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축제 '반' , 피해보려고, 피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어찌어찌 아주 작은 한 코너를 맞게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유형 중 1.현대중공업 생산직 노동자, 2.비정규직 노동자, 3.백화점 판매원, 4.화이트칼라-대리,과장,부장급 간부 그리고 5.백수, 이 다섯 유형의 인물을 아이들이 인터뷰해서 정리하도록하고 그것을 다시 우드락에 예쁘게 꾸미는... 뭐 그런 작업이었다.

처음 하는 일을 워낙에 겁내는 스타일이라 일주일쯤 전 이모(!) 샘이 이 일을 맡기려고 했을 때 정말 외면하고 싶었다. 어쩌면 분회참실 강사도 맡아야할 형편인데 더 이상 어떤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심신의 부담이 너무 컸다. 그치만 어쨌든 그 다섯 경우를 한 사람이 모두 맡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싶어서 많으면 둘, 가능하면 하나 정도는 내가 할 수도 있겠다 각오했다.

지난 월요일.. 출근길에 '반' 축제를 꾸리는 장김샘께 이 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고 나머지 다섯 유형을 맡은 석포여중 샘께 연락을 해보니 의외로 일이 간단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인터뷰할 인물유형 섭외하고 또 봉사시간 받고 그 일을 할 아이들 섭외하고... 뭐 그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어찌어지 백화점 판매원이랑 비정규직 노동자 섭외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수업들어가는 아이들에게 봉사시간 필요한 녀석은 내게 오라 했다. 일단 우리반 공략... 평소 나를 따르는 아이들에게 미끼를 확 던졌다. 일은 쉽고 주어지는 봉사 시간은 노력에 비해 많은 편이며 또... 일요일 나랑 같이 축제 가게 되면 점심밥은 샘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그리고 다른 반은 안모샘, 최모샘 반 반장들을 좀 보내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하겠다고 나선 아이들이 세팀.. 어라~ 아이들 섭외하는 것도 인터뷰 인물 섭외하는 것도 의외로 쉬울 것 같았다. 결국 우리반 두 팀, 현옥샘반 두팀, 희숙샘반 한팀.. 이렇게 다섯 팀이 꾸려지고 다섯가지를 몽땅 내가하겠다고 말해버렸다. 한두 팀을 꾸리나 다섯 팀 모두를 꾸리나 들어갈 노력은 비슷한 것 같아서... 묻힌 김에 내가 마~ 다 하지 뭐~

토요일... 다른 반 녀석들은 다들 즈들이 알아서 일을 척척 하는데 우리 반 두 팀은 토요일 오후까지 남아서 일을 해야한단다. 내 컴퓨터를 대여하겠다고 했으니 나도 바로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내 컴은 노트북.. --; 쓰고 나서는 서랍에 넣어서 보관해야한다.) 점심은 먹여야겠다 싶어서 교직원 식당으로 함께 가서 샘들용 점심을 함께 먹고 (녀석들 입이 쩍~ 벌어지며 이색체험이라 감탄 연발..) 작업 시작...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글씨체 정해서 인쇄해주고 교실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 곁에서 봐주고.. 5시쯤.. 나는 다른 샘이랑 '주홍글씨'보러 갔다.

오늘... 일요일 아침.. 평소에는 9시, 10시까지 푹 밀린 잠을 보충하는데 오늘은 새벽같이 (8시!) 일어났다. 아이들이랑 10시에 부산역 맞은 편 롯데리아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해두었다. 집 근처 시장에서 김밥 스무줄을 샀다. 날이 날이니만큼 민주공원 내 식당에는 사람들이 버글버글 할 것이다. 소풍 때처럼 따뜻한 햇빛아래 둘러앉아 김밥 먹으면 좋겠다. 아침도 거르고 왔다고 해서 길거리에 서서 아이들이랑 사간 김밥을 먹으며 아직 안 온 아이들을 기다렸다. 민주공원 가는 버스 43번!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버스는 코스가 예술이다. 거의 롤러코스트 수준!! 전망도 쥑인다. 멀리 8부두, 해운대... 바다.. 아스라한 수평선이 보이는 그런 코스다. 나는 민주공원 갈 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를 타지 않는다. 샘들도 함 타보시길....강추..

도착! 아직 이른 시간인지 한산하다. 아이들이랑 가지고 간 작품(아이들이 만든 것은 내가 볼때 정말 '작품' 수준이다. 사진기로 찍어올 걸... 후회막심)을 이젤에 올려두고 축제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둘러보니... 아는 샘들이 꽤 많다. 다들 축제 전에 뭔가 챙기시느라 분주했는데 처음엔 이방인의 눈으로 준비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얼떨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뭐~ 주최측도 아니고 이 정도로 나는 내 역할은 다 한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그저 어쩔 수 없이 곁다리 낀 이방인이고 손님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 늘 그렇듯 일손이 많이 부족해보였다. 에그... 또 밀려오는 미안함... 뻘쭘해 하는 아이들 챙겨가며 달래가며 꼬셔가며 아주 사소한 작업이나마 도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거기 계신 샘들.. 휴일 그렇게 몽땅 반납하고 가족들 개인사 다 팽개치고 바람 쌩쌩부는 그곳에서 바들바들 떨어가며..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눈 한 번 딱 감고 들어오는 부탁 거절하면 그만인데 그걸 못해서 그러고 있는 거다. (사실 그중에는 돈 안 되는 그런 일을 스스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부탁까지 해가며 행사진행하는 샘들도 있다. 참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다. 고생을 사서한다는 표현이 딱!이다.)

그 와중에 같이 간 아이들 대부분이 핫바지에 뭐 세듯이 살짝살짝 빠져나가고 우리반 얌전이 둘과 옆반 범샘이 둘이 남았다. 어설퍼서 정감있는 개회식(?)에 같이 참석하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떼써서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는 사이에 옆반 아이 둘을 잃어버렸다. --; 갔나보다했는데 인형 만드는 코너에 가보니 그 귀여운 두 녀석이 앉아서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다. 우리 다섯명은 한 시간 정도 그 자리에 서서 그 쬐끄만 인형을 열심히 만들었다. 다리가 아프다고, 바느질이 힘들다고 조금 투덜거렸지만 평소에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우리 반 두 녀석...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시쯤에는 출발해야 가족들이랑 약속한 두시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면 생리대 재료를 얻어주겠다고 꼬셔서 그 부스를 찾아갔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아는 샘이 앉아계시길래 부탁해서 내 것 하나 퍼뜩 챙기고 아이들 돌아보면 당연하다는 듯 '이제 갈래?'했더니 어라... 녀석들은 즈들끼리 더 놀다가 오겠단다. 뿌듯... 즈들끼리 저쪽으로 달려간다. '샘 내일 봐요~' ^^ 주위 샘들께 인사하고 올 때와는 달리 진심으로 미안한 발걸음을 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내가 그 일을 맡고 싶지는 않다. 하라고 하지도 않겠지만서리... ^^;)

2004. 10. 31.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제 4회 청소년축제 '반'에 참가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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