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을 하고 회식을 다녀와서 뉘엿한 햇살 따사로운 텅 빈 교무실에 혼자 앉았다.

텅빈 교무실을 나는 좋아한다. 시끄럽지도 않고 일에 쫓기지도 않고 운동장에 아이들 소리, 공 튕기는 소리, 주고받는 말소리.. 아무도 없지만 시간에 맞춰 심심할 만하면 울려주는 종소리.

이제 내일 하루, 딱 하루 남았다. 안팎으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 하다가 중간에 그만둔 일, 혼자 안달하던 일... 나 자신에게 남은 것이 도대체 뭔가 이 맘 때 쯤에는 꼭~돌아보게 된다. 해마다 빈손은 아니겠지만 뭔가 잡은 것도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늘 허황된 꿈만 쫓아다니는 건 아닌지..

거의 12월 한 달 내내 우울과 귀차니즘에 빠져 살았다. (오늘 아침에는 산 지 몇 일 안 된, 비싸지는 않지만 아끼는 장갑마저 한 짝 잃어버렸다. 불안하더니만 결국 어디서 흘렸나 보다. 집에서 흘렸어야할텐데... 한쪽만 끼고 출근했다. 손 시려~)

맘이 우울하니 걸리는 일마다 우울했고 일이 해결된 후에는 귀찮음이 찾아왔다. 학교생활기록부 정리, 성적표에 가정통신문 쓰는 일, 11월부터 계획했던 크리스마스 이벤트, 문집 준비, 아이들 방학 계획표 받기, 올해가 가기 전에 한 통씩 편지 쓰기, 수업하는 2학년 아이들에게 편지쓰기, 수업평가, 학급운영 평가, 교지에 쓸 글, 교지 설문... 마침 집에 컴이 고장나서이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귀찮았다. 그저 무료하게 놀고, 툴툴거리고, 학교 집 왔다갔다 그렇게 보냈다.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도 쉽게 넘어가지질 않고 목에 턱턱걸렸다. 참고, 참고, 참고... 이맘때 쯤에는 늘 일랬는지 올해는 유난히 더 힘든건지.. 어떤건지 모르겠다. 슬럼프다.

고저늑하고 평화로운 교무실에 앉아 부전공 연수 갈 시간을 기다리면 컴에다 대고 넋두리라니.. 내년에는 좀 심심하게 살고 싶다. 일도 여유롭게 하고 아이들에게도 좀 더 너그럽게(내가 더 너그러워진다면 주위에서 다들 말리겠지만..)대하고

그래도 역시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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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2-3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집착하고, 매한대 더 때리게 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요? 미운놈 떡하나 더준다는 말이 그저 말이 아닐 줄 압니다. ^^ 방학을 건강하게 보내시길...
 



            선언    - 빅토르 하라

                                 (1935~1973, 칠레 민중가수)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좋아하거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지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난 노래 부르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어

마치 성수와 같아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

여기서 내 노래는 고귀해지네

비올레따의 말처럼

봄의 향기를 품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도 아니고

그것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지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발판이 되고 싶어

의미를 지닌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노래 부르면 죽기로 한 사람의 참된 진실들

내 노래에는 덧없는 칭찬이나

국제적인 명성이 필요없어

내 노래는 한 마리 종달새의 노래

이 땅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지

여기에서 모든 것이 스러지고

모든 것들이 시작되네

용감했던 노래는

언제나 새로운 노래일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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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2-3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토르 하라.. 윤밴의 노래 '혈액형-blood type'이 듣고 싶다. 정작 빅토르 하라의 노래는 한 번도 못 들어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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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2-3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는 좀~ 나른하고, 좀~ 여유롭고, 좀~ 너그럽게... 심심할 만큼 그렇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너무 심심한 건 싫어요~ 놀아줘~~ ^^

여울 2004-12-30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러고 보니 다사다난? 소사소난했으면 좋겠어요. 심심한 한해가 되었으면 해요. 해콩님 화이팅...ㅎㅎ 가끔 놀러올께요.

해콩 2004-12-3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2004년도 오늘 내일, 이틀 남았네요. 오늘 학교는 방학.. 한적하고 심심한 교무실입니다. ('심심하다'라는 표현을 쓰려니까 지진해일 발생 지역이 생각나서 죄송스러운 마음... 내년에도 심심하다고 쉽게 말하긴 어려울 듯) 여울마당님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5777

2004. 12. 28. 4:27. 다시 못 볼, 이 숫자 기념해야지..

777번째 방문자님 뉘신지.. 캄싸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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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2-2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780

8이 두번...

팔팔하니 좋아요^^


해콩 2004-12-2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팔팔번째 방문자는 당근 물만두님이겠지요? 팔팔팔팔번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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