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샘이 영화를 보자고 문자를 보내왔다. 실은 2001년 담임했던 3-12반 녀석들-정질, 배소, 황양, 등-이 보고싶다고 해서 1시쯤에 약속을 잡아두었는데 저녁 때로 살짝 미루고 경희샘과 점심먹고 영화보고 차 마셨다. '꽃피는 봄이 오면' 최민식이 나오는.. 그저 잔잔한 감동. 좀 작위적이라 실망도.. 그리고 물꼴 가서 둘이 차 마시며 총회 프로그램에 대해 의논도 하고 바람부는 금정산도 말없이 바라보고.. 이런 저런 얘기.
약속시간 10분전. 둘이 화들짝 놀라 아이들과의 약속 장소인 롯데마트로. 거의 7시가 되어서야 이지가 오고 다 모였다. 오늘따라 밥을 먹으려니 힘이 든다. 내가 강추한 두부마을은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고, 낮에 보아둔 돈까스 집은 자리가 없고, 함경면옥은 함흥냉면이 아니라서 좀 그렇고... 이리 저리 다리 품 팔며 밥집 찾아다니다가 짜증이 나려는 즈음, 아구찜 간판 발견! 합의보고 들어갔다. 좀 매워서 다들 어찔어찔..
다 먹고 나올 때쯤 싸가지 있는 우리 정질, 계산서를 달라하더니마는 핸폰계산기 톡톡 두드리며 모두 얼마 나왔는지 계산하더니마는 하는 말이 "샘은 됐구요, 애들아 7,600씩 내라" 에잉 뭔짓인고?.. 순간 나는 뒤집어졌다. 솔직히 이렇게 다섯 여섯명을 한꺼번에 만나면 아이들 밥값이 부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밥 정도는 항상 선생인 내가 사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녀석들은 내가 부담스러울까봐 미리 얘기를 해둔 것이었다. 더치라나? "정질.. 뭔짓이고? 진짜 웃겨죽겠다. 2차는 느들이 사라. 그럼됐제? 글고, 샘 추석보너스도 탔다. 괜찮다." 우리 정질 예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못이기는 척, 계산서를 내민다. 이쁜 것.
정질... 너무 예쁜 녀석이다. 배소도! 나... 아이들을 차별하는걸까? 그건 아닌데 특히 이 녀석들에게 맘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2001년 담임 할 때부터 그랬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연락을 자주 주고 나를 더 많이 따른다는 피상적 이유보다는 아마도 '나를 알아준다' 믿음 때문일 것이다. 오늘따라 녀석은 더 살갑게.. 팔짱을 살짝 끼며 "샘 이런 거 좋아하잖아요~"하는데 맘이 다 설렜다. "니 미팅도 안하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나중에 내 꼴난다. 남자 친구도 사귀고 좀 그래라" 했더니 "샘의 애제자로서 뒤를 열심히 따르고 있지요~ ^^" "그런거 열심히 따르면 엄마가 싫어하실껄. 나보고 욕하시겠다" "아니예요. 샘 신경 많이 써주셨다고 좋아하세요" "신경? 뭐? 별로 없는데... 사실 니가 아이들 뒷얘기도 많이 꼰질라주고... 그랬지.. 쁘락치.. ^^"
다 컸다. 우리 정질. 옛날엔 내가 저 좋아한다는 표현 슬며시 하면 부담스러워서 피하기만 하더니 이젠 지가 내 맘 읽고 이렇게 따뜻하다. 보람이란 이런거겠지? 왠지 정질이나 배소는 나와 같은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든든하다.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 이지, 황양, 진박.. 그리고... 다들 나의 재산이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 이건 분명 남는 장사다. ^^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이 산 디카를 굴리며 놀다가 오늘 또 늦은 귀가. 예쁜 제자들을 만나고 참 기분좋게 웃은 하루였다. 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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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난 후, 진박이 집에가서 바로 멜을 보내왔다. ^^
TO. 쌤
쌤요~ ㅎ 저는야 유진임니데잉~ㅋㅋ 오랜만에 선생님을 모습을 보니 방가웠어요! ㅎ 은진이 쌤이 온다고 하시길래 모든 일을 마다하고 갔죠 근데 지각해서 죄송합니데이^^;
선생님의 멋진 용돈 이벤트! 그거 유용하게 잘 쓸께옹 ^^ 자주자주 뵙지도 않고 연락도 잘 안하지만 저의 마음속엔 언제나 난희쌤이있어요 ㅎ(진박의 느끼멘투~ㅎㅎ)
이 밤중에 선생님에게 추석인사 드리고 멜로 날릴겸 컴터앞에 앉았어요 이번 추석은 생각외로 주말까지 합쳐서 기네요 ㅎ 긴만큼 가족들과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겠쬬 ㅎㅎ
쌤요~ 추석날 송편과 맛난 음식 많이 드시구요 보름달보면서 소원두 빌구요 조카들과 재미난 시간두 보내시구요 ㅎ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