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바람에게, 햇살은 햇살에게, 흐르는 강물은 강물에게, 바다는 바다에게, 풀 한 포기 조용히 흔들리며 자라는 그 삶도 풀 한 포기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다. 내가 차지하지 말고, 내가 해석하고 이해한다 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있고싶다. 그 곁에 나도 너처럼 있고 싶다. 너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싶겠지? 늘 아름다웠지만 단풍으로 다시 새로운 너를 바라보면서, 오늘은...

참! 좋은 말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며 곁에 있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하려 하다가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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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3-01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4년 문집 표지로 이용했다. 이철수님께 감사의 멜이라도, 엽서라도 띄워야하는데... 어쩌지?
 

경희샘이 영화를 보자고 문자를 보내왔다. 실은 2001년 담임했던 3-12반 녀석들-정질, 배소, 황양, 등-이 보고싶다고 해서 1시쯤에 약속을 잡아두었는데 저녁 때로 살짝 미루고 경희샘과 점심먹고 영화보고 차 마셨다. '꽃피는 봄이 오면' 최민식이 나오는.. 그저 잔잔한 감동. 좀 작위적이라 실망도.. 그리고 물꼴 가서 둘이 차 마시며 총회 프로그램에 대해 의논도 하고 바람부는 금정산도 말없이 바라보고.. 이런 저런 얘기.

약속시간 10분전. 둘이 화들짝 놀라 아이들과의 약속 장소인 롯데마트로. 거의 7시가 되어서야 이지가 오고 다 모였다. 오늘따라 밥을 먹으려니 힘이 든다. 내가 강추한 두부마을은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고, 낮에 보아둔 돈까스 집은 자리가 없고, 함경면옥은 함흥냉면이 아니라서 좀 그렇고...  이리 저리 다리 품 팔며 밥집 찾아다니다가 짜증이 나려는 즈음, 아구찜 간판 발견! 합의보고 들어갔다. 좀 매워서 다들 어찔어찔..

다 먹고 나올 때쯤 싸가지 있는 우리 정질, 계산서를 달라하더니마는 핸폰계산기 톡톡 두드리며 모두 얼마 나왔는지 계산하더니마는 하는 말이 "샘은 됐구요, 애들아 7,600씩 내라" 에잉 뭔짓인고?..  순간 나는 뒤집어졌다. 솔직히 이렇게 다섯 여섯명을 한꺼번에 만나면 아이들 밥값이 부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밥 정도는 항상 선생인 내가 사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녀석들은 내가 부담스러울까봐 미리 얘기를 해둔 것이었다. 더치라나? "정질.. 뭔짓이고? 진짜 웃겨죽겠다. 2차는 느들이 사라. 그럼됐제? 글고, 샘 추석보너스도 탔다. 괜찮다."  우리 정질 예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못이기는 척, 계산서를 내민다. 이쁜 것.

정질... 너무 예쁜 녀석이다. 배소도!  나... 아이들을 차별하는걸까? 그건 아닌데 특히 이 녀석들에게 맘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2001년 담임 할 때부터 그랬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연락을 자주 주고 나를 더 많이 따른다는 피상적 이유보다는 아마도 '나를 알아준다' 믿음 때문일 것이다. 오늘따라 녀석은 더 살갑게.. 팔짱을 살짝 끼며 "샘 이런 거 좋아하잖아요~"하는데 맘이 다 설렜다. "니 미팅도 안하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나중에 내 꼴난다. 남자 친구도 사귀고 좀 그래라" 했더니 "샘의 애제자로서 뒤를 열심히 따르고 있지요~ ^^" "그런거 열심히 따르면 엄마가 싫어하실껄. 나보고 욕하시겠다" "아니예요. 샘 신경 많이 써주셨다고 좋아하세요" "신경? 뭐? 별로 없는데... 사실 니가 아이들 뒷얘기도 많이 꼰질라주고... 그랬지.. 쁘락치.. ^^"

다 컸다. 우리 정질. 옛날엔 내가 저 좋아한다는 표현 슬며시 하면 부담스러워서 피하기만 하더니 이젠 지가 내 맘 읽고 이렇게 따뜻하다. 보람이란 이런거겠지? 왠지 정질이나 배소는 나와 같은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든든하다.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 이지, 황양, 진박.. 그리고... 다들 나의 재산이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 이건 분명 남는 장사다. ^^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이 산 디카를 굴리며 놀다가 오늘 또 늦은 귀가. 예쁜 제자들을 만나고 참 기분좋게 웃은 하루였다. 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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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난 후, 진박이 집에가서 바로 멜을 보내왔다. ^^

 TO. 쌤

쌤요~ ㅎ 저는야 유진임니데잉~ㅋㅋ 오랜만에 선생님을 모습을 보니 방가웠어요! ㅎ  은진이 쌤이 온다고 하시길래 모든 일을 마다하고 갔죠  근데 지각해서 죄송합니데이^^;

선생님의 멋진 용돈 이벤트!  그거 유용하게 잘 쓸께옹 ^^  자주자주 뵙지도 않고 연락도 잘 안하지만  저의 마음속엔 언제나 난희쌤이있어요 ㅎ(진박의 느끼멘투~ㅎㅎ)

이 밤중에 선생님에게 추석인사 드리고 멜로 날릴겸 컴터앞에 앉았어요  이번 추석은 생각외로 주말까지 합쳐서 기네요 ㅎ 긴만큼 가족들과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겠쬬 ㅎㅎ

쌤요~ 추석날 송편과 맛난 음식 많이 드시구요 보름달보면서 소원두 빌구요 조카들과 재미난 시간두 보내시구요 ㅎ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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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9-26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리라고 합니다. 꾸벅~ ^-^
느티나무님 서재 통해서 들어왔는데 덕분에 좋은 글 많이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어여쁘고, 해콩 선생님꼐서는 어쩜 이리도 멋지고 아름다우신지.. 읽다가 자꾸 눈물이 퐁퐁 나오려고까지 하네요. (아이, 초면에 주책;;)
앞으로 종종 찾아뵙고 글 읽고 가도 괜찮겠지요? ^^
편안하고 즐거운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해콩 2004-09-2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 안녕하세요? 느티나무님 서재를 통해서 들러주시는 님이 꽤있으신 것 같아요. 제 점방-서재-은 거의 개인자료 저장창고, 일기장 정도의 의미여서 저는 다른 님들의 서재는 거의 들르지 않는 편인데... 님들은 이렇게 찾아주시고 긴 글 읽어주시니 민망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하고 고맙기도하고 그러네요. 가끔 놀러오셔서 흔적 남겨주시면 저야 늘 '남는 장사'이지요.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좀 더 열심히 해야지~ 자극도 되구요. 님도 가을바람처럼 상쾌한 나날되셔요. 감사함돠!! 꾸우~벅 ^^
 

 어제 학급운영 모임에서 너무 늦제 돌아와 또 1시 넘어 자버렸다. 무거운 눈을 뜨니 6시 40분. 또 늦었다. 7시 20분에는 나가야하는데... 서둘러 씻고 밥대신 냉장고에 든 메론을 으적으적 씹으며 대충 화장하고.. 아! 아이들 추석맞이 이벤트는 어쩐다? 하는 수 없다. 동전 가지고 가야지. 집안에 있는 100짜리 동전 탈탈 털어가지고 종종 걸음으로 정류소까지 갔다. 정류소 맞은 편, 약국! 아! 레모나는 어떨까?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 일단 뛰어들어 가 40봉을 샀다. 그리고 또 냅따 뛰어 출발하려는 차에 오르고.. 헉헉 바쁘다 바빠.

오늘은 일과가 단축 운영된다. 40분씩 단축 수업에 1교시도 8시 50분에 시작.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추석이라 이리 저리 샘들을 챙겨드릴 일도 많아서 계속 분주하게 종종종... 출산휴가 들어갈 두 선생님 책상에 아기 배냇저고리 살짝 올려놓고 착한 우리 부장샘께는 롤케잌,  다 챙기고나니 4교시 우리 반 수업. 레모나와 동전주머니를 챙겨넣었다. 2교시 후, 정반장이 감기로 조퇴하면서 오늘의 이벤트를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몰라~ 입단속을 못했네. 하지만 몇몇이 알고있다한들... ^^

어제 조례시간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 나를 이렇게 쭉 기분좋게 해주면 내일 기쁜 일이 두 가지 있을거야~"  "뭐요 샘~" "지난 번처럼 송편이겠지" "샘 송편 빚어서 우리 주실라구요?"  "뭐라고~ ^^; 나는 송편 못 빚어요. 그럴 시간도 없구요" 아이들 야자 결석이 너무 많아서 즉석에서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 금요일, 내일부터는 자유~ 평소에도 야자 결석이 많은 우리반, 오늘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으므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첫번째 '기쁠 일'은 단축 수업으로 오늘(토) 12시에 일과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번째 '기쁠 일'은 어떡하지? 먹는 것? ... 이건 너무 식상해. 이때까지 너무 많이 줘서 나도 재미가 덜하기도 하고... 뭐 쌈빡한 거 없을까? 작은 정성으로 크게 기쁠 수 있는 추석이벤트... 뭐 없을까? 

사실 어제 아침에 아이들에게 그런 멘트를 날린 가장 큰 이유는 ㅅㅎ의 멜 때문이었다. "샘, 추석 용돈 주세요~" ㅅㅎ는 반 장난이고 애교였겠지만 순간 나는 '그래, 용돈을 줘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럼 얼마? 현금을 아이들에게 바로 준다는 것이 교육적일까?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다른 이벤트를 준비할 겨를도 없었고 작은 돈 정도야 비교육적인 것은 아니고 또 재미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3교시 후, 청소 안 해두면 청소하고 집에 간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교실도 깨끗하다. 어라~ 조금 이쁜 걸.. 찐하게 수업하고 나서.. 종례시간.
레모나 돌리며 말하기를
"느들 엄마들께 드리는 거다. 느들 꺼 아니다. 집에 가지고 가서 엄마 드려야한다. 추석 때 피곤하시니까."
100원 짜리 동전 돌리며 말하기를
"자... 용돈이다. 우리 반 누가 샘한테 멜 보내서는 추석용돈을 달라하더라고.. 이걸로 빵도 사먹고 동생 맛난 것도 좀 사주고... 남는 돈은 느그 써라~"
"우하하... 예, 샘 그래도 남겠어요. 영화도 볼께요~"
"영화? 그라면 좀 부족하지 않을까? 에라~ 기분이다. 돈도 남는데 100원씩 더 준다!"

역시 현금은 현금 만의 매력이 있다. 변변한 과자 하나 못 사먹는 단 돈 200원으로 우리반 다 같이 한 5분 동안 즐거웠다. 예뻤던 건 조퇴한 아이 때문에 남은 돈 100원, 그리고 우찌우찌 남은 돈 200원을 아이들이 내게 돌려주려고 한 것. 그냥 슬쩍 자기 가져도 되는데 굳이 돌려주는 모습이 참 예뻐서, 그래서 그 녀석들에게 그 돈을 다시 은밀히 쥐어주었다. "이런, 정직한 것들!!" 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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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용돈 이벤트에 대한 아이들의 답장.

앗영하세요~쌤~ㅎ 민주임돵.ㅋ 쌤한테능.첨으로 쓰는 메일이네요오=

오늘.쌤이 주신 200원으로.백원더 보태서.울반애들이랑.학교앞에.고구마호떡사먹엇어요. 진짜~.맛잇어요.쌤도 함 드셔보세용.ㅎ 글고.레모나는 낵아 먹으려다가. 엄마 어디 나가셔서 아버지 오시길래 드렷쬬.- 잘해찌용?ㅋㅋ

인제.추석이네요~. 여름방학때 부터 시골에 가고 싶어햇는데.이번엔 특히.쫌 설레이는게 잇네요. 조아요.ㅎ 할아버지댁은 하동지나서 청암이고. 차타고 한 30분더가면 외할아버지댁도 잇어요. 그래서 둘 다 갓따 올수 잇찌요~.넘 조아요.★ 또 추석이라고. 목욕또 깨끗히 해주고, 혜진이랑 혜리가 사준.팩도 하고요.~ㅋ  ㅎ_ㅎ

난희쌤~.추석 잘 보내시구요.♥ 맛난거쫌.만이 드시고. 제발.살쫌 찌세요오- 저능. 자제하면서 먹어야겟찌만요.ㅋ 배탈 조심하시고~.추석 잘보내세요~^ㅡ^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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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26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 내가 걱정했던 대로 야자 엄청 빠져나갔다. 보내준 녀석들 말고도 한 3~4명은 간 것 같은 느낌. 28명 남아있어야하는데 18명이 남아있었단다. 일부러 야자출석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명절 전에 괜히 애들 째려보게 될 것 같아서... 모든 잘못들은 추석 지나고 '응징'한다고 엄포를 단단히 놓고 10월부터는 최소한 보충수업은 못빼준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입시체제에서 '아이들 스스로 공부시키기' 내겐 가장 힘든 과제다.
 

논어 9장 자한편  마지막 구절이 맘에 와 닿는다.

唐체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산앵도나무꽃 바람에 팔랑팔랑.

어찌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집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으니..

공자 말씀하셨다. 간절하지 않음이겠지. 먼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

: 앞 두 구절은 [詩經]의 한 부분이다. 뒷부분은 물론 공자님이 이에 대한 해설을 붙인 것이니 유학자들은 '학문에 대한 사랑, 추구' 등등 판에 박힌 말로 풀이하겠지삼 내가 볼 때 이 시는.. . 으~ 이 연애시의 결정판이다!! 나름대로 풀이를 토대로 의역한 해석.. 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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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축 너무 자주하면 좀 그렇겠지만... 이런 작은 축하는 잦을수록 좋지 않겠어요? ㅋㅋ. 방문객 수 300명.. (이 안에 주인장이 포함되는 거면 반 이상이 내가 방문한 걸껀데.. ^^;) 어쨌든 잊지않고 찾아주시는 님들.. 감사합니다. 보름달만큼 환한 추석 보내세요. 연휴 중에도 저희 업소(서재)는 쭉~ 문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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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301

축하드려요...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해콩 2004-09-25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1번째 물만두님, 캄사캄사.. 한번 쏘긴 쏴야겠는걸요~ 이렇게 자주 축하메시지 남겨주시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