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일-246호]
 
 

눈독 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하마,
손을 타면
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
토란잎 위
물방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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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4-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 상 포 인 트

―눈독 들일 때 사랑은 가장 아름답다

참 깜찍하다고 할까요. 요염하다고 할까요. 그도 아니면 비수처럼 날카롭고 섬세하다고나 할까요. 아주 짧게 인상적인 생의 한 국면, 사물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묘파해 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사물은 〈눈독 들일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미 결판나 버린 것,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중인 것, 미완의 것일 때 더욱 빛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활동성을 지니고 있으며 긴장력이 팽팽하게 촉발되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것, 美라고 하는 것, 또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형성중일 때, 아직 진행되고 있을 때 섬광처럼 그 빛을 발하는 것이지요. 미완의 것이어서 긴장이 지속될 때, 꽃처럼 싱싱하고 태양처럼 빛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한순간 깨어질지 몰라 조바심 칠 때 미적인 긴장이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손을 타면/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것처럼 더욱 아끼고 근심하여 긴장을 지속시켜 갈 때 미적 긴장력이 더욱 확대되고 심화돼 가는 것입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김광석의 노래를 그의 친구들이 부릅니다.
물론 김광석의 모습도 함께 나오고.
김건모도 보이고,
윤도현도 저 뒤쪽에 있고,

서른 셋, 아까운 나이에 별이 되어버린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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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한다고? 안중근이 벌떡 일어날 일

‘숭모사업’을 둘러싼 왜곡

 

 

 

 

최근 보도에 의하면 안중근의사숭모회(회장 황인성-전 국무총리)가 150억원(국고 120억원과 후원금 30억원)을 들여 현재의 기념관 바로 옆 남산식물원 자리에 새로운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올 7월 착공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이기도 한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가 시민의 신문에 기고한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요즘 일본 문부과학성이 고등학교 교과서 제작출판사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영유권을 명시토록 한 것이 논란이다. 정치가들의 망언 수준을 벗어나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우리 한국 내부에서도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태의 책임은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한국 내부의 일부 역사학자에게도 있다. 일본 측이 전후에 ''범죄의 재구성'' 차원에서 조작한 자료들을 마치 실증주의 역사학의 자료인 것처럼 인용하는 한국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숭모사업? 기념사업 빙자한 이권사업

결국 한일 과거사 문제에 있어 우리 한국은 양방향에서 협공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쪽엔 일본정부가, 다른 한쪽엔 국내 역사학자들이 있는 것이다. 오늘은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 지난 수 십 년 동안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둘러싼 왜곡된 숭모사업을 예로 들어 이 문제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남산 조선신궁터의 식물원.
김민수
남산 조선신궁터의 식물원.

지난 3월 26일이 안중근 의사가 뤼쑨 감옥에서 순국한지 96주기였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에 만주 하얼삔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됐다. 역사적으로 ''10.26''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영화 ''그 때 그 사람''을 연상하지만, 사실 이 날은 자주독립, 사회정의, 동양평화를 위해 원흉을 저격했던 안 의사의 거사일이다. 안 의사는 체포되고 5개월 만인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순국 96주기를 맞아 안 의사 기념관을 일제가 건립한 남산 조선신궁 터에 새로 짓는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 식물원이 있는 곳인데, ''안중근의사 숭모회''측에서 이곳에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기념관을 새로 짓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건립비용은 총 150억으로 이중 120억은 정부예산으로, 나머지 30억원은 후원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숭모회 측은 기념관 건립의 이유로 "1970년에 건립된 기존 안 의사 기념관은 건물이 낡고 좁아 방문객들로부터 외면당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안 의사 기념관이 왜 이 남산에 세워졌을까.

그 이유는 현재 기념관 왼편에 세워져 있는 태극기를 들고 있는 안 의사 동상이 증언하고 있다.
바로 해방 후 친일세력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은폐하고, 독재정권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통치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함 이었다.

친일조각가가 만든 안중근 동상

안 의사 기념관 아래의 남산 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1969년 제작)과 함께 안 의사의 동상 역시 대표적인 친일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해 1974년에 세워졌다. 안 의사를 숭모한다면서 악질적인 친일조각가의 손으로 제작한 동상이 버젓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1970년에 기념관을 세운 목적도 안 의사를 숭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차원에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경승 제작, 안중근의사상.
김민수
김경승 제작, 안중근의사상.

일종의 관변 단체 활동차원에서 안 의사의 기념관이 지어진 셈이다. 지난 1963년에 사단법인 설립이 승인되어 1970년 10월 26일에 박정희 전대통령의 지원으로 기념관이 건립된다.

그동안 이 숭모회의 역대 이사장과 주요 간부들은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 이사장의 경우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친일했던 사람들이거나 독재정권의 관료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런 사정은 다른 독립투사 기념사업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친일진상규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막았던 정당 고위공직자 출신 정치가가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야합을 하면 기념사업회 측에선 각종 이권사업을 펼치기 쉽고, 정치가는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어 상부상조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다 보면 젯밥에 눈이 멀어 실제 기념사업보다는 건물세우는 일처럼 항목이 큰 사업비 책정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결국 혈세를 낭비하게 된다.

현재 안 의사 숭모회가 운영하고 있는 안 의사 기념관의 경우, 제대로 관리가 되지도 않고 있다. 유품을 전시할 공간이 모자란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전시물이 교체되지도 않고, 전문성이 엿보이는 기획 전시는 더욱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숭모하고 기념하는 일이 아니라 기념사업을 빙자한 일종의 이권사업인 셈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안 의사를 숭모한다면서 어떻게 친일조각가의 동상을 세워놓고 있겠는가. 그런데도 숭모회 측에선 "안 의사 동상이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조각가 김경승이 훌륭한 작가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김경승은  대표적 친일단체였던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의 ''경성미술가협회''에 평의원, 조각분과 역원으로 부역행위를 했던 인물이다. 경성미술가협회는 1941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목적은 대동아전쟁을 위한 신체제 아래서 미술가들이 단결하여 직역봉공을 다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미술인 최대의 조직이었다.

또한 매일신보 1942년 6월 3일자에 보면, 김경승은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서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중대한 사명을 위해 미력이나마 다하겠다"고 맹세를 하기도 했다. 그는 1944년에 결전미술전람회에 조소부 심사원이자 ''대동아건설의 소리''라는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는데, 그가 제작한 것으로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안중근, 이순신 , 도산 안창호,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 등이 많이 있다.

일제가 세운 ‘조선신궁’도 문제

이번에 새로 짓겠다는 기념관 자리가 조선신궁 자리라는 것을 민족정기 회복 차원이라 오해할 이들이 있을까봐 좀 긴 설명을 덧붙여야겠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는 민족정기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에 해당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조선신궁이 남산에 세워진 과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신궁은 1925년에 세워졌다. 원래 남산은 조선왕조의 한양성에서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태조는 조선왕조를 건국하면서 남산에 나라의 제를 올리는 사당인 국사당을 지었다. 현재 남산타워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짓고 국사당을 인왕산 기슭으로 이전시켜버리면서 ''국사당''의 제사 ''사''(祀)자를 스승 ''사''(師)자로 교묘하게 바꿔버렸다. 천제를 올렸던 국사당을 마치 조선왕조의 스승격인 무학대사를 위한 사당처럼 격하시켜 버렸던 것이다. 일제가 저지른 남산의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방 후 친일비호세력으로 등장한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들은 독재자 이승만을 ''국부''라 칭하고, 1955년 조선신궁 자리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이 동상은 친일조각가 윤효중이 제작한 것으로 이승만의 81회 생일을 봉축한다는 뜻에서 몸체(23.5척:7.12m)와 축대 높이를 합해 81척(24.54m)으로 제작되었다. 이 동상은 1955년 개천절에 기공해 다음해 8.15광복절에 제막되었는데, 4.19혁명 때 성난 시민들이 폭파시켜 버렸다.

이런 역사를 목격했던 박 정권이 1970년에 정권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안 의사 기념관을 식물원 밑에 건립했다. 따라서 남산식물원, 옛 조선신궁 자리에 기념관을 새로 짓겠다는 것은 일제에서 이승만 정권을 거쳐 이어져 온 ''성역화 사업''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바로 식민잔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민족정기의 전당'' 돌덩어리
김민수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민족정기의 전당'' 돌덩어리.

안 의사 기념관 앞에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휘호가 새겨진 거대한 돌덩어리가 있는데, 실은 ''민족정기 훼손의 전당''인 셈이다. 당장에 능욕당하고 있는 안 의사 동상과 기념관 자체의 훼손된 역사를 바로잡지도 못하면서 새 건물부터 짓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말로 안 의사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한다면 기념관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남산이 아니라 평지로 내려와야 한다. 안 의사를 기념한다고 동상을 세우고, 사당처럼 지어 신격화하는 것은 일제잔재와 독재정권의 잔재를 대물림하는 것이다. 안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의 핵심은 ‘자주독립’, ‘사회정의’, ‘동양평화’로 이 정신은 조선신궁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친근하게 계승되어야 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내부
김민수
안중근의사 기념관 내부.

이런 왜곡된 기념사업 때문에 지난 2003년 6월에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진의 퇴진과 개혁을 촉구하는 100인 선언''이 있었다. 

일 왜곡 대응, 우리 내부 역사 제대로 보기부터

그 선언문에 보면 “국권침탈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정신은 식민잔재 청산과 자주적인 독립국가 건술로, 민권자유의 신장에 바탕을 둔 사회정의는 폭력적인 국가권력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으로, 동양평화사상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화해와 민족공조로,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연대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안의사 기념관 새로 짓는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예산 지원을 먼저 약속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 과정부터 거쳐야 한다. ''신격화/성역화된 사당 짓기''가 되면 곤란하다.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우리는 이미 살던 대로 계속 영유하고 있으면 된다.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단호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한 문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오래 동안 치료되지 않은 왜곡의 역사가 우리 내부에 많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 내부를 향한 대응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내부의 역사 문제에 대해 명확히 할 때, 최근 일본의 왜곡 도발에 대해서도 대응할 힘이 실릴 수 있다.

 김민수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3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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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4-0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사실은 알게되었네요. 처음엔 글쓴이가 미대 교수라서 유한 글인줄 알았더니.
 

雪の華




のびた 人陰(かげ)を ほどうに ならべ
[노비따 카게오 호도-니 나라베]
길어진 그림자를 도로에 나란히 하며

夕闇(ゆうやみ)の中(なか)を 君(きみ)と步(ある)いてる
[유-야미노나까오 기미토아루이떼루]
땅거미 속을 너와 걷고 있어요

手(て)を つないで いつまでも ずっと
[테오쯔나이데 이쯔마데모즛또]
손을 잡고서 언제까지 계속

そばに いれたなら 泣(な)けちゃうくらい
[소바니이레따나라 나케쨔우쿠라이]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눈물이 흘러 버릴 정도로

風(かぜ)が 冷(つめ)たくなって 冬(ふゆ)の においがした
[카제가 쯔메따끄낫떼 후유노 니오이가시따]
바람이 차가워지며 겨울의 냄새가 났어요

そろそろ この街(まち)に 君(きみ)と近付(ちかづ)ける 季節(きせつ)がくる
[소로소로 코노마찌니 키미또찌까즈케루 키세쯔가쿠루]
이제 곧 이 거리에 너와 더 다가갈 수 있는 계절이 오지요

今年(ことし),最初(さいしょ)の 雪(ゆき)の華(はな)を ふたり寄(よ)り添(そ)って
[코토시, 사이쇼노 유끼노하나오 후타리요리솟떼]
올해, 첫 눈 꽃을 둘이 가까이 붙어서

眺(なが)めている この瞬間(とき)に 幸(しあわ)せがあふれだす
[나가메떼이루 코노토끼니 시아와세가아후레다스]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에 행복이 넘치기 시작해요

甘(あま)えとか 弱(よわ)さじゃない ただ, 君(きみ)を愛(あい)してる
[아마에또까 요와사쟈나이 타다, 키미오아이시떼루]
어리광이라든지 약한 모습이 아니에요 단지, 너를 사랑하고 있어요

心(こころ)から そう 思(おも)った
[코꼬로까라 소- 오못따]
마음으로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君(きみ)が いると どんな ことでも
[기미가 이루또 돈-나 코또데모]
네가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乘(の)りきれるような 氣持(きも)ちになってる
[노리키레루요-나 키모찌니낫떼루]
극복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에요

こんな 日 (ひび)が いつまでも きっと
[콘-나 히비가 이쯔마데모 킷또]
이런 나날이 언제까지나 분명히

續(つづ)いてく ことを 祈(いの)っているよ
[쯔즈이떼끄 코또오 이놋떼이루요]
계속 되어 갈 것을 기도하고 있어요

風(かぜ)が 窓(まど)を搖(ゆ)らした 夜(よる)は 搖(ゆ)り起(お)こして
[카제가 마도오유라시따 요루와 유리오꼬시떼]
바람이 창을 흔든 밤은 흔들어 깨워 줘요

どんな 悲(かな)しい ことも 僕(ぼく)が 笑顔(えがお)へと 變(か)えてあげる
[돈-나 카나시이코또모 보끄가에가오에토 카에떼아게루]
어떤 슬픈 일도 내가 웃는 얼굴로 바꾸어 줄게요

舞(ま)い落(お)ちてきた 雪(ゆき)の華(はな)が 窓(まど)の 外(そと) ずっと
[마이오찌떼끼따 유끼노하나가 마도노 소토 즛또]
흩날리며 내려 온 눈 꽃이 창 밖에 계속

降(ふ)りやむ ことを 知(し)らずに 僕(ぼく)らの 街(まち)を染(そ)める
[후리야무 코또오 시라즈니 보끄라노 마찌오소메루]
멈추는 것을 모른 채 우리의 거리를 물들이지요

誰(だれ)かのためになにかを したいと思(おも)えるのが
[다레까노타메니나니까오 시따이또오모에루노가]
누군가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愛(あい)という ことも知(し)った
[아이또이우 코또모싯따]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알았어요

もし,君(きみ)を 失(うしな)ったとしたなら
[모시, 키미오 우시낫따또시따나라]
만약, 너를 잃어버렸다고 한다면

星(ほし)になって 君(きみ)を照(て)らすだろう
[호시니낫떼 키미오테라스다로-]
별이 되어 너를 비추겠지요

笑顔(えがお)も淚(なみだ)に 濡(ぬ)れてる夜(よる)も
[에가오모나미다니 누레떼루요루모]
웃는 얼굴도 눈물로 젖어 있는 밤도

いつも いつでも そばに いるよ
[이쯔모 이쯔데모 소바니 이루요]
언제나 언제라도 곁에 있을게요

今年(ことし),最初(さいしょ)の 雪(ゆき)の華(はな)を ふたり寄(よ)り添(そ)って
[코토시, 사이쇼노 유끼노하나오 후타리요리솟떼]
올해, 첫 눈 꽃을 둘이 가까이 붙어서

眺(なが)めている この瞬間(とき)に 幸(しあわ)せが あふれだす
[나가메떼이루 코노토끼니 시아와세가 아후레다스]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에 행복이 넘치기 시작해요

甘(あま)えとか 弱(よわ)さじゃない ただ,君(きみ)とずっと
[아마에또까 요와사쟈나이 타다, 키미또즛또]
어리광이라든지 약한 모습이 아니에요 단지, 너와 계속

このまま 一緖(いっしょ)に いたい 素直(すなお)に そう 思(おも)える
[코노마마 잇쇼니 이따이 스나오니 소- 오모에루]
이대로 함께 있고 싶어요 솔직하게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この街(まち)に 降(ふ)り積(つ)もってく 眞(ま)っ白(しろ)な 雪(ゆき)の華(はな)
[코노마찌니 후리쯔못떼끄 맛시로나 유끼노하나]
이 거리에 내려 쌓여 가는 새 하얀 눈 꽃

ふたりの胸(むね)にそっと 思(おも)い出(で)を描(えが)くよ
[후타리노무네니솟또 오모이데오에가끄요]
두 사람의 가슴에 살며시 추억을 그려요

これからも 君(きみ)と ずっと…
[코레까라모 키미또 즛또…]
지금부터도 너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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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 실수였다.

지난 금요일 야자 1차시, 그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3월이 채 다가기도 전에 우리 반 아이들 13명이 작게는 한 번, 많게는 세 번씩 짬날 때마다 담임 눈을 피해 야자는 물론 보충을 도망간 사실을 알게 되어 즈들 담임이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본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고, 다음 다음 날인 수요일, 바로 즈들 담임 야자감독 당번 날, 전과? 때문에 간신히 겨우겨우 허락받은 외출에서도 늦게 돌아와 다 늦은 저녁을 먹는다고 식판을 덜그럭거리며 옆반 아이들이랑 달콤한 수다를 떨다가 딱 걸려 야단맞은 지 겨우 이틀이 지난 시점.

평소에 일찍 가게 되면 "나 오늘 일찍 가야하니까 샘한테 볼 일 있는 사람은 지금 말해라" 등등의  대한민국 인문계 담임으로서는 간도 크게 '담임의 부재'를 공표하고 당당히 퇴근하는 무책임한 행위를 종종해오던 내가 우연히 늦게 남게 된 금요일이었다. 아이들의 토론을 지켜보기 전에 교실에 잠깐 들러 불시의 점호를 시작하는데 한 눈에 머리수가 부족한 것이 느껴졌다.

어디보자 누가 없나.... 어라 월요일 반성문 쓰고, 수요일 야단맞은 녀석들 네 명이 또 없네. 게다가 반장에 우리반 얌순이까지.. "샘, 반장은 아파서 병원간다든데요~" "뭐? 어쨌든 나한테 말한 적 없다" 슬슬 오르는 '화'를 느끼며 칠판에 이름을 써두고 팽~ 도서실로 갔다.

석식시간 지나고 교실에 잠깐 들렀는데 네 녀석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당근 복도로 호출. "야단 맞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이러냐? 느들만 상처받는 거 아니다. 샘도 인간이다. 상처 받는다. 이렇게 뒤통수 칠 수 있나? (^$%%%*& 모르겠다. 이제 느들은 마음대로 해라. 정말 실망했다. %*($%^*( 언제 샘이 느그 조퇴, 외출한다고 하면 안 보내준 적 있었나? 왜 도망가는지 모르겠다. 물론 쉽게 빼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도망을 가? 그건 거짓말이랑 같은 것이고 그것이 왜 나쁜지는 이미 느그들한테 충분히 말했다. 느그들이 죄수가? 샘이 늘 간수처럼 느들을 감시하고.. 그래야되나? 이젠 진짜 느그들은 맘대로 해라. 들어가라. 반성문도 쓸 필요 없다. 느그 맘대로 해라!!" 등등의 요지로 잔소리를 한 바가지 퍼부었다. 1차 잔소리가 끝날 즈음 올라온 두 녀석. 흠찔 놀라는 눈치. 다가가서 예의 그 잔소리를 또 퍼부었다. 왜 그랬냐? 무슨 일이냐? 이렇게 물으면 또 감정에 치우쳐 놈들을 이해해버리게 될까봐서 일부러 물어보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도망간 반장이란 얌순이 녀석에게는 조금 약하게 퍼붓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같은 잘못을 한 녀석들에게는 찬바람 슁~

그 다음 날, 토요일. 녀석들이 잘못했다고 먼저 인정하고 들어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그럴 기미는 전혀 없이 즈들끼리 마구마구 만우절과 토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이런~~ 괘씸한!!! 게다가 4교시 HR시간에 반장이 피자를 쏘는 바람에 반 아이들 모두 즐거움에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이 놈들이!! 에이~ 이번에도 마 반성문 써오라고할 걸 그랬나? 우짜지? 내 쪽에서 먼저 제스쳐를 취하기엔 자존심 상하는데...

일요일밤. 생각다 못해 문자를 넣었다. '지금부터 책상앞에 앉아 반성문 써서 내일 샘 책상위에 올려놓을 것'

오늘 월요일. 조례시간 들어가서 재범인 네 녀석들에게만 반성문을 요구했다. 1교시 후 쉬는 시간. 마지못해 써온 듯한 짧은 반성문!...? 아주 직설적으로 내게 섭섭하다는 글귀! 엥 이건 뭐야.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면 넘어가줄랬더니...쩝! 요는 즈들과는 달리 초범인 반장과 얌순이에게는 반성문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날의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화를 낸 담임이 사람 차별하는 것 같다는 것! 뭐야 이건~ --; "좋다, 그럼 그 두 녀석에게도 반성문 쓰게 할까?"했더니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네! 쓰게 하지요!!" 아, 나는 이런 말에는 정말 꼭지가 돈다. 잠시 후 내 머리 속에서 뚜껑이 날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시작되는 잔소리....잔소리... 잔소리들... 그나만 2교시 수업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거 맞다. 아이들 입장에선 충분히 억울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의 네 명 중  두 명은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뽁이를 먹다가 9교시 야자시간에 10분정도 늦은 거였고 약국에 다녀온 반장과 얌순이 보다 훨 일찍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었단다. 나머지 두 녀석은 친구 생일을 챙겨준다고 후문쪽에서 잠시 지체를 하고 그 때 돌아오던 장면이었던 것이다. 물론 마음 속 깊이 "그래도 그렇지"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 10분이건 몇 분이건 늦는 행동은 공부하는 다수의(사실 우리반은 소수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 그걸 생각 못하는 건 명백히 녀석들의 잘못이다. 그치만 아이들의 책임을 묻기 전에 보충이니 야자니 하는 것들이 생래적으로 지닌 문제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보충도 야자도 100% 아이들의 자율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담임이 아이들에게 '믿음의 토대' 운운하는 건 우습다. 쪽팔린다. 아이들이 표현 못(안)해서 그렇지 이건 명백한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담임들의 원죄가 아닌가?

그/래/서/

녀석들을 슬그머니 용서해주기로 했다. 이건 그야말로 슬그머니 해야한다. 드러내고 사과하고 싶은 욕망을 꾹 참아야 인문계 담임의 쥐뿔같은 카리스마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달부터는 원하는 녀석들은 야자를 거의 다 빼주기로 했다.(보충은? 이런 거 불문율이다. 물으면 실레다.그럼에도 굳이 답하자면 당근 이것까지는 감당이 안 된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정말 예민한 것이다.)  물론 제출해야할 서류는 있다. 1학년 진급성적, 지난 모의고사 성적을 부모님께 공개하고 부모님으로부터 야자동의서를 받아오게 했다. 아울러 한 달 동안의 공부계획서도 받았다. 착한 이 아이들은 너무나 감사해하며 이 모든 불편을 감수했다. 지금 내 책상서랍 속엔 22장의 부모님동의서와 공부계획서가 서류의 주인들 마냥 아주 얌전하게 구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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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4-0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생각해보니 '실수'라는 말은 '실수'다. '그건 내 실수였다'를 '그건 내 잘못이었다'로 정정한다. 그러나... 그러나....말이다, 똑같은 상황이 재연된다면 나는 의연하게 이유를 물어보고 이해하고 뭐 그럴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왜 그 덤덤함이 이다지도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이건 사랑은 아닌 것 같고.. 집착이나 신경증의 일종이 아닐까? 스스로의 자기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짜꼬?

느티나무 2006-04-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환한 오늘이라는 카테고리엔 어울리지 않는 글 내용. 그럼 반어인가? ㅋㅋ 난 교환일기 쓸 사람 여섯 명 모았는데...(우리 학교에서 놀라운 성과 아니오?) 정말 같이 안 하실라우?

해콩 2006-04-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런 상황이 다 '환'하게 느껴지니... 나이를 먹은 탓일까요?
교환일기는 손으로 쓰는 글에 서툴러서 말이죠. 그 여섯분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사실 반 아이들 쓰고 있는 일기장도 아직 한 번도 안보고 있다는... 컴으로 쳐서 부쳐도 된다며 함께 하지요... 저의 글씨, 못 알아보실걸요~
그나저나 우리반 아그들 일기장을 함 보긴 봐야하는데...

느티나무 2006-04-03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는 걸로 알겠어요. 같이 한다고 하신 최ㅈㄱ 샘도 글씨 못 쓴다고 하시던데...새로 오신 윤ㅇㅈ 샘, 저, 국어과의 조ㅇㅅ샘, 샘의 짝지 샘, 김ㅈㄱ 총각샘 이상 여섯 명이죠. 근데 한 명 더 늘었네. 아마 정ㅎㅊ 샘도 하실 것 같은데...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너무 자주도 아니고 한 열 명 정도면 적당하겠구만요.

해콩 2006-04-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ㅅㅊ샘은 우찌 안될까요? 또... 정ㄱㅁ샘은? ㅋㅋ..아이구 생각해보니 같이 할 사람 많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