피 같은 옹기들 죄다 사금파리 조각되는 것 구경이나 하고 있었지 뭐 다른 수가 없었구나.

  한참이나 지난 뒤에 精神을 차리고 보니, 아이고 억울하고 원통하기가 이를 데 없거든. 그만 두 다리를 뻗쳐놓고 땅을 치며 大聲痛哭을 하다가, 이럴 게 아니라 이 고개 넘기 전에 귀동냥으로 듣자니 이 고을 원님이 訟事를 그리 잘 본다 하니 거기 가서 하소연이나 한번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빈 지게 짊어지고 터덜터덜 관가로 갔것다. 가 보니 과연 원님 하나가 동헌 마루에 앉았는데 눈빛이 밝은 것이 슬기 있어 뵈는구나.

  “옹기장수 아무개 아룁니다. 저는 이날 이때까지 굶기를 먹듯 하고 먹기를 굶듯 하고, 벗기를 입듯 하고 입기를 벗 듯하고 살다 보니 저 하나 굶는 거야 팔자라 하더라도 처자식 굶는 모습 차마 보기 민망하여, 듣자하니 옹기장사 이문이 많다기에 이웃에 다니면서 어찌어찌 빚을 내어 옹기 한 짐 해다가 짊어지고 나섰는데, 그것 하나 못 팔아보고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에 몽땅 잃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한 일도 아니고 바람이 한 일을 가지고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마는, 하도 억울하고 원통하여 하소연이나 할까 하고 찾아왔으니 부디 꾸짖질랑 마십시오.”

  원님이 가만히 들어보니 事情이 참 딱하거든. 옹기장수 말마따나 사람이 한 일도 아니고 바람이 한 일이니 누구 탓을 할 수는 없으나, 이 송사를 아니 풀고 그대로 내보냈다가는 멀쩡한 사람 하나 실성하기 똑 좋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이 窮理 저 窮理 끝에 좋은 수를 하나 내 가지고 옆에 서 있는 이방더러 넌지시 묻는다.

  “이방, 이 고을에서 살림께나 있어 부자소리 듣고 사는 이 누구인고?”

  “이 고을 부자라면 배 가지고 장사하는 삶들이 다 부자 축에 들지요.”

  “그렇군. 그 사람들 중에 오늘 배가 나간 사람들이 있는가?”

  “예. 오늘 아침에 김 부자네 배가 동쪽으로 나갔고, 이 부자네 배가 서쪽으로 나갔습니다.”

  “옳거니. 그것 참 잘 된 일이로세. 어서 가서 그 두 사람을 불러 오게나.”

  이방이 곧장 사령들을 시켜 김 부자와 이 부자를 불러다가 동헌 뜰에 대령시켜 놓으니, 원님이 먼저 김 부자를 보고 은근히 묻는다.

  “김 부자는 들으시오. 오늘 아침 그대의 배가 동쪽으로 나갔다는 게 사실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 배가 잘 가려면 바람이 어떻게 불어야 하오?”

  “그야 서풍이 불어얍지요.”

  “오늘 아침에 서풍이 불라고 빌었소?”

  “오늘 아침뿐 아니라 하루 종일 빌었지요.”

  원님이 은근한 웃음 한 번 짓고 나서, 이번에는 이 부자를 보고 묻는다.

  “이 부자는 들으시오. 오늘 아침 그대의 배가 서쪽으로 나갔다는 게 사실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 배가 잘 가려면 바람이 어떻게 불어야 하오?”

  “그야 동풍이 불어얍지요.”

  “오늘 아침에 동풍이 불라고 빌었소?”

  “오늘 아침뿐 아니라 하루 종일 빌었지요.”

  그제서야 원님이 무릎을 탁 치더니 내놓는 말이 이렇구나.

  “이제 알았네. 옹기짐이 왜 쓰러졌나 했더니 그대들 두 사람 때문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들어보시오. 저 사람이 오늘 옹기짐을 지고 우리 고을을 지나다가 회오리바람에 옹기짐이 무너져 피 같은 옹기를 다 잃었소. 이것이 그대들 탓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글쎄요. 우리는 아직도 그게 왜 우리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답답한 사람들을 봤나. 아 한 사람은 서풍이 불라고 빌고 한 사람은 동풍이 불라고 비니 용왕님인들 무슨 재주가 있겠소? 두 사람 所願 다 들어주자니 서풍도 되고 동풍도 되는 바람을 내보낼 수밖에. 그게 회오리바람이 돼서 저 사람 옹기짐을 무너뜨린 게요. 아직도 내 말을 모르겠소?”

  그제서야 두 사람도 원님 말뜻을 알아차렸지. 돈깨나 있는 두 부자가 가난하고 원통한 옹기장수 옹기값 좀 물어주라는 뜻을 왜 모르겠어?

  “아이고 듣고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우리 탓입니다. 당장 옹기값을 물어주도록 하지요.”

이렇게 해서 옹기장수는 옹기값을 받아 가지고 다시 장삿길을 떠났는데, 웬 장사가 그리 잘 됐는지 단박에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가난을 면하고 잘 살더라는 이야기. 작은책


* 함께 생각해봅시다

1. 원님이 바람에 깨진 옹기 값을 마을의 두 부자에게 물도록 한 까닭은?

2. 김 부자와 이 부자는 잘못한 것도 없이 옹기 값을 물어주었다. 어떤 마음에서일까?

3.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무엇일까? (읽기 자료 읽고 요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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