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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2-0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8년 겨울에 제가 이 시를 참 좋아했답니다.
1990년에 나온 중2 국어책에 이 시가 수록되었고요.
2003 수능에 이 시가 출제되었더랬죠.
근데, 내 친구 한 놈은 이 시를 칠판에 적고 가르쳤다고, 교장이랑 싸워서 한 달 휴직도 했더랬죠.
저도 이 시 3,4연 부분을 시험지 여백에 냈더니, 교장이 고사계 선생님께 정말 교과서에 나오는지 확인시켰다는 그런 문제의 시랍니다.ㅋㅋㅋ

코마개 2005-12-0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그런 무식한!!
조세희씨의 난쏘공도 교과서에서 보고 깜딱 놀랐습니다.
어느날 애들에게 설명하느라 다시 소리내어 읽다가 그만 목이 메어 버렸다는...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춰주네

月 亮 代 表 我 的 心

(yue liang dai biao wo de xin )

 

당신은 내게 물었죠.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냐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你问我爱你有多深, 我爱你有几分

(ni wen wo ai ni you duo shen, wo ai ni you ji fen)

 

내 마음은 진실이에요, 내 사랑도 진실이에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춰줘요

我的情也真, 我的爱也真, 月亮代表我的心

(wo de qing ye zhen, wo de ai ye zhen, yue liang dai biao wo de xin)

 

당신은 내게 물었죠.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냐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你问我爱你有多深, 我爱你有几分

(ni wen wo ai ni you duo shen, wo ai ni you ji fen )

 

내 마음은 떠나지 않아요,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춰줘요.

我的情不移, 我的爱不变, 月亮代表我的心

(wo de qing bu yi, wo de qing bu bian, yue liang dai biao wo de xin)

 

부드러운 입 맞춤은, 내 마음을 울리게 하고,

轻轻的一个吻, 已经打动我的心

(qing qing de yi ge wen, yi jing da dong wo de xin)

 

아련한 그리움은 지금까지 당신을 그리게 하는군요.

深深的一段情, 叫我思念到如今

(shen shen de yi duan qing, jiao wo si nian dao ru jin)

 

당신은 내게 물었죠.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냐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你问我爱你有多深, 我爱你有几分

(ni wen wo ai ni you duo shen, wo ai ni you ji fen)

 

머리에 그리며 바라보세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을 이야기해줘요.

你去想一想, 你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

(ni qu xiang yi xiang, ni qu kan yi kan, yue liang dai biao wo de x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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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12-0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月亮代表我的心

爾問我愛爾有多深

我愛爾有幾分

我的情也眞我的愛也眞

月亮代表我的心

爾問我愛爾有多深

我愛爾有幾分

我的情不移我的愛不變

月亮代表我的心

輕輕的一個吻

已經打動我的心

深深的一段情

敎我思念到如今

爾問我愛爾有多深

我愛爾有幾分

爾去想一想爾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
 

그 기다림은 얼마나 애탔을까

방치와 학대 속에 시들어버린 어린 꽃들에게 바치는 진혼가
어리석은 우리여, 아이들이 보내는 침묵의 호소를 들어보자

▣ 이숙인/ 작가·하자작업장학교 교사 sookin84@hanmail.net

머리가 하얗게 비워진다는 것, 바로 이런 느낌인가? 아침 뉴스를 열어보니, 부모와 헤어져 살던 남매 중 한 아이가 아파트 22층에서 뛰어내렸단다. 화가를 소망하던 14살 소년이었다. ‘가진 것은 손재주밖에 없어, 예고의 꿈을 접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이젠 성적 비관만이 아닌가 보다. 꿈이 찢기고 삶이 신음한다. 십대 자살도 버거운데 이젠 아이들 방치와 학대가 수위를 넘고 있다. 다리미에 허벅지를 지지고 굶어죽기 직전에 발견된 영훈이, 그 아이가 살았던 의왕시에서 이번엔 혼자 있던 9살 아이가 자신이 기르던 도사견에 물어뜯겨 죽었다.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마지막 숨이 끊기던 그 찰나, 아이는 얼마나 사람 기척에 갈급했을까! 누가 하루만 먼저 왔어도, 누가 옆에서 이 아이가 지내는 나날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진 경우만도 방치된 아이들이 3800명에 달하는데 전국 39개 지역에만 있다는 그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얼른 신고만 해줬어도…. 그래도 착한 교사 덕에 연결된, 그 터무니없이 일손 모자라 아이와 엇갈리던 사회복지사랑 좀더 일찍 만나기만 했어도….


△ 아이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배고프지 않고 편한 잠자리를 갖고 싶고 맞기 싫고 심심하기 싫다…. 부모들이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좋은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한 인천시민협동조합'의 희망어린이집 아이들. (사진/ 류우종 기자)

견디다 견디다 으깨지는…

내 젊은 날 꿈꾸던 세상은 헛꿈으로 끝나고 좀더 나아지리란 세상에 대한 기대도 소인국의 걸리버처럼 결박당한 이 정권의 무력함에 허탈해진 지금, 그저 내 아이만이라도, 내가 돌보는 이 학교 아이들만이라도, 하며 누르고 참으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5년이 되어간다. 이제 내가 새삼 버려져 비명에 스러진 저 아이들로 인해 가슴이 몹시 쓰리고 아린 것은, 이것은 도무지 남의 일이 아니라 여겨지는 것은, 그렇게 수년 남짓 아이들 곁에 머물면서 그들의 마음과 갈망을 조금은 더듬어 알게 된 까닭이다.

어른이란 자들은 잘 모른다. 아이들이 얼마나 이 세상과 인간들을 잘 참고 견디는지. 그리 교활하지 않으니까, 충분히 겪어 알지 못하니까, 오히려 잘 참아내는 것이다. 그저 미련하게 버티는 것이다. 그러다 쉬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견디다 견디다 끝내 으깨지는 것이다. 버티기 싫어서가 아니라 버틸 수 없어 스르르 내민 손을 거두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용서하고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라 터무니없이 낙천적으로 모든 것에 쉬 속아버리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세상이, 사람들이, 반드시 나아질 것을 끝까지 믿는 기막힌 존재들이 바로 그들, 못난 성인들이 ‘미성년’이라 부르는 스무 살 미만 아이들인 것이다. ‘날 계속 때리는 저들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왜냐하면 나처럼 매일 이렇게 변하고 자랄 테니까. 날 버리고 간 저들도 내일이면 돌아오겠지. 왜냐하면 내가 그들이 너무도 보고 싶으니까….’ 겁에 질려 떨면서도 자신을 죽도록 팬 아비의 구직을 빌고, 아픈 어미에게 죽을 쒀주며 자신이 어서 잘되어 그들을 거두겠다는 ‘므흣’한 결심도 한다. 물론 그들도 분명 어른보다 사악할 수 있으며 매우 잔인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지옥이 더욱 슬픈 것은, 그들이 이 무너져가는 세계와 그것을 만들어놓은 어른들을, 어른들이 그들을 싸잡아 ‘기른다’고 말하는 행위로 드러내는 알량한 애정보다 훨씬,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사실 지금 내가 쉼 없이 가슴으로 흘리는 눈물의 진원이다.

그들의 바람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 '미성년' 들은 어른들의 생각 이상으로 잘 참고 견디고 용서한다. 그들이 내민 손을 거절하는 것은 어른들이다. 2004년 10월 열린 청소년보호 단축 마라톤 대회.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내가 일하는 학교만 해도 그런 아이들, 숱하게 머물다 사라져갔다. ‘이젠 안녕, 나, 학교를 더 다닐 힘이 없어요. 미안해요….’ 원망하거나 분노조차 하지 않았던 그들이 하나둘 망막에 어릴 때마다 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스스로 떠난 아이나 타살된 아이나 미성년의 아이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언제나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옆에만, 무섭거나 춥거나 배고프지 않게만, 누구라도 좋으니 그저 함께 어려운 시간 오래도록 같이만 견뎌주길 아이들은 바랐다. 그리고 그 단순한 바람들이 나는 지금 세상 그 무엇보다 아프고 슬프다.

자, 그러니 책임이란 것을 한번 등에 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저마다 피리 부는 사내와 계집이 되어 서로를 꼬드기고 꽃 같은 생명들 만들고 마구 세상에 흩뿌린 자들은, 당연히 자기복제의 꿈은 꾸지도 말 것이며 더 이상 사기도 치지 말 것이며, 그러므로 뭔가를… 이런 자들이… 그런데… 뭔가를… 하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 일단 한다고 치자. 과연 무엇부터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가까이 나부터 돌아보자. 일단은 무슨 일을 할 때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속이지 말 일이다. 뭐든 다 할듯 ‘폼’도 잡지 말 일이다. 장담도 약속도 말자. 다만, 있으라. 다들 그 자리에. 다만 숨죽이고 들으라. 가청권을 벗어난 침묵의 주파수를 읽어보라. 그러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심해에서 들려오는 낮은 신음과 탄식과 비명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대개의 교신 부호는 아주 간명한 것이다. 심오한 우울이 아니다. 타고난 절망도 아니다. 그저 배가 고프다, 편한 잠자리가 필요하다, 더 이상 맞기 싫다, 쓸쓸하다, 심심하니 뭔가 하고 싶다, 무엇보다 성장이 운명인 시절이니 ‘성장’을 하고 싶다, 날 좀 성장하도록 도와달라… 는 정도의 바람이란 말이다.

어쩌자고 꽃들을 불러왔는가

어리석은 우리여. 그러니 그때그때 응답하고 교신하자. 왜냐, 그것밖엔 어리석은 우리가 선택할 만한 ‘진실된’ 행위가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그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 이제 누구도 바라거나 믿거나 기대하지 않으니 교육 입국도 선진복지 사회도 대안 공동체의 이상까지도 모두 ‘당신들의 천국’임을 ‘미성년’의 마음이 되니 또렷이 알아버렸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여 부디 죽지 말고 살아 있어라. 그리하여 자신이 맡아 책임질 아이 하나만이라도 찾아 그 곁을 오래 지켜주어라. 이런 길이 너무 답답하고 남루하게 여겨진다면 현명한 그대여, 더 좋은 길을 찾아 내게 메일이라도 한 통 띄워주시라. 다시 속는 한이 있어도, 눈물샘이 짓물러 잦아 붙었어도, 이즈음이라면 나, 도망과 은둔의 달인일지라도, 정말이지 뭔가 다시 시작할 마음이 새삼 드는 것이다.

가여운, 너무도 아팠던 아이들아, 잘 자거라. 이제 아무것도 애타게 그리워하지도 기다리지도 말아라. 나, 정말 너희에게 미안하고 미안하다. 어쩌자고 이 칠흑 같은 세상에 꽃 같은 너희를 함부로 나오게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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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감축드립니다

술술 풀린 글보다 왜 날려버리고 고통스레 다시 쓴 글이 호평받을까
성공은 좌절의 산물임을 알므로 남들의 ‘비보’에 엽기적으로 환호한다네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오후 6시, 내가 책상 앞에서 일어서는 시각이다. 이 시각부터 나는 사람을 만나거나 술을 한잔 하거나 한다. 하지만 10월13일 오후 6시에는 책상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두 신문사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10월13일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는 고은 시인이 수상자가 될 경우 그분과의 개인적 친분과 문학세계에 관련된 글을 두 신문사에 써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6시부터 잔뜩 긴장한 채 서재와 안방을 오가면서 신문 원고를 메모하거나 TV 화면을 힐끔거리거나 했다.

노무현 탄핵에 “월척이다”

8시 뉴스에 수상자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8시부터는 꼼짝도 하지 않고 TV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한국인의 문학적 업적에, 우리의 모국어에 노벨문학상이 얹힌다는 것을 확인하는, 필경 무지하게 짜릿할 터인 그 감동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거나 마실 수도 없었다. 고은 시인이 수상할 경우, 밤늦게까지 써야 할 원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8시30분쯤 되었을까? TV 화면 속의 아나운서가 약간 풀 죽은 표정을 하고는,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아닌,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쉬웠다. 허탈했다. 섭섭했다.

솔직하게 쓰자. 아쉽고, 허탈하고, 섭섭하기만 했던가? 엉뚱한 사람이 수상한 덕분에 나는 두 꼭지 신문원고를 써야 하는 엄청난 부담에서 놓여났는데?

고백하거니와, TV 앞에서 일어서면서 내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아이고, 살았구나.”

그로부터 한 주일 뒤, 세계 도서 축제가 열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은 시인을 만났다. 마음고생 많이 하셨지요? 이런 의례적인 인사 끝에, 발표 당일 내가 했던 마음고생과, 발표를 듣는 순간 내가 보였던 이기적인 반응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긴장했다. 그가 이런 말로 나를 야단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내가 수상에 실패했는데, 모국의 문학에, 모국어에 돌아올 수도 있는 영광이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데도 자네가 보인 반응이, 뭐? 아이고 살았구나? 신문 원고 쓰는 부담에서 놓여났다고, 뭐, 아이고 살았구나? 자네가 그러고도 한국의 작가야? 한국인이야?”


△ 살아 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풀은 말라야 하고 나무는 자라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이 오거든 보라.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살아난다. (사진/ EPA)

그러나 아니었다. 고은 시인은 나의 고백을 듣고는 한동안 탁자를 치면서 박장대소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안 섭섭해. 이 사람아, 그게 인간이야.”

노벨문학상 악몽(?)이 끝난 지 겨우 일주일, 고은 시인은 그 악몽을 거뜬하게 소화하고는 늙은 악동(?)으로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고은 시인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차례 일진광풍을 맞은 거목 같은 분 이야기를 앞세워서 노 시인께는 퍽 송구하지만, 나는 지금 다음 세대 사람들이 경험할 실패에 대해서, 좌절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써서, 복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송고하는 과정에서 날려버리는 경험을 나는 여러 차례 했다. 원고가 짧을 경우에는 별로 큰 일이 아니지만 긴 원고일 경우에는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그래서 철통 같은 방어망을 구축해놓고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이 ‘원고 날려먹기’와 ‘원고 다시 쓰기’의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해방된, 완벽한 무풍지대에는 있지 못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나에게 상을 안겨준 작품들,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대부분의 작품들은 ‘날려먹기’와 ‘다시 쓰기’의 아픈 경험과 관련이 있다. 글이 술술 풀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술술 풀린 글, 글쓰기의 고된 노동을 거의 면제받은 듯한 글로써 나는 호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아프다.

나 자신의 실패를 위로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에서 유래한 것이기가 쉽다. 나에게는 남의 비보에 환호하는 매우 엽기적인 버릇이 있다. 나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었을 때, 드디어 입질 왔다, 이런 반응을 보임으로써 아내를 당황하게 한 사람이다. 나는 탄핵안이 통과되었을 때, 월척이다, 하고 소리침으로써 울먹이던 아내를 당혹케 한 일도 있다.

문명국들이 온대지방에 있는 이유

야구선수 박찬호가 연승하면 나는 불안해진다.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되는 데 실패하면 나는 마음 편해진다. 나는 박찬호의 성공은, 박찬호의 실패와 좌절의 산물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실패하고 좌절하지 않았더라면 저 나이의, 저토록 듬직한 선수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골프 선수 박세리의 공이 호수에 빠졌어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박세리의 빛나는 승리는 바로 그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피워낸 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골프선수 미셸 위가 사소한 반칙 때문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데 실패했을 때도 내가 보인 반응은 이것이었다. 미셸 위, 축하해요.

겨울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매우 혹독한 계절이다. 풀은 말라야 하고 나무는 자라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계절이다. 새들은 배를 곯아야 하고 산 짐승은 먹을 것이 없어서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이 오거든 보라.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살아난다.

겨울이 오고 있는데도 나는 화분 중 몇 개는 집안으로 들여놓지 않고 있다. 겨울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음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도 있다. 대부분의 알뿌리 식물은 겨울을 경험해야 다음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식물원은 매장으로 나갈 알뿌리를 냉장고에다 보관하는 것이다.

세계의 선진 문명국들이 온대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것은, 온대지방이 겨울이 있는 땅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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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11-29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조합원으로...(2005. 11. 29. 지부게시판에..)

어젠... 마음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뭔가 불안하고 아프고..
지금도 너무 아픕니다.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세상이, 대한민국이, 그리고 우리 전교조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가입후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전교조'와 '전교조 샘들'에 대한 변치 않을 믿음으로,
그저 곁에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서...
대한민국 교사로서 제가 '힘'을 얻는 거의 유일한..!!

그런데 지금 저는 너무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생채기 내며 싸우는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숨도 제대로 못 쉬겠고,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으며,
이곳 저곳 눈치만 보게됩니다.

제가 아는 샘들이 어떤 생각들을 하시는지 역시 잘 모릅니다.
그저 학교에서, 지부에서 궂은 일 마다않고 늘 애쓰시는 그 모습때문에
좋아하고 존경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샘들..
훨씬 상처받고 힘들어하실 그 분들이 그저 걱정됩니다.
안부조차 물을 수 없을 정도로...

'전교조'에 대한 애정을 놓고 싶지 않은
평범한 조합원인 제 마음입니다.
아마 많은 샘들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걱정되고 불안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저는
길고 모진 부모의 싸움을 그저 묵묵히 더 견뎌야할까요?
아니면 '이혼'을 예감해야 할까요?

이철수씨의 판화처럼 '기적같이 좋아진 세상'을 기다립니다.

2005-11-29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울 2005-11-30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 고민은 '집단사고'의 맹점에 있습니다. 다수결 역시 결정하고 집행하기엔 좋은 시스템이지만, 숙고하거나 새로운 전망을 내세우고, 조직의 유연함과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우리세대의 자라온 경험자체가 집단을 넘어선 사고의 유연성과 거리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옥죄는 올가미처럼, 무의식속에 베여있다는 것은 지나칠까요? 틀내에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지만, 보다 넓은 틀에선 무력하기 일쑤인 것 같습니다. 조합내에서 최선의 선택자체, 그동안의 경험이 앞으로 갈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존중하면 존중할수록 내부의 틀, 움직임자체는 경직되는 것은 아닐까요?

첫사랑의 맘처럼, 새로움과 손에 잡힐 듯 말듯한 ... 다른 처지, 다른 모둠...다른 입장 속에서 생각하는 사고가 같이 자라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