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급운영 모임에서 너무 늦제 돌아와 또 1시 넘어 자버렸다. 무거운 눈을 뜨니 6시 40분. 또 늦었다. 7시 20분에는 나가야하는데... 서둘러 씻고 밥대신 냉장고에 든 메론을 으적으적 씹으며 대충 화장하고.. 아! 아이들 추석맞이 이벤트는 어쩐다? 하는 수 없다. 동전 가지고 가야지. 집안에 있는 100짜리 동전 탈탈 털어가지고 종종 걸음으로 정류소까지 갔다. 정류소 맞은 편, 약국! 아! 레모나는 어떨까?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 일단 뛰어들어 가 40봉을 샀다. 그리고 또 냅따 뛰어 출발하려는 차에 오르고.. 헉헉 바쁘다 바빠.
오늘은 일과가 단축 운영된다. 40분씩 단축 수업에 1교시도 8시 50분에 시작.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추석이라 이리 저리 샘들을 챙겨드릴 일도 많아서 계속 분주하게 종종종... 출산휴가 들어갈 두 선생님 책상에 아기 배냇저고리 살짝 올려놓고 착한 우리 부장샘께는 롤케잌, 다 챙기고나니 4교시 우리 반 수업. 레모나와 동전주머니를 챙겨넣었다. 2교시 후, 정반장이 감기로 조퇴하면서 오늘의 이벤트를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몰라~ 입단속을 못했네. 하지만 몇몇이 알고있다한들... ^^
어제 조례시간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 나를 이렇게 쭉 기분좋게 해주면 내일 기쁜 일이 두 가지 있을거야~" "뭐요 샘~" "지난 번처럼 송편이겠지" "샘 송편 빚어서 우리 주실라구요?" "뭐라고~ ^^; 나는 송편 못 빚어요. 그럴 시간도 없구요" 아이들 야자 결석이 너무 많아서 즉석에서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 금요일, 내일부터는 자유~ 평소에도 야자 결석이 많은 우리반, 오늘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으므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첫번째 '기쁠 일'은 단축 수업으로 오늘(토) 12시에 일과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번째 '기쁠 일'은 어떡하지? 먹는 것? ... 이건 너무 식상해. 이때까지 너무 많이 줘서 나도 재미가 덜하기도 하고... 뭐 쌈빡한 거 없을까? 작은 정성으로 크게 기쁠 수 있는 추석이벤트... 뭐 없을까?
사실 어제 아침에 아이들에게 그런 멘트를 날린 가장 큰 이유는 ㅅㅎ의 멜 때문이었다. "샘, 추석 용돈 주세요~" ㅅㅎ는 반 장난이고 애교였겠지만 순간 나는 '그래, 용돈을 줘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럼 얼마? 현금을 아이들에게 바로 준다는 것이 교육적일까?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다른 이벤트를 준비할 겨를도 없었고 작은 돈 정도야 비교육적인 것은 아니고 또 재미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3교시 후, 청소 안 해두면 청소하고 집에 간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교실도 깨끗하다. 어라~ 조금 이쁜 걸.. 찐하게 수업하고 나서.. 종례시간.
레모나 돌리며 말하기를
"느들 엄마들께 드리는 거다. 느들 꺼 아니다. 집에 가지고 가서 엄마 드려야한다. 추석 때 피곤하시니까."
100원 짜리 동전 돌리며 말하기를
"자... 용돈이다. 우리 반 누가 샘한테 멜 보내서는 추석용돈을 달라하더라고.. 이걸로 빵도 사먹고 동생 맛난 것도 좀 사주고... 남는 돈은 느그 써라~"
"우하하... 예, 샘 그래도 남겠어요. 영화도 볼께요~"
"영화? 그라면 좀 부족하지 않을까? 에라~ 기분이다. 돈도 남는데 100원씩 더 준다!"
역시 현금은 현금 만의 매력이 있다. 변변한 과자 하나 못 사먹는 단 돈 200원으로 우리반 다 같이 한 5분 동안 즐거웠다. 예뻤던 건 조퇴한 아이 때문에 남은 돈 100원, 그리고 우찌우찌 남은 돈 200원을 아이들이 내게 돌려주려고 한 것. 그냥 슬쩍 자기 가져도 되는데 굳이 돌려주는 모습이 참 예뻐서, 그래서 그 녀석들에게 그 돈을 다시 은밀히 쥐어주었다. "이런, 정직한 것들!!" 하며. ^^
--------------------
추석용돈 이벤트에 대한 아이들의 답장.
앗영하세요~쌤~ㅎ 민주임돵.ㅋ 쌤한테능.첨으로 쓰는 메일이네요오=
오늘.쌤이 주신 200원으로.백원더 보태서.울반애들이랑.학교앞에.고구마호떡사먹엇어요. 진짜~.맛잇어요.쌤도 함 드셔보세용.ㅎ 글고.레모나는 낵아 먹으려다가. 엄마 어디 나가셔서 아버지 오시길래 드렷쬬.- 잘해찌용?ㅋㅋ 
인제.추석이네요~. 여름방학때 부터 시골에 가고 싶어햇는데.이번엔 특히.쫌 설레이는게 잇네요. 조아요.ㅎ 할아버지댁은 하동지나서 청암이고. 차타고 한 30분더가면 외할아버지댁도 잇어요. 그래서 둘 다 갓따 올수 잇찌요~.넘 조아요.★ 또 추석이라고. 목욕또 깨끗히 해주고, 혜진이랑 혜리가 사준.팩도 하고요.~ㅋ
ㅎ_ㅎ
난희쌤~.추석 잘 보내시구요.♥ 맛난거쫌.만이 드시고. 제발.살쫌 찌세요오- 저능. 자제하면서 먹어야겟찌만요.ㅋ 배탈 조심하시고~.추석 잘보내세요~^ㅡ^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