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날!! 이 날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한문 시간에 들었지? 미리 수업을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고 너희들이 이미 '학생의 날'을 알고 '스승의 날은 챙기면서 우리는 왜 안챙겨줘요~'라고 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수업 효과는 만점이지? ^^

조금 지겨운 잔소리부터 시작하자면, 지난 목요일 열명이 보충, 야자 튄 그 사건이후 인상 팍 쓰고 교실 들어가고 나오던 그 이틀 동안 나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단다. 너희들이랑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할까,  신나는 생일잔치 방법 뭐 없을까? 어떤 일로 칭찬을 듬뿍 해줄까? 늘 이런 생각만 하고 싶은데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내 머리속에 든 생각이라곤 '어떻게 너희들을 혼낼까? 너무 쉽게 도망가는 이 버릇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책임감을 좀 더 길러줄까? 내가 너무 물렁하니 녀석들이 나를 얕잡아 보고 이러는 건 아닐까? 무섭게 하면 좋아질까? 너희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이길까?... .... ' 이런 쓸데없고 괴로운 생각만 하려니 뒷골이 다 땡기고 스트레스 만땅!!! 잘못이 있든 없든 너희들 바라보며 인상쓰는 것.. 내 체질이 아니야. 예쁜 일에 웃어주는 담임.. 이것이 내 체질인데.. 어쨌뜬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담임도 힘들었을거라는 건 알아주길 바래.

그래서 어제밤.. 오늘 아침까지 계속 고민했단다. 어쩌지? 다음주 수요일이 학생의 날인데 이렇게 불편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는 싫은데.. 여기서 끝내고 다시 행복한 사이로 돌아가고 싶은데.. 여기서 또 물렁하게 끝내면 같은 잘못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좀더 길게 혼을 내야할까? 그런데 너희들은 별로 반성하는 기미는 보이질 않고 다소 뻗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면 금방 누그러지는 내 성격을 이제 너희도 알텐데 누구 하나 내려와서 사과하는 녀석 없고... 솔직히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너희는 부모님께 연락드린 것이 화나고 짜증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담임인 내 입장에서는 너희에 대한 상담을 하려면 부모님을 뵙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니?  물론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게 되면 너희들이 부담스러울테니 그것보다 더 큰 벌도 없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런 벌을 준 것이긴 하지만 설마 내가 부모님께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너희들에 관한 일- 잘못을 죄다 일러바치겠니? 어쨌든 지금으로선 월요일 너희 일곱명이 내가 내준 숙제 - 편지라도 제대로 정성껏 써주었으면 하는 바램.

그렇게 속상해하고 고민하다가 그만 화를 풀기로 했다. 언제나 제풀에 지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나라는 사실이 조금 섭섭하고 화도 나지만 어쩌겠니.. 늘 그렇듯 조금(!) 더 살았고 또 더 많이 사랑하는 내가 지는 수밖에..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어른이라고, 교사라고 해서 상처를 안 받는 것은 아니라고.. 너희들이 내 작은 말, 눈빛에 상처받듯이 나 역시 그렇다고. 우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자. 서로의 맘에 다 맞을 수는 없겠지만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도 하자. '너희들을 나의 틀에 무조건 맞추려고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늘 반성한단다. 너희들도 너희들이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상대방을 무조건 밀어내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면 좋겠어. 그게 누구든.

다시 학생의 날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생의 날을 어떻게 의미있게 보낼까? 올해 담임이 되면서부터 계속 생각해왔단다. 내가 마련한 이 작은 선물이 너희들 심장을 따뜻하게 데워준다면 정말 좋겠다. 우리들의 삶이 이 장미꽃처럼 늘 화려할 수는 없겠지만 순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도 느낄 줄 아는 우리,  막대사탕이 입안에서 천천히 녹을 때처럼 일상의 작은 일에서 달콤한 행복들을 챙겨넣을 수 있는 우리, 그러면서도 나보다 외롭고 낮고 지친 사람의 아픈 상처도 감싸 안을 줄 아는 따뜻한 우리.. 어쩌면 속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서로의 본성에 대한 믿음은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가끔은 일부러 속아 줄줄아는, 조금은 어리숙한 우리.. 손해볼 줄 아는 우리... 그렇게 조금 어리숙하고 많이 속깊고 아주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행복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할께.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기도는 할 수 있지? ^^)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건 너희들이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길, 스스로가 좋은 사람임을 끝까지 믿길!. 더불어 기도할께.

학생의 날, 진심으로 축하해. 내년에는 너희들 스스로 이 날을 챙기고 서로 축하해 주었으면 더 없이 좋겠다. 그 축하의 날 한 귀퉁이에 빙그레 웃고 있을 나도 끼워주길..

2004. 10월의 마지막 날.. 2-9 담임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