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한다고? 안중근이 벌떡 일어날 일

‘숭모사업’을 둘러싼 왜곡

 

 

 

 

최근 보도에 의하면 안중근의사숭모회(회장 황인성-전 국무총리)가 150억원(국고 120억원과 후원금 30억원)을 들여 현재의 기념관 바로 옆 남산식물원 자리에 새로운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올 7월 착공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이기도 한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가 시민의 신문에 기고한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요즘 일본 문부과학성이 고등학교 교과서 제작출판사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영유권을 명시토록 한 것이 논란이다. 정치가들의 망언 수준을 벗어나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우리 한국 내부에서도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태의 책임은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한국 내부의 일부 역사학자에게도 있다. 일본 측이 전후에 ''범죄의 재구성'' 차원에서 조작한 자료들을 마치 실증주의 역사학의 자료인 것처럼 인용하는 한국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숭모사업? 기념사업 빙자한 이권사업

결국 한일 과거사 문제에 있어 우리 한국은 양방향에서 협공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쪽엔 일본정부가, 다른 한쪽엔 국내 역사학자들이 있는 것이다. 오늘은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 지난 수 십 년 동안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둘러싼 왜곡된 숭모사업을 예로 들어 이 문제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남산 조선신궁터의 식물원.
김민수
남산 조선신궁터의 식물원.

지난 3월 26일이 안중근 의사가 뤼쑨 감옥에서 순국한지 96주기였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에 만주 하얼삔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됐다. 역사적으로 ''10.26''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영화 ''그 때 그 사람''을 연상하지만, 사실 이 날은 자주독립, 사회정의, 동양평화를 위해 원흉을 저격했던 안 의사의 거사일이다. 안 의사는 체포되고 5개월 만인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순국 96주기를 맞아 안 의사 기념관을 일제가 건립한 남산 조선신궁 터에 새로 짓는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 식물원이 있는 곳인데, ''안중근의사 숭모회''측에서 이곳에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기념관을 새로 짓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건립비용은 총 150억으로 이중 120억은 정부예산으로, 나머지 30억원은 후원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숭모회 측은 기념관 건립의 이유로 "1970년에 건립된 기존 안 의사 기념관은 건물이 낡고 좁아 방문객들로부터 외면당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안 의사 기념관이 왜 이 남산에 세워졌을까.

그 이유는 현재 기념관 왼편에 세워져 있는 태극기를 들고 있는 안 의사 동상이 증언하고 있다.
바로 해방 후 친일세력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은폐하고, 독재정권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통치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함 이었다.

친일조각가가 만든 안중근 동상

안 의사 기념관 아래의 남산 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1969년 제작)과 함께 안 의사의 동상 역시 대표적인 친일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해 1974년에 세워졌다. 안 의사를 숭모한다면서 악질적인 친일조각가의 손으로 제작한 동상이 버젓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1970년에 기념관을 세운 목적도 안 의사를 숭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차원에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경승 제작, 안중근의사상.
김민수
김경승 제작, 안중근의사상.

일종의 관변 단체 활동차원에서 안 의사의 기념관이 지어진 셈이다. 지난 1963년에 사단법인 설립이 승인되어 1970년 10월 26일에 박정희 전대통령의 지원으로 기념관이 건립된다.

그동안 이 숭모회의 역대 이사장과 주요 간부들은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 이사장의 경우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친일했던 사람들이거나 독재정권의 관료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런 사정은 다른 독립투사 기념사업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친일진상규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막았던 정당 고위공직자 출신 정치가가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야합을 하면 기념사업회 측에선 각종 이권사업을 펼치기 쉽고, 정치가는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어 상부상조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다 보면 젯밥에 눈이 멀어 실제 기념사업보다는 건물세우는 일처럼 항목이 큰 사업비 책정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결국 혈세를 낭비하게 된다.

현재 안 의사 숭모회가 운영하고 있는 안 의사 기념관의 경우, 제대로 관리가 되지도 않고 있다. 유품을 전시할 공간이 모자란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전시물이 교체되지도 않고, 전문성이 엿보이는 기획 전시는 더욱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숭모하고 기념하는 일이 아니라 기념사업을 빙자한 일종의 이권사업인 셈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안 의사를 숭모한다면서 어떻게 친일조각가의 동상을 세워놓고 있겠는가. 그런데도 숭모회 측에선 "안 의사 동상이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조각가 김경승이 훌륭한 작가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김경승은  대표적 친일단체였던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의 ''경성미술가협회''에 평의원, 조각분과 역원으로 부역행위를 했던 인물이다. 경성미술가협회는 1941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목적은 대동아전쟁을 위한 신체제 아래서 미술가들이 단결하여 직역봉공을 다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미술인 최대의 조직이었다.

또한 매일신보 1942년 6월 3일자에 보면, 김경승은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서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중대한 사명을 위해 미력이나마 다하겠다"고 맹세를 하기도 했다. 그는 1944년에 결전미술전람회에 조소부 심사원이자 ''대동아건설의 소리''라는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는데, 그가 제작한 것으로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안중근, 이순신 , 도산 안창호,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 등이 많이 있다.

일제가 세운 ‘조선신궁’도 문제

이번에 새로 짓겠다는 기념관 자리가 조선신궁 자리라는 것을 민족정기 회복 차원이라 오해할 이들이 있을까봐 좀 긴 설명을 덧붙여야겠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는 민족정기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에 해당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조선신궁이 남산에 세워진 과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신궁은 1925년에 세워졌다. 원래 남산은 조선왕조의 한양성에서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태조는 조선왕조를 건국하면서 남산에 나라의 제를 올리는 사당인 국사당을 지었다. 현재 남산타워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짓고 국사당을 인왕산 기슭으로 이전시켜버리면서 ''국사당''의 제사 ''사''(祀)자를 스승 ''사''(師)자로 교묘하게 바꿔버렸다. 천제를 올렸던 국사당을 마치 조선왕조의 스승격인 무학대사를 위한 사당처럼 격하시켜 버렸던 것이다. 일제가 저지른 남산의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방 후 친일비호세력으로 등장한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들은 독재자 이승만을 ''국부''라 칭하고, 1955년 조선신궁 자리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이 동상은 친일조각가 윤효중이 제작한 것으로 이승만의 81회 생일을 봉축한다는 뜻에서 몸체(23.5척:7.12m)와 축대 높이를 합해 81척(24.54m)으로 제작되었다. 이 동상은 1955년 개천절에 기공해 다음해 8.15광복절에 제막되었는데, 4.19혁명 때 성난 시민들이 폭파시켜 버렸다.

이런 역사를 목격했던 박 정권이 1970년에 정권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안 의사 기념관을 식물원 밑에 건립했다. 따라서 남산식물원, 옛 조선신궁 자리에 기념관을 새로 짓겠다는 것은 일제에서 이승만 정권을 거쳐 이어져 온 ''성역화 사업''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바로 식민잔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민족정기의 전당'' 돌덩어리
김민수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민족정기의 전당'' 돌덩어리.

안 의사 기념관 앞에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휘호가 새겨진 거대한 돌덩어리가 있는데, 실은 ''민족정기 훼손의 전당''인 셈이다. 당장에 능욕당하고 있는 안 의사 동상과 기념관 자체의 훼손된 역사를 바로잡지도 못하면서 새 건물부터 짓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말로 안 의사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한다면 기념관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남산이 아니라 평지로 내려와야 한다. 안 의사를 기념한다고 동상을 세우고, 사당처럼 지어 신격화하는 것은 일제잔재와 독재정권의 잔재를 대물림하는 것이다. 안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의 핵심은 ‘자주독립’, ‘사회정의’, ‘동양평화’로 이 정신은 조선신궁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친근하게 계승되어야 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내부
김민수
안중근의사 기념관 내부.

이런 왜곡된 기념사업 때문에 지난 2003년 6월에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진의 퇴진과 개혁을 촉구하는 100인 선언''이 있었다. 

일 왜곡 대응, 우리 내부 역사 제대로 보기부터

그 선언문에 보면 “국권침탈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정신은 식민잔재 청산과 자주적인 독립국가 건술로, 민권자유의 신장에 바탕을 둔 사회정의는 폭력적인 국가권력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으로, 동양평화사상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화해와 민족공조로,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연대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안의사 기념관 새로 짓는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예산 지원을 먼저 약속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 과정부터 거쳐야 한다. ''신격화/성역화된 사당 짓기''가 되면 곤란하다.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우리는 이미 살던 대로 계속 영유하고 있으면 된다.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단호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한 문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오래 동안 치료되지 않은 왜곡의 역사가 우리 내부에 많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 내부를 향한 대응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내부의 역사 문제에 대해 명확히 할 때, 최근 일본의 왜곡 도발에 대해서도 대응할 힘이 실릴 수 있다.

 김민수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3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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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4-0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사실은 알게되었네요. 처음엔 글쓴이가 미대 교수라서 유한 글인줄 알았더니.