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 실수였다.
지난 금요일 야자 1차시, 그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3월이 채 다가기도 전에 우리 반 아이들 13명이 작게는 한 번, 많게는 세 번씩 짬날 때마다 담임 눈을 피해 야자는 물론 보충을 도망간 사실을 알게 되어 즈들 담임이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본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고, 다음 다음 날인 수요일, 바로 즈들 담임 야자감독 당번 날, 전과? 때문에 간신히 겨우겨우 허락받은 외출에서도 늦게 돌아와 다 늦은 저녁을 먹는다고 식판을 덜그럭거리며 옆반 아이들이랑 달콤한 수다를 떨다가 딱 걸려 야단맞은 지 겨우 이틀이 지난 시점.
평소에 일찍 가게 되면 "나 오늘 일찍 가야하니까 샘한테 볼 일 있는 사람은 지금 말해라" 등등의 대한민국 인문계 담임으로서는 간도 크게 '담임의 부재'를 공표하고 당당히 퇴근하는 무책임한 행위를 종종해오던 내가 우연히 늦게 남게 된 금요일이었다. 아이들의 토론을 지켜보기 전에 교실에 잠깐 들러 불시의 점호를 시작하는데 한 눈에 머리수가 부족한 것이 느껴졌다.
어디보자 누가 없나.... 어라 월요일 반성문 쓰고, 수요일 야단맞은 녀석들 네 명이 또 없네. 게다가 반장에 우리반 얌순이까지.. "샘, 반장은 아파서 병원간다든데요~" "뭐? 어쨌든 나한테 말한 적 없다" 슬슬 오르는 '화'를 느끼며 칠판에 이름을 써두고 팽~ 도서실로 갔다.
석식시간 지나고 교실에 잠깐 들렀는데 네 녀석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당근 복도로 호출. "야단 맞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이러냐? 느들만 상처받는 거 아니다. 샘도 인간이다. 상처 받는다. 이렇게 뒤통수 칠 수 있나? (^$%%%*& 모르겠다. 이제 느들은 마음대로 해라. 정말 실망했다. %*($%^*( 언제 샘이 느그 조퇴, 외출한다고 하면 안 보내준 적 있었나? 왜 도망가는지 모르겠다. 물론 쉽게 빼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도망을 가? 그건 거짓말이랑 같은 것이고 그것이 왜 나쁜지는 이미 느그들한테 충분히 말했다. 느그들이 죄수가? 샘이 늘 간수처럼 느들을 감시하고.. 그래야되나? 이젠 진짜 느그들은 맘대로 해라. 들어가라. 반성문도 쓸 필요 없다. 느그 맘대로 해라!!" 등등의 요지로 잔소리를 한 바가지 퍼부었다. 1차 잔소리가 끝날 즈음 올라온 두 녀석. 흠찔 놀라는 눈치. 다가가서 예의 그 잔소리를 또 퍼부었다. 왜 그랬냐? 무슨 일이냐? 이렇게 물으면 또 감정에 치우쳐 놈들을 이해해버리게 될까봐서 일부러 물어보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도망간 반장이란 얌순이 녀석에게는 조금 약하게 퍼붓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같은 잘못을 한 녀석들에게는 찬바람 슁~
그 다음 날, 토요일. 녀석들이 잘못했다고 먼저 인정하고 들어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그럴 기미는 전혀 없이 즈들끼리 마구마구 만우절과 토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이런~~ 괘씸한!!! 게다가 4교시 HR시간에 반장이 피자를 쏘는 바람에 반 아이들 모두 즐거움에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이 놈들이!! 에이~ 이번에도 마 반성문 써오라고할 걸 그랬나? 우짜지? 내 쪽에서 먼저 제스쳐를 취하기엔 자존심 상하는데...
일요일밤. 생각다 못해 문자를 넣었다. '지금부터 책상앞에 앉아 반성문 써서 내일 샘 책상위에 올려놓을 것'
오늘 월요일. 조례시간 들어가서 재범인 네 녀석들에게만 반성문을 요구했다. 1교시 후 쉬는 시간. 마지못해 써온 듯한 짧은 반성문!...? 아주 직설적으로 내게 섭섭하다는 글귀! 엥 이건 뭐야.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면 넘어가줄랬더니...쩝! 요는 즈들과는 달리 초범인 반장과 얌순이에게는 반성문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날의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화를 낸 담임이 사람 차별하는 것 같다는 것! 뭐야 이건~ --; "좋다, 그럼 그 두 녀석에게도 반성문 쓰게 할까?"했더니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네! 쓰게 하지요!!" 아, 나는 이런 말에는 정말 꼭지가 돈다. 잠시 후 내 머리 속에서 뚜껑이 날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시작되는 잔소리....잔소리... 잔소리들... 그나만 2교시 수업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거 맞다. 아이들 입장에선 충분히 억울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의 네 명 중 두 명은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뽁이를 먹다가 9교시 야자시간에 10분정도 늦은 거였고 약국에 다녀온 반장과 얌순이 보다 훨 일찍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었단다. 나머지 두 녀석은 친구 생일을 챙겨준다고 후문쪽에서 잠시 지체를 하고 그 때 돌아오던 장면이었던 것이다. 물론 마음 속 깊이 "그래도 그렇지"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 10분이건 몇 분이건 늦는 행동은 공부하는 다수의(사실 우리반은 소수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 그걸 생각 못하는 건 명백히 녀석들의 잘못이다. 그치만 아이들의 책임을 묻기 전에 보충이니 야자니 하는 것들이 생래적으로 지닌 문제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보충도 야자도 100% 아이들의 자율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담임이 아이들에게 '믿음의 토대' 운운하는 건 우습다. 쪽팔린다. 아이들이 표현 못(안)해서 그렇지 이건 명백한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담임들의 원죄가 아닌가?
그/래/서/
녀석들을 슬그머니 용서해주기로 했다. 이건 그야말로 슬그머니 해야한다. 드러내고 사과하고 싶은 욕망을 꾹 참아야 인문계 담임의 쥐뿔같은 카리스마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달부터는 원하는 녀석들은 야자를 거의 다 빼주기로 했다.(보충은? 이런 거 불문율이다. 물으면 실레다.그럼에도 굳이 답하자면 당근 이것까지는 감당이 안 된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정말 예민한 것이다.) 물론 제출해야할 서류는 있다. 1학년 진급성적, 지난 모의고사 성적을 부모님께 공개하고 부모님으로부터 야자동의서를 받아오게 했다. 아울러 한 달 동안의 공부계획서도 받았다. 착한 이 아이들은 너무나 감사해하며 이 모든 불편을 감수했다. 지금 내 책상서랍 속엔 22장의 부모님동의서와 공부계획서가 서류의 주인들 마냥 아주 얌전하게 구겨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