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하샘...
저.. 사실..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 못했어요. 한번도 '사설모의고사 후 협의회'라는 것을 가져본 일이 없어서인가봐요. 성적이 나온 후 그에 대한 대처방법은 역시 뻔한 걸 왜 몰랐을까요?
샘 말씀대로 과연 그런 식이라면 장이나, 감 입맛에 맛는 성적을 낼 수 있는 학교가 부산시내에 몇 학교나 있을까요? 아니, 전국에 몇 학교나 있을까요? 솔직히 1등인 학교나 1등인 학생이라도 마음 편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우리 학교 성적 형편없으니 보충 늘리자 ('정규 수업 열심히 하자'가 아니라)로 결론 나고 자기 학교보다 더 독하게 시키는 다른 학교랑 비교 당하면서 교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충시수 늘리고 교사들의 권리, 아이들의 권리는 소외되고..
사설 학원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하나의'기업'이니 만큼 적정 수준으로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므로 아이들이 늘 어려워할 수 밖에 없고 불만족스러운 성적과 등수에 따라서 부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도록 만든다는 이유. (이런 이유로 학교 시험에서조차 과목별로, 계열별로 등수를 산출할뿐 전체 등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오래되었고 이것이 '법'이며 '정의'이지요.)
'현실적으로 불법'인 상황에서 정규 일과를 빼서 시험을 치르게 되므로 아이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수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 (특히, 사설 모의고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아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마저 주지 않고 돈까지 내고 억지로 치게 하거나, 원하는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종일 '자습'을 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는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치려는 아이와 안치겠다는 아이 중, 누구의 권리를 먼저 배려해주어야 합니까?)
교사 고유의 '평가권'을 스스로 무시하도록 하여 교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긴 우리는 이미 다른 유명 교사 (강사)의 수업에 들러리 서서 아이들을 감독하는 것까지 허용하고 있으니... 자존심... 학교를 이미 다른 강사의 강의실로 만들어주고 나아가 그 강의 잘~ 들으라고 참여를 독려하고 자는 아이 깨워주고, 야단치고... 우리의 자존심은 '벌써' 상했어야하지 않나요?), 또 아이들로 하여금 교사의 수업과 평가보다는 사설학원의 그것을 더 신뢰하게 만든다는 이유.
학원과 학교의 거래(학년 회식비를 지급.. 정말 이것이 '다'일까 의심스러운 건 내가 부정적인 인간이라서인가요?), 학원과 대학의 거래(특정 대학, 특정 학과 컷트라인 상향 조정 등)를 알게 모르게 조장한다는 이유.
사설학원의 모의고사를 치르는 그 자체가 '수능' 점수를 올리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전혀 검증된 자료가 없다는 이유. (사실 선행학습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는 행위 자체가 학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시험의 결과를 들이대며 아이들을 긴장시켜 좀 더 공부시킬 수 있다는 명목을 들이대지만 이건 우리가 오랫동안 스스로를 구속해온 하나의 '신화' 아닐까요? 아울러 시험 치르는 그 하루, 수업결손과 시험 스트레스에 따른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아이들 정서면에서도 득보다는 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이런 것들이 제가 사설 모의고사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샘 덕분에 여기에 하나의 이유를 덧붙일 수 있게 되었네요.
시험 결과가 학교 수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 보충을 늘리는 허술한 명분을 하나 더 늘려주고 (덕분에 정규수업의 질이 소외되는 부작용까지 동반하는) 그 효과없음으로 인해서 다시 사설모의고사를 쳐야한다는 필요성을 더 부각시키게 되는... 그렇게 돌고돌아 여전히 사설 모의고사, 학교에서의 효과없는 보충수업은 끊이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하샘..
오늘 말씀드렸듯이 저는 결국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에서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모의고사 치지 않겠다는 우리반 열두명의 아이들... 시험 치는 그 시간 교실에서 자습해야합니다. 장님께서 그 아이들을 따로 빼서 관리할 경우, 모의고사를 시행 자체를 백지화할까 겁이 나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모의고사가 백지화 되는 것, 저도 부담스럽습니다. 우리 반에는 지독하게 치고싶어하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백지화 될 경우에 받을 그 아이들의 원망, 그 부모들의 원망을 감당해 낼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장님께 '안 칠 권리', '자습이 아닌 다른 형태의 수업 배려를 받을 권리'를 끝내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안치겠다는 우리반 아이들은 아직 이 사실 - 아이들이 시험치는 동안 자신들은 교실에서 자습해야한다는-모르고 있는데 알고나면 오히려 모의고사를 치려고 하지 않을까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 10월 끝까지 반대했던 내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되고 그에 따른 자괴감 때문에 사실 편칠 않습니다. 지금으로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그날 감독을 하지 않는 것 정도? 반대하면서 모의고사 시험을 감독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습니다. 소심한 저는 저 대신 다른 샘이 감독을 들어가는 교무실에 앉아있을 자신도 없어서 그날 연가를 쓸까 생각하고 있는데 결재가 날까 걱정입니다. 오후엔 방학 중 보충수업 때문에 '학운위' 회의까지 잡혀 있습니다. (제가 반대해도 방학 중 보충수업 안건은 그대로 통과될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이 원해서 하는 보충수업이기 때문에 서류상의 하자는 전혀 없지요. 그리고 보충수업을 간절히 원하는 학부모 위원들... 교육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이어질 문제도 아니었을테니까요)
샘,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가를 내고 시험 감독과 학운위 회의에 둘 다 참여하지 말아야할까요?
출근은 하고 감독은 거부해야할까요?
병 지각하고 오후에 학운위 회의에만 참여해야할까요?
저로선 정말 결정하기 힘이 드네요.
보충수업문제.. 제가 너무 시니컬한가요?
하샘!!
저도 알고 있습니다. 권위적인 학교 분위기에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때론 왕따 비슷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겠지요. 스스로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기도 지독하게 힘이 들겁니다.
그러나...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반 아이들에게 선택의 여지 없는 보충수업신청서를 나눠주며 항의를 받을 때의 난처함이나, 원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수업하며 느끼는 굴욕감이나, 시수 문제로 교사들 사이의 시비를 지켜보아야하는 짜증스러움이나, '돈'에 얽힌 오해를 아이들로부터 받을 때의 억울함이나..
두 가지 중에 어떤 괴로움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선택 기준.. 교사인 내가 보호하고 더 배려해야할 대상은 학교 사회에서 여전히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이 아닐까요? 동료에 대한 나의 입장 때문에 아이들의 입장에 눈 감아버린다면 교사로서 나에게는 무엇이 남을까요?
정보여고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저는 '내 입장' 때문에 아이들에게 야단치고 강요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지각으로, 결석으로, 수업태도로.. 아이들에게 야단을 칠 때, 장이나 감에 대한, 동료교사에 대한 나의 체면과 입장이 크게 개입하여 벌과 야단의 경중에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해야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조금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포장을 뜯어내니 그 안에 '나의 입장, 나의 체면'이 잔뜩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최소한 나의 입장 때문에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강요하지 말자...
그것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대한민국 학교 사회에서 아이들의 입장을 1순위로 배려하겠다.
그건 하나의 오만과 만용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저를 교사이게 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제를 아이들 앞에 서게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저 아주 사소한 것 하나 바꾸어 내는 것도 너무 힘든 사회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되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선배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선배교사상.. 이젠 우리가 그렇게 되어가야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하샘에게 편지를 남긴다는 것이 저 자신에게 쓰는 다짐의 글 비슷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다져나가지 않으면 주저앉아버릴 것 같아서요. ^^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힘이 들지만 또 새로운 힘이 솟기도 하니까요.
하샘의 응원이 그런 힘의 원천인 것 같습니다.
제가 늘 의지하는 것 알고 계시죠? 작년 생각 가끔해요. 사실... 자주.. ^^
언젠가 버스정류소에서 미현이를 만났어요.
샐쭉 웃는 모습이 '참 건강해졌구나' 생각하게 했지요.
"하샘이 미현이 너 궁금해하시는데.. 전화라도 해드려라~"
녀석의 표정이 밝게 빛나는 걸 보고 헤어졌답니다.
아까.. 이야기해드린다는 것이 깜빡..
건강한 모습, 담에 또 뵈어요~
2004. 12. 10. 금요일 새벽 한 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