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악이요, 수입은 선이다
환율 비상이 걸렸다. 국내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으로 달러 환율이 급락하여 경제운용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악화,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한동안 억제되어왔던 소비재 등의 수입도 환율하락에 편승해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급격한 환율 하락이 ‘수출 둔화 수입 확대’라는 경상수지 악화 패턴을 재등장시켜 200억 달러 흑자 목표 달성에 차질이 우려된다.
정말 사랍 겁주는 말이다. 여기에다 「수출업계 거액 환차손 비명」, 「채산성 악화 비상」, 「원고(圓高) 이대로는 안 된다」, 「팔수록 손해」, 「3개월 환차손 1조 9천억 원」 따위의 분석과 해설기사가 덧붙여지면 ‘IMF체제’에 넌더리가 난 국민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러니 어쩌자는 말인가? 결론은 빤하다. ‘정부가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방어하라’는 것이다. 옳은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진단과 처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그럴 수가 없다.
수출업자들의 거짓 아우성
‘IMF체제’를 하루 빨리 극복하자는 ‘국민적 합의’에 딴지를 거는 불경스러운 짓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보도와 주장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수출업자가 아니다’는 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론의 영역에서 널리 통하는 상식에 따르면, 소수의 이익은 조직하기 쉽지만 소비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어렵다. 생산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쉽지만 소비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어렵다. 그리고 수출업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쉬우나 수입업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어렵다. 우리 언론의 환율 보도를 보면 이 세 가지 상식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달러 환율은 1997년 여름까지는 900원 수준이었다가 외환위기의 조짐이 일면서 1,000원을 돌파했다.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인 1997년 12월의 평균환율은 무려 1,700원에 육박했다. 국가부도 위기를 넘긴 1998년 봄 이후에는 줄곧 13,00원대를 중심으로 폭이 그리 크지 않은 가운데 등락을 거듭하다가 지난해 막바지에서야 1,200원대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1999년에 접어들어 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며칠 사이에 달러당 50원이 넘게 빠져 1,100원대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 그 동안의 고환율은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 국민 중에는 엄청난 이익을 본 사람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출업자다. 1998년 한국의 물가는 설탕과 밀가루와 우유 등 원자재를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상품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도, 전체적으로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원자재를 수입하지 않는 상품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다. 메모리 반도체 등 한국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매우 높은 몇 가지 제품을 제외하면 국제시장의 상품가격에 한국 기업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환율이 폭등해도 수출업자들은 그 전과 같은 달러 표시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다. 더 많이 팔기 위해 물론 달러 표시가격을 내릴 수도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 국가의 소비자 단체에서 현대 등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환율 변동을 감안해서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던 데서 보듯, 한국의 대형 수출업자들은 제품의 달러 표시가격을 별로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수출업자들은 똑같은 물량을 수출하고서도 환율이 오른 것과 똑같은 비율로 늘어난 원화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예컨대 1만 달러짜리 소형차 한 대를 팔 경우 환율이 800원이면 800만 원을 얻지만 환율이 1,600이면 1,6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한국 최대의 수출업자가 최대의 생산자인 재벌기업임을 고려하면 수출업자가 얻은 이익의 폭은 더욱 커진다. 반면 한국의 달러 표시 임금은 1998년 한 해에 무려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상여금 삭감까지 포함하면 우리 근로자의 임금은 원화 표시로도 20% 넘게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은 임금이 삭감된 만큼 추가적인 이익을 얻었다.
그러면 환율 인상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말할 것도 없이 소비자다.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하는 국산품과 완성제 수입품의 가격이 폭등하면 소비자는 예전과 똑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거나 구입을 포기해야 한다. 이런 상품이 덜 팔리면 당연히 수입업자도 손해를 보게 된다. 환율이 내리는 경우에는 수혜자와 피해자가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998년 한 해에만 무려 399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올렸다. 달러 표시 수출액은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조금이지만 어쨌든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수입이 너무나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에 유사 이래 최대의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환율이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상관없이 수출업자들의 아우성뿐이다.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수출기반 붕괴 우려」, 이것은 1998년에 가장 자주 등장한 경제관련 보도의 제목 가운데 하나였다. 달러가 비싸지면 원자재를 사기가 힘드니까 지당한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적어도 재벌기업처럼 직접 수출을 하는 생산자에 관한 한 이런 아우성은 엄살에 불과하다. 그들은 원자재를 수입할 때 달러를 지불하지만 물건을 내다팔 때는 달러를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출업자들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달러 표시가격을 약간 인하할 수 있었다. 1998년도 수출이 전년도에 비해 물량으로는 10% 이상 늘었는데도 달러 표시 금액으로는 오히려 줄어든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는 달러 표시 생산비 역시 낮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달러 표시 가격인하에도 불구하고 개별 수출업자들은 이득을 보게 되어 있다. 예컨대 1만 달러짜리 소형차 한 대를 만드는 데 5,000달러를 손에 쥔다. 이걸 원화로 바꾸어서 국산 원자재와 부품 대금을 결재하고 인건비를 지급하고 영업비용을 지출하고 이윤을 남긴다. 대량 실업사태와 함께 국내 임금이 떨어지면 기업의 이윤을 남긴다. 대량 실업사태와 함께 국내 임금이 떨어지면 기업의 이윤은 오히려 증가한다. 아무 문제가 없다. 직접 수출을 하지 못해서 수출업자와 원화로 계약을 하는 ‘불쌍한 중소기업’은 때로 원자재를 수입하는데 필요한 달러를 구하지 못해서 애를 먹고 손해를 본다. 그러나 종합상사를 보유한 재벌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언론 보도는 모든 수출업자가 고환율 때문에 큰 피해를 보는 것처럼 묘사한다. 거짓말이다.
무시되는 다수의 이익
그런데 수출업자는 정말로 대한민국의 주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수출 이데올로기’가 온 사회를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많은 경제전문가와 전문 저널리스트들은 마치 수출은 선이요 수입은 악인 것처럼, 그리고 수출업자는 애국자요 수입업자는 매국노라도 되는 것처럼 선동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전혀 없다. 경제 정책의 목표에는 경제생활의 안정 등 다른 것도 포함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부(國富)’의 증진이다. 그리고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갈파한 바와 같이 국부는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필품과 편의품의 양’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다. 생산은 어디까지나 소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것은 저축이 ‘현재 소비의 포기’이며, ‘미래의 소비’을 위한 수단인 것과 마찬가지다.
소비가 생산의 목적이라면 수출의 목적은 수입이다. 수입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직접 생산하지 않은 것을 소비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수입은 선이다. 반면 수출은 우리가 직접 만든 물건을 소비하지 않고 외국 사람에게 내주는 행위다. 수출 그 자체는 악이다. 수출이 선이 되는 것은 수출을 해야 수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업자가 수입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옴으로써 ‘애국’을 한다면, 수입업자 역시 좋은 물건을 싼값에 사다가 소비자에게 공급함으로 ‘애국’을 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어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외채를 갚기 위해서 한푼이라도 더 달러를 벌어야 하는 시점에는 ‘한시적으로’ 수출이 선이요 수입은 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이러한 선악의 구분은 국민의 절대 다수인 소비자의 희생과 극소수 수출업자들의 엄청난 축재(蓄財)라는 ‘불가피한 사회악’을 전제로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원가가치의 상승은 악이 아니다. 외채위기가 없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것은 선이다. 수출업자는 손해를 보겠지만 소비자인 국민은 같은 액수의 돈으로 더 많은 상품을 사거나 더 좋은 물건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비상시국을 예외로 하면, 서울 거리에 BMW나 벤츠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것도 좋은 일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평생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해서 번 돈으로 좋은 차 타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국민 위화감을 거론하는 것은 고약한 선동이다. 만약 모두가 정당하게 경쟁해서 번 돈이라면 외제차를 탄다고 욕할 이유가 없다. 도둑질과 부정부패가 판친 결과 빈부격차가 생겼다면 그걸 바로잡아야지 외제차 못 타게 해서 감추어 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흔히들 신문, 방송에 나와서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과소비를 지목하지만 제정신 가진 경제학 교수 치고 강의실에서까지 그런 소리를 하는 이는 없다. 이론적으로 볼 때 과소비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소비는 소득을 초과할 수 없다. 소득 가운데 어는 정도를 소비하는지는 개인의 선호와 습관, 인생 설계에 달려 있다. 몇%를 저축해야 과소비가 안 되는지를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산품을 사든 외제품을 사든 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몫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외채가 많을 때는 되도록 국산품을 쓰는 것이 국민경제를 위해서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입품의 소비 그 자체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
‘국산품 애용주의’는 한국의 기업이 손쉽게 소비자를 등쳐먹는 데 퍽 쓸모가 있는 이데올로기다. ‘수출 애국주의’는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 상승의 최대 피해자인 소비자들을 찍소리 못하게 만드는 수출업자들의 이데올로기적 무기다. 환율 변동에 대한 모든 보도의 이면에는 이런 이데올로기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이익은 무시당하고 소수의 이익은 효과적으로 조직된다.
환율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늘려서 물가가 뛰면 당연히 원화가치는 떨어져야 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어도 원화가치가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 대외적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투자자금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드는 경우에도 환율 인상은 이자율 하락과 더불어 불균형을 교정하는 균형회복 장치로 작동한다. 문제는 환율 변동 자체가 아니라 그 속도다.
외환거래는 원래 독립적 존재 의의를 가진 행위가 아니라 단지 실물거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필요한 보조적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지구촌 시대의 현대화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외환거래가 자산증식을 추구하는 투기의 무대로 독립적 성격을 획득했다. 소수의 ‘큰손’과 그 뒤를 따르는 무수한 ‘작은손’과 ‘개미군단’ 투자가들이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떼를 지어 똑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환율은 실물경제의 움직임을 앞질러서 또는 그와 전혀 무관하게 단기적 등락을 거듭한다. 환율이 이처럼 단시간 안에 큰 폭으로 요동치면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적 거래에 따르는 리스크가 높아진다. 그리고 리스크가 높을수록 기업은 안정된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지고, 이것이 각국의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변동의 속도와 폭을 완화하기 위해서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한 정부의 개입은 ‘대칭적’이어야 한다. 수출업자들은 환율이 급등할 때는 무역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환율이 떨어질 때는 ‘적정환율’을 들먹이면서 정부가 달러를 사들여 고환율을 유지하라고 소리를 지름으로써 ‘비대칭적’ 환율정책을 유도하려고 한다. 사익(私益)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수출업자들로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WHY NOT?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읽기)』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