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축제 '반' , 피해보려고, 피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어찌어찌 아주 작은 한 코너를 맞게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유형 중 1.현대중공업 생산직 노동자, 2.비정규직 노동자, 3.백화점 판매원, 4.화이트칼라-대리,과장,부장급 간부 그리고 5.백수, 이 다섯 유형의 인물을 아이들이 인터뷰해서 정리하도록하고 그것을 다시 우드락에 예쁘게 꾸미는... 뭐 그런 작업이었다.

처음 하는 일을 워낙에 겁내는 스타일이라 일주일쯤 전 이모(!) 샘이 이 일을 맡기려고 했을 때 정말 외면하고 싶었다. 어쩌면 분회참실 강사도 맡아야할 형편인데 더 이상 어떤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심신의 부담이 너무 컸다. 그치만 어쨌든 그 다섯 경우를 한 사람이 모두 맡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싶어서 많으면 둘, 가능하면 하나 정도는 내가 할 수도 있겠다 각오했다.

지난 월요일.. 출근길에 '반' 축제를 꾸리는 장김샘께 이 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고 나머지 다섯 유형을 맡은 석포여중 샘께 연락을 해보니 의외로 일이 간단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인터뷰할 인물유형 섭외하고 또 봉사시간 받고 그 일을 할 아이들 섭외하고... 뭐 그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어찌어지 백화점 판매원이랑 비정규직 노동자 섭외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수업들어가는 아이들에게 봉사시간 필요한 녀석은 내게 오라 했다. 일단 우리반 공략... 평소 나를 따르는 아이들에게 미끼를 확 던졌다. 일은 쉽고 주어지는 봉사 시간은 노력에 비해 많은 편이며 또... 일요일 나랑 같이 축제 가게 되면 점심밥은 샘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그리고 다른 반은 안모샘, 최모샘 반 반장들을 좀 보내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하겠다고 나선 아이들이 세팀.. 어라~ 아이들 섭외하는 것도 인터뷰 인물 섭외하는 것도 의외로 쉬울 것 같았다. 결국 우리반 두 팀, 현옥샘반 두팀, 희숙샘반 한팀.. 이렇게 다섯 팀이 꾸려지고 다섯가지를 몽땅 내가하겠다고 말해버렸다. 한두 팀을 꾸리나 다섯 팀 모두를 꾸리나 들어갈 노력은 비슷한 것 같아서... 묻힌 김에 내가 마~ 다 하지 뭐~

토요일... 다른 반 녀석들은 다들 즈들이 알아서 일을 척척 하는데 우리 반 두 팀은 토요일 오후까지 남아서 일을 해야한단다. 내 컴퓨터를 대여하겠다고 했으니 나도 바로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내 컴은 노트북.. --; 쓰고 나서는 서랍에 넣어서 보관해야한다.) 점심은 먹여야겠다 싶어서 교직원 식당으로 함께 가서 샘들용 점심을 함께 먹고 (녀석들 입이 쩍~ 벌어지며 이색체험이라 감탄 연발..) 작업 시작...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글씨체 정해서 인쇄해주고 교실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 곁에서 봐주고.. 5시쯤.. 나는 다른 샘이랑 '주홍글씨'보러 갔다.

오늘... 일요일 아침.. 평소에는 9시, 10시까지 푹 밀린 잠을 보충하는데 오늘은 새벽같이 (8시!) 일어났다. 아이들이랑 10시에 부산역 맞은 편 롯데리아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해두었다. 집 근처 시장에서 김밥 스무줄을 샀다. 날이 날이니만큼 민주공원 내 식당에는 사람들이 버글버글 할 것이다. 소풍 때처럼 따뜻한 햇빛아래 둘러앉아 김밥 먹으면 좋겠다. 아침도 거르고 왔다고 해서 길거리에 서서 아이들이랑 사간 김밥을 먹으며 아직 안 온 아이들을 기다렸다. 민주공원 가는 버스 43번!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버스는 코스가 예술이다. 거의 롤러코스트 수준!! 전망도 쥑인다. 멀리 8부두, 해운대... 바다.. 아스라한 수평선이 보이는 그런 코스다. 나는 민주공원 갈 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를 타지 않는다. 샘들도 함 타보시길....강추..

도착! 아직 이른 시간인지 한산하다. 아이들이랑 가지고 간 작품(아이들이 만든 것은 내가 볼때 정말 '작품' 수준이다. 사진기로 찍어올 걸... 후회막심)을 이젤에 올려두고 축제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둘러보니... 아는 샘들이 꽤 많다. 다들 축제 전에 뭔가 챙기시느라 분주했는데 처음엔 이방인의 눈으로 준비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얼떨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뭐~ 주최측도 아니고 이 정도로 나는 내 역할은 다 한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그저 어쩔 수 없이 곁다리 낀 이방인이고 손님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 늘 그렇듯 일손이 많이 부족해보였다. 에그... 또 밀려오는 미안함... 뻘쭘해 하는 아이들 챙겨가며 달래가며 꼬셔가며 아주 사소한 작업이나마 도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거기 계신 샘들.. 휴일 그렇게 몽땅 반납하고 가족들 개인사 다 팽개치고 바람 쌩쌩부는 그곳에서 바들바들 떨어가며..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눈 한 번 딱 감고 들어오는 부탁 거절하면 그만인데 그걸 못해서 그러고 있는 거다. (사실 그중에는 돈 안 되는 그런 일을 스스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부탁까지 해가며 행사진행하는 샘들도 있다. 참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다. 고생을 사서한다는 표현이 딱!이다.)

그 와중에 같이 간 아이들 대부분이 핫바지에 뭐 세듯이 살짝살짝 빠져나가고 우리반 얌전이 둘과 옆반 범샘이 둘이 남았다. 어설퍼서 정감있는 개회식(?)에 같이 참석하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떼써서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는 사이에 옆반 아이 둘을 잃어버렸다. --; 갔나보다했는데 인형 만드는 코너에 가보니 그 귀여운 두 녀석이 앉아서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다. 우리 다섯명은 한 시간 정도 그 자리에 서서 그 쬐끄만 인형을 열심히 만들었다. 다리가 아프다고, 바느질이 힘들다고 조금 투덜거렸지만 평소에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우리 반 두 녀석...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시쯤에는 출발해야 가족들이랑 약속한 두시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면 생리대 재료를 얻어주겠다고 꼬셔서 그 부스를 찾아갔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아는 샘이 앉아계시길래 부탁해서 내 것 하나 퍼뜩 챙기고 아이들 돌아보면 당연하다는 듯 '이제 갈래?'했더니 어라... 녀석들은 즈들끼리 더 놀다가 오겠단다. 뿌듯... 즈들끼리 저쪽으로 달려간다. '샘 내일 봐요~' ^^ 주위 샘들께 인사하고 올 때와는 달리 진심으로 미안한 발걸음을 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내가 그 일을 맡고 싶지는 않다. 하라고 하지도 않겠지만서리... ^^;)

2004. 10. 31.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제 4회 청소년축제 '반'에 참가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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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날!! 이 날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한문 시간에 들었지? 미리 수업을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고 너희들이 이미 '학생의 날'을 알고 '스승의 날은 챙기면서 우리는 왜 안챙겨줘요~'라고 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수업 효과는 만점이지? ^^

조금 지겨운 잔소리부터 시작하자면, 지난 목요일 열명이 보충, 야자 튄 그 사건이후 인상 팍 쓰고 교실 들어가고 나오던 그 이틀 동안 나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단다. 너희들이랑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할까,  신나는 생일잔치 방법 뭐 없을까? 어떤 일로 칭찬을 듬뿍 해줄까? 늘 이런 생각만 하고 싶은데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내 머리속에 든 생각이라곤 '어떻게 너희들을 혼낼까? 너무 쉽게 도망가는 이 버릇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책임감을 좀 더 길러줄까? 내가 너무 물렁하니 녀석들이 나를 얕잡아 보고 이러는 건 아닐까? 무섭게 하면 좋아질까? 너희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이길까?... .... ' 이런 쓸데없고 괴로운 생각만 하려니 뒷골이 다 땡기고 스트레스 만땅!!! 잘못이 있든 없든 너희들 바라보며 인상쓰는 것.. 내 체질이 아니야. 예쁜 일에 웃어주는 담임.. 이것이 내 체질인데.. 어쨌뜬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담임도 힘들었을거라는 건 알아주길 바래.

그래서 어제밤.. 오늘 아침까지 계속 고민했단다. 어쩌지? 다음주 수요일이 학생의 날인데 이렇게 불편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는 싫은데.. 여기서 끝내고 다시 행복한 사이로 돌아가고 싶은데.. 여기서 또 물렁하게 끝내면 같은 잘못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좀더 길게 혼을 내야할까? 그런데 너희들은 별로 반성하는 기미는 보이질 않고 다소 뻗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면 금방 누그러지는 내 성격을 이제 너희도 알텐데 누구 하나 내려와서 사과하는 녀석 없고... 솔직히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너희는 부모님께 연락드린 것이 화나고 짜증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담임인 내 입장에서는 너희에 대한 상담을 하려면 부모님을 뵙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니?  물론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게 되면 너희들이 부담스러울테니 그것보다 더 큰 벌도 없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런 벌을 준 것이긴 하지만 설마 내가 부모님께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너희들에 관한 일- 잘못을 죄다 일러바치겠니? 어쨌든 지금으로선 월요일 너희 일곱명이 내가 내준 숙제 - 편지라도 제대로 정성껏 써주었으면 하는 바램.

그렇게 속상해하고 고민하다가 그만 화를 풀기로 했다. 언제나 제풀에 지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나라는 사실이 조금 섭섭하고 화도 나지만 어쩌겠니.. 늘 그렇듯 조금(!) 더 살았고 또 더 많이 사랑하는 내가 지는 수밖에..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어른이라고, 교사라고 해서 상처를 안 받는 것은 아니라고.. 너희들이 내 작은 말, 눈빛에 상처받듯이 나 역시 그렇다고. 우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자. 서로의 맘에 다 맞을 수는 없겠지만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도 하자. '너희들을 나의 틀에 무조건 맞추려고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늘 반성한단다. 너희들도 너희들이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상대방을 무조건 밀어내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면 좋겠어. 그게 누구든.

다시 학생의 날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생의 날을 어떻게 의미있게 보낼까? 올해 담임이 되면서부터 계속 생각해왔단다. 내가 마련한 이 작은 선물이 너희들 심장을 따뜻하게 데워준다면 정말 좋겠다. 우리들의 삶이 이 장미꽃처럼 늘 화려할 수는 없겠지만 순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도 느낄 줄 아는 우리,  막대사탕이 입안에서 천천히 녹을 때처럼 일상의 작은 일에서 달콤한 행복들을 챙겨넣을 수 있는 우리, 그러면서도 나보다 외롭고 낮고 지친 사람의 아픈 상처도 감싸 안을 줄 아는 따뜻한 우리.. 어쩌면 속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서로의 본성에 대한 믿음은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가끔은 일부러 속아 줄줄아는, 조금은 어리숙한 우리.. 손해볼 줄 아는 우리... 그렇게 조금 어리숙하고 많이 속깊고 아주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행복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할께.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기도는 할 수 있지? ^^)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건 너희들이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길, 스스로가 좋은 사람임을 끝까지 믿길!. 더불어 기도할께.

학생의 날, 진심으로 축하해. 내년에는 너희들 스스로 이 날을 챙기고 서로 축하해 주었으면 더 없이 좋겠다. 그 축하의 날 한 귀퉁이에 빙그레 웃고 있을 나도 끼워주길..

2004. 10월의 마지막 날.. 2-9 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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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을 대신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송승훈 (광동종합고등학교 교사)

                                                                                                                                                                   

세상에는 우리들이 더 미워해야 할 잘못과
스스로 뉘우침 없는 내 자신과
커다란 잘못에는 숫제 눈을 감으면서
처벌받지 않아도 될 작은 잘못에만
무섭도록 단호해지는 우리들


- 김명인, '동두천5', 동두천, 문학과지성사

 

1. 체벌을 둘러싼 풍경


1-1. 학교 바깥 풍경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교사가 학생을 너무 심하게 때렸다는 소리가 세상에 가득했다. 가르쳐달라고 학교 보냈지. 매맞고 오라고 학교 보냈나. 교사는 합법적 폭력배다. 이 멍든 자국 좀 봐라. 한참을 그러더니 갑자기 학생이 교사를 때려버렸다는 소리가 다음에 들려왔다. 막가는 세상이네.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이제 어쩔거나.
   언론에 며칠에 한번씩 교사와 학생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며 폭력의 가해자로 계속 등장하니, 보통 사람들은 뭐가 뭔지 헷갈린다. 이거 선생이 문제야? 애들이 문제야? 요새 왜 이래 이거, 하고 탄식이라도 할 법하다.
   체벌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하더니 어느날 체벌이 법으로 금지되었단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국회의원 여럿이 교육적 체벌은 허용해야 한다고 서명을 했단다. 참 어지럽다. 한쪽에서 아우성친다.
   “체벌을 없애면, 교사의 권위가 위태로워진다아~”
   다른쪽에서 받아친다.
   “그러면 때릴 권한만 주면 교사의 권위가 살아난다는 말이냐?”


1-2. 학교 안 풍경


   말썽쟁이여서 가끔 학교를 빼먹기도 하지만 총각이라고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던 지O이. 지O이는 지금 얼굴을 감싸고 내 옆에 서 있다. 얼굴이 넙적한 선생님께 앞머리를 쥐여서 끌려갔다가 머리를 손바닥으로 탁 맞고 튕겨나갔다가 또 끌려와서 또 맞고 튕겨나간다. 자기가 잘 따르던 남자 선생님 옆에서 계속 맞는 모습을 보일려니, 맞아서 아프기도 아프지만 마음은 더 아프다. 그 여학생이 모멸감을 느끼게 머리를 여러 차례 맞으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학여행 때 장기자랑에서 늦게 나왔다고, 그전에 술 사러 나갔다가 걸린 것까지 합쳐서 혼나는 아이들. 반 전체 아이들이 엎드린 채 담임 선생님에게 걷어차인다. 나중에 양호 선생님이 아이들 상처를 보고 눈물 흘리고, 그 옆반 부담임이던 나는 다음날 경주 어느 또 무슨 유적인가를 가는데 버스에서 그 반 아이들이 안 내려서 곁에 있는 아이에게 물어보다가 기겁을 한다. 왜 그러냐는 내 물음에 다리를 절면서 나를 따라오며 이야기 나누던 그 학생은 “모두 어제 저녁 발에 걷어차여서 아파서 버스에서 못 내려요. 저도 그래서 절룩거리는 거예요.”


   무서운 담임 교사 아래서 늘 겁먹어 지내는 학생들이 쓰는 언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짜증내는 언어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가치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이 갖는 언어는 풍자의 언어다. 곳곳에 날이 서 있는 말.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뒤에서 상대를 완전히 씹어버리는 말. 건설의 전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공격의 말. 저주의 말. 널부러짐의 말. 자유가 없으니 책임도 없다. 단지 벌이 무서울 뿐. 그러기에 때리지 않는 교사는 우리에게 그간 쌓인 피로를 풀 대상이다. 열린 교사는 힘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닫아버린 문 앞에서 당황한다.


   기죽은 교사들. 누가 봐도 교육적 체벌이 아닌, 폭력의 체벌을 행사하는 교사들은 요즘 좀 기죽어지낸다. 연일 방송과 신문에서 때리면 큰일난다고 떠들어대는 턱에 그렇다.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니, 참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교육부장관도 인상이 보통 아닌데, 이런 차에 한번 걸리고 큰코 다치겠구나 싶다. 내 눈앞에서 저 버르장머리없는 애들놈들을 다 때려잡고 싶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잠시 참아본다. 한쪽 귀퉁이에서 웅숭거리던 저 전교조 무리들도 합법화되었다고 아주 기가 살아서, 애들을 좀 때리면 내놓고 눈치를 팍팍 준다. 아~옛날이여. 어디 두고보자. 이 분위기가 얼마나 가는지.

 

2. 내 몸을 되돌아보며 : 폭력의 기억, 새겨짐
   내 교단 첫인상은 교생 때 기억이다. 그때 나는 내가 나오고 동생이 다니는 그야말로 모교인 동대부고로 교육실습을 나갔는데, 순간순간 ‘이건 개집이야, 개집’ 하고 중얼거렸다. 저렇게 함부로 맞고 채이면서 어떻게 선생 턱을 돌려버리지 않을까 하고 신기해했다. 어느 한 교생이 4.19를 가르쳤다고 다음날 교생들이 머무는 교실 칠판 위에 빨간 분필로 ‘쓸데없는 것 가르치지 마라’고 적혀 있기까지 해서 교생들은 모두 늘 숨막혀 했다.


   군에서 나는 내 바로 위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보인 적대감에 꽤 심란해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고 내 바로 밑으로 두 명이 들어왔다. 어느 순간 내 전투화 신은 발이 내 아래 병사의 엉덩이에 가 닿아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내게 굴종해주기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그뒤로 그 장면이 머리에 남아서 나를 흔들어댔다. 남이 나를 괴롭힐 때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저쪽이 문제가 있고 내 쪽은 문제가 없다고 여겨져서 마음이 편했는데, 내가 남을 때리는 순간 나는 폭력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그뒤로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 안에서 솟구치는 다음 주문에 시달렸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래. 원래 사람이 다 그런 거야. 뭘 위해 뭘 노력해. 여기를 벗어날 수 없는데.”


   교사인 내 손에 왜 까닭없이 힘이 들어가지? 왜 별 이유도 아닌데, 쟤를 한 대 때리고 싶지? 괜히 분한 마음이 솟아나니까 등에서는 식은땀이 배어난다. 돌아보면, 나는 꾸준히 맞으며 자라왔다. 초등학교 때 연습종이를 안 가져왔다고 뺨을 네 대나 맞고 눈물 글썽거린 일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때는 하루라도 안 맞으면 몸이 근질거려서 어색해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동아리 선배들에게 각목을 경험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늘 공권력에 학대당하는 친구들을 보고 지냈다.


   몸에 배인 폭력, 이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돌아보면, 학교에서 행사되는 폭력은 학교 바깥 사회 분위기와 적지 않게 연관되어 있다. 70년대 학교는 선배들이 후배를 때리고 군기 잡는 것을 방조하면서 은근히 격려한 분위기다. 90년대에 와서 권위주의 사회가 얼마만큼 청산되자, 이제 학교도 그 자유의 바람이 분다. 3년이 안 된 교사는 직원회의 때 발언하지 말라고 ‘아직도’ 윽박지르는 수직적 교무실 문화는 ‘폭력의 문화화’라고 이름붙일 만하다. 우리의 몸은 모두 오염되어 있다.

 

3. 어디서 체벌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는가
   어쨌든 지금 학교에서 폭력적 체벌은 줄어드는 분위기다. 사회에서 하도 이 문제를 갖고 시끄럽게 하니까 그렇다. 그러나 이게 진정한 해결방식은 아니다. 교사가 수준이 높아져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권력으로 모순을 내리눌렀기에 그렇다. 교사 집단 스스로 문화를 바꾸어나가서 극복한 게 아니기에, 지금 체벌은 해결의 길에 접어든 게 아니다. 단지 잠복기에 들어갔을 뿐이다. 조건만 갖추어지면, 언제든 다시 발병할 수 있다.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창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낡은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파괴와 창조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체벌이 왜 생기는지를 따져본다.

 

3-1. 학생에게 모욕당한다고 느낄 때 :
   교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학생이 했을 때, 교사가 자존심을 상해하며 감정이 섞여서 이루어지는 체벌이다. 보통 인간적 감정의 문제여서, 누구나 특정한 상황에서 느끼는 울컥 하는 심정이 원인이다.
   문제가 심각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흥분이 일상화되어 나타나는 교사가 그에 해당한다. 이런 교사는 까뮈가 쓴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과 닮아 있다. 햇살에 눈이 부시자 기분이 이상해져서 사람을 총을 쏴죽인 뫼르소처럼, 그냥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을 아무 의식없이 툭툭 가볍게 치기도 하고, 때로 힘주어 때리기도 한다.
   이 경우에 대안은 첫째, ‘일상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풀어가는 기술에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도 일단 하나의 인간관계라 여기면 편하다. 선생님이 앞에 있던 말던 빽빽 소리지르며 짜증내고 인상쓰는 아이들이라고 개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가정교육이 다 깨져버려서 그렇다는 비판은 타당하지만, 당장 교사의 눈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그래’ 하고 말하는 것은 무력할 따름이다.
   한탄하는 대신에, 나는, 내가 교사로서 학생에게 지킬 예의를 깍듯이 지킬 테니, 학생인 너희들도 사람이 사람에게 기본으로 지킬 예의를 교사인 나에게 지키라고 이야기한다. 내 앞에서 나보다 먼저 인상 쓰지 말고, 나보다 먼저 큰소리 내지 말고, 대화를 시도하기 이전에 짜증 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네 앞에서 건들거리지 않으니 너도 내 앞에서 바로 서 주기를 바란다며, 이래야 사람과 사람이 기분좋게 만날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하면, 학생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바로잡혀서, 감정적 체벌을 할 기회가 많이 줄어든다.
   두번째 대안은 상황을 ‘객관’의 눈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그 학생은 별 생각 없이 어떻게 하다 보니 무심코 나온 몸짓인데, 교사가 그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때는 체벌의 충동을 넘어서 폭행의 충동까지 생겨난다. 돌발상황을 예방할 수 있게 이런 학생들의 유형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쟤가 왜 저러나”
“어떻게 저 자신이 잘못하고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
하고 흥분하지 말고, 이런 일이 대한민국 어느 교실에서든 흔히 일어나는 상황임을 교사가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면 한순간 발끈 하고 폭발하는 감정에 교사가 객관적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충동적 체벌을 상당수 줄일 수 있는 한 방법이다.
감정적 체벌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렇듯, 인간관계를 푸는 기술(The Art of Love)에 그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교사와 학생이 있을 때, 그 관계를 지혜로 풀어가는 일은 교사의 몫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사람에 대한 섣부르지 않은 이해와 꾸준한 마음 공부가 필요하다. 克己復禮, 자기 안의 충동적 자아를 이겨야 공동체 윤리가 죽지 않는다!

 

3-2. 교육을 인간관리라고 보는 관점에서
   인간을 동물과 비슷한 무질서한 존재로 보고, 그런 인간을 통제-관리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정해진 통지표의 길 바깥으로 나가는 행동을 모두 ‘비정상’으로 보기에, 이 관점 아래에서는 병영 수준의 체벌이 일상에서 끊이질 않는다.
   이것은 교육철학의 문제이다. 하나의 ‘가치관’이기에 해결이 만만치 않다. 낡은 관념, 낡은 이데올로기이지만, 통제와 복종 그리고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약육강식 논리는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에서 무척 매력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현실에서 대다수 교장들의 가치관이기도 하고, 또 상당수의 학부모, 적지 않은 학생들도 여기에 동조한다. 오랜 권위주의 사회의 산물이랄까. 학교의 통제적 분위기는 교사 일방의 문제가 아니라 각 교육 주체의 동의에 어느 정도 바탕해 있다. 어떤 체벌 통계조사에서 학생들이 체벌에 찬성한다는 비율이 어느 만큼 계속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의식을 어떻게 전환시킬 수 있을까. 간단히 생각하면 교육청에서 연수하면 되지 하고 대답할지 모른다. 유인물도 몇 장 내려보내고 하는 식으로. 그렇지만 이 문제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솔직히 우리 사회는 창의적인 인간을 요구하는가? 혹시 말 잘 듣고 적당히 순종할 줄 아는 인간을 더 좋아하지 않는가? 사회 전체가 그렇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네 학교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학교에서 공식 의사소통 체계인 교무회의 문화가 그렇고, 학급 분위기가 그렇다. 이미 온몸으로 그렇게 하고 있기에, 몇 마디 말을 똑바로 한다고 해서 곧바로 바로잡힐 일이 아니다. 꼭 우리 국민들이 재벌을 입으로만 비판하면서, 온몸으로 추종하듯이 말이다. 자기 집안에 재벌에 취직한 사람이 있으면 자랑하듯이.
   사회 전체 문제이기에, 이 부분은 모든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교실에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학교에서, 교육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교육부에서 말이다. 입바른 소리로만 입시교육을 비판하지 말고, 현실에 작용하는 힘인 행동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인간관리의 교육관, 통제적 교육관은, 체벌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다.


3-3. 잘못에 대한 책임을 일깨운다는 생각에서
   이 관점은 학생들이 잘못한 데 대해 말로 일깨워서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생각이다. 감정적이거나 통제적이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적지 않은 교사들이 어느 정도 인정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두 경우에 견주어보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체벌을 없애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때 대안에는 실천적 대안과 이론적 설득이 함께 들어있어야 한다. 교사가 전문가라면 때리지 않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고, 사람의 신체에 아픔을 주는 일은 인권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수 있고, 맞으면서 자란 아이는 폭력에 무감해지고 폭력을 내면화해서 사회적 폭력을 재생산해내는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이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는 논리를 주고받으며 토론할 수 있다. 이들은 학생의 인간 발전을 최고목적으로 하지 않는 왜곡된 가치를 가진 교사들이 아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제 삶으로 교직을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칫 통제적 교육관을 갖는 사람이 이 생각을 갖는다면, 더욱 답답한 학교를 만들어낼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교육 현실이 이 관점의 극복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이다. 교실에서 학습하는 상황을 따져보자. 교사는 말하고 학생은 하루종일 가만히 앉아서 듣는다. 정해진 진도를 정해진 지식을 교사는 전하고 학생은 전해받는다. 이 수동적인 분위기 자체가 체벌을 일구어낸다. 이러한 단순행동의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이 지친 일상이 체벌을 부르는 상황으로 학생과 교사를 이끈다. 여론조사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체벌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사회적 처지에서는 그런 사회적 의식이 다수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
   하루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만 있는 학생이 무슨 예의를 익히고, 무슨 인간에 대한 배려를 배우겠는가. 정해진 커리큘럼을 바쁘게 쫓아가다보면 교사가 자기가 ‘인간’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을 때가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답답한 사회에서 우발적이고 엽기적인 폭력 사태가 일어나듯이, 교사 폭력이나 학생 폭력이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다
.

4. 체벌을 대체해서 해 볼 만한 시도들

   잘못한 학생에게 고통을 주어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희망이 없는 관점이기에, 교육적이지 않다. 진정한 ‘꾸중’이란 학생이 자기 행동을 되돌아보고, 그래서 인간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벌’을 말한다.

   벌을 안 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이상적 관점은 현실에서 무기력하다.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은 먼저 이상교육을 할 수 없게 하는 콩나물 교실이나 입시 제도나 돈을 최고가치로 여기는 사회와 싸워야 할 것이다. 다양한 욕망과 권력이 판치는 지금 학교 현실에서, 일정한 통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학생에게 억압적이지 않게 하는 평화교육의 이상은 모든 교사 누구나 고민할 영역이기도 하다. 이상은 언제나 현실의 추한 부분을 비추어주기에, 우리가 나아갈 더 나은 세계를 알려주니까. 이런 고민 속에서 현장교사들이 체벌을 대신해서 쓰고 있는 방법을 소개해본다.
   이 대안들이 교육적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가 극기복례하는 일이 필요하다. 벌은 교사가 맺힌 것을 푸는 게 아니라 학생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몸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요즘같이 공동체 문화가 해체되고 찰나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참 어렵다. 이 영역은 그러기에 인간의 영역이다. 교사가 불완전한 존재로 자신을 자각하며 늘 반성하며 깨어 있도록 애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그리고 평소 학생과 맺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교사와 학생이 관계맺을지에 대해 거듭되는 회의와 고민이 있어야겠다.
 
4-1. 몸을 움직이는 일 :
몸은 신체와 정신을 함께 포괄한 말이라 했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인다.

(1) 10초 동안 일어섰다 앉기 :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하나둘이 떠드는 건 괜찮다. 주의를 주면 되니까. 그런데 전체가 게릴라식으로 떠들면 교사는 아주 힘들어진다.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누구를 주의줘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학생들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가 10초쯤 뒤에 앉히는 방법이 쓸 만하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하고 학생들을 일어나게 한 다음, 잔소리를 길게 하면 역효과가 나니까,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딱 한마디만 하고,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하고 자리에 앉힌다. 계속 분위기가 잡히지 않으면, 다시 일어나게 했다가 20초쯤 있다가 앉게 한다. 간단하지만 학생에게, 교사가 느끼는 문제의식을 전달하는(의사소통하는) 방법으로 그만이다. 실제 써보면, 꽤 효과가 좋다. 이 벌의 힘은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스럽다는 교사의 판단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2) 재미있는 몸짓하기 :
벌을 아무리 부드럽게 준다고 해도, 잘못했다는 전제 아래에서 받는 것이기에 벌은 기본적으로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이다. (물론 속이 후련하다는 학생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수업 때 계속 정신이 없는 학생을 지적해서 일으켜 세운 다음, 거기에 맞는 재미있는 몸짓을 하게 하면, 재미있으면서도 부끄럽기에 잘못을 비억압적으로 지적하는 효과가 있다. 수업 때 서로 때리며 장난을 심하게 논 학생은, 의자를 뒤로 들고 가서 그 의자 위에 올라선 채 자유의 여신상을 흉내내게 하고, 자꾸 떠드는 학생에게는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고 의자 위에 올라가 서 있게 한다. ‘너는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을 본받아라’ 하며 슈퍼맨 자세를 취하게 해도 좋다. 그러면 벌을 주는 순간 생기는 어색한 분위기를 새로운 생기로 바꾸어낼 수 있다. 몸짓은 오래하면 안 되고 5분 안에 풀게 해준다. 이렇게 세워두는 벌은 오래해서 별로 안 좋고 짧게 인상깊게 해야 좋다. 이 벌의 힘은 잘못을 부끄러움과 우스개로 풀어내는 데 있다.

(3) 손잡고 운동장 한 바퀴 돌기 :
교육에서 통제란 그 자체가 중요한 목적이 되어 있을 때 문제이지, 모든 통제가 악인 것은 아니다. 소규모 학교가 아닌 대규모 학교에서 어느 정도 통제가 없다면, 학교는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반 전체가 책임없는 행동을 했을 때, 그래서 교사가 반 학생 전체에게 ‘그 행동은 문제가 있는 거야’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다. 두레(모둠,조)별로 손을 잡게 한 다음, 나란히 서서 운동장을 한 바퀴만 돌고 오게 한다. 손을 놓고 자기 혼자 앞질러 가는 두레(모둠)는, 다시 한 바퀴를 더 돌게 한다. 운동장에 신발주머니를 들고 나가설 때는 잠시 심각해지다가, 막상 뛰어보면,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처럼 되어버린다. 그것으로 족하다. 몸을 쓰는 벌은 무릇 시작이 엄숙하고 끝이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친구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도는 일은 색다른 인상을 준다. 어떤 행동이 마음에 새겨지면, 그 자체로 벌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기억에 새겨지는 것, 이 점이 핵심이다.

(4) 업어주기 :
학생끼리 몸을 부대끼게 하는 일이다. 말썽장이들이 계속 속을 썩일 때, 의미있는 숙제를 내주었는데도 거듭해서 해오지 않을 때, 쓰면 좋다. 수업 끝내고 불러다가 일장훈계를 한 다음, 운동장에 데리고 나가서 둘씩 짝은 지은 다음, 서로 업어주면서 정해진 거리까지 교대로 갖다 오게 하는 벌이다. 너무 힘들지 않게, 그러나 땀은 조금 날 만큼 시키면,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재미있는 벌이다. 치마 입은 여학생에게 이 벌을 시키실 분은 없겠지.

4-2. 학습과 관련해서 :
(1) 시 외우기 :
   분위기 있어지는 벌이다. 그전까지 잘못하면 두들겨맞아본 적밖에 없는 학생이, 잘못해서 교무실에 와서 시를 외우는 모습을 보면, 학생 스스로도 자신을 대견하게 여긴다. 나쁜 행동을 좋은 언어를 통해 촉촉하게 적시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시 외우기는 숙제를 안 해온다든지 하는 간단한 상황에서부터 그밖에 여러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부담없는 방법이다. 수업시간에 본 만화책을 압수했을 때, 대여점에서 빌려온 만화책이라며 돈 물어줘야 한다며 다시 돌려달라고 사정하는 학생에게 딱히 줄 벌이 마땅치 않을 때도 시 외우기는 쓸 만하다.
   소박한 수준에서 시 외우기 벌은, 학생들이 이해할 만하고, 내용도 좋은 시집 대여섯 권을 준비해놓고, 일이 있을 때마다 학생에게 시집을 한권 집어주고, 마음에 드는 걸 한편 골라서 외워오게 하면 된다. 더 적극적으로 시 외우기를 활용하려면, 상황에 따라 권해줄 시를 파일에 끼어놓고서, 그때그때에 따라 ‘이게 좋겠구나’ 싶은 시를 외워오게 하면 된다. 편집을 해서 조그마한 종이에 복사해놓고, 한 장씩 나누어주어도 좋다. 이때 주의할 점은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시, 감동이 있는 시여야 한다는 것이다. 뜻도 알지 못하는 어려운 시를 권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암기훈련일 뿐, 다른 기대 효과가 없어진다.


(2) 책읽고 글쓰기하기 :
   심각한 문제를 저질렀을 때다. 담배를 피웠을 때나, 계속 같은 잘못을 오랫동안 했을 때, 처벌 대신 쓰는 방법이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글을 받거나, 책을 한권 사오게 해서 읽게 한다. 담배 피다가 걸린 학생에게 나는 이렇게 묻는다. “학생과로 가서 벌점 받고 근신을 받을 테냐? 아니면 책을 한권 사와서 독후감을 쓸 테냐?” 이때 역시 학생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학생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고통인 그런 책은 적당하지 않다. 어려운 고전보다는 최근에 나와서 학생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책을 권하는 게 좋다. 그리고 꼭 감동이 있는 책이어야 한다. 감동이 없으면 교육도 없다.

 

4-3. 교사와 학생이 서로 교감하는 일 :

(1) 신체접촉하기 :
   수업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을 때, 계속 정신없이 떠들거나 너무 건방진 행동을 할 때, 슬쩍 그 학생에게 가서 꼭 안아주며 턱에 난 수염으로 꾹 찔러주는 일이다. 남자 교사가 남학생에게만 쓸 수 있는 벌이다. 학생들은 그럼 난리가 난다. 서로 몸이 맞닿을 때 생기는 연대감을 이용한 것이다. 가만히 손을 잡고 잠시 동안 있을 수도 있다. 점심시간 같을 때, 손을 잡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 나눌 수도 있다. 동성간에 하는 것이 좋고, 이성간에는 삼갈 일이다.

(2) 그때 상황에 대해 글쓰기하기 :
   자신이 한 행동을 차분하게 되돌아보게 해서 학생 스스로 자기 행동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처지를 합리화하는 속성이 있어서, 잘못한 그 순간에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다. 글쓰기가 갖는 힘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인데, 그 특성을 이용한 벌이다. 경찰 조서처럼 ‘네가 잘못했지? 써!’ 하고 소리치고서 쓰게 하면, 교사의 비위에 맞추는 글이 되어 효과가 반감되니까, 조심해야 한다. 사실 자체를 꼼꼼히 쓰라고 주문하면서, 그때 네 마음을 적고,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를 짐작해서 적어보라고 얘기하면 된다.

(3) 불러다가 1:1 대화하기 :
   나-전달하기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큰소리내면 학생도 같이 큰소리낼 수도 있어 난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또는 학생이 아예 입을 다물어버려 일방적 훈계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나-전달하기’란 ‘그 상황에서 나는 이런 기분이 들더라. 또 이런 생각도 했지’ 하는 식으로 문제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담담하게 1인칭 시점으로 독백하듯 말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에게 ‘너 왜 그랬어. 맛 좀 볼래.’ 하고 따지는 말은, 교사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가 하는 ‘결과’를 보여줄 뿐이어서, 그 앞에서 학생이 할 수 있는 말이란 ‘잘못했어요. 죽여주세요.’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나-전달하기로 말을 하면, 학생도 교사가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이렇게 얘기를 교사가 먼저 꺼내 놓아야, 학생도 적어도 교사가 자기 심정을 말한 만큼은 이야기를 해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 남아서 선생님과 함께 퇴근하기 :
   장난꾸러기들 가운데는 지적을 받고 교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다. 성장기라 제 몸의 기운을 주체 못하는 것이다. 몇 번 계속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가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앞으로 잘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날 또 청소를 도망가버리는 학생을 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런 아이들은 또 모질게 한번 혼나고 나면 그런 버릇이 고쳐지기도 해서 더욱 체벌해야겠다는 충동이 교사에게 강하게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체벌을 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지도방법이, 선생님과 함께 퇴근하기이다. 수업이 끝난 다음 곧바로 신발주머니를 들고 교무실로 오게 해서, 교사 옆자리에 앉혀두고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크게 윽박지름은 이미 다른 선생님에게 여러번 당했을 테고 하니, 많은 말을 하지 말고 그저 옆에 앉혀두기만 하면 충분하다.

(5) 교장실에서 1시간 머물기 :
   정학이 없어지면서 근신이라고 해서 교무실 복도에 책상을 갖다두고 하루를 지내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이 아이들은 그러나 사실 방치 상태이다. 학교 구석구석에 있는 휴지나 줍고, 잡스러운 일에나 동원된다. 수업이 아주 싫은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복도에 책상 갖다 두는 일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그렇게 근신하는 학생들에게 하루 1시간씩 의무적으로 교장실 소파에 앉아 있게 하면 어떨까. 소극적으로는 교장실에 그냥 편하게 앉혀만 두어도 좋다. 교장 선생님은 신경쓰지 말고 자기 일을 보면 된다. 적극적으로는 교장-학생 상담록을 만들어서 할 수도 있다. 신세대 아이들이 버릇없다고 하지만 나이 지긋한 교장 선생님 앞에서까지 그럴까. 여러 가지를 몸으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좋은 체험학습의 장이 바로 교장실이다.

4-4. 그 밖에 :
(1) 종이에 줄긋게 하기 :
   흥분한 학생에게 쓰는 방법이다. 요즘 보면, 선생님께 주먹을 날리는 일이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데, 보편적 현상이다. 이런 모습이 점점 많아지는 까닭은 어른들이 행동을 잘 못해서 청소년들에게서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업사회 핵가족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또래집단 안에서 갈등 해소 방법을 잘 못 익혔기 때문이기도 하고, 승자보다는 패배자를 더 만들어내어 기죽이는 우리네 학교 교육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몇 번 위압적인 학생의 몸짓에 당황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3-4분 동안 계속 이상한 손동작을 하기에 지긋이 손을 잡으며 그만 하라고 했더니, 내 손목을 탁 잡으면서 ‘힘도 없으신 분이 왜 그러십니까’ 한 적도 있고, 잠자는 학생을 깨웠더니 그 학생이 일어나서 쓰레기통을 뻥 차버린 일도 있었다. 종이 위에서 1센티를 줄긋고 그 다음 1센티를 띄고 다시 1센티를 줄긋고 1센티를 띄고, 가로 세로를 이렇게 하게 한다. 감정절제를 하지 못해서 거친 행동을 한 학생에게 시킬 만한 벌이다.

(2) 운동장 걷게 하기 :
   역시 감정절제를 못해서 막 나가는 학생에게 자기 행동을 되새겨보고 자기 자신과 만나라는 뜻에서 시키는 벌이다. 길을 오랫동안 걷고 있으면, 자신과 관련된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온갖 이야기들과 만나게 된다. 군인들이 행군을 싫어하는 이유가,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여러 가지로 너무 많이 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길을 오랫동안 걷는 일이 전통적으로 종교적 수행에 속해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자기를 제어하지 못해서, 상황을 난감하게 만드는 학생이 있다면, 조용히 불러서 이름을 불러준 다음 짧게 대화를 나눈 뒤 길을 걷게 해도 좋다. 반드시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지 날씨를 고려하고, 30분에서 1시간 사이를 안 넘기는 게 좋다.

(3) 공익광고 :
   담배를 피웠을 때 쓰면 좋다. 보통 학교에서 담배를 피다 걸리면, 몽둥이로 여러 대 맞는 일로 시작해서 크게 혼이 나는데, 그것은 ‘이렇게 크게 혼나니까 하지 말아라’ 하는 겁주기 정책이다. 그러나 이 겁주기 방법은 그 과격함으로 해서, 잘못한 학생을 그 방향으로 낙인찍어버리는 역효과도 커서, 그 대안으로 생각해낸 방법이 공익광고다. 이 방법의 교육적 의미는 보편적 규정을 어긴 데 대해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고민하게 하는 방법이다. 잘못한 일과 관련된 구호를 만들게 한 다음, 다른 반 교실로 들여보내 웃는 얼굴로 인사하게 하고 구호를 큰 소리로 3-4회 외치게 한다. 이때 구호의 끝을 ‘합시다’ 투가 아니라 ‘해요’ 투로 하면, 구호가 부드러워져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담배는 만수무강에 해로워요. 건강한 청소년이 되어 아이엠에프를 극복해요.” 이 웃음에 규칙을 어기는 어두침침한 마음을 치료하는 효과가 숨어 있다. 자존심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에, 서로 의지할 수 있게 꼭 두 명 이상이 함께 하도록 하고, 여학생에게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4)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시간 갖기 :
   쉬는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교실에 들어오니 아이들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먼지도 자욱하고 어디선가 과자 냄새도 난다. 이런 어수선한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해보았자 좋은 기분일 것 같지 않다. 잠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수업 시작하기 전 이렇게 3분에서 5분 정도 눈을 감고 몸가짐을 바로 하고 있으면, 교사와 학생 모두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수선하면, 교사도 학생도 짜증내기 쉽고, 이 짜증은 상호 증폭이 되어서, 안 좋은 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체벌을 미리 예방하는,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5) 수업시간에 자꾸 화장실을 가겠다는 할 때 :
   생명체인 사람이기에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될 때가 있는데, 학생들이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선 담배를 피거나 매점에서 과자를 먹거나 하기 때문이다. 또 여럿이서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한참 있다가 들어올 때도 있다. 보통 교사들은 처음에 수업 때 화장실 가는 걸 허용하다가, 나중에 학생들이 악용하는 것을 보고, 아예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못 가게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몸이 안 좋아서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아이가 있는데, 평소 다른 ‘양치기 소년’들이 한 장난 때문에,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는 한 사람씩 화장실을 가게 하면 문제가 쉽게 풀린다. 먼저 화장실에 간 사람이 돌아오면, 그다음에야 두번째 사람이 나갈 수 있게 하면 된다.

 

5. 체벌에 대한 잘못된 대안들

5-1. 때리는 것보다 더 학생들을 꽉 잡을 수 있어요! : 빽빽이
   백지를 주고서 거기에 깨알같은 글씨를 꽉 채워오라는 벌이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벌로, 학생의 모든 삶의 영역을 제약하는 최악의 벌이라 할 만하다. 이 벌은 ‘공부를 시킨다’거나 ‘애들을 잡아야 한다’는 선의를 내세우지만, 빽빽이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매하다 하겠고, 만약 학생들을 잡아놓겠다는 의도라면 그것은 일상의 식민화라 하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한 벌 같지만, 빽빽이를 해오지 않으면 가혹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기에, 체감 공포는 최고다!!! 일상의 영역을 식민지화하는 벌이어서, 학생들은 머리가 점점 나빠진다. 학습의 관점에서도 폐해가 아주 심한, 그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도 아주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최고인 벌로, 이 벌이야말로 ‘가혹행위’로 규정하고 교육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5-2. 이렇게 감동이 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 반성문 쓰기
   옆자리 선생님이 감동을 받은 표정이다. 그러면서 한탄한다. “애들이 쓴 반성문을 보면 어휴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찡~한데 왜 하는 짓은 계속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는 아~하고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선생님 그거 아니에요. 그거 다 사기에요.’ 아이들은 교사의 마음을 이미 알고 거기에 맞춰준다. ‘요즘 아이들을 뭘로 보는 겁니까.’ 반성문을 일상적으로 써오게 하는 교사도 있는데, 그 교사에게 속한 아이들은 반성문 몇 장을 정말 순식간에 다 써낸다. 정해진 각본이 뻔한 글이어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좋은 분이십니다. 제가 죽일 놈이지 선생님 같은 분이 신경써주시는데 그런 일을 하다니요.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성문 쓰기는 학생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지도방법이라 하겠다. 반성문이라는 글의 양식 자체가 전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항복과 굴종의 표시밖에 안된다. 학생들은 그러는 척하는 것이고. 거기에 교사가 자기만족할 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생활일기나 생활이야기 또는 그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5-3. 학교판 박정희 향수? : 해병대 체력단련
   요즘 와서 왜 이런 방식이 자주 텔레비전에 등장하는지 답답하다. 고생을 안 해 봐서 아이들이 버릇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과거 독재자들을 난데없이 조명을 받더니만, 이제는 그간 계속 청산의 대상이던 군사문화가 학교에서마저 대안 이미지로 자꾸 제시된다. 사회에서 박정희 향수가 부는 것과 비슷해서, 예민하게 주의해야 한다. 물론 집단체력단련도 교사가 함께 학생과 똑같이 뛰면 교육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칫 체벌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보복으로 가해지는 과도한 육체훈련이라면. 또는 잘해주면 기어오른다며 학생들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게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무력시위라면.
   그리고 짚고 넘어갈 것 한가지가 있는데, 선착순 뛰기다. 왜 힘없는 아이들은 두 배로 벌을 받아야 하는가. 체력이 약한 아이들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도 강한 아이들보다 힘이 더 드는데, 힘이 없는 아이들이 또 운동장을 돌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선착순 뛰기는 동료를 밀쳐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비교육적 가치를 담은 벌이다.

5-4. 이거 체벌을 대체한다는 제도 맞아요? : 벌점제도
   벌점제도는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 제도를 칭찬하는 학생은 별로 보지 못했다. 교사들 또한 떨떠름한 표정들이다. 체벌을 대체한다는 이 제도에 대한 반응이 왜 이럴까?
   첫번째는 벌점을 주면서도 할 체벌은 또 다 한다는 문제제기이다. 때리시던 분들은 벌점을 주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손을 댈 때가 많은 모양이다. 과거에는 때리고 끝났는데, 이제는 때리고서 벌점까지 준다는 것이다. 벌점제가 체벌을 없애기는커녕 통제를 위한 족쇄로 변하는 순간이다. 과거에는 교문에서 복장이 걸리면 한두 대 맞고 벌 쓰면 끝났지만, 이제는 한두 대 맞고 벌점 받고 엎드려뻗쳐까지 하고 와야 한다는 불만이다.
   두번째는 벌점제가 주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불만이다. 생활하는 과정 그 자체가 평가의 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험성적이 아니라 생활 태도가 평가 요소라니, 꼭 인성교육에 한걸음 더 다가선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많다. 벌점을 받았다고 그 벌점을 상점으로 대체해야 한다며, 만만한 선생님께 목숨 걸고 쫓아다니는 모습하며, 상점을 많이 받아 나중에 선행상을 받는 학생을 보면 묵묵히 제 일을 소리없이 하는 학생이라기보다 요령있게 어른-교사에게 잘하는 학생일 때가 많고(그래서 두뇌좋은 일진회 짱이 선행상을 탈 뻔한 적도 있다), 좀 불러다 특별실 청소를 시키려 해도 ‘상점 주실 거죠? 안 주면 안 해요’ 하고 싹 돌아서는 아이들을 보게 되고, 이거 영 벌이 벌 같지 않고 상이 상 같지가 않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이 제도가 갖는 문제는 운영하면서 고칠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에 내재한 모순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본래 취지대로 시행해도 문제가 많은데, 본래 취지마저 왜곡해서 이 제도를 시행한다면 어떨까. 벌점제도가 처음 시작될 때 어느 학교 풍경이다. 교사들 전반적으로 반대하자, 어느날 갑자기 교장의 명이라며 실시했다. 학생부 교사들이 다짐하던 목소리가 들린다. “맛을 보여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벌점을 우습게 본대두.” 그 앞에서는 '모래시계', '삼청교육대'에서 본 군대 유격훈련 피티체조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끝나고 여학생 몇몇은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눈물 흘리고 있고. 이거 벌점제인가? 아닌가?
 벌점제는 일상의 짜증화다. 그리고 체벌? 사라지지 않았어요.


6. 글을 마치면서 : 남은 이야기
   체벌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꼭 황색저널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게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인 것을. 교사인 내가 신나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맥이 풀린다. 추한 현실을 자꾸 드러내야 현실에서 자유가 점점 더 넓어진다고 하니, 그 말을 믿을 뿐이다.

6-1. 현상을 보고 욕하는 것 당연하지만 원인을 살펴달라.

   “교사 집단을 범죄자 취급하면서는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말은 나에게 무척 굴욕적이다. 비굴하게까지 느껴지는 변명이다. 욕먹을 게 있으면, 욕먹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도 있다. 교사집단의 엉망인 행태에 대해 비난하면서, 왜 교사들이 그렇게 나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파고드는 목소리를 보지 못했다.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면, 아궁이를 살펴야 하는 법이다. 문제를 일으킨 교사 몇을 쳐버린다고 해서, 낡은 학교사회가 개혁되리라 믿는가.
   돌아보면 학교 사회란 곳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 일방전달식의 교무회의, 3년 안 된 교사가 교무회의에서 발언하면 눈치 주는 분위기, 논의하다가 말이 막히면 ‘학교는 교장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오만함이 있는 곳. ‘진정 중요한 것들은 외면하면서 지나쳐도 별 상관없는 작은 잘못에만 매서운 우리들’(김명인, '동두천')이 우리네 교사들의 모습이다. 군것질할 돈을 모아 굶주린 북한 사람들을 돕게 했다고 교무실에서 교감에게 멱살 잡힌 교사가 있는 한, 교사 집단의 낡은 행태는 영원할 것이다. 교사가 교사답게 교단에 설 수 있을 때, 교사의 부정적 모습들도 자체 치유될 수 있다.
   건강한 교사가 나올 수 없는 환경에도 관심 가져주기를! 이런 학교상황에서는 멀쩡한 교사도 '여고괴담'에 출현하기에 적당한 교사가 되기 쉽다.

6-2. 최고의 의술이란 병이 안 생기게 하는 것

   규칙과 법은 제 역할이 있다. 규칙과 법을 적용하고, 규칙과 법의 힘에 기대어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한 방법이다. 하지만 세상의 여러 일들 가운데는 규칙과 법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일도 많다. 살이 썩어서 고름이 찼을 때 그 고름을 짜버리는 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평소 몸을 건강히 해서 곪는 곳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집단의 건강한 부위를 계속 키워주어서 곪은 부위를 치유한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 좋겠다. 언제나 최고의 의술은 병을 생기지 않게 하는 예방의학이 아닌가.
   사범대학 교사양성과정 문제도 이야기하자.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대해 고민할 내용을 교사양성과정에서 가르쳐야 한다. 지금 사범대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주하는 교육과정에서, 체벌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교사가 어디 길러지겠는가. 왜 사범대의 교육과정은 그토록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거리가 먼가. 교사들은 제대로 된 감정 조절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체벌이 이토록 중요한 사회 쟁점이자 교육 과제라면, 그것을 대학에서 체계있게 가르쳐야 한다. 관점없는 초임교사들의 무분별한 체벌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이렇게 체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나도 초임시절 한때 학생을 때리는데 재미를 붙인 적이 있었다. 한번 두번 때리다보니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딱 집중도 더 잘하고 해서 멋모르고 학생들의 종아리를 걷어올리게 하고 손을 댄 적이 여러번이다. 너무 엉망이라고 판단되는 학생을 아주 세게 패준 적도 있다. 대학 때 교육에 대한 공부를 소흘히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학문이란 본래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인류가 고민을 축척해온 성과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공부는 현실과 지나치게 거리가 먼가 보다. 나는 열심히 여러 외국 상담이론가 이름을 외우고, 이론을 배웠지만, 내 눈앞에서 나를 열받게 하는 ‘학생 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은 바가 없으니 말이다.

6-3. 폭력에 주눅든 학생은 나-당신-우리 사회 전체다.

   폭력에 주눅든 사람은 짜증내는 언어를 사용한다. 합리적으로 의사소통을 해보지 않았기에, 늘 뒤에서 상대를 씹어버리기만 했던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말문을 틔워주면, 건설적인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오고, 온통 투덜거림 천지다. 가끔 ‘애들 잘해줘봐야 기어오르기만 해’ 라는 말을 듣는데, 아이들은 실제 그러기도 한다. 민주적 의사소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대화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불평의 언어를 가지며, 본능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한다. 끔찍한 일이다.
학교를 바꾸는 일은, 우리 사회를 바꾸는 일의 한 출발점이다. 힘의 위계에 따른 복종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좀더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비폭력적으로 가르친 아이들이, 나중에 이 사회를 바꾸어가리라는 꿈을 꾼다. 동시에 이 과정은 폭력에 오염된 내 몸, 내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이 글에서는 학교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만남에 주로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앞으로 체벌에 대한 대안은, 학생 생활지도 차원의 고민이다. 그것은 한 학교 안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영역이다. 이미 학생은 학교를 벗이나 사회의 여러 곳에 머물고 있기에 그렇다. 이 부분은 아직 남겨진, 앞으로 해야 할 과제다. 학부모들의 몫이다. <雲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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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는 성교육 강연이었다. 거의 세시간을 쉬지않고 말씀하시는데 그 에너지가 큰 강당 가득 넘쳐났다. 물론 자극적(!)인 주제를 아주 거리낌없이 나누는 자리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지만 강사의 힘도 대단한 것이어서 화장실 가는 것을 참으며 자리를 지킬 만큼의 강연은 지난 5월 하종강소장의 강연이후 처음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땐 눈물콧물... 이번에는 터지는 웃음. 지회 조합원 선생님들께 멜로 보내드리려고 강연을 정리했다. 크고 작은 성지식들이 가득하다. 물론 실제 강연은 훨씬 팔딱팔딱 뛰는 것이었지만... 박경화 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라고 꼭 권해주고 싶다.

 

 박경화 선생님 성교육 강연

"야한 아이들보다 더 야해지기"


2004. 10. 21. 목요일 5시~ 9시

화명고등학교 강당



교사들이 만든 영화 - [책상] 상영

사립학교의 불안정한 교권에 관한 영화

* 지회에 CD 있습니다. 보고 싶은 분회나 선생님께 대여해드립니다.


박경화 선생님의 성교육 강연

▶ 보여주신 기구들 : 야광콘돔, 남자성기 모형, 예쁜 양초, 화장품 회사 미샤에서 나온다는 3,500짜리 오일, 면으로 만든 대안생리대, 월경주기 팔찌...


① 콘돔 사용법 : 발기했을 때 끼우되 정액이 담기는 곳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잡고 스타킹 올리듯 살살 올리고 사용 후에는 여성의 질 속에서 빠지지 않도록 꼭 "잡고 뺀다"


* 콘돔은 라텍스(0.01구멍)라는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에이즈 바이러스는 그보다 훨씬 작다.( 0.001) 콘돔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감염의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사용한다 해도 언제든지 임신의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면 콘돔이 전혀 불필요한 물건인가? 그렇지 않다. 콘돔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임신에 관해 여성이 선택할 권한이 전혀 없었다. 콘돔이 생기고 난 뒤 이제 내 몸에 대한 결정권과 선택권이 생긴 것이다. 왜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느냐. 당당하게 콘돔의 사용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 미국에서는 카톨릭 중심의 순결운동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순결운동이라고 해서 전 학교에 순결 사탕을 보내오고 학생들에게 순결서약을 하라고 하며 심지어 은장도를 보내온 적도 있다. 은장도는 뭐할 때 쓰는 것이냐?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를 해치기 위한 물건이다. 그렇게 자신의 ‘순결’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한국의 에이즈정책은 대책이 없다. 여성들이 직장 명퇴, 이혼 등의 사유로 어쩔 수 없이 매춘에 종사하다 결국 에이즈에 걸리고 말았는데 그러고도 매매춘 행위를 계속하다 경찰에 들통이 났다. (에이즈는 고지하지 않으면 살인죄) 경찰 질문 몇 명과 했느냐. 3000명. 콘돔 내놨느냐. 내놨는데 단 한 사람도 사용하지 않더라. 매매춘을 하는 남성들은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임신하면 니가 임신하지. 내 알 바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② 아이들을 엄청나게 발기시키는 세상 : 인터넷이 주범. (전 세계에는 11만 개의 포르노사이트가 있다. 우리나라는 그 중 절반이 넘는 6만 8천여 개의 사이트로 여러 가지 음란물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포르노사이트는 여는 것만 해도 불법이므로 이 사이트 운영자들은 두어 달에 한 번씩 폐쇄하고 다른 이름으로 등록하여 활동한다. 얼마 전에는 중학교 2학년이 포르노 사이트 운영으로 1억 5천만원 벌었다는 기사도 났다. 거기서 나오는 온갖 메일이 우리한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에게도 들어온다.) 물론 TV나 영화 등등 다른 영상물도 한 몫. 이렇게 아이들을 발기하도록 해놓고 그들에게 순결교육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어차피 접할 일이라면 미리 생각하고 고민해보도록 유도하고 성생활을 보다 건전하게 ‘잘’ 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성은 정말 이중적이다. 아이들을 성 상품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아주 엄격한 성교육 대상자, 금욕해야할 성 행위자로만 본다.


=> 성에 대한 기본자세 : 하고 싶은 데 피임도구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등 미리 아이들에게 가상의 질문을 해야 된다. 우리가 그래온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한 번의 생각, 연습도 없이 그런 상황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에게도 가상의 상황을 질문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성교육을 하여야 하지만 그러려면 교사 자신이 먼저 끊임없이 자신에게 그런 상황에 대한 태도를 물어 봐야 된다. 그래야 ‘성숙한 교육’을 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자기 자신도 안 되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시킬 수 있겠나.


③ 성에 대한 이중 잣대 :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그러울 수 있지만 내 아이, 내 가족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중, 다중 잣대. 나라면? 중학생에게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고 판매하도록 하는 것은 올바른 교육인가? 너무 이른가?


처음엔 내 성지식만 건전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성이었고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그 속에서 혼자서 바르게 알고 실천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았고 별 의미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 아름다워지는 성을! 어른들이 바보처럼 살았다고 아이들도 성에 대해 무지하고 신체적으로 순결하도록 하는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다들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성을 긍정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그런 성교육을 하자고.


④ 생리에 관한 시각과 면생리대 사용 교육


▶ 생리에 대한 우리의 시각 바로 잡기.

1. 저출산 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을 생산하는 가능성인 여성의 생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생리와 생리대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2. 여학생들이 생리하는 날은 공결처리 되도록.

3.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여교사들이 먼저 한 달에 한 번 보건휴가를 찾아 쓰기. (남교사들의 비아냥거림에 넘어가지 마라.) 그리고 학교에 여교사가 많은 경우. 등과 허리를 지질 수 있는 보일러 시설을 마련해야한다.


▶  면 생리대 교육

전교조 여성위에서 문광부와 얘기해서 ‘얘들아 즐겁게 생리를 하자’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생리비디오, 드라마도 제작하고 있다. 혹시 면생리대 쓰면 혹시 새지 않을까. 빨래는 얼마나 귀찮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면 생리대 만들어 사용하기 교육은 다른 교육들과 연계되어 있다.

(성교육의 일환인) 면생리대 교육 => 건강교육=>인권교육=>환경교육=>소비자교육


1. 건강교육


▶ 면생리대 쓰면 좋은 점 : 생리통이 훨씬 줄어든다. 1회용 생리대보다 냄새가 덜 난다.(1회용 생리대는 각종 화학약품을 처리하고 생리혈이 새지 않도록 입혀둔 비닐 때문에 피가 고여서 썩어가기 때문에 훨씬 역한 냄새가 많이 난다. 면생리대는 마르기 때문에 냄새가 덜 난다.) 그저 팬티를 입고 있는 느낌이다.


▶ 생리통 없애는 방법: 팥을 사서 적당한 양을 타올 등에 넣고 꿰맨다. 이걸 전자렌지에 돌리면 팥이 열을 받아 뜨끈뜨끈.. 아랫배에 올려두고 찜질을 한다. 효과 만점. 팥이 돌처럼 단단해져서 계속 쓸 수 있다. 여교사의 유산율은 15%. 서 있으면 자궁이 차갑게 된다. 차면 울혈이 생긴다. 그러면 자궁벽이 얇아진다. 차기 때문에 물혹이 주렁주렁. 조용한 음악을 듣고 차를 끓여서 먹는 것도 좋다. (감초, 진피 등을 약재상에 가서 구입)


2. 환경 교육


▶ 한국에 1년에 버려지는 생리대의 갯수는 24억개. 젖은 상태라 소각도 잘 되지 않고 매립했을 때 다이옥신 발생. 생리대에 묻은 피는 환경 호르몬제를 품은 채로 땅속 지하수로 흡수되어 다시 우리가 마시게 된다.


3. 소비자 교육

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폐경 때까지 (참고로 요즘은 폐경이라 안한다. 대신 완경!! 기분 나쁘게 폐경이 뭐냐. 폐자 들어가는 낱말 한 번 말해 보시라. 폐인, 폐수, 폐건전지, 폐품...--;) 한 달에 길게는 일주일 짧아도 사일 정도 하루에 여섯 일곱 개씩 사용하는 생리대, 생활필수품이니까 가격 낮춰야 한다. 그리고 사용한 성분을 공개하라. 기업, 너희들 뭘 발라놨길래 사용하면 자꾸 뭐가 나냐.


⑤ 내 안의 폭력을 보는 조직적인 눈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난 뒤 전교조 여성위에서 니 강의 한 번 해볼래? 해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 발.. 한 발.. 결국 온몸으로 들어와 버렸다. 전교조에 들어온 이후 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밤에 불이 환히 24시간 하는 할인마트를 보면 이전에는 언제든지 가서 쇼핑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요즘은 혹시 생리중인 노동자는 없을까? 비정규직은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을 개인적인 눈으로 보고 혼자서 처리하려고 했었는데 전교조 활동 이후 조직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세계는 미국의 시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더더욱 미국의 눈으로 본다. 이라크 전쟁은 한 마디로 ‘주유소 습격사건’ 아니겠는가. 미국인들 중에서도 참전하는 아이들은 할렘, 흑인, 히스패닉 아니냐. 우리나라 파병군인. 저들의 총알받이에 또 다시 총알받이가 되라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것이냐.


이라크 파병 미군은 대부분 흑인이나 남미 히스패닉

=>그 미군의 총알받이가 되기 위해 떠나는 한국군

=>한국안의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 집창촌 매춘여성들.


그러면 매춘이 자발적인가?

여교사에게 물어보아도 매춘은 불가피하다고 대답한다. 국민건강을 위해서 공창제로 가자고 한다. 전 종로경찰서장 하면서 언론도 많이 탔던 김강자씨도 공창제로 하자고 한다. 전 세계의 폭력이나 나라간의 폭력은 보이는데 내 안의 폭력은 왜 안 보이는가.


성매매특별법 이후 집창촌 여성들의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심지어 통장을 들고 나와서 안을 보여주며 노예처럼 살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1억원 이상이 꽂혀 있다. 그런데 거기엔 들어온 것만 있다. 나간 게 없는 것이다. 악마의 선불제를 보여준다.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을 봐라. 매매춘이 자발적이라고? 3년간 쪽방에서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하루 30 여명을 받았다. 대부분이 십대 초반의 아이들이었다. 나중에 경찰 단속으로 모두 찾아내고 귀가조치 한 후에도 결국 두 명의 아이들은 돌려보내지 못했다. 한 아이는 눈이 완전히 풀린 상태였다. 그리고 한 아이는 질이 뜯겨서 피가 철철철 나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어제도 10여 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과연 매춘이 자발적인 것인가?


“전 세계의 폭력이나 나라간의 폭력은 보이는데 내 안의 폭력은 왜 안 보이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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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아' 선생님들과 함께 만든 제 75회 학생의 날 기념 버튼이다.

올해 나는 꼭 버튼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기 저기 학생의 날 기념 버튼을 만들자고 졸/랐/다. 왜? 사연을 말하자면  이야기를 좀 풀어야한다. 작년 내가 수업 들어가던 2학년 아이들에게 학생의 날 수업을 하고 기념으로 뭔가 주고 싶어서 박노해의 '굽이 돌아가는 길'이라는 시를 코팅해서 나눠 주었다.. 그냥 주기만 하면 웬지 바로 버릴 것 같아서, 조만간 3학년이 될 녀석들이 내년 수능치르기 전에 뭔가 선물도 주고 싶어서 그 시를 1년 동안 잘 보관하고 있다가 내년-2004년 학생의 날, 나를 찾아와서 돌려주면 '선물'을 주겠노라 했다. 나의 노림수는 우선 학생의 날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 시를 보관하면서 한 번씩이라도 읽어보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 수능의 무게를 좀 줄이는 것, 1년 뒤에도 내가 즈들을 기억하고 또한 기다릴 것임을 은연 중에 비치는 것 등등이었다. 그런데 심하게는 올 해 초부터, 덜 심하게는 9월부터 3학년이 되어버린 그 녀석들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그 코팅된 시를 꺼내들고 내 코앞에서 달랑달랑 흔들며 자랑스럽게 "샘... 저 이거 아직 보관하고 있어요. 꼭 갈께요~ 근데 뭐 해주실건데요?" 이런다.. 한 두명이 아니고... 쩝!! 코팅 시를 나눠주던 작년에는 '저 개구진 녀석들이 몇 명이나 보관할 수 있을까. 1년이 짧은 시간도 아닌데..'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나의 오판인 것 같다. 겁이 팍 났다. 에구.. 약속을 철석같이 했는데 뭐 해주나.. 도데체 몇명이나 보관하고 있는 지나 알아야 뭘 준비해도 하지. 아~ 나의 무모함이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여~ 곰곰 생각해 봤다. 사탕? 과자? 홈런볼? ... 그런데 역시 먹고 치우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몇 분 후면 사라질 혀 위의 즐거움을 위해 1년을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 되어버리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노릇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버튼이었다. 버튼은 하늘이 쪼개져도 만들어야 했다.

처음엔 일이 잘 안풀렸다. 본부에서도 지부에서도, 어느 단체에서도 학생의 날 기념 버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는 소문(?)만 들려왔다. 어쩌지? 그럼 우리 모임-모두아름다운아이들 에서 만들지뭐~ 해서 학급운영 소모임샘들과 의논해서 일사천리로 버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일사천리라 하기에는 사실 일을 하신 샘께 미안하다. 도안하고 업체 알아보고 주문하고.. 또 주문받고 배달하고 .. 작은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좀 번거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일을 해보니 세상에 쉽게쉽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내 선에서 시작해서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는 일이 그나마 가장 간단한 일인 것이다.) 결국 그날(!) 우리-홍송희샘, 이현주샘, 조경선샘, 이주형샘과 함께 화명고 교무실에서 두어시간을 작업했다.-가 함께 몇시간 동안 도안했던 디자인과는 다른 모양으로 탄생했지만 이것 또한 너무 예쁘고 고맙다. 돈이 얼마든... 최초의 우리 모임 버튼이라는 점에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줄 특별한 선물이라는 점에서도..

아,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3학년 아이들에게는 이 버튼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코팅을 보관하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희망연대에서 나온 조금 더 -사실 훨씬 많이- 싼 버튼을 주문해버렸다. 300원짜리 500개를 주문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금 생각하니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냥 이걸로 해버릴걸 그랬나? 이거 예쁜데... 이왕 이리 되었으니..  우리 반 아이들이랑 오며가며 만나는 아이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잘 없는 소박하고 조용한 아이들에게 이 버튼은 선물해야겠다.

지금 보니...한 가지 섭섭한 것이 있네.

 너무 예민한 반응인 듯 하지만 왜 늘... 여학생은 분홍, 남학생은 파랑일까? 

색깔이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그런 무지개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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